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48화
148화 골드 블러드 (3)
“초월종이라…….”
흔히 종족을 초월해 새로운 종으로 탄생한 부류를 칭하는 말이었다.
저층부나 중층부에서는 찾아보기는 힘들고 상층부에서도 매우 희귀한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회귀 전에도 단 한 번밖에 마주치지 못했다.
하나, 그 단 한 번의 기억은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다.
내가 마주친 것은 초월종이 된 오우거였는데, 인간의 외형을 닮아 있던 그는 무한한 체력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쉬지 않고 밤낮으로 싸워서 겨우 이겼던 것을 떠올리면 초월종이라는 존재 자체가 잠재적인 위협이다.
딱히 내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만.
초월종이 되려는 자와 인듀어 길드가 깊은 관련이 있다면 모른 체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골드 블러드는 중독을 일으키는 환각 치료제에 불과하지만 실상은 한 명의 네크로맨서를 초월종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회귀 전에 왜 골드 블러드가 외부로 돌지 않았는지 의문이 풀렸다.
‘생각해 보면 하드에서 초월종으로 유명했던 놈이 하나 있었지.’
네크로킹이라 불리었던 자이자 인듀어 길드의 간부 아란.
다름 아닌 베티가 연락을 취했던 그놈이다.
‘상부 몰래 힘을 키울 작정이었군.’
하지만 길드마스터인 강민욱이 뒤늦게 자신의 길드 이름을 팔아 초월종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도 죽이지 않고 내버려 뒀던 것을 보면.
그가 세운 계획이 애초에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게 끝난 셈이었다.
심지어 부길드마스터 바로 밑에 있는 장로 직급까지 올라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렸다.
‘치워야겠어.’
뻔히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언젠가 그는 초월종이 되어 내 앞길을 방해할 것이다.
나는 정보를 알려 준 사내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약속대로 편히 보내 주지.”
“후아~ 내 오늘 죽는 날인 줄 알았으면 맛있는 거라도 실컷 먹어 두는 건데.”
그는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서걱!
검으로 단숨에 목을 그었다.
놈에게는 일말의 자비심도 들지 않았다.
“크릉.”
-이제 저 많은 걸 어떻게 처리할 거지?
다칼이 창고에 있는 골드 블러드를 가리켰다.
“지금 생각 중이야.”
창고를 가득 채운 골드 블러드의 개수만 무려 천여 개.
전부 챙겨 가거나 아님, 불태워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냥 불태워 버리기에는 분명히 어디엔가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캬하앙.”
-그대가 직접 사용한다면 네크로맨서보다는 큰 효과를 보진 못하겠지만 회복을 할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다. 물론 환각과 중독을 상쇄시키지 못하면 안 쓰느니만 못하겠지만.
“굳이 상쇄시킬 필요 없어. 계속 복용하면 환각에 대한 내성과 중독에 대한 내성을 얻게 되겠지.”
-오호.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다만, 이걸 그런 식으로 써 버리기에는 숨겨진 능력이 너무 좋아. 그래서 왠지 제대로 못 쓰고 버리는 기분이란 말이지.”
-하지만 달리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대가 네크로맨서가 되지 않는 한. 그 능력을 얻기는 어렵겠지.
“아! 프로켈의 인형으로 네크로맨서로 변신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흠~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형태 저장이 베티로 되어 있었다.
다시 네크로맨서로 변신하려면 네크로맨서와 접촉을 해야 하는데, 이곳의 네크로맨서는 전부 죽여 버려서 씨가 마른 상태였다.
“아니지. 아직 한 명이 남았잖아?”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야마토와 에이사.
네크로맨서인 에이사가 무사히 살아 있다면 다시 네크로맨서로 변신할 수가 있었다.
‘지금쯤 야마토를 치료하느라 마을에 숨어 있거나 그 근처에 있겠지.’
에이사는 네크로맨서이기 때문에 대놓고 마을에는 출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은 저것부터 챙겨 볼까.’
골드 블러드를 아공간에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정 개수를 넘어서자 아공간이 집어삼킨 걸 도로 뱉어 내고 있었다.
‘공간이 가득 차 버렸군.’
아직 넣지 못한 것이 절반쯤 된다.
“어쩔 수 없지.”
공장에 있던 카트에 담아 지상으로 가지고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하나, 아직 공장에 처리하지 못한 놈들이 남아 있었다.
“다칼, 공장에 붙잡혀 있는 거주민들을 제외하고 모조리 정리해. 난 그동안 카트를 옮겨 남은 걸 운반할 테니.”
“아우우~!”
-알았다!
그로부터 약 20분이 흘렀다.
다칼과 나는 각자 할 일을 끝내고서 지상에서 만났다.
다칼이 혀로 앞발을 핥아주며 카트에 담긴 골드 블러드를 올려다본다.
“캬항, 컁.”
-저것들은 어디에 둘 셈이지? 계속 끌고 다니기에는 분명히 거치적거릴 거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어 둬야지.”
-그렇군. 근데 골드 블러드를 이렇게 우리가 회수한다고 해도 과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물어볼 것이 있다.
“뭔데.”
“그대의 목적은 무엇이지? 인듀어 길드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인가? 아님 초월종의 탄생을 막는 것인가?
“둘 다.”
-그렇다면 초월종의 탄생을 어떻게 막을 거지? 이번에는 막았을지 몰라도 22층의 거주민들이 살아 있는 한 언젠가 다시 골드 블러드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때 우리는 22층에 없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22층에 머무는 게 아니면 언제까지고 막아 줄 수 없어.”
하나 그것도 생각 안 하고 행동을 하진 않았다.
-흠. 뭔가 대책이라도 있는 표정이군.
