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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39화 (139/230)

회귀한 탑 등반자 139화

139화 하이어 네크로맨서 (1)

높은 절벽 아래라 그런지 햇빛이 들지 않고 어두웠다.

보통이면 어둠에 스산한 바람까지 불어오는 분위기에 휩쓸려 긴장감이 들 테지만 나는 반대로 편안함을 느꼈다.

어둠은 내게 있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친근한 느낌이다.

생김새가 매우 다양한 토템들이 즐비했다.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저주를 막아 냅니다.]

[메나이어 배지 ‘상태 이상 일부 저항’ 효과가 발동합니다.]

[육체 기능을 저하시키는 저주를 막아 냅니다.]

[체력 회복력을 저하시키는 저주를 막아 냅니다.]

[마나 회복력을 저하시키는 저주를 막아 냅니다.]

…….

…….

토템의 효과는 제대로 발동 중이었다.

다만 배지의 힘에 튕겨져 나가거나 혹은 강한 정신력이 튕겨 내 버렸다.

만일 정신력이 낮은 자들이 이곳을 찾아온다면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정신이 무너져 미친놈이 되어 버릴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라는 존재마저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저주 토템에는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일반 네크로맨서가 저런 걸 만들어 낼 리는 없고, 전부 하이어 네크로맨서가 하나하나 만들어 낸 것일 터.

그어어-

저편에 있는 동굴에서 수백이 넘는 워커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기존의 워커와는 덩치부터 남달랐는데, 두 배는 크고, 뛰는 속도로 보아 육체능력 또한 두 배로 세졌다.

“크르르르!”

-저놈들이 내가 처리하지.

“그래.”

다칼이 몸집을 키우고 갑주를 두르며 워커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콰앙! 투두두둑-

몸통박치기로 워커들을 날려 보낸다.

기존보다 센 워커들이라고는 하나, 다칼의 입장에서는 그놈이 그놈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다칼이 워커들을 상대하는 동안 나는 아까 전부터 죽음의 기운이 흘리고 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고 있으면 못 알아챌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아님 병신 같은 취미라도 지니고 있는 거야? 밀랍 인형인 척은 그만하지.”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던 검은 피부의 사내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다.

약간 소름이 끼치는 괴이한 미소였다.

녹색 팬티 차림의 그는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거닐었다.

“신기하군. 신기해. 저주도 통하지 않고 단박에 나를 알아채기도 하고. 여태 만나 온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과는 다르도다.”

그는 옆으로 걸으면서도 쭉 나를 주시했다.

“흥미롭군. 흥미로워. 그대에게 나와 같은 죽음의 냄새가 나는군.”

이내 자리에 멈춰 서더니 살짝 고개만 숙여 자기소개를 해 온다.

“나의 이름은 엘리토 마스파다! 위대했던 선조의 이름을 따와 지은 것이지. 그대는 이름 무어지?”

“곧 죽을 놈에게 무슨 소개는.”

나는 어둠과 동화가 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여유롭던 엘리토의 표정이 놀람으로 번진다.

하나 이런 상황마저도 재밌는지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힘의 천칭저울.

하이어 네크로맨서를 단순히 죽이는 거라면 저울질은 굳이 필요가 없지만, 내 목적은 죽이는 것이 아닌 흩어져 있는 파편을 한데 모아 뿔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그러니 상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힘 조절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울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내 쪽으로 기울었다.

이변 없이 힘의 격차는 컸다.

이 정도면 힘의 반만 써도 죽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치네스나 엘리렌스 같은 버프기는 필요 없었다.

루트딥트리.

쿠구구구!

먼저 나무를 소환해 녀석을 압박해 보았다.

스릉!

엘리토는 지팡이 검을 이용해 날아드는 나무줄기들을 베어 버렸다.

하지만 베도 베도 끝이 없으리라.

마나만 부여하면 잘려진 나무줄기를 다시 재생시킬 수 있었다.

컬스버닝.

[상대가 저주를 튕겨 냈습니다.]

“캬하아! 이 몸이 저주가 통할 것 같은가!”

