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142화 (142/230)

회귀한 탑 등반자 142화

142화 층의 시계 (2)

“오.”

예상한 범주를 뛰어넘는 드넓은 공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천장에 떠 있는 구슬들이 은빛을 발광하며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점지의 예견대로 온갖 진귀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깨에 올라타 있던 다칼이 떨어져 나와 코를 킁킁거렸다.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냄새?”

책장 근처여서 그런지 특유의 종이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칼은 어떤 냄새에 이끌려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멈춰!”

다행히도 숨겨진 장소에 발을 딛기 전에 막아섰다.

-왜 그러지?

“저길 봐.”

장소 끝에 한 손에 무게 추를 들고 있는 인간의 석상을 가리켰다.

나머지 한 손에는 다이얼 게이지를 들고 있었다.

-무게를 재는 석상이군.

“그래.”

회귀 전에 중층부에 있는 왕국의 보물방을 털었을 때 똑같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방의 무게가 정해진 무게를 넘어서면 석상이 주인에게 즉각 침입 경보를 보내고 대응에 나서게 된다.

물론 성에는 비켈이 존재하지 않으니 침입 경보를 보내고 그자가 직접 올 일은 없었다.

대신 다른 놈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저 석상도 무시할 게 못 됐다.

주인의 힘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무게를 재는 석상은 분명 비켈의 힘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 힘은 성의 문지기들보다 세겠지.’

한마디로 석상을 건드는 건 자살행위였다.

“크르릉.”

-흠. 그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하겠군.

“그렇지. 다만 발만 대지 않으면 해결될 일이야.”

펄럭!

두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뒤에 있던 다칼이 급히 내게 달라붙었다.

나는 중심을 잡고 천천히 안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물건들이 눈에 띄지만 이것들 중에 하나라도 사라지면 석상이 움직일 것이다.

석상을 먼저 부수거나 작동하는 걸 방지할 수 있다면 그런 걱정이 없겠지만 저걸 만지기만 해도 자동으로 발동해 버린다.

현재로써는 안 만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원하는 것을 취하려면 보물을 한꺼번에 쓸어 담고 재빠르게 도망을 치는 것뿐이다.

“추르읍~.”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에 다칼은 혀를 날름거렸다.

무엇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지 시선을 쫓아가 보았다.

‘돌?’

푸른빛을 휘감은 도넛 모양의 돌이었다.

워낙 빛이 강렬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딱히 입맛이 돌지는 않았다.

다만 다칼의 입맛이 잡식성에 가까우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공중에 떠서 중앙으로 이동했다.

“후~.”

크게 숨을 내쉬곤 준비했다.

‘행동하면 다신 되돌리지 못해.’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 것이다.

각오는 이쯤하고.

“다칼, 어둠.”

“캬항!”

다칼이 지배하는 어둠을 끄집어냈다.

마법은 최대한 쓰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근처의 누군가가 마나를 감지할 수도 있었다.

즉시 어둠의 지배력을 이용해 물건들을 이쪽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아공간에 욱여넣었다.

[펠렌스 도검을 얻었습니다.]

[에델린스키 비석을 얻었습니다.]

[이미 다른 대상이 귀속한 아이템입니다.]

[가질 수 없습니다.]

[메테오 마법책을 얻었습니다.]

[거인의 가면을 얻었습니다.]

[이미 다른 대상이 귀속한 아이템입니다.]

[가질 수 없습니다.]

[이미 다른 대상이 귀속한 아이템입니다.]

[가질 수 없습니다.]

[이미 다른 대상이 귀속한 아이템입니다.]

[가질 수 없습니다.]

[대악마 라오레느의 미술품을 얻었습니다.]

…….

…….

…….

아쉽게도 90퍼센트가량은 귀속된 템이라 아공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아공간이 집어삼켰다가 편식을 하듯 다시 내뱉었다.

하지만 나머지 10퍼센트는 전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의 돌을 얻었습니다.]

다행히도 다칼이 탐냈던 돌은 귀속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그것을 다칼에 건넨 후 고개를 돌렸다.

그그그그그……

무게를 재는 석상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굳어 있는 몸을 스스로 부숴 가며 움직이려고 하는 중이었다.

‘서둘러야겠어.’

