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59화
159화 중층부 (1)
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클론 소환석을 바라봤다.
인간 모형이 그려져 있는 삼각형 돌은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며 푸른빛이 형형했다.
이것을 얻기 위해 포인트를 얼마나 악착같이 모았는가.
그간 인내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복잡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회귀자라고 해도 유혹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도중에 괜찮은 물건을 발견했다 싶으면 사고 싶은 욕구가 끓어올랐다.
그때마다 데카인에게 죽었던 일을 회상하며 마음가짐을 새로 다잡았다.
클론 소환석은 데카인을 잡기 위한 첫 번째 초석이었다.
안타깝게도 회귀 전에는 이런 초석을 다지지 못했다.
클론 소환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드 난이도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얻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보창.’
(((((((((((((((((((((((((((((((((((((((()
(귀속) 클론 소환석
효과: 사용자와 완벽히 똑같은 클론을 소환해 낼 수 있다. 단 유지시간은 24시간에 불과하며 클론이 사망 시에는 아이템이 소멸한다.
사용 가능 횟수: 1회
(((((((((((((((((((((((((((((((((((((((()
“하.”
듣던 대로 엄청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나와 완벽히 똑같은 클론을 소환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전력을 두 배로 상승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유지시간도 생각보다 짧지 않았다.
서너 시간 정도를 예상했는데 꼬박 하루 동안 유지가 가능하다면 전투 도중에 클론이 사라지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 전에 모든 결판이 나리라.
나는 클론 소환석을 조심스럽게 아공간 속으로 집어넣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간 고생했던 일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후우~.”
물건을 집어넣고 고개를 돌리자 할매는 아직 아이템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워낙 물건이 많아 처리하는데 오래 걸리는 것도 있지만 할매는 하나하나 정성 들여서 값을 매겼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어쿠. 허리야.”
계산을 끝마친 할매가 내게 큐브를 건넸다.
들어온 포인트를 보자마자 두 눈이 치켜떠졌다.
“할매, 제대로 계산한 거 맞아?”
“왜? 부족한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10,511,905포인트를 얻었습니다.]
많아 봐야 한 오백만 포인트나 건질까 싶었는데, 천만 포인트가 넘게 들어왔다.
“끌끌. 괜찮은 아이템들이 몇 개 섞여 있어 값을 좀 쳐줬지. 나머지도 최저가보다 위로 얹어 줬고.”
나는 할매를 노려봤다.
“무슨 꿍꿍이야?”
탑의 상인들은 하나같이 등반자의 등골을 못 뽑아 먹어 안달이 나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굳이 협상 거래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값을 잘 쳐줬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끌끌.”
할매는 음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젊은이, 꿍꿍이 같은 건 없네. 그저 응원하는 마음에서 약간의 선의를 베푼 것일 뿐이야.”
“응원이라…… 상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네.”
“끌끌끌.”
웃고 있던 할매의 눈빛이 한순간에 시리도록 차갑게 변했다.
“보통은 선의로 받아들일진대. 경계심이 많구만.”
“하도 당한 게 많아서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가격 책정을 어떻게 했는지 한번 보고 싶은데.”
“…….”
할매는 말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눈앞으로 두루마리가 떨어졌다.
손으로 받아드는 순간 두루마리의 길이가 끊임없이 늘어났다.
나는 늘어나는 길이만큼 읽어 내려가는 속도를 올렸다.
스르르- 탓.
그때 눈에 띄는 리스트가 있었다.
‘엘란 허브? 박스를 깔 때 이런 아이템이 있었던가.’
엘란 허브는 탑에서도 귀한 약초로 하나당 천만, 천오백만 포인트 사이에 거래되고 있었다.
한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엘란 허브가 나왔던 기억은 없었다.
다만 엘란 허브가 나올 만한 아이템을 하나 알고 있었다.
‘검은 보따리.’
하급부터 최상급까지 약초가 랜덤하게 나오는 보따리였다.
하지만 최상급 약초가 나올 확률은 마른하늘에 벼락을 연달아 수십 번 맞는 것보다 어려워 사실상 안 나온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대충 보따리를 까기만 하고 바닥에 버려뒀는데.
‘이게 나온다고? 그것보다 엘란 허브가 겨우 오백만 포인트? 이 할망구가 진짜. 얼마나 약팔이를 한 거야.’
최소 두 배 이득은 챙겨 먹은 셈이었다.
“엘란 허브.”
아이템 이름을 언급하자 할매의 얼굴에 동요가 스쳤다.
“천만, 천오백만 하는 걸 오백만 포인트에 가져가다니. 최소가라고 하지만 너무 양심이 없네.”
최저가라도 응당 천만은 줘야 했다.
“쯧.”
할매의 구겨진 이맛살이 더욱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조용히 큐브 하나를 또 건넸다.
[1,000,000포인트를 얻었습니다.]
“더는 못 줘. 다른 물건들은 최소가보다 높게 쳐줬으니. 그걸로 퉁 쳐.”
“그래. 이쯤하지.”
할매가 가격 책정을 하느라고 고생한 것도 있으니 더는 따지고 들지 않았다.
할매는 더는 있기가 싫은 듯, 빠르게 정리를 끝내고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신좌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금은보화를 품은 자가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을 줄 알았다며 호탕하게 웃습니다.]
금은보화를 품은 자는 재화 거래가 있을 때면 매번 등장하는 신좌였다.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 녀석인데. 또 다른 이명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마 하위급 아니면 중위급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뉴페이스는 한 명이 아니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좌들이 자주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물론 전부 개무시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굳이 말을 섞어 봐야 피곤하기만 하고 딱히 얻어 낼 것도 없었다.
