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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46화 (146/230)

회귀한 탑 등반자 146화

146화 골드 블러드 (1)

“하아~ 하아~.”

베티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숲을 빠져나왔다.

“푸륵!”

그는 개울가 근처에 세워 둔 포호스를 타고 아지트가 있는 우클리 마을로 향했다.

베티는 심각한 표정으로 혹여나 누가 따라오지는 않는지 반복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5분을 내달린 그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까 전에 숲에서 벌어졌던 일을 회상했다.

‘이준석.’

가히 전쟁병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무력을 가진 사내.

오십여 명에 가까운 인원을 파훼시킨 것도 모자라 당사자는 상처는커녕 지친 기색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과 상대하면서 모든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어.’

베티는 지금도 놀란 감정을 추스르는 중이었다.

준석이란 이름을 자신이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뜻은 중층부에서 내려온 등반자는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아래층에서 올라온 등반자라는 소리였다.

‘그게 말이나 돼? 저런 괴물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한편으로는 그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일 전투에 끼어들었으면 다른 놈들보다 조금 버티기는 하겠지만 결국에는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피터를 꼬드겨 다른 등반자들을 데리고 간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그가 준석을 노리게 된 배경에는 현상금 순위 명단이 있었다.

박우철과 그의 일행을 누가 죽였는지 찾아내던 베티는 미션의 참가자 중에 누군가가 천만 포인트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미션의 참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소식을 전해 듣고서 거짓말이라고 판단해 버렸다.

하나 수많은 등반자들이 내뱉는 말이 일치했고, 결국에는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태 22층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미션을 지켜봤지만 아무리 많은 현상금을 모아 봐야 이삼백만 포인트가 최대였다.

그 마저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을 때 얘기였다.

하지만 천만 포인트라니.

완전히 수준부터 달랐다. 설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무려 천여 명을 상대해 죽여야 한다.

그럼 참가자뿐만 아니라 마을에 있는 거주자들이나 22층에 장기로 머물고 있는 등반자들까지 건드려야 하건만, 마을을 둘러보았을 때 그런 기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결론은 한 가지뿐.

네크로맨서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 녀석들을 천여 명씩이나 상대했다고? 에이~.’

그것이 처음에 보였던 반응이었다.

네크로맨서들을 전부 죽이는 건 박우철조차도 꺼리던 일이었다.

무슨 꼼수를 사용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무력을 직접 확인한 베티는 어쩌면 꼼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확신한 이유가 있었다.

‘그놈. 어둠 속성을 다뤘어.’

박우철을 죽인 놈도 어둠 속성을 다루었다.

천만 포인트를 벌어들였다는 놈이 있다고 했을 때. 박우철의 죽음과 연관된 놈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어느 정도 확신으로 바뀌었다.

‘놈이 박우철을 죽였다면 네크로맨서들을 없애 버리는 것도 완전 허황된 얘기는 아니야.’

박우철을 죽였으니, 박우철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박우철은 그가 정리했다고 쳐도 대체 다른 놈들은 누구에게 당한 것일까?

‘설마. 전부 혼자서?’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아서 곧장 고개를 저었다.

“히이잉!”

“워, 워.”

이윽고 우클리 마을에 도착한 그는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기도 자세를 취하며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새하얀 빛이 대기로 퍼져 나갔다.

우웅!

신전에 있는 제단의 돌이 같이 빛나기 시작했다.

돌 위에는 인간의 시신이 재물로 올려 있었다.

파각, 치이익……

곧 올린 재물이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다.

돌에 새겨진 문양이 번쩍였다.

이어서 베티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운다.

오랜 침묵 끝에 다시 눈을 뜬 그는 야옹 소리에 뒤를 힐끔 바라보다 정면을 응시했다.

잠시 후, 돌에서 굵직한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전해졌다.

“베티.”

베티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란 님께 인사드립니다.”

아란은 중층부에 거주하고 있는 인듀어 길드의 간부이자 박우철보다 상급자였다.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연락을 하다니. 혹시 규율을 잊은 건가?”

“아,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에만 연락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흠. 그걸 알면서 연락을 했다는 건 그쪽에 긴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예! 아무래도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소식?”

베티는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아란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다시 되물어 보았다.

“이준석, 그놈이 박우철을 죽인 것이 확실한가?”

“그놈밖에 없습니다.”

“네놈은 그놈이 감당이 안 되니 도망을 쳐 온 거고.”

“저…… 도망을 친 것이 아니라 아란 님께 보고를 드리기 위해서…….”

“변명은 듣지 않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변명을 늘어놓는 새끼들이지. 그런 식으로 마음대로 혀를 놀렸다가는 언젠가 네놈 목이 날아갈 거다.”

베티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놈이 박우철을 죽였다면 남아 있는 전력으로는 죽이기가 어렵겠군. 좋아. 지원을 내려 보내지. 그동안 너는 놈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쫓아다녀라. 그리고 주기적으로 보고하도록.”

“예!”

“그건 그렇고 포션 제작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겠지?”

“예.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주민들의 반응은?”

