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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58화 (158/230)

회귀한 탑 등반자 158화

158화 시크릿 씰스톤

지잉. 지잉. 징.

시장통을 밝혀 주는 전구들이 불안정하게 깜박인다.

깜박임이 도미노처럼 쭉 이어져 인적이 드문 골목까지 다다랐다.

마지막 순간에 깜박였던 전구에서는 빛의 형상이 구름처럼 뻗어 나와 땅에 내려앉았다.

형상 속에서 늘씬한 체형과 구릿빛 피부를 지닌 여성이 나타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여성, 안젤리카는 광명을 훔친 자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등반자였다.

주로 40층과 41층을 오가며 도둑질을 해 온 그녀는 주머니에 넣어 뒀던 물건을 꺼내 들었다.

시크릿 씰스톤.

식스 로켓 게임에서 천만 포인트를 쏟아부어 반드시 실패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한 물건이었다.

“후훗. 간만에 대박 하나 건졌네.”

팔면 최소 삼천만 포인트 이상은 받아 낼 수 있으리라.

시크릿 씰스톤은 겨우 1회용인 데다가 한 사람당 하나만 지급해 개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었다.

비단 희소성만 고려돼서 비싼 것만은 아니었다.

시크릿 씰스톤으로 불러낸 탑의 상인은 매우 특별한 물건만 취급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한 가치를 지닌 만큼 비싸게 판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흐응~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곧바로 처분해 버려야 할지 아님 사용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용할 포인트는 아직 넉넉히 있으니까, 이 김에 직접 사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누구 마음대로 사용한다 만다 결정해?”

“허업!”

고민에 빠져 있던 안젤리카는 옆에서 들려온 남자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안젤리카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니길 바랐지만 그는 시크릿 씰스톤의 원주인이었다.

“……여긴 어떻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빛으로 변해 이동을 했건만.

그녀는 경악스럽다는 눈빛으로 서 있다가 금방 정신을 차리고 도망쳤다.

“어딜!”

남자가 급히 그녀의 소매를 붙잡았다.

“크읏!”

안젤리카는 빛의 형상으로 변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다른 빛이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이동을 하던 도중에 반구 형태의 보호막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파짓!

“끄윽!”

보호막을 뚫고 가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안젤리카는 서둘러 우회했다.

하나 정면에 있던 보호막이 양옆과 뒤에도 생겨나 어느덧 꼼짝없이 갇혀 버렸다.

‘안 돼!’

콰아앙! 콰앙! 콰앙!

그녀는 보호막을 뚫기 위해 몇 번이고 들이박았다.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어.”

그녀를 가둔 보호막이 아래로 내려갔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음흉하게 웃으며 보호막을 없애더니 안젤리카를 단숨에 움켜잡았다.

본래라면 빛의 형상으로 변한 안젤리카는 그 어떠한 물리적 접촉도 허용되지 않았다.

한데 남자는 아주 쉽사리 그것을 해내었다.

안젤리카는 남자를 마주 보는 순간 엄습해 오는 공포에 두려움을 느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은 그녀를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지.”

우우우웅!

빛의 형상이 새로 발생한 힘에 영향을 받아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진동이 강해져 가고 있었다.

‘끄윽……! 어지러워!’

진동으로 인해 육체가 압착기로 찌그러지는 듯한 강렬한 고통을 느꼈다.

“잠깐! 잠깐만!”

안젤리카는 이러다 죽을 것이라는 걸 직감하곤 다급히 남자를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훔쳐 간 씰스톤을 돌려줄게요!”

“그건 내 거니까 돌려받는 건 당연한 거고.”

“……그리고 다른 훔친 물건들도 전부 줄게요! 그쪽한테도 나쁘지 않은 제안…… 끄윽!”

여전히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면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훔친 물건들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다급하게 떠오르는 걸 내뱉었다.

“그쪽이 원하는 거면 어떤 정보든지 드릴게요! 이래 봬도 중층부에서 A급 정보사로 불린다고요!”

“흠~ 훔친 물건보다는 구미가 당기기는 한데. 뭔가 영 내키질 않네.”

안젤리카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목숨이 달려 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당신, 갓…… 으윽!…… 중층부에 올라온 등반자죠?”

더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는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 안젤리카는 말을 이어 나갔다.