‘이만 나가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오진하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다가왔다.
나는 오진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래 기다렸지.”
“원하는 건 얻으셨어요?”
“아, 얻었지. 슬슬 올라가자고.”
“네.”
오진하와 함께 마저 계단을 올라갔다.
이미 절반은 올라와있던 상황이라, 꼭대기에 도달하기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청성탑의 새로운 주인.
김동혁은 이쑤시개를 입에 문 채로 자유분방하게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크큭, 하하하!”
그는 미친놈처럼 한참을 웃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돌라와 코앞에 서 있는 부하를 올려다봤다.
“확실해?”
“예. 확실합니다.”
“그렇담…… 이쪽도 슬슬 움직여 줘야겠지. 안 그래?”
“예. 맞습니다.”
“예. 확실합니다. 예. 맞습니다. 뭐 이렇게밖에 말할 줄 몰라?”
“아닙니다.”
“후~ 됐다. 병신 같은 놈이랑 뭘 대화를 하니. 향후 보고나 잘해. 나가 봐.”
“예.”
부하가 나간 직후 김동혁은 앉은 자세로 바꿔 한 손으로 턱을 포갰다.
“이준석.”
로키의 계약자인 박우철을 비롯해 아란의 죽음에도 간접적으로 연관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자.
확실한 것은 그자가 수십 명의 길드원을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겨우 저층부에 있는 놈 따위가 인듀어 길드를 우습게 만든 것도 모자라 위신을 떨구었다.
그리고 천천히 길드의 목을 옥죄여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김동혁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길드에 충성심이나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강한 놈 밑에 붙어 있는 것뿐.
그렇기 때문에 준석이라는 자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건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관심이 있었다면 진작에 그를 찾아 나섰으리라.
하지만 밑에서 놀던 녀석이 어느덧 중층부까지 다다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턱밑에 오기 전까지는 굳이 손을 댈 이유가 없었기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행보를 보면 항상 피하지 않고 인듀어 길드와 충돌했다.
이번에도 역시 정면으로 들이박아 올 터.
김동혁은 길드의 원한과 무관하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놈이 있다면 그게 누구라 할지라도 가만히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손님이 오신다는데 간만에 정성을 좀 들여 볼까.”
지금까지는 녀석이 먼저 들이박았을지 모르지만 이번만은 다르리라.
* * *
“와아아…….”
41층에 도달한 오진하는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탑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놀라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회귀 전에 이곳에 도달했을 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신선함과 웅장함.
흥분과 기대.
그리고 탑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새로움을 말이다.
그만큼 중층부의 모습은 저층부와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거대한 성벽을 두르고 있는 에펠 왕국의 왕성은 길거리 풍경은 생기가 있고 사람들로 넘쳐 났다.
그 안에는 등반자들과 등반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거주민들도 섞여 있었지만 대다수는 에펠 왕국의 백성들이었다.
왕국은 백성만 해도 약 백만 명에 이른다.
그들은 탑이 미션을 위해서 배치해 둔 일종의 NPC와도 같은 존재로 우리와 똑같이 살아 있는 생명체이지만, 각자 수행해야 하는 역할은 완전히 달랐다.
아무튼. 숫자 규모부터 남다른 중층부는 등반자가 단순히 성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는 광활한 토지와 각 지방의 영지들까지도 이동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비좁고 한정된 공간이 아닌 거대한 세계관 속이라고 보면 됐다.
다만 처음부터 모든 구역에 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출입을 하려면 구역마다 정해져 있는 층의 미션을 클리어해야만 했다.
이는 기존에 층을 오르던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보통은 층의 미션을 클리어할 때마다 다음 층으로 향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거나 포탈을 탔다.
하나 이곳에서 층을 오른다는 개념은 여전히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 채로, 그저 한 발 내디디면 넘어갈 수 있는 다른 구역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또한 주어지는 미션도 연계로 이어지며 통합 미션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했다.
“응?”
마침 눈앞으로 메시지와 함께 미션창이 올라왔다.
[41~55층의 통합 미션이 생성됩니다.]
(((((((((((((((((((((((((((((((((((((((()
통합 미션)
에펠 왕국의 교황이 되십시오. (0/1)
41~55층의 미션을 모두 클리어하십시오 (0/1)
진행상황)
41층 - 미클리어
42층 - 미클리어
43층 - 미클리어
44층 - 미클리어
……
……
……
53층 - 미클리어
54층 - 미클리어
55층 - 미클리어
(((((((((((((((((((((((((((((((((((((((()
[통합 미션을 수행하며 다른 등반자와 ‘미션 공유’가 가능하게 됩니다.]
[’미션 공유’는 일종의 파티로서 파티원들은 기여도를 함께 공유하게 됩니다.]
[41층 클리어 조건이 생성됩니다.]
[자격을 갖춰 에펠 왕국의 사제가 되십시오.]
[시간제한은 없습니다.]
통합 미션과 서브 미션이 전부 주어졌다.
조건은 이지 난이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미션수행까지 쉬울 리는 없었다.
최종 목표는 교황이 되는 것.
그리고 첫 번째로 주어진 목표는 에펠 왕국의 사제가 되는 것이다.
교황이야 그렇다고 쳐도 사제가 되는 것은 비교적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미션 내용에는 사제가 되기 위해서 자격을 갖추라는 말이 있는데. 그 자격이라는 것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피곤해짐을 느꼈다.
웃긴 것은 그 피곤함이 내가 중층부에 왔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