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161화 (161/230)

회귀한 탑 등반자 161화

161화 중층부 (3)

큰 키에 마른 체구를 가진 그는 조용히 다가와 우리들에게 합장했다.

인사를 받아 준 나는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바느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예복에서는 검소함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몸에서 신성력이 흘러넘치는군.’

어둠 친화력이 높기 때문에 상대가 신성력을 뿜어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신성력을 지녔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못해도 대주교급의 힘을 가졌다.’

대주교면 주교 위에 있는 직급이었다.

수십 명의 주교들 중에 한 명만 선택을 받는 것이 대주교인 만큼 쉬이 올라설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하나 그의 두 어깨에는 검은 실선이 하나뿐이었다.

대주교라면 검은 실선이 두 개여야 하건만.

가진 힘은 대주교급이나, 직급은 그렇지 못했다.

“크르응…….”

한편. 남자의 신성력에 불편함을 느낀 다칼이 내 어깨에서 내려와 조용히 구석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사람이 찾아오는 건 참 오랜만입니다. 젊은 두 분께서 여긴 어떤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혹시나 길이라도 잃으신 겁니까?”

“아뇨. 예배를 하러 왔습니다!”

입을 열기도 전에 오진하가 먼저 대답했다.

“오호. 사제분들이셨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사제는 아닙니다.”

남자가 이쪽을 바라봤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언젠가 사제가 되길 바라시는 모양이군요.”

“네. 하지만 바란다고 해서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는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자격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이어서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해 온다.

“사뮤엘이라고 합니다.”

“이준석입니다.”

그의 손바닥에서 까끌까끌한 굳은살이 느껴졌다.

‘마법보다는 검이나 둔기를 다루나 보군.’

사뮤엘이 고개를 돌렸다.

“신자님께서는 성함이?”

“아, 전 오진하라고 합니다!”

“두 분 다 좋은 이름을 가지고 계시군요. 그보다 예배를 드리러 왔다고 하셨지요?”

“네.”

나와 오진하는 동시에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공식 예배는 매일 자정에 시작합니다.”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도만 드리고 가려고 했으니까요.”

“흠. 그런가요. 하긴 공식 예배 시간에만 교회에 찾아오란 법은 없지요. 그래도 있다가 시간이 나시면 자정에 찾아오십시오. 제가 두 분께 말씀을 전달하면 에페르 님께서도 분명히 좋아하실 겁니다.”

“예. 시간이 되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저는 신자님들이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물러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간만에 신자들이 찾아와 대화를 더 이어 나갈 법도 한데.

사뮤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가 가자마자 오진하는 내게 바짝 붙어 속삭였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요? 교단 눈에 띄어야 하는데 저 사람밖에 없잖아요.”

“아니. 제대로 찾아왔어.”

“예? 제대로 찾아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일단은 거기 앉아.”

나와 오진하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의자 모퉁이에 착석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 척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오진하, 사람이 많다고 해서 교단의 눈에 띌 수 있는 건 아니야. 제대로 된 사람 한 명에게 눈에 띄어야 유의미한 거지.”

“그럼, 방금 만난 저 사람이 그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래.”

대주교급의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교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면 분명히 주교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을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가 에페르교에 강한 영향력이 끼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외견으로 봤을 때 이 교회는 폐하나 마찬가지이지만 에페르교에게 있어서 이곳은 아주 소중한 곳이었다.

에페르교가 생겨나고 가장 먼저 신설된 건물이며 신좌 에페르가 남긴 흔적 덕분에 일종의 성역으로 취급받았다.

그로 인해 이 건물에는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아야 한다는 신조가 생겨났다.

그것이 지금 이 건물이 폐허처럼 된 이유이다.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곳인 만큼 교단에서 믿을 수 있고 장래가 밝으며 신앙심이 굳건한 자를 배정자로 선택한다.

‘그런 배정자의 눈길에 들면 사제는 따 놓은 당상이지.’

한데 이상하지 않는가?

전통성 있고 상징성이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니.

그것은 한 가지 설화 때문이었다.

성역으로 들어와 신좌 에페르를 분노케 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퍼져.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게 됐다.

‘웃긴 것은 그게 소문이 아니라 진짜라는 거지.’

신좌 에페르의 심기를 건드리면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흠…… 저,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뭐?”

“분명히 층을 같이 올라왔는데. 여기에 교회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러고 보면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자주 있었잖아요.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때마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시나 보다 생각은 했는데. 이번에도 그 능력을 사용한 건가 싶어서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마치 예언하듯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말이다.

눈치가 있는 놈이라면 분명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능력을 사용했어.”

정확하게 어떤 능력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 됐습니다.”

“무슨 능력인지 안 물어봐?”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요. 애초에 말해 줄 생각이 있으면 진작 말해 줬겠지. 딱히 궁금하지도 않아요. 그냥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확실한 건지 확인만 해 보고 싶었던 것뿐이지.”

“보통은 궁금해하던데.”

“전 아닙니다. 그보다 저자의 눈에 들어야 하는 거면 있다가 자정에도 여기에 와야겠네요?”

