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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64화 (164/230)

회귀한 탑 등반자 164화

164화 명예의 증표 (2)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시장 거리에서 김동혁은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결론은 실패했다는 거 아냐?”

“흣!”

그 뒤에 무릎을 꿇은 여자가 몸을 흠칫 떨었다.

쿵!

여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하다고 느꼈는지 땅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한 번만 용서를……!”

김동혁이 고개를 돌려 여자를 내려다본다.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그의 눈빛에는 경멸과 혐오가 담겨 있었다.

“네! 기회만 주시면 이번에는 반드시 놈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둘을 쳐다보며 수군거린다.

김동혁은 그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듯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야.”

“네, 네?”

여자가 그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김동혁은 그녀와 두 눈을 마주치자마자 손에 들고 있는 이쑤시개를 목에다가 튕겼다.

“크헉!”

이쑤시개는 목의 동맥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여자가 서둘러 손을 이용해 출혈을 막아 보지만 틈새로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하. 시발 년이 지금 장난치나. 기회는 이미 줬는데 뭘 또 기회를 달라는 거야!”

그가 고함치며 살기를 내뿜자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의 몸이 경직됐다.

이후 몸을 벌벌 떨었다.

“끄어억…….”

여자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탁!

김동혁은 그런 그녀의 입을 거칠게 틀어막았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던 피가 다시 안으로 역류한다.

“꾸억. 꾸억!”

“그리고 다시 널 보내면 내가 뭐가 되겠어. 응? 뒤로 숨은 겁쟁이가 되는 거 아니야. 생각을 좀 하고 말하라고. 이년아.”

그는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튕겨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를 조작했다.

허공에 뜬 이쑤시개가 노란 불꽃을 두르더니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씨잉-

정적이 흘렀다.

화아악!

“끄아아아!”

불에 휩싸인 여자는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에게 접근하던 사람들 주위로 노란빛이 지나쳤다.

화아악!

“으아아아!”

그들도 똑같이 몸에 불이 붙어 비명을 내질렀다.

“하여간 쓸데없는 오지랖은.”

김동혁은 싸늘한 시선으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있는 눈빛이다. 동시에 자신에게 적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방금 전에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 나섰던 이들처럼.

“마음에 안 들어.”

그는 근처에 있는 놈들을 깡그리 죽여 버릴까 생각하다가 이내 행동을 멈추었다.

저들을 죽이는데 딱히 힘이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우선시해야 할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준석…….”

그를 떠올리며 무의식적으로 섬뜩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도, 도망쳐!”

기운에 노출된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죽어라 달렸다.

그러나 김동혁은 사람들이 도망을 치건 말건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파라오의 밧줄도 통하질 않았단 말이지…….”

자신조차도 파라오의 밧줄에 걸리면 끊어 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해냈다는 것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당장 녀석을 만나서 잡아 족치고 싶지만 상대의 전력이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되는 상태에서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야 했다.

그것이 김동혁이 탑에서 살아남은 이유였다.

‘녀석의 전력을 파악하기는 어렵고. 그렇다면 내 전력을 높이는 수밖에.’

“역시 놈을 죽이려면 그게 필요해.”

마도사들에게 최악의 아이템이라고 불리는 마나 이터.

가까이 접근한 상대의 마나를 빼앗아 자신의 힘을 일시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고대 반지였다.

사용한 뒤에는 부작용이 따르긴 하지만 그런 걸 고려해 가며 싸울 상대는 아니었다.

이내 먼 곳을 응시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돌아와서 갈기갈기 찢어 줄 테니!’

김동혁은 조용히 거리를 벗어나 위층으로 향했다.

* * *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작고 큰 변화들이 있었다.

우선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줄 알았던 김동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길드원들도 보내오질 않아 결국 내가 직접 찾아나서까지 했다.

하나 그는 이미 잔챙이들만 남겨 놓고서 어디론가 떠나 버린 후였다.

놈의 성격상 겁을 먹고 도망을 쳤을 리는 없고, 어디선가 계획을 꾸미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언제 나타날지 몰라 은근히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낮에는 주교 사뮤엘을 만나 친목을 다지고 밤에는 예배를 보았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용병소를 찾아가 시험을 치렀다.