그거 하나 막은 것 가지고 호들갑은.

다크웨스트림.

파지직!

곧장 뒤로 근접해 다크볼트를 날렸다.

[행운의 룰렛이 발동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룰렛에서 <4>이 나왔습니다!]

[발동한 스킬 레벨에 <+4>이 일시적으로 적용됩니다!]

[마나볼트 레벨이 일정 레벨에 도달하여 한층 더 강력한 형태로 변화된 공격이 가능해집니다.]

[마나볼트 레벨이 올랐습니다!]

콰앙!

“으아악!”

엘리토가 등에 타격을 받고 중심을 잃는다.

하지만 한 방으로는 부족했다.

다크볼트를 연달아 시전하고 폭격을 퍼부었다.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고, 후폭풍으로 먼지가 휘날렸다.

화아아!

먼지를 걷어 낸 엘리토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날 찾아냈다.

“거기 있구나!”

기습적으로 파고들었지만, 찌르기가 빗나갔다.

녀석은 나를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죽음의 기운을 쫓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크웨스트림, 다크웨스트림, 다크웨스트림……

여기저기로 이동해 다니며 기운의 흔적을 남기고 다녔다.

동시에 구체 폭격은 계속됐다.

나무줄기가 자꾸 속박을 하려고 드니 제대로 피하지도 못했다.

“흐으아아아!”

엘리토가 울부짖었다.

“허억, 헉. 헉.”

여기저기 벗겨진 살은 너저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인간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좋도다! 내 너의 목숨은 반드시 앗아 가 주지!”

그는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지팡이 검을 휘둘렀다.

칭!

찰나, 붉은 검기가 뻗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페이크이고. 하늘에 해골의 문양이 그려진 마법진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발동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걸 보니 강대한 저주 마법을 부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나,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나는 하늘로 손을 뻗었다.

마나방출.

[마나방출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레벨 상승과 함께 집약된 마나가 위로 치솟았다.

파아아앙-!

정확하게 정중앙을 노린 공격은 마법진의 형태를 무너뜨렸다.

“안 돼에에!”

엘리토가 절규하며 이번엔 여러 개의 검기를 날려 보냈다.

검기는 발만 슬쩍 움직여 전부 피해 냈다.

[민첩이 올랐습니다!]

이후에도 엘리토는 몇 번이고 저주 마법을 시도했다.

그때마다 무참히 파훼되자,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워커들이 걸어 나왔던 동굴로 도망쳐 버렸다.

“이건 예상 못 했네…….”

나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를 뒤따라갔다.

그새 워커들을 정리한 다칼이 같이 뛰었다.

“으음.”

왜 동굴로 기어 들어가나 했더니만,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아악! 아아아!”

엘리토가 사람 한 명을 머리 끄탱이를 붙잡고 끌고 온다.

그러며 처음에 보여 줬던 괴이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들은 같은 동족을 그리 챙긴다지? 이 녀석들이 죽고 싶은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무릎을 꿇는 게 좋을 것이야!”

지팡이 검을 사람의 목에 들이댔다.

주륵, 피가 흘러내린다.

“으으으. 살려 주세요!”

그에게 붙잡힌 사람은 애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응?”

다크웨스트림, 다크소드.

푹!

“커허억……!”

뒤에서 녀석의 오른쪽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인간들은 서로 챙기기도 하지만 서로 죽이기도 한다는 걸 말이야. 설마 이런 걸로 내가 멈출 거라고 생각했으면 큰 오산이야.”

간혹 이타적인 마음이 우러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목숨에 문제가 없을 때이다.

타인을 위해서 목숨을 갖다 바친다?

내가 멸망해 버린 세상에서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이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만큼 멍청한 짓거리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목숨을 갖다 바치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를 않는다.

무엇보다 살아남은 자는 대신 희생한 사람을 잊고 살아간다.

물론 처음에는 애도하며 깊이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 상태로 움직였다.

검에 박힌 엘리토가 딸려 온다.

바깥에 나오자마자 발로 걷어차 버렸다.

추잡한 꼴로 엎어져 버린 그는 끅끅 소리를 내며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웠다.