“그렇지.”

“하~ 괜히 지금 와서는. 두 번 일하게 생겼네.”

오진하는 운이 안 좋아서 일을 두 번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공식 예배가 자정에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에페르교는 어떤 교회를 가든지 공식 예배 시간이 자정으로 고정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찾아온 이유는 주교에게 미리 눈도장을 찍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출석으로 인정해 주지 않겠지만, 주교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며 안면을 터놓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정해진 공식 예배 때는 주교가 예배만 하고 빠진다.

예배 직후에 반나절 동안은 주교와 신자들이 개인적인 대화를 섞는 건 교단 수칙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그렇기에 이런 기회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지 못한다.

물론 이것을 목적으로만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반대편에 있는 역삼각형 문양이 새겨진 벽 앞에 놓인 교탁으로 시야를 옮겼다.

‘저 밑에 있단 말이지.’

-41층. 폐허가 된 교회를 찾아가 교탁 밑을 가 보아라.

한참 전에 세이브 스킬과 관련된 양피지를 얻었을 때 적혀 있던 글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교탁 밑을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조금은 안전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은 기감을 넓혀 사뮤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잠시 후, 그가 멀어진 틈을 타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도는 그만하고 넌 집에 가 있어.”

“예? 준석 씨는요?”

“나는 볼일이 좀 있어. 다칼은 따라와.”

“크르응!”

다칼과 함께 교탁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교탁을 들어 올려 아래를 살폈다.

‘맨홀?’

어떤 단서가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지하로 향하는 구멍이 있었다.

나는 교탁을 제자리로 돌려놓고서, 구멍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기네.’

이대로 가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사다리에서 두 손을 놓고 발도 뗐다.

수우욱-! 차악!

수백 미터 밑으로 떨어져 얕은 물이 있는 땅에 착지했다.

주변은 새카맣게 어두웠지만, 내 눈에는 밝은 대낮처럼 잘 보였다.

‘여긴 뭐 하는 곳이지?’

드넓은 공간에 절벽이 있었다.

그 건너편에는 돌로 된 거대한 문이 위용 넘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메시지가 떴다.

[시련을 치를 자격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촤르륵!

동시에 아공간에 있던 양피지가 강제로 꺼내졌다.

우웅!

양피지는 공중에서 환한 빛을 뿜어냈다.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시련을 이겨 낸 자만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내리라.]

빛이 사그라진 양피지가 문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절벽에 다리를 만들어 냈다.

양피지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다리에서도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문 끝에 도달한 양피지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지이잉, 지잉!

문에서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무지갯빛으로 형형했다.

‘저긴가.’

나는 그 빛에 이끌리듯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 밑은 마치 심연을 내려다보는 듯한 어둠의 낭떠러지였다.

다크웨스트림.

굳이 걸어서 다리를 건널 필요는 없었다.

코앞에 이른 나는 문의 틈새를 들여다보며 두 손을 뻗어 힘껏 밀어 재꼈다.

콰가가가가-!

오랜 세월 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났다.

“쿨럭쿨럭!”

손으로 입을 가리며 윈드퍼드를 시전했다.

후우우우웅!

바람으로 가려진 시야를 걷어 냈다.

문 너머에 있는 광경을 처음 확인한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호수?”

잔잔한 물이 끝없이 펼쳐졌다.

펄럭!

나는 타엘의 날개를 사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장 문의 경계선을 넘었다.

[생명의 시련에 입장하였습니다.]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온 감각을 집중시켰다.

그때 호수 밑으로 새로이 메시지가 떴다.

[마나를 비워야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으리니.]

이어서 점지 스킬도 발동했다.

[호수 지면에 있는 포탈을 찾아 들어가면 히든 스킬 획득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으리라.]

점지 스킬 덕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졌다.

하나 단서로 주어진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마나를 비워야 그 끝에 도달한다고?’

일단은 물속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칼,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쉬어.”

“크릉?”

-설마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건가?

“그래. 하아읍!”

나는 숨을 들이켠 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아앙!

“크윽!”

그러나 수면 1미터도 들어가지 못해 튕겨져 나왔다.

“마나를 비우란 게 이런 뜻이었나.”

호수는 마나를 튕겨 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체내에 존재하는 마나를 전부 비우지 않는 이상 나는 저 물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튕겨져 나온 충격으로 보았을 때 마나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튕겨 내는 힘도 강해지는 듯했다.

‘아주 최악이네.’

마나를 전부 비울 수야 있지만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확률도 커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마도사가 마나가 없다는 것은, 두 손 두 발 다 묶인 채로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단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이고. 포탈 너머에도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큰 보상을 얻어 낼 수 없다.

‘등가교환을 사용하면 물속에 어떤 위협이 있는지는 알아낼 수 있어. 하지만 포탈 너머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아내는 건 예지 수준의 힘이라 감당이 안 되겠지.’

“푸하아!”

“응?”

“캬항! 컁!”

-안 들어오고 뭐 하고 있지?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칼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저놈은 마나가 없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