“41층부터는 이전과 해 오던 방식과는 전혀 다를 거예요! 크윽! 41층부터 55층까지 이어지는 통합 세계관에서 살아남으려면…… 윽…… 비단 정보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세력도 만들어 놔야 도움이 될 거라구요!”

‘어?’

착각이 아니었다.

가해지던 진동이 약해지고 있었다.

‘내 말에 동했다!’

정보를 준다고 얘기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세력 얘기를 꺼내니 반응이 왔다.

그녀는 그쪽으로 살 길이 보이자 바로 세력 얘기를 꺼냈다.

“세력이 필요하다면 도와줄 수 있어요! 그쪽은 모를 수도 있지만, 시프라고 제가 이끌고 있는 길드가 있어요!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가득한 곳이죠!”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실은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 소형 길드였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라는 건 거짓이 아니었다.

제안에 솔깃한 것일까?

남자는 자신에게 가하던 압박을 멈추었다.

“시프 길드라고 했지?”

“어, 네!”

“어떤 도움이든 줄 수 있다고 했고?”

정확하게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안젤리카는 없는 목을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살려만 주시면 이 한 몸 바칠 자신이 있습니다!”

남자는 딱 잘라 얘기했다.

“그런 건 필요 없고. 내게 필요한 도움만 준다면 살려 주지.”

“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완전히 풀려난 안젤리카는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눈치껏 그에게 시크릿 씰스톤을 건넸다.

물건을 건네받은 남자는 이내 다시 한번 살기를 띠었다.

“혹시 다른 마음먹는 거라면 하지 않는 게 좋아.”

안젤리카는 그에게 뿜어져 나오는 포악한 기운에 온몸을 떨었다.

‘이제 중층부에 올라온 놈 맞아? 이거 완전 괴물이잖아!’

여태 이런 압박감을 가져다준 건 그 이외에 단 한 명뿐이었다.

인듀어 길드 소속의 김동혁.

최근에 아란의 대체자로 온 녀석이다.

하지만 그녀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더욱 위험한 건 눈앞에 있는 이 남자라고.

‘대체 정체가 뭐지?’

그녀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자기소개를 하며 남자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말했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듣고서 멍한 표정으로 다시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귓구멍이 막혔나. 준석이다, 이준석.”

준석이라면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중층부에서 많이 언급됐던 인간이니까.

왜 진작에 알아채지 못했을까.

어깨 위에 있는 새끼 늑대.

칙칙한 색의 로브와 불길함이 가득한 검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

소문으로 돌던 그의 인상착의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당장에 죽음을 면하려던 그녀는 어쩌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나는 다시 되찾은 시크릿 씰스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식스 로켓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준석 씨!”

오진하가 이쪽으로 달려온다.

“어디에 갔다 오신 거예요! 한참 찾았잖아요.”

‘그러고 보니 이놈한테 말을 안 했지.’

“아, 쥐새끼 하나 때문에 물건 좀 되찾아오느라고.”

“쥐새끼요?”

“그래. 신경 쓸 일은 아니야.”

“별일이 아니면 됐어요. 근데 이제 그만 올라가실 거죠?”

오진하가 계단 쪽을 가리켰다.

“그래야지.”

“가시죠!”

나는 오진하와 함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시크릿 씰스톤을 사용하려면 40.5층으로 향해야 했다.

“그르응.”

내 어깨에서 올라타 있던 다칼이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준석.

“응?”

-그 여자를 그렇게 풀어 줘도 괜찮은 건가?

“뭐? 안젤리카?”

-그렇다. 뒤에서 허튼짓을 안 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추후 도움을 줄지도 의문이고.

“걱정 마. 도와주고 싶지 않아도 도와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다칼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차차. 무슨 얘기인지 알게 될 거야.”

얼마나 올랐을까.

나는 중간쯤에 이르러서 멈췄다.

뒤로 돌아 오진하에게 말했다.

“넌 여기서 기다려.”

“예.”

앞을 내다보자 사람 한 명이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비좁고 어두컴컴한 통로가 존재했다.

하나 내게는 통로 끝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보였다.

다크웨스트림.

스륵!

단숨에 통로 끝에 도달하자, 돔 형태의 드넓은 공간이 나왔다.

중앙에는 돌기둥 하나가 박혀 있었다.

돌기둥 앞에 다가선 나는 주머니에서 시크릿 씰스톤을 꺼내 돌기둥에 올려 두었다.

즈으으응-

별모양의 돌에서 빛이 퍼져 나왔다.

