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63화
163화 명예의 증표 (1)
빛을 움켜잡았다.
빛과 어둠은 극상성이어서 강한 반발력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쿠하아앙!
충돌의 힘과 반발력의 힘이 더해져 대기가 떨릴 정도로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충격파로 인해서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행동하기 전에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충격파는 얼마 가지 못해 완전히 힘을 잃어 소멸해 버렸다.
다크핸드는 단순하게 어둠 속성을 지닌 마법의 손이 아니었다.
대기에 있는 어둠을 강제로 끌어당겨 그것을 응용해 사용할 수 있었다.
방금 전에는 충격파가 발생하는 순간 타이밍에 맞춰서 어둠을 방출한 것이었다.
방출된 어둠은 충격파를 상쇄시키고서 여전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빛의 팽창을 막아 주었다.
구우웅-
하지만 빛은 여전히 형형한 빛을 내뿜으며 팽창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콰하앙!
대치가 길어지며 처음 발생한 충격파보다는 작은 힘이었지만 연속으로 충격파가 일어났다.
세 번이나 충격파를 상쇄시켰다.
‘제길!’
그러나 마지막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워낙 간극이 짧았던지라 인지가 늦었다.
“아우우우~!”
그때 다칼이 자신의 어둠을 방출해 충격파의 피해를 막아 냈다.
나는 다칼과 시선을 주고받고선 빛을 잠재우는데 집중했다.
한데 생각한 것보다 포탈이 일으킨 폭발력이 강력했다.
‘이걸로는 부족해.’
엘리렌스.
[각 마법의 속성이 대폭 강화됩니다.]
[각 속성의 내성이 일부 형성됩니다.]
버프를 부여하자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던 어둠이 빛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래. 이래야지.’
10레벨을 달성한 엘리렌스 마법의 효과는 삽시간에 상황을 해결될 정도로 뛰어났다.
폭발 중심에 있는 코어까지 다다랐다.
기이이이잉!
코어가 마지막 발악을 해 온다.
‘어림없지.’
나는 검은 손을 주먹으로 말아쥐었다.
틈새로 흘러나오던 빛줄기가 사그라들어 간다.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는 순간 검은 손을 거둬들였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신좌들이 새로 보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신좌 이명이 있었다.
[만인에게 사랑을 받는 자가 자신의 몸을 바쳐 교회를 지키려고 하는 그대의 헌신에 감탄을 표합니다!]
‘역시 지켜보고 있었나.’
만인에게 사랑을 받는 자의 다른 이명은 에페르.
중층부의 왕국을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백성들과 거주민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신좌였기에 에페르가 가진 힘은 최상위에 속했다.
[만인에게 사랑을 받는 자가 그대에 대한 관심과 고마움의 표시로 명예의 증표를 선사하였습니다.]
“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보상에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혀 버렸다.
사하아아!
이내 손등에 새겨진 역삼각형의 표식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명예의 증표…….’
회귀 전에도 받지 못했던 증표이며 역대 등반자들 중에 명예의 증표를 받은 등반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저 에페르의 화를 막으려고 나선 것뿐이건만.
내가 계획한 그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그림을 만들어 냈다.
명예의 증표가 있으면 사제가 되는 일도 훨씬 수월하게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승급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
이렇게 된 이상에 전반적으로 계획을 바꿔야 했다.
* * *
저택으로 돌아오자 2층에서 쉬고 있던 오진하가 아랫층으로 내려왔다.
“볼일은 잘 보셨어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잘 봤지.”
세이브 스킬이라는 한 마리의 황금 토끼를 잡으려고 하다가, 명예의 증표라는 또 다른 황금 토끼마저 잡아냈으니 횡재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근데 망치는 왜 들고 있어?”
“아, 장신구 하나 만들어 볼까 싶어서요.”
“그새 또 뭘 만들어?”
“그새라뇨. 벌써 반나절 넘게 망치를 잡지 못했구만. 준석 씨는 물건을 안 만들어 봐서 모르겠지만 감각을 유지하면서 기술력을 높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요. 아니면 도태돼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끔 과로사하기 직전까지 일할 때가 있어 신경이 쓰였다.
물론 그가 이런 걸로 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알지만 곁에서 보고 있으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몸은 챙겨 가면서 쉬엄쉬엄해.”
“예.”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흘려 들을 기세이다.
“아, 그리고 1층 거실 식탁에 음식 사 다놨어요. 다칼이랑 같이 드세요.”
“그래?”
나는 배를 문질렀다.
한바탕 뛰어서 배가 고플 법도 하지만 풍요의 로브 덕분에 아직은 든든했다.
“캬하앙!”
한편. 아까 전부터 배가 고프다고 했던 다칼은 음식을 사 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거실로 달려갔다.
‘그냥 뭐 사 왔는지만 볼까.’
거실로 이동해 식탁에 올려져 있는 음식을 확인했다.
“캬하암! 카함!”
어느새 다칼은 포장지를 너저분하게 찢어 놓고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댔다.
“누가 뺏어먹냐. 천천히 먹어.”
“캬함! 캬아아-.”
입에 음식을 넣어 대던 다칼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또한 안색이 굳어졌다.
‘살기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다.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쨍그랑!
그들은 사방에 창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이미 내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던 듯 다섯 명이 넘는 인물이 거실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거실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남자 두 명을 포함하면 총 일곱 명이었다.
“혹시 인듀어 길드 놈들인가?”
딱히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몇몇 놈의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인듀어 길드에서 보낸 놈들이 맞는 듯했다.
‘내가 먼저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네.’
그들 중 한 명이 평범하게 생긴 밧줄을 던졌다.
대체 저런 걸로 무얼한다는 건지.
하나 불길한 느낌이 들어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때.
퍼어엉! 푸시이이-
누군가가 연막을 사용했다.
