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153화 (153/230)

회귀한 탑 등반자 153화

153화 도약 (2)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는 우버 마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잡는 무리가 나타났다.

총 여덟 명에 이르는 남녀의 오른쪽 가슴팍에는 하얀색 동그라미와 검과 방패 문양의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같이 올라온 등반자들은 그들을 보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들을 몰라보는 등반자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체 저놈들은 뭐야? 뭔데 주목을 받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게 존나 마음에 안 드네. 미션 시작하면 힘도 못 쓸 놈들이.”

“쉿!”

옆에 있던 등반자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화이트 길드라고 못 들었어?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니라면 조용히 하는 편이 좋을 거야.”

화이트 길드원들 중에 한 명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던 등반자를 째려봤다.

옆 사람의 입을 틀어막은 사내는 혹여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까 뒤로 물러섰다.

당당하게 불만을 드러내던 등반자는 몸이 얼어붙은 채 아무런 말도 지껄이지 못했다.

째려본 사내의 눈빛을 마주 본 것만으로도 몸의 경직이 일어난 것이다.

툭!

누군가가 사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카를로, 그저 말뿐이잖아. 뭘 그리 매섭게 째려보고 그래. 안 그래도 우리들 때문에 주변이 크게 위축된 것 같은데.”

화이트의 부길드장 하성태였다.

“거슬리는 말을 하는데 어찌 못 본 척을 하겠나.”

“흘려들어. 적대한다고 무작정 들이박으면 오히려 고립될 뿐이야.”

“성태 말이 맞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어.”

에레나가 자신의 소환수인 피아를 쓰다듬으며 말을 보탰다.

“그나저나 이번 미션은 피를 좀 보겠어.”

사람 혹은 네크로맨서를 죽여 자신의 현상금을 올려야만 했다.

마을 곳곳에 지워지지 않은 혈흔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에레나는 앞에 조용히 서 있는 유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대답이 없자 에레나는 그녀를 다시 한번 불렀다.

“김유희!”

“응? 어.”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해.”

“아냐. 아무것도.”

“실없긴.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우선 네크로맨서 집단이 어떤 놈들인지부터 살펴봐야지.”

“그건 내게 맡겨. 거주민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

맨 뒤에 서 있던 박자린이 손을 들었다.

“저도 같이 알아볼게요.”

“그럼 정보 파악은 둘에게 맡길 게. 나머지는 기존에 머무르는 등반자들의 동향 좀 살펴 줘.”

“오케이.”

“그런 건 내 전문이지~.”

미션이 시작되자 유희에게 각자 할 일을 부여받은 길드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층마다 꼭 방해하는 놈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혼자 남은 유희는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에게 둘러싸였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말했다.

“화이트? 뭐. 밑에서 꽤 날렸던 길드 같은데. 그렇다고 여기서도 통하는 건 아니지.”

유희는 조소를 날렸다.

“웃어?”

“하도 싸구려 멘트 같아서. 그리고 말한 것치고 행동은 조잡해 보이네. 겨우 하나 상대하려고 이렇게 많이 데려오다니 말이야.”

남자는 크게 웃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말을 잇는다.

“그런 도발에 넘어갈 줄 알고? 덤비는 숫자?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여기선 이기는 놈이 승리자야.”

남자가 고개를 까닥이자 스무 명이 동시에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유희는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방패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고오오오옹-

심장이 뛰듯이 방패가 고동쳤다.

실드커터.

그녀는 팔에 잔뜩 힘을 주어 방패를 우측으로 날렸다.

방패는 빛의 잔상을 남기며 커다란 원을 그렸다.

탓!

부메랑처럼 돌아온 방패를 유희가 손으로 낚아챈 순간.

“쿠화악!”

“커헉!”

덤벼들었던 녀석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으으윽.”

유일하게 유희와 말을 섞었던 남자만이 다시 일어섰다.

“으아아!”

남자는 지팡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어 마법을 시전했다.

화아아악!

직경 1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유희에게 날아들었다.

탓, 파앙!

유희가 땅을 박차며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마운트 크래시.

쿠하앙!

그녀의 등 뒤에 산사태가 일어나는 광경이 환영으로 드러났다.

허리 뒤로 뺐던 검이 정면으로 내뻗었다.

무엇이든 뚫어 버릴 것 같은 뾰족한 빛줄기가 무수한 돌 파편을 이끌고서 앞으로 전진했다.

“어, 으으으. 으아아아!”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한 남자는 빛줄기에 집어삼켜진 뒤 돌 파편에 파묻혀 버렸다.

“후우.”

유희는 스무 명과 싸우며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상대가 어중이떠중이인 것도 있었지만 그만큼 그녀의 무력이 압도적인 것도 한몫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등반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에게 덤빌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내 길드원들이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하성태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또 한바탕 저지르셨네. 어째 유희 씨는 갈수록 세지는 것 같아요?”

유희는 무표정한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이상한 소릴 하시네. 층을 오를수록 강해지는 건 당연한 거죠.”

“우리 길마님. 제가 그걸 몰라서 그리 말했겠습니까. 강해지는 정도가 심해서 그렇지.”

