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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38화 (138/230)

회귀한 탑 등반자 138화

138화 리이르 골짜기 (2)

네크로맨서들에게 포위를 당한 야마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상대해야 할 녀석만 해도 다섯 이상이고, 워커들은 이백여 마리가 넘는다.

정면 승부를 본다면 백퍼센트 패배할 것이다.

이내 옆을 쳐다보자 에이사가 창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항상 다정하게 웃어 주던 그녀인데.

‘빌어먹을.’

조금만 더 조심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야마토는 꼭 붙잡고 있는 에이사의 손을 놓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에이사, 내가 시선을 끌 테니 그사이에 도망쳐.”

“싫어요! 당신만 두고 갈 수 없어요.”

단호한 표정을 보니 설득한다고 될 것 같지가 않다.

“하아~.”

‘하긴 그녀를 혼자 살려 보낸다고 해도 저 녀석들이 끝까지 추격할 게 분명해.’

그렇다면 추격하지 못하는 장소로 가 버리면 되지만 그녀와는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에이사는 네크로맨서이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중간의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

마을에 가도 전혀 환영을 받지 못하며 되레 사냥을 당하기 않으면 다행이다.

애초에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그럼 아예 다른 층으로 가 버리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이지만 그것도 에이사는 자유롭지 못했다.

층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등반자만이 가진 특권.

야마토는 등반자이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게 가능하지만 에이사는 22층에 묶여 있는 속박된 존재였다.

탑이 정해 준 운명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눈앞에 있는 녀석들부터 해결하고 생각하자.’

맞상대를 하면 결국 죽게 될 테니 퇴로를 만들어 도망칠 생각이었다.

야마토는 한 손에 들고 있는 활을 들어 한 놈을 노렸다.

쉐에엑! 푹!

하지만 워커가 대신 공격을 맞아 버렸다.

다시 공격을 하려는 순간.

네크로맨서 하나가 빠르게 근접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늙은이의 모습을 한 그가 에이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에이사,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구나. 하찮은 인간 따위와 사랑을 하다니!”

늙은이는 매섭게 두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배신자는 척결할 뿐. 내 그간 정을 생각해 빨리 끝내 주마. 네가 사랑하는 저 남자는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 광장에 매달으리라! 그래야 좋은 본보기가 될 터이니.”

말이 끝나자마자 네크로맨서들이 움직였다.

야마토의 계획은 퇴로를 만들어 도망치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헛된 희망이었는지 깨달았다.

등반자들 중에서 강한 편에 속한다고 자부하건만, 협동해서 공격해 오니 하나를 제거하기도 어려웠다.

“꺄아아아!”

“에이사!”

그녀가 위험했다.

야마토가 다급히 도우러 가 보지만 누군가가 그를 가로막았다.

“네놈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 주지.”

아까 전에 입을 열었던 늙은이였다.

화륵!

야마토는 불을 품은 화살을 연사로 쏘았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시할 수 없었다. 늙은이는 잔상을 남기며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뒤에서 날아오는 급습을 반응하려던 그이지만 순간 에이사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푹!

“크윽!”

검에 찔린 야마토는 인상을 구기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은 것인지 육신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끌끌.”

늙은이가 그를 바라보며 비웃는다.

그러나 화를 낼 여력 따위 없었다.

“젠장……!”

끝내 무릎을 꿇는다.

공격 한번 잘못 당해서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야마토오!”

저 멀리서 에이사가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이사…….”

가까이 다가온 늙은이가 한마디를 내뱉는다.

“네크로맨서와 인간이 사랑을? 쯧쯧.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거늘, 어리석은 것들.”

늙은이는 손에 든 구부러진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죽거라.”

‘이렇게 가는 건가.’

야마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채앵!

그런데 목이 잘려 나가기는커녕 검을 튕겨 내는 소리가 들렸다.

“커허억…….”

이어서 늙은이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자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아악!”

“끄악!”

네크로맨서가 하나씩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주위를 가득 메우던 워커들이 주인들이 차례대로 죽어 나가자 힘없이 쓰러져 버린다.

‘대체 뭐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야마토는 뒤늦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찾아냈다.

‘마도사!’

주로 어둠 속성 마법을 다루는 자였다.

외형을 보았을 때 자신과 같은 등반자가 분명했다.

‘믿기지 않는군…… 어떻게 저런 힘이.’

자신이 그토록 애를 써도 한 명 처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는데, 그는 아주 간단히 다섯 명을 정리해 버렸다.

한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또 누가 있나? 잠깐.’