그 사이에 보호막에 밧줄이 착 달라붙었다.
지잉!
밧줄에서 짙은 남색빛이 돌더니 보호막이 단숨에 깨졌다.
탓!
나는 곧바로 밧줄을 손으로 붙잡아 끌어당겼다.
“허억!”
밧줄을 가지고 있던 남자가 중심을 잃고 끌려왔다.
그런데 남자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웃고 있었다.
촤륵!
“……!?”
손으로 붙잡고 있던 밧줄이 어느샌가 내 팔과 다리를 속박하고 있었다.
“큭큭큭.”
코앞까지 끌려 온 남자가 소리 내어 웃는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쫙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며 동시에 메시지 창이 올라왔다.
[파라오의 밧줄에 속박되었습니다.]
[육체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나의 흐름이 뒤틀립니다.]
[마나가 지속적으로 소모됩니다.]
파라오의 밧줄은 탑의 상인에게 상상치 못할 거금을 줘야 살 수 있는 물건이다.
비록 성능은 좋은 편이지만 1회용 소모성 아이템에 불과해 구매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설마 날 잡으려고 이것까지 구매했을 줄이야. 머리를 좀 썼네. 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쳐들어온 줄 알았더니.’
남자는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는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곧 있으면 마나가 고갈되고 의식을 잃겠지. 아님 우리들 손에 먼저 죽거나. 밧줄에 걸려 든 순간부터 네놈은 진 거다.”
옆에 서 있는 여자가 말했다.
“여유롭네? 아니면 여유로운 척하는 건가? 소문의 위세가 대단하더니 뭐 별거 없네.”
“그래도 방심하지 마라.”
“좋아. 기다릴 것 없이 지금 바로 죽이자고.”
쫘아악!
남자가 밧줄을 잡아당겼다.
본래라면 육체를 움직일 수 없어 저항없이 끌려가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밧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이고.
마나방출.
쿠후우우웅!
공기 마저 무겁게 짓누르는 압축된 마나가 거실을 뒤덮었다.
“끄윽!”
“뭐, 뭐야!?”
일곱 명의 남녀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마나를 계속 방출했다.
치이이이…….
밧줄이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이윽고.
화륵!
밧줄이 재가 되어 버렸다.
[파라오의 밧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육체를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마나의 흐름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마나의 지속적인 소모가 멈춥니다.]
속박에서 풀려난 나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어, 어떻게…… 밧줄을…….”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남자만이 아니다.
나머지 녀석들도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를 우습게 보던 여자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파라오의 밧줄을 끊으려면 밧줄과 이어져 있는 우리들보다 마나가 많아야 되는데…….”
“왜 너희들이 마나가 많다고 생각하지?”
“뭐?”
“중층부에 올라오면 가장 위험한 게 뭔지 아나?”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크헉! ……쿠에에엑!”
여자가 갑자기 피를 토했다.
“우욱, 우웨엑!”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딱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잠시 잊는 것일 뿐.
원흉은 파라오의 밧줄이었다.
파라오의 밧줄은 성능이 뛰어난 대신에 여러 가지 조건이 따랐다.
첫번째는 밧줄과 마나가 연동될 인원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속박한 이가 밧줄을 끊어 낼 시 그 반발로 마나 그릇이 손상된다는 점이었다.
어느새 무릎을 굽힌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자기가 세졌다고 착각하는 거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과신하게 되고 결국 실수를 저질러.”
“끄으윽. 젠장!”
무기력하게 있는 이들에게는 마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두둑!
맨앞에 있던 남자를 필두로 놈들의 목을 꺾어 버렸다.
단 여자는 살려 두었다.
여자는 벌벌 떨면서도 단검을 들어 싸우려는 의지를 보였다.
하나 그녀도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터다.
스킬조차 발동하지 않은 순수한 검격이 날아들었다.
창!
나는 단검을 맨손으로 막아 내곤 한걸음 다가섰다.
“흐익!”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선다.
“가서 윗놈에게 전해. 뒤에 숨을 거면 부하들 계속 죽이면서 겁쟁이 답게 숨어 있고, 앞에 나설 거면 버러지들 그만보내고 직접 오라고.”
여자는 머릿속이 새하애진 듯 나와 두 눈을 마주 보기만 했다.
“왜. 전달하기 싫어? 그럼 여기서 죽던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는 거실에 쓰러져 있는 사체들을 가리켰다.
“저놈들도 데리고 가. 대답.”
“네, 네!”
“움직인다. 실시.”
여자는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사체를 하나씩 옮겼다.
거실에 있던 사체 이외에도 계단에 사체 하나가 더 있었다.
“준석 씨, 괜찮습니까!?”
“괜찮아.”
걱정했던 오진하는 인듀어 길드원 한 명을 거뜬히 정리한 상태였다.
“꺼어억!”
한편 거실에서 우렁찬 트름 소리가 들려와서 가 보니 그새 음식을 다 먹은 다칼이 배를 툭툭 두들기고 있었다.
“누군 버러지들 처리하느라 바쁜데. 누군 그 옆에서 팔자 좋게 음식이나 먹고. 아주 잘 돌아가는 꼴이다.”
“크응?”
-혼자서도 충분해 보이길래 가만히 있던 것인데. 지금이라도 나가서 그 여자를 잡아 오지.
밖으로 나가려는 다칼의 뒷목을 낚아챘다.
“어딜.”
“켕!”
다칼이 나서지 않아도 여자는 그자의 손에 죽을 것이다.
“크하아악! 케헥!”
-아프다! 아파!
나는 다칼에게 헤드락을 걸며 머릿속으로는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동혁.
‘자존심 하나는 센 녀석이지.’
그놈이라면 메시지를 전달받자마자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아님 스스로 베기질 못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