하성태의 성장 속도도 남들에 비해 만만치가 않았지만 유희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눈에 띌 정도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요즘 유희 씨를 보면 마치 이전의 형님을 보는 기분입니다.”

유희는 그 말에 부정을 하듯 고개를 저었다.

“성태 씨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준석이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요.”

“음…….”

하성태도 그 말에는 부정하지 못했다.

여태 층을 올라오며 준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입장에서는 같은 선상에서 시작한 등반자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잠시 후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더 노력하다 보면 형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희는 대답 대신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길드원들이 조사해 온 정보를 하나씩 듣다가 우연히 준석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소식 하나하나는 모두가 놀라기에 충분했다.

혼자서 등반자들을 상대로 50대1 싸움을 벌인 얘기.

골짜기에 있는 네크로맨서를 전부 해치운 얘기.

위층에서 내려온 거대한 조직에 속한 길드원 놈들을 잡아 족쳤다는 소식까지.

전부 믿기지 않는 것들투성이였다.

“그분은 완전히 괴물이네요. 괴물.”

가장 최근에 합류한 오힐리가 말했다.

그녀는 지형적 정찰에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근데 혹시 인듀어 길드에 대해서 아는 분 있어요? 거주민이 그 길드를 언급했을 때 몸을 엄청 떨었거든요. 솔직히 말을 하는데 그 정도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 봤어요.”

조용히 있던 카를로가 입을 열었다.

“심부름센터에서 일할 때 인듀어 길드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89층까지 오른 자가 그 길드의 길마라더군. 길드 규모도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고 들었지. 어쩌면 그는 위험한 불씨를 건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상층부에 있는 녀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당해 낼 재간이 없을 거다.”

하성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표정에 변화가 없던 유희 또한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성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형님은 그럴 일이 있으면 편지로라도 말을 좀 해 주지.”

개인적으로 목숨의 빚을 진 그이기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갈 마음이 있었다.

유희는 준석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고민했지만 당장에 도울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준석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따라주는 길드원들이 있었다.

‘그래. 우선 미션에 집중하자.’

“우선은 골짜기로 가서 네크로맨서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죠.”

준석이 골짜기에 갔다 온 이후에, 그곳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전에도 네크로맨서가 전부 죽는 일은 없었다고 하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아마 미션이 주어졌으니. 없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유희를 포함한 여덟 명은 리이르 골짜기로 향했다.

골짜기 입구에서 몇 놈과 마주쳤다.

하나 그게 끝이었고, 그들을 간단히 처리했다.

그리고 중심부까지 들어서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다들. 저길 보세요.”

유희가 정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대한 검은 수정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정 한가운데에는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파란 포탈이 만들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수십 명의 네크로맨서들이 주문을 외우거나 경계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왜 입구에만 있고 도중에 없나 했더니. 여기에 다 모여 있었군.’

유희는 곧 포탈에서 주기적으로 네크로맨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더 많아지기 전에 지금 당장 칩시다.”

“안 돼요!”

하성태가 나서려고 하자 그녀가 극구 반대했다.

“현상금을 생각하면 녀석들이 최대한 모였을 때 치는 게 좋아요.”

“그러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지면…….”

“그러니 잘 보고 있다가 움직여야죠.”

길드원들은 유희가 신호를 보내올 때까지 대기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쭉 지켜보던 유희가 드디어 신호를 보냈다.

“가자!”

참고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들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 * *

유희 일행은 네크로맨서들과 한바탕 전투를 치른 후 프로란 마을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다.

벌써 미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들은 여유를 부려도 상관없었다.

네크로맨서들 덕분에 더 이상 현상금을 올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전투 도중에 다친 상처를 치유하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즐기던 유희는 우연히 에이사라는 이름을 가진 네크로맨서를 만날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이면서 사람들과 함께 마을에서 거주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곳의 거주민들 또한 그녀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유희는 그녀에게 준석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몇 주 전만 해도 이곳에 머물렀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준석이 인듀어 길드의 간부 아란이라는 자를 잡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어서 골드 블러드에 대한 것을 포함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유희는 에이사에게 물었다.

“그럼 여기에 있으면 그 아란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예? 네. 그렇죠. 제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안 왔으면 좋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올 거예요. 준석 씨가 말하길. 그자는 골드 블러드가 꼭 필요하다고 했거든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 아란을 잡는다면…….’

준석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당장에 내 눈앞에 나타나면 좋을 텐데.’

그때 음식점 안으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인듀어 길드 녀석들이 또 내려왔다고! 것도 이번엔 간부 한 놈이 같이 왔던데.”

유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그 간부 이름이 뭐죠?”

“아…… 그, 아랑인가. 아란인가, 뭐시기였는데.”

하늘이 도운 것일까?

두 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어디에 있어요. 그 아란이라는 사람.”

“마지막으로 본 게 우버 마을이었는데. 근데…… 아가씨는 누구요?”

유희는 대답하지 않은 채로 음식점을 뛰쳐나왔다.

우연히 그녀가 어딘가로 향하는 걸 본 하성태가 뒤를 따랐다.

“유희 씨, 갑자기 어딜 그리 급하게 가요.”

“우버 마을이요.”

“거기는 왜……?”

“인듀어 길드 녀석들 잡으러요.”

정확하게는 아란을 처단하기 위해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