마법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니, 그곳에는 다름 아닌 에이사가 서 있었다.

멍을 때리며 전투를 지켜보던 야마토는 정신이 번뜩 뜨였다.

“잠깐! 그녀는 안 돼에에!”

어디서 힘이 샘솟았는지, 그 순간에 움직이지도 못하던 몸이 움직여졌다.

달려가서 막는 건 무리이다.

그렇다면.

야마토는 활시위를 당기며, 남아 있는 온 힘을 다 쏟아부었다.

쉐에엑! 콰아앙!

‘됐다!’

하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찌 막아 내긴 했지만 그를 설득하지 못하면 에이사는 죽고 말 것이다.

‘저 사람 입장에선 에이사는 그저 네크로맨서 중에 한 명일 뿐이야.’

네크로맨서와 인간을 구분하기는 쉬웠다.

전체적인 신체 구조는 똑같으나, 네크로맨서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회색 피부였다.

야마토는 다시 그녀가 공격당할 것을 대비해 서둘러 그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그는 지팡이를 내리고 둘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와 가까이서 마주한 야마토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 * *

나는 여자와 남자,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등반자가 네크로맨서를 감싸고돌다니.

네크로맨서인 여자 또한 남자를 공격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에서는 깊은 애정까지 느껴졌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인간을 실험체 쥐 취급을 하는 게 네크로맨서라는 종자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있어 인간과 사랑을 나눈다는 건 실험체 쥐와 사귄다는 것과 동일시된다.

그렇다고 안 믿기에는 눈앞에 그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파직! 파지직!

나는 마법을 시전했다.

설사 둘이 사랑한다고 해도 뿔의 파편을 얻기 위해서는 여자를 정리해야 된다.

전기 구체를 들이밀자 남자는 애절하게 부탁을 해 왔다.

“제발…… 제발…….”

“미안하지만 그쪽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

그때 여자가 나서서 말했다.

“야마토 씨, 몸도 성치 않은데 그만 됐어요.”

“에이사…….”

이름이 에이사인가.

그녀는 다친 몸을 이끌고 걸어 나왔다.

“야마토 씨와 같은 등반자이니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저를 죽이고 나면 야마토 씨를 마을에 데려가 치료해 주세요. 물론 그쪽 입장에서는 들어줄 이유는 없지만…….”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다.

‘진짜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군.’

“케헹…….”

다칼이 슬쩍 눈물을 훔친다.

-종족을 초월한 사랑이라니. 감동적이군.

“음…….”

나는 고민 끝에 그녀에게 제안했다.

“내 요구를 들어주면 살려 주지.”

“네……?”

“뿔의 파편을 가지고 있다면 내놔.”

뿔의 파편은 죽어서도 나오지만 네크로맨서가 직접 꺼내서 줄 수도 있었다.

하나 애초에 그럴 일이 없기에, 여태는 생각해 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만일 없다고 하면 죽이는 수밖에.’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겨우 그거라면, 드릴게요.”

‘오호?’

그걸 순순히 내놓겠다니.

네크로맨서에게 있어 그것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을 터인데.

그녀는 몇 번 헛구역질하더니 이내 입에서 뿔의 파편을 토해 냈다.

‘으으.’

침이 묻어 더러웠으나 상관없었다.

나는 그것을 염력으로 받아 내고 물로 씻겨 냈다.

것도 모자라 불로 지졌다.

내구성이 강한 물건이 그 정도로는 부서지지 않았다.

[??의 뿔 파편을 얻었습니다.]

‘진짜로 뿔이군.’

이 정도면 진정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살리면 얻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현상금을 못 받는 게 아쉬운데.’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1만5천 포인트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야마토라는 저 남자의 애절함도 한몫했다.

하나 이대로 가기에는 아쉬워 뭔가 더 얻어 낼 게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기막힌 걸 떠올렸다.

나는 곧장 에이사를 쳐다봤다.

“들어준 김에 한 가지만 더 들어 줬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정말로 살려 주는 거 맞나요……?”

“이번 것까지 들어준다면 약속하지.”

그럼에도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 그녀에게는 선택지 따위 없었다.

“뭔가요. 들어 달라는 게.”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네크로맨서들만 출입이 가능한 통로. 거기를 이용했으면 좋겠는데.”

골짜기에는 숨겨진 비밀통로가 존재한다.

다만 네크로맨서들이 주문을 걸어 놔, 네크로맨서가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하나 그녀가 직접 손을 쓴다면 사람일지라도 충분히 출입이 가능할 터이다.