하나 전부 담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아공간의 입구가 한정되어 있기도 하고, 도로 뱉어 내는 것들이 열에 아홉이기 때문에 아직 들어가지 않은 물건 중에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

그새 자유로운 몸이 된 석상이 무게 추의 줄을 움직여 철퇴를 휘두르듯 공격을 해 왔다.

슈아악!

무게 추가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육중한 크기와는 다르게 무게 추는 무척이나 재빨랐다.

주시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뒤늦게 인식하고 정면으로 맞았다면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슈우욱!

공격은 쉴 틈 없이 들이닥쳤다.

저리로 사라졌던 무게 추가 어느새 코앞으로 당도해 있었다.

챙강!

“큭!”

이번엔 지팡이로 겨우 비껴 쳐 냈다.

전투는 이미 시작됐지만 마법 사용은 여전히 자제하는 중이었다.

비켈의 대체자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놈들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채앵!

무게 추가 지팡이를 휘감았다.

“으으으!”

석상은 무기를 무력으로 빼앗으려고 했다.

‘이대로면 놓쳐!’

일부러 살짝 힘을 풀어 무게 중심을 앞으로 기울인 뒤 꼬여 있던 무게 추를 풀어냈다.

힘의 중심을 잃은 석상이 잠시 발이 꼬였다.

그 틈을 타서 주위를 살폈다.

이대로 방어를 하는 것은 얼마 가지도 못한다.

몇 분, 어쩌면 그보다 짧은 삼십 초 안에 비켈의 대체자가 도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딱 하나만 더 챙기고 떠나는 거야!’

외형만 보고서 어떤 물건인지 파악이 가능한 것들도 있었지만 모르는 물건들도 절반쯤은 됐다.

그래도 꽝일지 당첨일지 모르는 물건을 챙기는 것보단 아는 물건을 챙기는 편이 성공률도 높고 안정적이었다.

‘저걸 챙기는 게 좋겠군.’

[별의 정수를 얻었습니다.]

물건 하나를 집자마자 곧장 비켈의 방을 빠져나왔다.

석상은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 방 밖으로 빠져나오질 못했다.

[체력이 올랐습니다!]

“후우~.”

숨을 토해 내는 것도 잠시.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복도 주변을 뒤덮었다.

“쿠하아아!”

두 눈을 마주친 발록이 곧바로 한 손을 내뻗어 마법진을 형성한다.

화아악!

거대한 불덩이가 튀어나와 매섭게 날아들었다.

근접하기도 전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등가교환!

반사적으로 그만, 마법을 시전해 버렸다.

‘이제 성의 있는 놈들이 다 알아챘겠군.’

마나를 감지했으니 궁금함을 느낀 악마 놈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치이…….

급히 네모난 얼음벽을 세웠건만 발록이 소환한 불덩이를 견뎌 내기에는 얼음벽이 너무도 약했다.

하얗던 얼음에 수증기가 피어오르더니 금세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콰하아아-

‘젠장!’

몸을 움직여서 피하기에는 늦었다.

다크웨스트림을 시전하려는 순간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발록의 불도 흡수할지는 모르겠지만…….’

해 볼 만했다.

재빠르게 영광의 장갑을 낀 손을 내뻗었다.

후우우욱!

거대했던 불덩이를 영광의 장갑이 전부 흡수했다.

다만 받아 낸 힘이 한계치에 가까운 것인지, 장갑의 일부에 시커먼 재가 피어나는 중이었다.

‘더 유지했다간 장갑이 타 버릴 거야.’

그 전에 흡수한 불을 그대로 방출했다.

화아악!

불덩이가 도로 발록에게로 날아갔다.

“크허?”

콰아아앙!

발록은 자신의 공격이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불덩이를 정면으로 받아 냈다.

“크르르.”

“칫.”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발록은 멀쩡하기만 했다.

되레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하필 비켈의 대체자가 발록이라니.

거리를 벌리려고 해도 뒤가 완전히 막혀 있었다.

‘정말 공간 이동이라도 써야 하나.’

아니다.

아직은 아니었다.

나는 뒤편의 벽을 유심히 바라봤다.

타닷!

그리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근력이 올랐습니다!]

파직! 파지직!

다크볼트를 시전해 벽에다가 날렸다.

콰앙!