왕국의 공적치를 얻기 위해서는 왕국을 위협해 오는 악마 놈들을 처치해야 하는데 전투에는 아무나 참가할 수 없었다.

왕국의 병사가 되거나 아님 교단에 소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장에 두 가지는 충족시키기 어려우니 용병을 선택했다.

용병이 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책 두 권은 달달 외워야 하는 필기시험.

일주일간 치러야 하는 실기시험.

단계별 치르는 면접시험까지.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야 비로소 용병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이 용병이 되는 날이다.

“흐흥~ 흥~.”

오진하가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왔다.

“저는 준비 다 됐습니다!”

그는 한껏 들떠 있었다.

필기시험에서 많은 고생을 했기에 기분이 남다르리라.

솔직히 그 정도로 암기를 못할 줄은 몰랐다.

“가지.”

“네!”

“캬함! 캼!”

-나는 집에 있도록 하지.

“그래. 넌 집이나 지키고 있어.”

다칼은 입에 음식을 문 채로 거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오진하와 함께 집을 나와 곧장 용병소로 향했다.

용병소는 무미건조하고 단조롭기 짝은 없는 평범한 건물을 사용했다.

그나마 겉으로 꾸민 건 옥상에 매달아둔 역삼각형과 검이 겹쳐 있는 문양 깃발뿐이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용병소의 직원 리리아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해 왔다.

주홍빛 머리와 분홍색 리본 끈을 한 그녀는 화사한 봄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였다.

오진하가 먼저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리리아 씨!”

“오진하 님.”

오진하를 바라본 리리아가 이어서 날 쳐다본다.

“이준석 님.”

표정이 비장했다.

리리아는 서랍에서 두 개의 네모난 동색 카드를 꺼내 우리들에게 한 장씩 건네주었다.

“두 분 다 용병이 되신 것 축하해요!”

“하아~ 드디어!”

오진하가 감격에 젖은 눈물을 흘리며 두 손으로 카드를 꼭 쥐었다.

나는 카드를 살폈다.

동색 카드에는 용병의 계급이 새겨져 있었다.

<하급>

하급 이후에는 중급. 상급. 특급이 존재했다.

[에펠 왕국의 용병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용병 활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메시지를 보자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야 참여할 수 있겠군.’

용병소에서 볼일은 끝났기에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어? 준석 씨! 같이 가요!”

오진하가 급히 뒤따라온다.

“두 분! 다시 한 번 더 축하드려요!”

뒤에서는 리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밖을 나온 오진하가 내게 물었다.

“급히 어디 가는 겁니까?”

“모집소.”

“모집소요? 거긴 왜요?”

“왜긴. 전투에 참가하려면 접수를 해야지.”

“예? 오늘부터 참가하시려고요?”

“용병증을 발급받는데 한 달이나 걸렸어. 공적치를 쌓으려면 오늘부터 당장 뛰어야지.”

“아아…… 용병증만 받고 돌아가서 무기나 제작하려고 했는데…….”

진심으로 절망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모집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20인이 넘게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막사 여러 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막사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의 행렬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얼핏만 봐도 수천 명은 되어 보인다.

애초에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에펠 왕국에서 유일하게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장소는 교전지뿐이니까.

아니면 완전히 성을 벗어나 오지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곳은 층으로 제한되어 있어 클리어한 사람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했다.

“와아…… 진짜 많네요. 그냥 줄 없이 바로 접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래서 언제 접수하냐.”

오진하는 한숨을 토하며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따라와.”

“예? 또 갑자기 어딜 가시는 거예요? 아! 줄을 다시 서야 되잖아.”

“줄 설 필요 없어.”

“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오진하를 데리고 행렬 앞으로 이동해 막사에 이르렀다.

그러자 막사를 지키던 병사들이 나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멈추시오.”

이마에 흉터가 있어, 인상이 험악한 병사가 말을 이었다.

“안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야 할 겁니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강제로 뒤로 보내드리지.”

“준석 씨, 괜히 문제 생기기 전에 뒤로 가요. 어서!”

오진하가 옆에서 극구 만류했지만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로 내 손등을 보여 주었다.

손등에서는 역삼각형의 표식이 밝게 빛났다.

