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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69화 (169/230)

회귀한 탑 등반자 169화

169화 추기경 (2)

여성은 남자에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카일 경, 전 괜찮습니다.”

카일은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여성은 눈을 마주치더니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해 왔다.

향후 교황 자리를 두고 싸워야 할 경쟁자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녀의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손을 맞잡자 미미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살짝 거부감이 들었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았다.

“엘리자라고 해요.”

“엘 추기경이라 부르면 되겠군요.”

“엘리자라고 부르셔도 상관없어요.”

카일은 우리들의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으며 다시 엘리자를 쳐다봤다.

“그쪽은 이름이……?”

“이준석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오진하입니다!”

“준석 씨, 진하 씨. 여기는 보는 시선이 많으니 자리를 옮길까요?”

주위를 둘러보니 확실히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엘리자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유명한가 보군.’

하나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미래에 그리 비중이 큰 인물은 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적당히 유명하고 적당히 알려진…… 그런 부류이리라.

곧 인적이 드문 골목에 들어섰다.

엘리자는 길게 숨을 토해 내곤 날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준석 씨가 초원에서 벌였던 활약상은 잘 지켜봤어요. 상급 악마 어쩌면 그보다 위에 있는 대악마를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단신으로 처치한 모습은. 직접 눈으로 봤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더군요.”

“제 활약상을 얘기하려고 이렇게 외진 곳까지 발걸음하신 건 아닐 테고. 용건이 뭡니까?”

카일이 내 말을 듣고 발끈해 앞으로 기어 나오려는 것을 엘리자가 손을 뻗어 막아섰다.

“카일 경, 제가 나서라고 할 때까지 가만히 있으세요.”

그녀가 냉랭한 말투로 내뱉자 카일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미안해요. 불편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괜찮습니다.”

“아무튼. 준석 씨한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일단은 들어 보죠.”

“제안을 하기에 앞서서 준석 씨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뭡니까?”

“혹시 상층부의 사람인가요?”

보여 준 무력 때문에 상층부의 사람이라고 의심을 하는 것 같았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진실을 말해 주었다.

“아닙니다.”

“그럼, 중층부에서 그쪽이 이루고 싶은 목표가 뭐죠?”

“목표라면 교황이 되는 거겠죠.”

“꼭 교황 자리에 앉아야 하나요?”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려고 한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교황이 되고. 다음 층으로 향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면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역시 그런 거였나.

“제 밑으로 들어와요. 물론 제 지시를 따르란 말이 아니에요. 아까 말한 대로 표면적으로만 밑으로 들어오는 것일 뿐. 사실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거죠.”

잘 포장해서 얘기했지만 그냥 밑으로 들어오라는 얘기였다.

“그쪽 밑으로 들어가면 그만큼 얻어야 하는 게 있어야 할 텐데. 대체 무얼 줄 수 있죠?”

“추기경으로서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겠어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쪽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이미 어떤 무력을 지니고 있는지 봤는데,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요? 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 대우해 주겠다는 얘기예요.”

꼭대기 층에 도달하는 것이 최종 목적인 내게는 실로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가 없다.

그녀의 손을 잡으면 얘기가 나온 대로 중층부를 빠르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은 무리였다.

교황이 돼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 있다.

교황 옆에 있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물건이다.

‘아쉽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예. 좋아…… 에? 이걸 거절한다고?”

“확실히 매력적인 얘기긴 한데. 그쪽과 목표가 겹쳐서.”

“목표가 겹친다니? 그게 무슨 소리죠?”

나는 엘리자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교황이 되는 건 접니다.”

엘리자는 두 어깨를 흠칫 떨었다.

결국 참아 내지 못한 카일이 내게 칼을 겨누었다.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 군! 교단에 속하지도 않은 자가 교황이 되겠다 떠벌리다니!”

나는 카일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교단에 속하지 않으면 교황이 되겠다 말도 못하는 법이라도 있나? 그리고 교단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여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거늘.”

그때 손등에 있는 표식이 드러났다.

“그것은……!”

카일은 크게 놀란 표정으로 몸이 얼어붙었다.

“명예의 증표자……?”

엘리자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어떻게 증표를!”

“왜? 교단에 속하지 않은 자가 증표를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한가?”

엘리자와 카일 이외에 같이 있던 교단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증표를 보여 주니 전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엘리자를 보며 말했다.

“얼마 있지 않아 교단에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그쪽과 똑같은 추기경이 될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 그쪽이 교황이 된다면 마주칠 일이 없겠죠. 하나, 내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교황이 되지 못한다면 서로 경쟁하는 위치에 서게 될 겁니다.”

“…….”

엘리자는 침묵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돌려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경쟁을 떠나 교황 자리를 투표할 때 서로 표를 교환하시죠.”

“……한 표라도 가지고 가자. 그런 말인가요?”

“네.”

“그걸 어떻게 믿죠? 말은 서로 표를 던져 주자고 말해놓고 다른 사람을 뽑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그거야 구속력이 있는 계약서를 작성하면 되는 일이죠.”

“구속력이 있는 계약서?”

