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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54화 (154/230)

회귀한 탑 등반자 154화

154화 도약 (3)

아란은 한쪽에 뾰족한 어금니를 드러내며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인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같이 내려온 부하에게 확인 차 다시 되물었다.

“없다고?”

“네. 몇 주 전에 떠났다고 합니다.”

카득!

이를 꽉 깨무는 아란의 몸에서 불길하게 느껴지는 노란색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보를 전달하는 녀석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모두 녀석에게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흘러나오는 기운이 살벌한 호랑이 형상을 띠었다.

거주민와 등반자. 가릴 것 없이 마을에 있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를 쳐다봤다.

아란 주변에는 이미 얼굴의 형체도 남지 않은 시신들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그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무참히 살육당한 것이다.

본보기.

자신에게 덤벼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

준석이란 놈에게 길드원들이 무참히 쓸려 나가는 바람에 인듀어를 우습게 보는 이들이 생겨났을 터다.

바닥으로 떨어진 권위를 바로잡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아란은 마구 날뛰는 기운을 갈무리하며 뒤에 서 있는 네 명의 부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우클리 마을로 간다.”

우선은 골드 블러드를 만들면 공장이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확인해야만 했다.

그가 마을을 벗어나려고 하자, 마을 밖에서 어떤 무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응?”

아란은 선두에 서 있는 여인을 쳐다봤다.

그러자 순백색의 머릿결을 지닌 여인도 검과 방패를 손에 쥔 채로 자신을 노려다보았다.

‘기개가 넘치는군.’

오른쪽 가슴팍에는 하얀색 동그라미와 검과 방패 문양의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아란은 단번에 그 표식을 알아봤다.

‘화이트.’

최근에 저층부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길드였다.

그는 중층부에 머물고 있긴 하나, 저층부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고받았을 때가 15층이라고 들었는데. 벌써 22층까지 올라왔나 보군.’

아란은 곧 여인의 이름을 떠올렸다.

‘김유희.’

그녀의 외모를 보자 탐욕의 눈빛을 드러냈지만, 여자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네년은 나중에 놀아주도록 하지.’

지금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일행이 앞길을 막아서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개수작이지? 죽고 싶어 환장했나?”

아란이 살기를 보이자 김유희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쪽이 아란인가?”

아무래도 자신에게 용무가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순간 시야를 뒤덮는 하얀빛에 아란은 손을 뻗어 눈을 가렸다.

파아앙!

“크흑……!”

기습적으로 무언가가 날아 들어와 전신을 타격했다.

충격에 뒤로 밀려난 아란은 온몸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단단한 체질 덕분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짜증이 일었다.

‘이까짓 공격!’

탑에게 받는 제약만 아니었어도 방금 전의 충격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 상대가 먼저 공격을 해 왔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가 치솟았다.

“요즘 아랫것들은 사리분별도 못하나 보군.”

대답 대신 다른 것이 날아들었다.

처음과 똑같은 공격이었지만 파괴력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하나 아란은 한 손으로 공격을 가뿐히 쳐 내 버렸다.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애, 오늘 예절 교육을 톡톡히 시켜 주마.”

그는 갈무리했던 기운을 다시 표출하며 심장에 응축된 마나를 전신으로 퍼트렸다.

그리고 고유 스킬인 현현화를 사용했다.

“갸아아아아아앙!”

호랑이를 닮은 야수 한 마리가 포효를 내질렀다.

* * *

약 4미터에 육박하는 탄탄한 근육을 가진 야수가 두 발로 선 채 유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세가 바뀌었어.’

파핫!

시야에 있던 아란이 귀신같이 사라져 버렸다.

유희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파아아앙!

옆에서 강력한 풍압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아란이 내뻗은 주먹을 하성태가 대신 막아 내고 이어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크으으…….”

뱀파이어의 육체가 된 그가 밀리는 모습을 처음 본 유희는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됐다는 것을 자각했다.

카를로가 도와주기 위해 나섰다.

창으로 허공을 찌르는 순간 불회오리가 형성되어 날아갔다.

투광! 화아악!

불회오리가 아란을 집어삼켰다.

그 틈을 타서 하성태가 뒤로 물러났다.

“허억. 헉.”

하성태는 그새 힘겨루기를 하며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그리고 아란의 부하들이 뒤늦게 합류하고 있었다.

유희는 곁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아란을 맡을 테니, 나머지는 부탁할게.”

그러자 에레나는 볼에 바람을 넣으며 삐친 얼굴로 서 있었다.