[‘건물 파괴자’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길이 없다면 만들어 내면 그만이었다.

입성하고 여태까지는 최대한 조심해서 다녔지만 이미 마법을 사용한 순간부터 몰래 빠져나가는 건 물 건너간 상황이다.

[마나가 올랐습니다!]

윈드퍼드!

바람으로 먼지를 걷어 내자, 자그만 구멍이 드러났다.

물론 칭호의 효과 덕을 보았지만, 82층의 벽이라고 해도 중요하게 쓰이는 공간을 제외하곤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수그리면 들어갈 수 있겠어.’

다크웨스트림.

코앞으로 이동해 구멍을 통과했다.

외부로 나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래는 낭떠러지였다.

펄럭!

추락하기 직전에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날았다.

콰하아앙!

뒤따라온 발록이 벽을 부수고서 두 날개를 펼쳤다.

‘아주 끝까지 쫓아 올 기세구나.’

나는 층의 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층의 시계에는 자신이 원할 때 이전 층으로 돌아가는 기능은 주어져 있지 않았다.

돌아가려면 약 5분 정도를 82층에서 더 보내야 했다.

그러려면 우선은 발록부터 멀리 떨어뜨려 놔야 한다.

아니면 죽게 되리라.

그리 생각하니 오랜만에 심장이 고동쳤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인간 따위가 감히 성을 침입한 것도 모자라 비켈 님의 방을 털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뼈저리게 알게 해 주마!”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듯, 상당한 마나를 등에 집중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월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거기다 발록이 내 발목을 붙잡기 위해서 마법을 시전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다크웨스트림을 연속으로 시전해 봐야 떨쳐 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그 시간에 날개에 마나를 더 불어넣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비축해 두려는 마나를 소모하는 수밖에.

등가교환!

발아래로 마법진이 생겨났다.

스륵, 촤아악!

그때 채찍이 보호막을 뚫고서 타엘의 한쪽 날개를 붙잡았다.

화아아!

채찍에서 뿜어져 나온 지옥의 불이 날개의 힘을 악화시킨다.

“크윽!”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계속 한쪽으로 쏠렸다.

“아우우우!”

-내가 도와주지!

때마침 다칼이 나서서 어둠으로 날개를 만들었다.

어둠의 날개와 타엘의 날개가 한 쪽씩 제 역할을 해 주며 다시 중심을 잡아갔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이잉!

갑작스레 허공에 생겨난 지옥의 불꽃 고리가 팔과 다리를 속박해 버렸다.

“크흑!”

무력으로 풀어내기에는 매우 강력한 주문이었다.

“빨리! 빨리!”

우웅!

그때 발아래 완성된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스르르!

곧 두 발부터 시작해, 온몸이 빛의 입자가 되어 갔다.

이윽고 시야가 새하얗게 물든다.

몸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으며 감각 또한 아무것도 느껴지질 않았다.

육신의 대한 감각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몇 초가 지난 뒤였다.

털썩!

시커먼 흙이 존재하는 땅으로 떨어졌다.

“하아~ 살았다.”

아직 82층인 것은 여전하지만 발록에게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다만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하면서 마나가 상당수 줄어들었다.

이때 역전의 사냥꾼이라도 발동하면 좋으련만.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아 효과 발동을 바라기는 어려웠다.

“크르르…….”

-준석.

“응?”

다칼의 진지한 부름에 고개를 든 나는 곧 인상을 구겼다.

위치를 지정하지 않고 발록에게 벗어날 정도로만 이동한 것인데.

드드드드!

하필 이동한 곳이 악마의 성 앞에 있는 지옥의 정원이었다.

지옥이란 명칭에 알맞게 정원에는 지독한 향과 환각을 제공하는 헬플라워가 서식하고 있었다.

“키하아아-!”

뿌리를 발로 삼아 걷고 있는 헬플라워 수십 마리가 금세 나를 중심으로 둘러쌌다.

그리고 대응하기도 전에 녀석들이 이미 향을 뿌렸는지 주변의 환경이 이상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공간이 왜곡이 되고.

쿠구구구!

땅이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마치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리얼했다.

“하, 시발…… 숨 좀 돌리나 했더니.”

누가 상층부 아니랄까 봐, 어디를 가든지 만만치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