만일 통로가 아닌 정면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면 수많은 함정과 저주를 맞닥뜨린다.

물론 마법을 사용하거나 날개를 쓰면 지형을 뛰어넘을 수도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마나는 아껴 두는 게 좋았다.

마나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아직도 회복이 다 안 된 상태이다.

박우철과 싸운 것이 영향이 컸다.

‘그리고 앞으로 일을 치르려면 최대한 모아 둬야 돼.’

곧 그녀에게서 답변이 돌아왔다.

“안 돼요! 거긴…… 너무 위험해요!”

“혹시 동족들과 마주치는 걸 염려하는 거라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내가 네크로맨서 다섯 명을 쉽게 처리했단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에이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비밀통로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죠? 그건 네크로맨서들만 알고 있는 통로인데.”

“물어도 답할 생각 없으니 묻지 마. 그보다 할 거야 말 거야? 빨리 선택하라고.”

“후~ 좋아요. 안내할게요. 하지만 야마토 씨의 상태가 보다시피 같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그이를 마을에 데려다주고 안내하면 안 될까요?”

고개를 저었다.

마을까지 돌아가려면 또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어쩔 수 없지.’

나는 그의 상처가 난 부위에 손을 댔다.

등가교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것은 마나소모가 커서 적당히 찔린 부위를 봉합하고 피가 더 이상 나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의 표정도 한결 나아져 있었다.

“이걸로 안내하고 돌아올 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거다.”

“고마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다칼의 등에 업혀 이동하게 되었다.

그간 겨우 버티고 있었는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옆에서 종알종알하는 것보단 차라리 기절해 있는 게 낫다.

잠시 후, 골짜기 입구에 다다랐다.

흉흉한 기운이 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꿀꺽.

에이사가 긴장한 표정으로 먼저 걸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크로맨서가 사용하는 비밀통로가 나왔다.

에이사는 결계 앞에서 뭐라 주문을 외우더니 이내 뒤로 돌아 말했다.

“다 됐어요. 들어와요.”

나는 들어가기에 앞서 확인 차 경고했다.

“허튼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뿔의 파편을 순순히 내줬다고는 해도 네크로맨서는 본래 믿을 족속이 못된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거야 보면 알겠지.”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우웅-

회귀 전에는 넘지 못했던 결계를 통과했다.

앞서서 걷는 에이사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목적지가 어디죠? 그걸 알아야 안내를 해 줄 수 있어요.”

나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답해 주었다.

“하이어 네크로맨서.”

에이사가 걷다 말고 몸을 흠칫했다.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그녀는 뒤로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비밀통로를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분이 탄생한 지도 얼마 안 된 일인데.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외부자가 알고 있는 거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묻는다고 답하지 않아. 그러니 넌 묻는 거에만 답하고 안내만 해. 그게 내가 그쪽한테 원하는 거니까.”

‘그런데 하이어 네크로맨서 보고 그분이라…… 아직은 이곳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건가.’

인간을 사랑하지만 여기서 지내 온 시간이 긴 만큼 크고 작은 관습을 벗어던지는데 오래 걸릴 것이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걷기만 했다.

그러다 역겨운 광경들도 마주했다.

아직 산 채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전에 잡아들인 사람을 실험체로 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가 있었다.

“죽여 줘…….”

보통은 살려 달라고 말을 하지만, 꼬챙이에 매달려 있는 남자는 내게 죽여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어차피 살리기에는 늦었기에 그래 줄 참이었다.

“고통 없이 보내 드리지.”

푹!

다크소드를 남자의 심장에 박아 넣곤 뒤에 서 있는 에이사를 바라봤다.

딱히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내 마음을 전달했다.

이게 너의 동족들이 하는 짓이라고.

그녀도 그런 나의 눈빛을 알아챈 것인지 죄책감과 슬픔이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조용히 길 안내를 시작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비밀통로를 지키고 있는 네크로맨서 놈들을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덧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에이사는 마지막으로 있는 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나가면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저 밖에서 강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다칼, 내려 줘.”

“크르릉.”

다칼이 잠이 들어 버린 야마토를 땅에 내려놨다.

나는 에이사에게 이만 가 보라고 얘기하곤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뒤에서 에이사가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당신이 만나러 가는 그분은 다른 네크로맨서랑은 차원이 다를 테니.”

이미 알고 있는 얘기에 딱히 반응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잘못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마주해야 할 상대는 하이어 네크로맨서만이 아닌 골짜기에 있는 모든 네크로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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