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36화
136화 서부 개척 시대 (2)
‘인듀어가 개입을 해?’
애당초 뒷배를 봐주겠다는 얘기가 거짓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듀어 길드의 이름을 멋대로 파는 건 제 무덤을 파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아마 뒷배를 봐준다는 건 사실이리라.
‘그런데 왜 도와주는 거지?’
그들의 행보를 보면 순수한 목적 때문에 거주민들을 보호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뒤를 봐주는 대가로 반드시 무언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듀어 길드가 주도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하기에는 그들이 얻어 가는 대가가 너무나도 적었다.
끽해 봐야 22층의 특산품이나 포인트를 받아 갈 것이다.
그들이 중, 상층부에서 주로 활동을 펼친다는 걸 감안하면 그 정도는 푼돈에 불과했다.
내 예상으로는 길드가 주도한 게 아닌 일개 길드원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주도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무엇이 됐든지 간에 알아볼 필요성은 있어.’
“칫. 재수 똥 밟았네. 가자!”
학살 세력의 리더가 애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그러자 비호 세력의 리더는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물러가는 이들에게 삿대질했다.
이후, 세력원들끼리 낄낄대며 웃는다.
상대 세력을 까는 말들이 많이 오갔다.
“캬르륵.”
따끔한 고통에 팔뚝을 내려다봤다.
다칼이 이빨로 물고 있었다.
“왜 또 물어.”
-계속해서 불렀는데. 대답을 하지 않으니 물 수밖에!
“뭐,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일. 그저 왜 가다 마는지 묻는 거다. 네크로맨서들이 있는 구역으로 가는 거 아니었나?
“그러려고 했지.”
-혹시 인듀어 길드가 언급된 게 신경 쓰이나?
“조금? 그렇다고 계획이 변경될 정도는 아니고. 그저 시간 날 때 한번 확실히 알아봐야겠어.”
-무엇을 말이지?
“길드 차원에서 움직이는 건지 아님 일개 길드원의 욕심으로 일어난 해프닝인지.”
다칼이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들었을 땐 똑같이 들리는데. 대체 뭐가 다른가.
“다르지. 길드 차원에서 움직인 거라면 그만큼의 관심을 가질 만큼 큰 일이 여기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고, 그게 아니라면 일개 길드원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사소한 일이라는 거니까.”
-결국에는 전부 쓸어버리겠단 말이지.
“……제대로 이해한 거 맞지?”
-그럼. 날 누구라고 생각하나.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야기의 결론이 이상하게 나 버린 것 같기는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잡담은 이만하고 가자.”
나는 아까 전에 떼지 못했던 발걸음을 옮겼다.
한데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문제가 생겨날 듯싶다.
-준석.
“알아.”
벌써부터 사냥을 시작하는 하이에나 녀석들이 있었다.
‘아주 대놓고 살기를 피우고 있군.’
내 기준에서는 마치 제발 죽여 달라고 홍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노리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등반자들을 노리고 있다.’
강예지와 안철호도 타깃이 되었다.
‘온다.’
“다칼, 어둠.”
나는 다칼이 소환한 어둠으로 빗살을 만들어 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가느다란 줄기가 그들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어억…….”
비명 없이 십여 명에 이르는 등반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현상금이 오릅니다!]
[현상금이 오릅니다!]
[현상금이 오릅니다!]
[현상금이 오릅니다!]
[현상금이 오릅니다!]
…….
…….
죽인 만큼 현상금이 올라갔다.
(((((((((((((((((((((((((((((((((((((((()
현상금 100,000포인트
(((((((((((((((((((((((((((((((((((((((()
자동으로 올라온 화면에는 현재 내 목에 걸린 현상금이 표시되어 있었다.
한 명당 1만 포인트.
오르는 수치는 이지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앞으로 한 시간 후 현상금 순위가 공개됩니다.]
현상금이 오르자마자 메시지가 떴다.
현상금 순위는 한번 공개되고 나면 원할 때마다 리스트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매 시간마다 리스트는 업데이트되며 그렇게 변동된 순위를 확인해 볼 수가 있다.
누가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 있으니 달리 얘기하면 살생부 명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
“커헉!”
“끄어어…….”
예상한대로 강예지와 안철호에게 덤벼든 녀석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준석, 한 놈이 더 다가온다.
‘내가 놓쳤을 리가 없는데.’
그래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으니 고개를 돌렸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어깨에 석궁을 맨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살기는 없는데.’
긴장감을 놓지는 않았다.
가끔 살기를 조절하는 인간들도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이준석?”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딱히 이름을 숨긴 적이 없으니 층을 한번이라도 같이 올랐던 놈이라면 알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맞는데. 누구지?”
“아이콜에서 나왔습니다.”
아이콜이라면 내가 16층에서 이용했던 심부름센터이지 않는가.
그는 아공간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건넸다.
“김유희 씨가 전달해 달라는군요.”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사내는 편지만 건네주고 볼일이 있는 듯 바로 가 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이내 봉투에 집중했다.
‘아이콜을 이용한 걸 보면 16층은 무사히 지나쳤나 보네.’
지이익-
나는 봉투 안에 있는 편지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인사말로 시작해서 이후에는 내가 보낸 카를로와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응?”
그러다가 뜻밖의 소식도 전해 들었다.
“에레나? 그 여자가 동료가 됐다고?”
“크릉?”
