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65화
165화 재회
유희는 말하는 대신 조용히 나를 얼싸안았다.
설마 포옹을 할 줄은 몰랐기에 자세가 어정쩡해졌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녀석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다.”
유희는 희미하게 몸을 떨었다.
나는 이미 탑을 올라봤기 때문에 환경에 적응하기가 쉬웠던 반면. 유희는 모든 상황을 처음 직면하고 극복해 내야 했다.
그것이 절대로 쉽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여기까지 따라붙은 게 놀라울 정도이다.
아무리 꾸준히 내가 정보를 넘겨줬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고 실행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 영역은 오직 자신의 힘으로 올라서야 한다.
이내 나는 고개를 틀어 말했다.
“근데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냐?”
퍽!
“어억.”
어퍼컷을 한 방 먹인 유희가 뒤로 물러서서 뾰로통한 표정을 내보였다.
“재회 분위기로 딱 좋았는데. 여전히 눈치가 없어요.”
“대뜸 주먹부터 날리는 고약한 성격은 어디 안 갔네.”
“너한테 지적 받을 정도는 아니거든.”
언제나 그랬듯이 유희와 익숙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뭘까? 색다르게 느껴지는 이 기분은?
알았다. 이 기분이 무엇인지.
41층에서 유희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유희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것마저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다.
회귀 전에 혼자서 중층부에 올라섰을 때 길거리에서 유희와 티격태격하며 걷는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추억이 아닌 지독한 고독이었다.
고독보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없었다.
그토록 바랐던 그림이 현실로 이루어져서일까?
잠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야! 야! 이준석!”
“어, 어?”
부름 소리에 잠깐 멀어졌던 의식이 되돌아왔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왜 바보처럼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해!”
“방금 뭐라고 했어?”
“후~ 됐다. 됐어.”
“뭔 얘긴데.”
“아니아. 그다지 중요한 말도 아니었어.”
나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근데 여긴 언제 온 거야?”
“어제.”
“용케 날 찾아냈네?”
유희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여기에 있는지도 몰랐어.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길래 쫓아와 본거지.”
“아…… 근데 어제 왔는데 명예의 증표는 어떻게 알았대?”
“아. 그거. 술집에 엿들었지. 너야말로 여긴 언제 온 거야?”
이번에는 유희가 궁금한 걸 물어 왔다.
“나? 난 한 달 전쯤.”
“역시. 그 정도 차이가 났구나…….”
유희는 생각을 정리하듯 시선이 다른 데로 향해 있었다.
“준석 씨!”
마침 접수를 끝낸 오진하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후~ 한참 찾았네. 근데 왜 여기에 계세요? 저기에 서 있을 곳도 많은데.”
나를 바라보던 오진하는 곧 유희와 두 눈을 마주쳤다.
그러더니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여자에겐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제가 너무 눈치없이 굴었네요. 적당히 핑계 대고 빠지겠습니다.”
“뭐? 그런 거 아냐.”
“아이고! 막사에 물건을 깜박하고 안 가지고 왔네!”
오진하는 내 말은 무시한 채 발 연기를 선보이며 뒤로 빠지려고 했다.
나는 그의 뒷목을 붙잡았다.
“그런 거 아니라고.”
“예? 그런 게 아니라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발 연기는 그만하고 소개할게. 이쪽은 김유희. 전에 말한 적이 있지?”
“네? 이분이 그분이라고요?”
“그래.”
“아아…….”
오진하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가 침묵을 하고 있자 먼저 유희가 다가가 말을 건넸다.
“오진하 씨죠? 편지로 전해 들었어요. 물건 만드는 능력이 타고나셨다고.”
편지에 그런 내용은 적지 않았다.
그저 망치질 좀 할 줄 아는 사람을 거둬들였다고 적어 놨을 뿐이다.
오진하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 하하! 준석 씨가 그런 말도 했나요?”
“네. 나중에 제 검이랑 방패도 한번 봐 주실 수 있나요? 내구도가 다 닳아서 외형이 많이 망가졌거든요.”
“아, 예! 뭐. 얼마든지 손봐 드릴게요.”
“고마워요.”
유희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하하…….”
오진하는 딱딱하게 로봇처럼 반응했다.
“응? 어, 자기. 오해하지 마. 그런 게 아니고…… 이건 그냥…….”
그는 서둘러 유희와 맞잡았던 손을 회수했다.
그러자 유희가 황당하게 쳐다본다.
대뜸 갑자기 혼잣말을 하고 있으니 미친놈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 그의 사정을 얘기해 주었다.
“아, 그런 거구나. 난 또 환각이라도 보는 줄 알았지.”
그 때문에 자주 사람들에게 시선이 끌리곤 한다.
“그보다 길드원들은 어디에 가고? 너 혼자 돌아다녀.”
“맞다!”
유희는 중요한 걸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길드원들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길드마스터가 늦으면 안 되지. 어서 가 봐.”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잇는다.
“후~ 이미 늦었어. 성태 씨한테 한 소리 듣겠네.”
“그놈은 잘 지내고 있어?”
“어? 응. 너무 잘 지내 탈이지. 그보다 살고 있는 곳이 어디야?”
“메인스트리트 1번지. 검은색으로 코팅된 유리창이 달려 있는 건물로 오면 돼.”
“유리창이 검은색이야?”
“어.”