“있지. 우리가 거주민들을 계속 보호해 줄 순 없어.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고.”
힘이 없다고 해서 강자한테 대항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힘이 없어도 대항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악착같이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시도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22층 거주민들은 그러지 않았지.’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복종과 순응을 선택했다.
그 와중에 공장에서처럼 저항하는 놈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택도 없었다.
물론 등반자들에 비해서 거주민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가혹하고 무기력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게 강자에게 굴복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야.’
나는 보았다.
강자에게 대항해 자신의 운명을 넘어선 거주민들을.
그중에 한 명이 5층에서 만났던 페일러이다.
신좌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거주민들 사이에서 한 신좌에게 주목을 받고 계약까지 맺었다.
그 안에는 페일러의 재능과 피 묻은 노력이 숨어 있었다.
결국에는 운명은 자신이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다만 22층의 거주민들에게는 그러한 의지도 없고 희망도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또 같은 선택을 반복하리라.
‘밥을 떠먹여 주는 느낌이라,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크으응?”
-왜 계속 말이 없지. 대책을 어떻게 세웠는지 말해 주려는 거 아니었나?
“아.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그렇군.
“아무튼. 골드 블러드가 생산되지 않게 만들려면 방법은 세 가지뿐이야. 첫째 거주민들의 전력을 강화시킨다.”
-으음. 그건 현실성이 떨어지는군.
“둘째 거주민들을 모조리 죽인다.”
-그대의 성격상, 그러지는 않겠지.
“셋째. 골드 블러드를 만들기로 계획한 주동자를 죽인다.”
-세 번째 방법이 좋겠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만 세 번째 방법에는 문제가 있어.”
-직접 찾아가질 못한다는 문제 말인가?
“그래. 주동자는 인듀어 길드의 간부 아란. 그런데 우리는 그놈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어.”
-그렇다면 세 번째 방법도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아니. 그놈을 여기로 끌어들이면 돼. 아란은 베티에게 지원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지.”
-그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녀석들을 정리하면 다른 놈들을 또 파견할 거다. 조금 더 강한 놈으로.”
-나라도 그리했을 거다. 아! 그대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이제야 알겠군. 그렇게 하다 보면 그놈이 직접 나설 거고. 그때 그놈을 죽일 생각인 건가.
“그렇지. 그놈은 반드시 올 거야. 특히 상부에 알릴 일은 더더욱 없으니 독자적으로 움직일 테지.”
만일 그놈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따로 세워 둔 계획이 있었다.
나는 다칼과 함께 카트에 담긴 골드 블러드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었다.
그리고 곧장 에이사를 찾아 나섰다.
천리안 와드를 써서 찾아낼 수도 있고, 등가교환을 시전해 찾아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우버 마을 근처에서 수색을 하니 금방 에이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에이사는 날 보자마자 못 볼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쪽이 여긴 어떻게…….”
“왜? 죽기라도 한 줄 알았나?”
“예. 살아 돌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솔직하네.”
“어차피 그쪽한텐 거짓말을 해 봐야 의미가 없을 거란 걸 아니까요. 근데 이번엔 무슨 용무이죠? 또 골짜기로 끌고 들어갈 생각이신가요?”
“아니. 그런 건 필요 없고. 잠깐 접촉만 하면 돼.”
“네에!? 접촉이요?”
에이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고. 절대 그런 거 아니니까.”
나는 프로켈의 인형을 꺼내 그녀와 접촉시켰다.
[네크로맨서, 에이사.]
[형태 저장이 되었습니다.]
용무를 끝낸 나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보지.”
뒤에서 그녀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다.
인적이 없는 장소로 이동했다.
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러자 다칼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 온다.
-뭘 그리 경계를 하는 것이지? 혹시 아란이 보낸 적들의 기습을 걱정하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그대가 변신을 하는 동안 내가 뒤를 책임져 줄 테니.
“그런 게 아니야.”
-음? 그런 게 아니라면 대체 왜…….
“누가 보는 게 마음에 안 들거든.”
-그대가 여자로 변신하는 걸 말인가?
“그래! 하~ 다른 놈들이 봤을 때는 변태로 오인하기 딱 좋은 상황이야.”
“캬항.”
-언제부터 다른 놈의 시선을 신경 썼다고 그러나.
“다른 거라면 신경도 안 쓰지. 근데 변태라고 소문이 나 봐. 그건 신경이 쓰이지.”
-흐음.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군.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칼을 바라봤다.
애초에 이해를 바라지는 않았다.
다칼은 사람이 아닌 신수이니까.
그리고 이런 사소한 사람의 마음까지 알 필요도 없고 말이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며 에이사로 형태 변화했다.
콰득! 콰드드!
순식간에 골격이 변해 간다.
전체적으로 신체가 왜소해지고 있었다.
내부의 장기는 비틀리고 피부는 창백한 색을 띠었다.
“아. 아.”
목소리마저 여성으로 바뀌었다.
순간 내가 육체적으로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변했다는 것에 온통 신경이 쏠렸지만.
금세 목적을 떠올리곤 아공간에서 골드 블러드를 꺼내 들었다.
“후우~.”
‘가 보자.’
성공이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그것 나름대로 시도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면 된다.
꿀꺽, 꿀꺽!
골드 블러드를 단숨에 들이켰다.
효과는 즉시 찾아왔다.
[골드 블러드를 복용했습니다.]
[신체 일부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골드 블러드의 숨겨진 효과가 발동합니다!]
[소량의 근력이 올랐습니다!]
[소량의 민첩이 올랐습니다!]
[소량의 체력이 올랐습니다!]
[??이 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데 미미한 영향을 끼칩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