“부탁한다고 말할 필요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너의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에레나에 이어서 박자린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요, 언니. 너무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알았어. 더는 부탁한다고 말 안 할 게.”

유희는 애초에 길드원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아란을 해치우기로 한 것은 길드와 아무런 연관도 없고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될 일을 자신의 일처럼 나서 주었다.

선택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최상위 길드 중 하나인 인듀어와 적으로 돌아선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다는 뜻과 마찬가지이니까 말이다.

콰아앙! 쾅!

충격음이 들려오자마자 유희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하성태와 카를로가 아란과 대치 중이었다.

유희는 검에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싸움에 끼어들었다.

레이 블레이드.

쿵, 쩌저저저적!

사선을 가로지른 빛의 일격이 땅을 두 쪽 내 버렸다.

벌어진 빈틈 사이로는 빛이 하늘 높이 치솟는다.

“……!?”

범위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던 아란은 다급히 네 발로 움직여 거리를 벌렸다.

“성태 씨랑 카를로는 빠지세요. 아란은 저 혼자 상대합니다.”

하성태는 거세게 반대했다.

“그건 안 됩니다! 아무리 유희 씨라도 혼자서는 버거워요. 저도 같이 싸우겠습니다.”

말수가 적은 카를로도 한마디 덧붙였다.

“부길마의 말이 맞다. 여태 만난 적과는 차원이 달라.”

“하아~.”

카를로마저 그리 얘기하자, 유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든 혼자서 해내고 싶다는 마음과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선의 저울질이 오갔다.

그때,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달려드는 아란이 보였다.

‘그래…… 혼자서 해내겠다는 건 어찌 보면 욕심이야.’

“성태 씨는 좌측을 맡아 줘요! 카를로는 우측을.”

“오케이! 왼쪽은 나한테 맡기라고요!”

하성태와 카를로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후우~.”

유희는 방패를 치켜들어 몸을 가리고 오른쪽 발을 뒤로 뺐다.

그리고 몸을 중심을 앞으로 기울였다.

타앗, 파아아앙!

땅을 박차 돌진했다.

드레인 실드.

파란색 장막이 방패를 감싼다.

쿠하아앙!

아란이 몸통박치기를 받아 낸 뒤 방패로 흡수한 충격을 그대로 방출했다.

“커헉!”

정통으로 맞은 그는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지려고 했다.

하나 금세 중심을 잡더니 유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자세히 보니 아란의 오른쪽 주먹에서 노란 구체 한 개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휘우우우-

그 영향으로 바람이 모여들었다.

“흐아압!”

그때 하성태와 카를로가 각자만의 공격을 퍼부었다.

아란은 마법과 창격을 맞은 육신에서 피를 뿜어내면서도 피하지 않고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럼에도 아란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주먹을 들어 올리더니 이쪽을 향해 내뻗었다.

유희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뒤로 몸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늦었다는 것을 직감하곤 급히 방패를 쳐들었다.

쩌적! 쾅!

“끄으윽!”

상상을 초월하는 회전력이 담긴 구체가 방패를 깨부수고 갑옷에까지 타격을 줬다.

유희는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며 고유 스킬을 발동했다.

성역.

수십 미터 반경 안으로 황금빛 장막이 펼쳐졌다.

유희의 몸에서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쥐고 있는 검에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신성력이 외부로 방출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검의 길이가 두 배나 길어졌다.

유희는 두 눈의 정기가 깃든 채로 아란과 정면으로 격돌했다.

쾅! 콰앙! 콰과가가가!

어느덧 유희의 등에는 새하얀 날개 한 쌍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천사가 강림한 듯했다.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신성력이 담긴 검기가 뻗어 나갔다.

“크허억!”

치명상을 입은 아란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빌어먹을 년!”

그동안 전력으로 싸운 것이 아니었는지 움직이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그러더니 발에 발톱을 형상화하여 연속으로 날려 보냈다.

유희는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어깨와 허리를 스쳤다. 허리 쪽은 피가 철철 흘릴 정도로 치명상을 입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강철의 의지가 깃듭니다.]

더욱 강인해 진 정신력은 그녀가 전투의 흔들림이 없도록 만들었다.

[대천사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녀의 상처는 점점 아물었고, 반대로 아란의 상흔은 점차 늘어났다.

그를 밀어붙이는 건 비단 유희만이 아니었다.

하성태와 카를로가 협공해,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해도 지속적으로 훼방을 놓고 있었다.

참다못한 아란이 기어코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하여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을 드러냈다.