“오오……! 명예의 증표인가.”

인상 험악한 병사가 환희에 젖은 표정으로 서 있다가 이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공손히 두 손을 모아 막사를 가리켰다.

“명예 증표자인 것도 모르고 이거 실례를 많았습니다. 줄은 서지 않아도 되니 들어가십시오.”

웅성웅성.

뒤에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소곤거렸다.

그때 누군가가 나서서 소리쳤다.

“뭔데. 저놈은 먼저 들어가라는 거야!?”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그는 석궁을 어깨에 짊어진 채 이쪽으로 걸어왔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뭐 줄 서는 거 좋아해서 서 있는 줄 알아!? 어!?”

따지고 묻자 인상이 험악한 병사가 말했다.

“본래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예외는 있다. 명예 증표자처럼 자격을 갖춘 자에게는 그만한 예우와 특권이 주어지지. 그것이 에펠 왕국의 율법!”

“시발!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난 그런 거 모르니.”

그는 나를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

“머리 빵꾸 나기 싫으면 뒤로 가라.”

그는 진심이었다.

티디디딕…….

방아쇠를 당겨지려고 하는 그때.

뒤에서 분홍 꽃문양의 가면을 쓴 여인이 손으로 석궁을 위로 쳐 냈다.

퉁!

쏘아진 화살은 하늘로 사라졌다.

“명예의 증표는 신좌 에페르가 내린 축복.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증표지. 그쪽은 그것도 몰라?”

가면 때문에 목소리가 변질돼 틀릴 수 있지만. 이 목소리 어딘가가 낯이 익었다.

“넌 또 누구야?”

남자가 이번에는 여인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그때 인상이 험악한 병사가 튀어나와 단숨에 그의 무기를 빼앗고 못 움직이게 제지했다.

“그대 또한 자격을 갖춘 자라면 지금 당장 막사에 들어가도 좋다. 하나. 그게 아니라면 다신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해 주지.”

나는 그의 움직임을 보곤 흥미를 드러냈다.

‘일반 병사가 아니었군.’

분명히 일당백이라 여겨지는 기사급이다.

단숨에 무력화 된 남자는 끝내 항복을 선언했다.

“너희들 얼굴 기억해놨어. 두고 봐.”

남자는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며 사라졌다.

이후 인상이 험악한 병사가 다가와 말했다.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명예의 증표를 잘 모를 수도 있죠.”

“에펠 왕국에서 살아간다면 명예의 증표가 무엇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죄이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펠 왕국에 와서 하루만 지내도 알 수 있는 정보가 바로 명예의 증표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많고, 도시에 명예의 증표자들이 나타나면 시끌시끌해지는 것도 한몫했다.

그는 큼지막하고 거친 손을 내게 내밀었다.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플라이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 핸드릭입니다.”

나는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이준석입니다.”

“따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면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핸드릭과 인사를 끝내고, 나는 오진하와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오진하는 명예의 증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랑 같은 용병단에 속해 있어 같이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접수는 용병증만 보여 주면 끝이었기에 아주 간단했다.

그 덕분에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접수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오진하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줄에 서 있는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동료가 될 이들이 있는지 훑어보는 것도 있었지만 전투 도중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빌런 녀석들을 미리 파악해 두었다.

몇몇 눈에 띄는 놈들이 있다.

그러다 우연히 아까 전에 도움을 줬던 가면을 쓴 여인과 두 눈을 마주쳤다.

여인은 마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혹시 개인적으로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솔직하게 여인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분명히 목소리가 비슷했지.’

늦었지만 고마웠다고 인사를 핑계삼아 말을 걸려고 다가갔다.

가까이 접근하니 더욱 익숙한 느낌이 든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여인은 대답 대신 머리 쪽에 손을 뻗었다.

‘뭘 하려는 거지?’

이내 그녀는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여인의 검었던 머릿결은 싱그러운 백색 머릿결로 변했다.

그리고 곧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드러났다.

“너…….”

아니겠지 했는데 너무 놀라 말문을 잊지 못했다.

맑고 강직한 황금색 두 눈.

오뚝한 코와 자그맣고 붉은 입술.

장난기 가득한 환한 미소.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김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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