“크게 불만을 안 가지고 잘 협조합니다. 아무래도 죽는 것보단 우리에게 협조를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아주 멍청이들은 아니군. 밑에 있는 놈들을 시켜 납품 날짜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라. 그리고 입단속도 단단히 하고. 절대로 상부에 알려지면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베티는 아란과 대화를 끝내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이맛살을 구기며 혼잣말을 지껄였다.

“하, 개 시발 좆같네. 내 언젠가 밟고 만다.”

그는 야망이 있었다.

언젠가 아란을 밟고 그 위에 있는 인간들마저 전부 밟아 최종적으로는 길드 내에 이인자가 되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길드마스터의 자리도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지금은 힘을 키울 때까지 몸을 웅크려야 했다.

‘그때까진 더러워도 참는다.’

그때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지?’

고개를 돌리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신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야옹~.”

“고양이?”

‘이곳에 고양이가 있었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의 꼬리는 길게 가지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원이 올 때까지 준석을 몰래 뒤쫓아야 한다. 하나 그 전에 포션 제작에 차질이 없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괜히 제작에 차질까지 생기면 기껏 건진 목숨을 아란이 앗아 갈 수도 있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고양이를 지나쳤다.

그리고 입구를 나서는 순간.

푸욱!

등의 서늘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크윽……!”

마치 풍선의 공기가 빠져나가듯이, 몸에 남아 있던 힘이 쭉 빠져나간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 베티는 너무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분명 따돌렸다고 생각했건만,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네놈이 어떻게……?”

“쫓아왔지.”

카득!

“끄아아아!”

시린 칼날이 몸 안을 휘저었다.

“이준석…… 이 개자식!”

절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준석은 더욱 검을 비틀었다.

“으아악!”

“묻는 말에만 대답해. 그럼 편안하게 보내 주지.”

“이런 시바아알! 개새…… 아아아악!”

“묻는 말에만 대답.”

“야이! 비겁한…… 끄아아! 그, 그만! 뭐든 대답할 테니까 그만해! 시발!”

대답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준석은 그에게 질문했다.

“네놈들이 말한 포션. 그게 뭐지?”

“무슨 포션. 으아아악!”

“혹시 이러다가 피를 흘려 죽겠지라고 생각은 하지 마. 당장에 죽을 것 같이 아파도 절대로 죽을 일은 없으니까. 원하는 대답을 할 때까지 계속 그 고통을 느낄 거야.”

베티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악독하고 더러운…… 으윽! 아니! 잠깐잠깐! 말할 게. 말할 테니 그만하라고!”

준석이 말을 무시하고 검을 비틀려고 하자 베티가 재빠르게 입을 뗐다.

“골드 블러드! 우린 골드 블러드라고 불러!”

“더 자세히 말해.”

“거, 거주민들의 피를 뽑아서 만드는 포션이야! 그 포션을 먹으면 조금의 회복 증상과 환각 증세를 겪지. 중독성도 강해서 한번 먹으면 멈추기도 어렵고! 으아아아! 시발! 다 말했는데 왜에에!”

“사람 피에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없잖아. 만일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거주민들만 노리는 건 이상하지. 너희들 입장에선 등반자들의 피를 사용하는 게 더 편할 텐데? 설마 같은 등반자 출신이라서, 피를 안 뽑는다는 개소리는 지껄이지 않겠지?”

정말로 죽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통을 느낀 베티가 말을 잇는다.

“허헉. 헉. 제발 그만…… 22층 거주민의 피만 그런 효과를 지니고 있어. 그래서 그들만 노린 거고.”

“이유는?”

“그건, 나도 몰라! 아란 님의 말씀으론 네크로맨서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하던데. 명확한 원인은 정말로 나도 몰라!”

“포션을 만드는 장소는? 보관하는 데도 말해. 그리고 관련자들이 누군지도.”

“어, 그게…….”

베티는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얘기했다.

“알고 있는 건 그게 끝이야?”

“끝이야. 더 이상 물어도 아는 게 없어! 정말이야!”

“그래. 수고했어.”

“어, 어?”

서걱!

그것이 베티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 * *

나는 죽은 베티를 무심히 내려다보다 이내 프로켈의 인형을 꺼내 시신에 접촉시켰다.

[부패한 사제 베티.]

[형태 저장이 되었습니다.]

베티와 대화를 한 아란이라는 간부가 나를 잡기 위해서 지원을 보내겠다고 했으니, 미리 준비를 해 두는 편이 좋았다.

그건 그렇고.

“골드 블러드라…….”

회귀 전에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베티에게 들은 정보가 전부 진실이라면 파급력이 꽤 클 것이다.

‘그런데 회귀 전엔 왜 알려지지 않았지?’

중독성이 강한 포션이라면 찾는 이들이 계속 불어났을 텐데 말이다.

‘만들어진 개수가 적나? 아니야. 그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되지 않아. 희소성이 있는 아이템일수록 더욱 소문은 빠르게 퍼지게 되어 있어. 아니면 소수에게만 팔아넘겼나? 그래. 그게 가장 현실성이 높겠지.’

우선은 골드 블러드가 정확하게 어떤 포션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앞으로 행동을 어떻게 할지 정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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