탑의 상인이 파는 것 중에 구속 계약서라는 존재했다.

계약을 어길 경우 일종의 페널티가 부여된다.

다만 구속 계약서를 구하려면 상당한 돈과 시간이 소모된다.

“잠깐만.”

나는 뒤로 돌아 등가교환 마법으로 가림막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오진하에게 물었다.

“종이 있냐?”

“종이요?”

“그래.”

“뭐. 빈 종이를 가지고 있긴 한데. 왜요?”

“내놔 봐.”

“양피지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줘.”

나는 양피지를 건네받은 뒤 아공간에서 페이크북을 꺼냈다.

설마 여기서 이걸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예 묵혀 두는 것보단 이런 식으로라도 쓰는 게 나았다.

페이크북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페이크북에 소량의 마나를 부여하면 책에 있는 힘이 일시적으로 내게 이전된다.

정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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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피지

내용: 얇은 가죽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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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평범한 양피지에 불과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내용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 고민한 후 곧바로 힘을 발현시켰다.

잠시 후.

화르륵!

기존의 정보창이 전부 불에 타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창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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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르고 구속 계약서

내용: 강력한 마수의 힘이 깃들어 있다.

효과: 계약서에 작성한 내용을 어길 경우 슬립 저주에 걸리며 영구적으로 능력치 체력의 일부가 소멸된다.

사용 가능 횟수: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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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새로운 정보창은 아주 빈틈없이 완벽했다.

“준석 씨.”

“응?”

“그렇게 웃으니까 살짝 무섭네요.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아무 짓도 안 해. 그냥. 스스로 옭아매도록 겁을 좀 주려는 것뿐이지.”

이내 가림막을 없애자, 엘리자는 살짝 화가 나 있었다.

“사람 앞에 두고 갑자기 가림막을 치다니.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동료와 상의할 일이 있어 가지고. 그보다…… 아까 말했던 계약서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양피지를 건네받은 그녀는 허공을 응시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정보창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리라.

페이크북은 정보창의 내용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외형을 바꾸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속 계약서가 아닌 알바르고라는 존재치 않는 마수의 이름을 넣어 놓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녀가 계약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계약서에 작성한 내용을 어기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슬립 저주. 지속적으로 잠이 오는 저주에 걸리는데다가 힘겹게 올린 체력의 일부를 잃는다는 것은 상당히 큰 손실이었다.

엘리자가 미소를 머금었다.

“이거면 서로 믿을 수 있겠네요. 얘기가 나온 김에 바로 내용을 작성하죠.”

“예.”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녀와 아무런 효력도 없는 계약서를 작성해 나갔다.

그러나 내용을 작성한 뒤에 양피지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으면 효력이 발생하는지 발생하지 않는지 알 수 없으니, 일부러 등가교환을 사용해 글씨에 빛을 새겨 넣었다.

단순히 보여 주기식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안심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여 주기식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표 하나는 확실히 얻었군.’

어쩌다 보니 하루 만에 많은 수확을 거뒀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 * *

이튿날.

간만에 몸을 풀고 잠을 자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 개운함이 들었다.

“하암~.”

오진하가 까치 머리가 된 채로 계단을 내려왔다.

“잘 자셨어요?”

“잘 잤지. 아침 먹을 거지?”

“네. 먹어야죠.”

집 앞에서 사 온 음식을 거실의 식탁에 깔아 식사를 즐겼다.

오진하는 잼이 발린 토스트를 입에 물고 조용히 씹다가 이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집에 준석 씨 친구 분들이 온다고 했죠?”

“어.”

“그때 전 빠져 있을 게요. 얼굴도 모르는데 괜히 끼어 있어 봐야…….”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계속 알고 지내야 할 텐데, 미리 얼굴을 익혀 두는 게 좋지.”

“아, 그런가…… 근데 친구 분들은 언제쯤 온대요?”

“음…… 언제 온다고는 듣지 못했는데.”

“캬하아암~ 콰욱!”

어느새 다칼이 식탁에 올라와 음식을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다칼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먹으면 주변에 다 튀잖아. 앉아서 먹던가. 내려가서 먹어.”

“크으응.”

다칼은 음식을 가지고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언제 온다고 듣지 못했다고요.”

“아. 그래. 오늘 오라고 말을 하긴 했는데. 언제 오는지는…….”

탕탕탕!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왔나 본대요? 누구지…… 친구 분들인가? 제가 나가볼게요.”

오진하가 토스트 한 개를 손에 쥐고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현관문 앞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목소리들.

나는 조용히 거실을 벗어나 현관문 앞으로 이동했다.

“어, 저기 오셨네.”

오진하가 자리를 비켜서는 순간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자동으로 미소가 서렸다.

특히나 그중에 한 놈이 살짝 눈물까지 흘려 가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형님!”

날 껴안으려고 하는 하성태를 뺨따귀를 쳐서 옆으로 밀쳐 냈다.

“형니임……!”

밀쳐진 하성태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은근한 서운함을 드러냈지만.

아무리 반가워도 남자끼리 껴안는 건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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