탑의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본래 힘을 사용하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아란은 가까이 접근한 두 녀석의 목을 끌어 잡았다.

“벌레 녀석들은 꺼져라!”

콰직!

단숨에 둘의 목뼈를 부러뜨려 버렸다.

털썩-

“안 돼에!”

유희가 남아 있던 신성력을 절반 이상 쏟아 내 그에게 일격을 가했다.

“성태 씨! 카를로!”

그녀는 목뼈가 부러져 쓰러진 둘을 바라보며 눈물이 맺혔다.

“흐어어억!”

다행히 하성태는 숨이 돌아왔다.

회복력이 빠른 그는 손으로 카를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 괜찮으니 저놈부터 치료해 주세요.”

카를로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유희는 곧바로 그에게 힐을 전개했다.

동시에 신성력이 빠르게 소모되어 갔다.

부러진 뼈를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대가가 필요하다.

“갸하아으응!”

그때 저 멀리 날아갔던 아란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이야.’

카를로를 치유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그리고 괜찮다고는 했지만 하성태의 상태도 살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쿵쿵쿵!

아란이 광기스러운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유희는 남은 신성력도 얼마 없는데, 보호막을 전개해야 하나 심히 고민했다.

선택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끼룩!”

그 순간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나타났다.

“피아!”

에레나의 소환수가 유희를 보호하듯 앞에 나섰다.

“좀 늦었지?”

뒤이어 에레나가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언니, 저도 왔어요!”

박자린은 나타나자마자 하성태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외에 다른 길드원들도 자리에 나타났다.

“너희들…….”

저쪽을 내다보니 아란의 부하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유희는 다시 앞을 내다봤다.

이제 남은 적은 아란 하나뿐이었다.

이쪽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여덟 명 전부 살아 있었다.

물론 다들 지쳐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쳐 있는 것은 비단 자신들만이 아니었다.

“크하아아!”

아란 역시 크게 지쳐 있었다.

* * *

25층의 빅시티.

거대한 나무 위에 올라타 있던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크르응?”

-뜬금없이 실실 웃긴. 무슨 약이라도 먹었나?

딱!

“캬하!”

다칼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곤 입을 똈다.

“약은 무슨. 당연히 좋은 일이 있어서 웃지.”

“좋은 일이요?”

옆에 도시락을 까먹던 오진하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봤다.

“내가 잡으려고 했던 아란 있지? 그놈이 잡혔어.”

“예……? 그놈이 잡히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혹시나 22층에 그놈이 왔나 하고 와드 시야로 확인해 봤지. 그런데 웬걸. 이미 내려온 것도 모자라 누구한테 잡혔네.”

오진하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대체 누가 잡아요? 아란은 중층부에 있는 놈이잖아요. 그럼 22층에서는 상대가 가능한 사람이 없을 텐데.”

“의외지. 내가 아니면 잡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누가 잡았는데요?”

“캬항! 캬항!”

-나도 궁금하군. 대체 누구지?

나는 그놈을 잡았다는 인물을 떠올리자 또 미소가 지어졌다.

“김유희, 예전에 말해서 알고 있을 거야.”

“아! 전에 말했던 그 베프!”

다칼은 꽤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자네에 비하면 많이 미숙한 친구이지 않았나? 그간 얼마나 성장을 했기에…… 그것이 가능한 거지?

“그야 나도 모르지. 안타깝게도 싸우는 걸 보진 못했거든.”

나도 에이사를 통해서 소식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말로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아란을 해치운 건 유희 혼자서가 아니었다.

길드원들과 함께 처단했다.

그럼에도 이는 대단한 결과였다.

보통은 상대조차도 되지 않을 테니까.

그동안 유희가 강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지 안 봐도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읏차!”

“벌써 일어나요?”

앉아 있는 오진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걱정거리도 덜었으니 올라가야지.”

오진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층을 오르고 있잖아요. 그것도 엄청 빨리.”

“아니. 느려.”

“예? 느리다니. 그게 무슨…… 지금도 밥도 덜 먹고 잠도 덜 자며 올랐구만.”

“그런다고 안 죽어. 그리고 내 실력이면 40층까지는 가뿐히 클리어해 낼 수준이야. 남들보다 오르는 속도가 빠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아니. 뭐. 그렇기야 하지만…….”

“아무튼 40층까지는 쉴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하아~ 돈은 괜히 받아서. 내 앞날이 훤하다. 훤해. 어? 우리 자기도 내가 불쌍하다고. 흐윽. 내가 이러고 산다.”

“이만 출발!”

뒤에서는 툴툴대며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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