-11층에서 새를 타고 다니던 그 여자를 말하는 건가.
“그래. 그 여자가 길드에 들어왔다네?”
-거기서 아예 눌러앉을 것처럼 보이더니만.
“뭐. 심경의 변화가 있었거나 아님 원래부터 오를 생각이 있었던 거지. 그저 잠깐 쉬어 가는 거였을 뿐이고. 그보다 이젠 길드원이 일곱 명이라고 써져 있네? 자기를 포함하면 여덟 명이래.”
-많이도 모았군.
“유희 성격이라면 이놈저놈 모은 게 아닐 테니, 일곱 명이면 꽤 많이 모은 편이지.”
-보고 싶지 않나?
“누구? 유희?”
-그래. 단짝이지 않은가.
“가끔씩 떠올리긴 하지.”
지금쯤 잘해 나가고 있을까 그런 걱정을 했다.
하지만 편지 내용을 보니 유희는 유희 나름대로 잘해 나가고 있었다.
지칠 때면 같은 길드원들이 그녀에게 힘이 되어 줄 터.
이내 나는 내용 끝자락에 적힌 문장을 입 밖으로 내어 읽었다.
“조만간 보자.”
그 말에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편지를 읽고 나니 뭔가 힘이 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회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그때는 고독함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질 못했는데, 지금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기분이 그 고독에서 빠져나오게 해 주었다.
사실, 그러는데 유희의 영향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위로가 되는 건 사실 다칼이었다.
항상 곁에 있어 주며 심심함을 달래고 도움이 되어 주는 녀석.
다칼을 쳐다봤다.
그러자 다칼이 고개를 꺾으며 묻는다.
-뭘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지? 불안하게.
“불안하긴.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해?”
-그런 건 아니다만. 그런 표정으로 바라볼 때마다 항상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문을 당했지. 몬스터의 입 안으로 강제로 날 던져 버린다거나…… 던지고 또 던지고. 던지고 또 던졌지.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어깨에 앉아 있는 다칼을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진짜 고문이 뭔지 보여 줘?”
“캬하앙!”
-놔라! 날 또 어떻게 하려고!
잠깐 감성에 젖어 있었는데.
저 녀석이 방금 한 행동 때문에 생겨났던 감성이 다 사라져 버렸다.
나는 녀석과 티격태격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감성에 젖어 있는 것보단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 * *
카웰 호수 끝에 위치한 우클리 마을.
포탈이 위치한 우버 마을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거주민들을 비호하는 세력이 주로 거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타닷! 타닷! 타닷!
“히이잉!”
한 남자가 뒤에 시신을 실은 포호스를 멈춰 세우고 내렸다.
그리고 최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신전 안으로 들어간다.
신전의 좌석에 앉아 있던 검은 복장을 입은 사제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는다.
곧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내려다본다.
“왜 혼자냐. 그분께서는 어디에 계시고.”
“저, 그게…… 포탈 근처에서 계속 기다려 봤지만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층을 올라온 인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모른다고 하고…….”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아, 예! 말을 하는 것보다는 보여 드리는 게 빠를 겁니다.”
“무엇을?”
남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사제를 밖으로 이끌었다.
“히잉!”
남자는 포호스 등에 올린 시신을 내려서 보여 주었다.
시신의 얼굴을 확인한 사제는 놀란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디서 발견했지?”
“제가 21층으로 내려가 직접 모시고 올라온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제가 베티 님께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남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곧바로 목이 달아나리라.
사제 베티는 인듀어 길드원이었다.
물론 길드 안에서도 말단 중에 말단이었지만 그 말단이 가진 힘조차 22층에 머무는 보통의 등반자에게는 엄두도 내지 못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그런 그가 손을 떨며 시신을 만지고 있었다.
‘박우철이 당했다고?’
3, 40층에 거주하는 박우철은 그 안에서도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이던 등반자였다.
전투력으로만 따졌을 때 상위권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가 겨우 21층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다니.
‘누구지? 대체 누가…….’
심지어 박우철은 혼자가 아닌 자신의 부하들도 데리고 갔다.
한데 그 인원들이 단 한 명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건 사실상 죽었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다면 그들을 죽인 상대는 그만한 무력을 가진 집단이라는 건데.
‘그런 집단이 누가 있지?’
박우철이 자신을 이곳에 남기면서 아무런 귀띔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아는 정보가 없었다.
“저, 어떻게 할까요……?”
남자의 물음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베티가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적당한 곳에 시신을 묻어 줘라.”
“이분을 이렇게 만든 놈들은 안 찾습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베티의 눈에는 살기가 띠었다.
하나 동시에 두려움의 감정도 피어 나고 있었다.
박우철이 죽이지 못한 상대를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탓이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집단의 정체를 알아내는 거다.’
정체를 알아내는 순간, 그는 길드의 간부에게 보고를 할 생각이었다.
“잠깐!”
남자가 시신을 데려가려는 순간, 그는 시신에 어떤 흔적을 발견했다.
‘순간 상처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중요한 단서였다.
상대가 어둠을 사용했다는 뜻이니.
다른 상처들도 보면 부패한 흔적이 강했다.
이는 주속성으로 어둠을 다룬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해졌다.
‘어둠을 능숙히 다루는 자를 찾는다.’
그를 찾아내면 집단의 정체도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목적지는 정해졌다.
층을 올라온 등반자들이 한데 모이는 곳.
‘우버 마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