“인정해야겠구나. 네놈이 나보다 강하다는 것을!”

혼잣말을 잇는 그는 지팡이 검에서는 검은빛을 사출했다.

우우우웅!

검에서 진동이 울려, 주변의 공기마저 떨게 만들었다.

잠시 후, 저 너머로는 울부짖음과 포효. 호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토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곧 있으면 나의 동족들이 와서 너의 가죽을 벗기고 뼈와 피를 나누겠지. 산 채로 해제시킬 것이다.”

등가교환.

“곱게 죽기는 글렀…….”

“잘했어.”

“뭐?”

푸하아악!

상처들이 크게 벌어지며 내장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푹!

그리고 공중에 배회하던 검을 조종해 녀석의 심장을 찔렀다.

“너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야.”

[하이어 네크로맨서를 처치하였습니다!]

[현상금이 대폭 올랐습니다!]

현상금으로 5만 포인트나 올랐다.

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다크웨스트림.

나는 이미 죽어 버린 녀석 뒤로 이동해 프로켈의 인형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인형을 시신에 갖다 댔다.

[하이어 네크로맨서, 엘리토 마스파다.]

[형태 저장이 되었습니다.]

형태를 저장하자마자 나는 광염으로 시신을 불태우고 형태 변화를 발동했다.

두근!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더니 가장 먼저 골격이 변하고 있었다.

이어서 피부색과 머리카락도 변했다.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고양이로 변신할 때도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딱히 낯설지는 않았다.

“후우~ 아. 아.”

목소리마저 바뀐 것을 확인한 나는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부터 나는 하이어 네크로맨서, 엘리토 마스파다이다.

“캬하하하!”

다칼이 나를 보며 크게 웃었다.

“왜 웃어?”

-못생긴 얼굴로 변했으니 웃기지 않는가. 그나저나 참으로 기가 막힌 수를 떠올렸군.

다칼도 모르고 있던 일이다.

혼자서 생각하고 행동한 일이었다.

곧 있으면 이곳으로 들이닥칠 수백여 명의 네크로맨서와 수만의 워커들을 한꺼번에 맞이해야 한다.

한데 녀석들과 정면 승부를 펼친다면 진이 빠질 게 틀림없었다.

괜히 힘을 소모하기보다는 머리를 써서 처리하는 것이 몇백 배로 효율적이었다.

잠시 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하이어를 봅니다.”

“하이어를 봅니다…….”

뒤늦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해 왔다.

‘후우~.’

다행이었다.

프로켈의 인형은 변신은 시킬 수는 있으나 흘러나오는 기운마저 속여 낼 수는 없었다.

네크로맨서는 죽음의 기운에 민감한 존재.

엘리토에게서 뿜어져 나온 죽음의 기운과 나의 죽음의 기운을 구별해 냈다면 변신한 것이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한데 거기까지는 구별하지 못하는 듯했다.

수십 명이 모였을 즈음.

개중에 한 명이 내게 물었다.

“하이어시여, 침입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이어께서 신호를 보내셨으니, 강력한 적들이 나타났을 터.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만 준다면 저희가 나서서 전부 씨를 말려 버리겠습니다.”

나는 첫마디를 열었다.

“기다려라! 모두가 모이면 그때 명할 것이니.”

질문을 했던 이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 누구도 따르지 않는 네크로맨서.

그런데 겨우 단 한마디에 저런 행동을 하는 걸 보면, 엘리토가 확실하게 저들을 휘어잡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근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옆에 계신 분은 누구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워낙 강대한 어둠을 품고 계신지라. 외면하려도 해도 외면하기가 어렵군요.”

나는 다칼을 쳐다봤다.

“케헴!”

-이 몸의 위대함을 단번에 알아보다니. 과연 총명한 자로다.

‘아니. 이걸 좋아한다고?’

입 발린 말에 넘어간 다칼에게 대답을 맡기긴 어려울 것 같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이 몸이 소환한 일개 펫에 불과하니. 신경 쓰지 말라.”

그 말을 듣자마자 다칼은 곧바로 내 발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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