오진하가 인듀어 길드원 놈들이 깨고 간 자리에 새로운 마법 유리창을 설치했다.
어지간한 물리적 충격과 마법 충격으로는 깨지지 않는 특수 유리가 사용됐다.
“메인스트리 1번지. 검은색 유리창…….”
유희는 내 말을 되새기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걸음을 떼며 말했다.
“나중에 찾아갈게!”
“올 거면 내일 와. 오늘은 바빠서 없을 예정이거든.”
유희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일 찾아가지. 뭐. 아. 그리고 혹시 집에 길드원들도 데리고 가도 돼? 성태 씨가 엄청 반가워할걸? 성태 씨 말고도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 같이 와.”
“응!”
유희가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오진하를 쳐다봤다.
“자기! 내 말 좀 들어 봐. 오해라니까?”
여전히 아내와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한동안은 저러고 있겠구만.’
내가 보기에 오진하도 아내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지만 그 아내 또한 남편에게 가지는 집착과 질투가 대단했다.
어떻게 보자면 서로 잘 맞는 천생연분이다.
나는 둘이 오해가 풀리길 기다리다가 인내하지 못하고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만하고 따라와.”
이러고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 달간 준비 때문에 아무런 공적치도 쌓지 못했다.
그리고 준비 기간 동안 몸도 같이 쉬어 주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진하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다칼을 데리고 나온 뒤 곧장 집합소가 있는 동쪽 거리로 이동했다.
광장으로부터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위치에 붉게 빛나는 포탈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것은 층을 오르고 내리는 포탈이 아닌 교전지로 향하는 공간 이동 게이트였다.
게이트 주변에는 모집소에서 본 숫자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광장이나 모집소와는 다르게 시끌벅적함은 없고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흘러서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육안으로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를 오진하도 똑같이 느꼈는지 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긴장감이 엄청나네.”
주변의 눈치를 보며 내게 속삭였다.
“준석 씨, 저기 사람들 무슨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지 않아요? 대체 교전지가 어떻길래 그러는 거지.”
오진하가 은근한 걱정을 드러냈다.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기에 그를 다독이듯 얘기했다.
“괜찮아. 설마 두 번 죽기야 하겠어?”
“싸우다가 위험하다 싶을 때 죽어라 도망치면 죽지는 않겠죠.”
그는 도망치는 것에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캬하암~.”
한편 집에서 한껏 음식을 먹은 다칼은 내 머리 위에서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잠시 후, 줄에 합류해 우리들 순서가 오길 기다렸다.
여기서는 명예의 증표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온 순서대로 게이트에 들어가야 했다.
그동안 오진하는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오랜 시간 기다리며 긴장감이 떨어질 때쯤 드디어 게이트 앞에 설 수 있었다.
“후우~.”
뒤에서는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곧 게이트 앞에 서 있는 병사가 신분을 확인한 뒤 통과를 외친다.
스아아아-
게이트에서는 불길한 소음이 들려왔다.
나는 그런 소음에 개의치 않은 채 게이트를 넘었다.
몸이 잠시 부유했다가 가라앉는다.
탓!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시야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저 멀리를 내다봤다.
교전지의 중심은 어두운 하늘과 피폐해진 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사이에 쌓아 올린 시체 밭에 수많은 악마와 인간들이 한데 뒤섞여 피를 흘렀다.
콰아아앙! 콰아앙!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대기에 떠도는 쾌쾌한 연기가 이곳을 덮쳤다.
윈드퍼드.
휘이이-!
바람으로 연기를 걷어 내곤 지근거리에 있는 풍경을 살폈다.
수백여 개의 막사들이 다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중에 멀쩡한 것을 찾는 게 더 어려워 보인다.
“으아악! 으아아아! 내 다리!”
방금 전 폭발에 휘말린 병사 한 명이 고통에 울부짖는다.
“누가 좀 도와줘!”
도움을 요청하지만 누구 하나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치료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막사 안에는 치료할 부상병들도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옆에 있는 시신에서 붕대를 가지고 왔다.
그 붕대를 병사에게 툭 던지며 말했다.
“도와 달라고 울부짖지만 말고 그걸로 상처 입은 곳을 압박해.”
전장에서는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책임을 질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다.
어느덧 나를 뒤따라온 오진하가 옆에 서며 말했다.
“와…… 처참하네.”
그는 쓰러져 있는 병사를 흘끗 보다 앞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디부터 건드려야 할지 답도 안 보이네.”
전장의 중심지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전장에 있는 악마들은 여태껏 만나 온 잡몹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놈 한 놈이 전부 보스급에 해당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키도 5, 6미터는 거뜬히 넘으며 주로 마법을 구사했다.
곧 나는 열 걸음 정도 나아가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적 진영을 응시한다.
“간단하게 첫 인사나 나눠 볼까.”
지팡이 끝으로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한다.
우웅! 우우우웅!
불꽃을 품은 작고 큰 마법진 두 겹이 허공에 생겨났다.
치이이이!
마법진의 영향으로 대기에 수증기가 발생했다.
이어서 땅이 끓어오른다.
우우우우우웅!
기존의 마법진보다 더욱 큰 마법진이 하나 더 늘었다.
“후아~.”
입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화아악!
가까이 있던 작은 마법진이 폭열로 붉어지며 불의 화력이 강해졌다,
연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마법진에서도 폭열이 일어나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윽고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속으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메테오.’
잠시 후, 칙칙하고 어두운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