그에 반응하듯 돌기둥에서 같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아래로 향하며 바닥에 감춰져 있던 커다란 별을 형형색색으로 밝혔다.

쿠구구!

돌기둥이 땅 밑으로 꺼지더니 그 위로 포탈이 생겨났다.

포탈 속 차원이 일렁였다.

동시에 기괴하게 꺾인 허리와 힘이 빠진 흰 머리카락, 입에서 튀어나온 덧니, 그리고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의 할매가 등에 자루를 짊어진 채로 나타났다.

[탑의 상인이 등장하였습니다!]

할매는 눈썹으로 가려져 있던 두 눈을 드러내며 웃었다.

“끌끌. 누가 소환했나 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등장했구만.”

“날 알아?”

“그쪽을 모르면 탑의 상인이라고 할 수 없지. 상왕님과 최초로 마주하고 탑의 변혁을 불러오고 있는 젊은이를 말이야.”

“그새 소문이 여기저기에 퍼졌나 보군.”

“본래 흥미로운 소문일수록 빠르게 퍼져 나가는 법이지.”

[죽음이자 어둠을 그늘에 진 자가 상인의 말이 백 번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풍요를 품은 술의 도취자가 그대의 이야기는 신좌들 사이에서도 좋은 안주 거리가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가 그쪽 안주 거리나 되려고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줄 알아?”

[풍요를 품은 술의 도취자가 자기 딴에는 칭찬한 것이라며 그리 흥분할 것 없다고 말합니다.]

“칭찬은 개뿔이.”

이후에도 신좌들이 말을 이어 나갔지만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건 무시했다.

“끌끌. 역시 신좌님들께서도 관심이 많으시구만.”

“잡설은 그만하고 거래나 하지.”

“그러세.”

딱!

할매가 손가락을 튕기자, 내 눈앞으로 아이템 리스트가 올라왔다.

하지만 이런 리스트 따윈 필요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랜덤 아이템 박스를 1만 개를 구매하지.”

여유롭던 할매의 표정이 재빠르게 바뀌었다.

“랜덤 아이템 박스를 1만 개나?”

“그래. 1만 개.”

“랜덤 아이템 박스를 그렇게 많이 구매해도 좋은 게 안 나올 수도 있는데. 후회하지 않겠나, 젊은이.”

“후회 안 해.”

후회를 할 리가 있나.

랜덤 아이템 박스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할매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있다가 이내 음흉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20,000,000포인트가 차감되었습니다.]

[랜덤 아이템 박스 1만 개 묶음을 얻었습니다.]

랜덤 아이템 박스는 하나당 2천 포인트였다.

개당으로 치면 작은 금액이었지만 그것이 1만 개나 되니 빠져나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나 꼭대기 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데카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출되어야 하는 비용이었다.

“볼 일이 끝났으면 난 이만 가 봄세.”

가려는 할매를 붙잡았다.

“기다려.”

묶음으로 받은 랜덤 아이템 박스를 아공간에 넣는 건 상관없지만 거기서 나오는 물건들을 전부 아공간에 담아내기엔 들어갈 공간이 한참 부족했다.

나는 가로세로 50센치 정도 되는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랜덤 아이템 박스를 열었습니다.]

[C급 낡은 피로의 칼날을 얻었습니다.]

[랜덤 아이템 박스를 열었습니다.]

[얼어붙은 뼛조각을 얻었습니다.

[랜덤 아이템 박스를 열었습니다.]

[번쩍이는 견봉을 얻었습니다.]

…….

…….

…….

…….

쉴 새 없이 물건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것들은 전부 필요 없었다.

나는 바닥에 집어 던진 물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들을 처분해 줘. 가격은 얼마를 매기든 상관없어. 최소가만 받지.”

점점 까는 속도를 높였다.

박스를 1만 개나 까야 하다 보니 물리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정상이지만.

민첩이 말도 안 되게 높은 덕분에 불과 30분 만에 하나만을 남기고 박스를 전부 깔 수 있었다.

주변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하나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하나 남은 랜덤 아이템 박스였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여태 나왔던 것들은 전부 랜덤이었지만 1만 개째로 까는 박스는 달랐다.

[랜덤 아이템 박스를 열었습니다.]

[무려 1만 개나 되는 랜덤 아이템 박스를 열었습니다.]

[조건을 충족합니다.]

[클론 소환석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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