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34화
134화 페이크 북 (2)
‘점지 레벨이 올랐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져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에도 1레벨로 고정되어 있던 점지 레벨이 무려 5레벨로 상승한 것이다.
처음 겪는 변화에 멍을 때리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여기서 한 행동들을 되새겨 보았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돼, 주변을 유심히 본 게 다야.’
메시지는 그것을 혜안이라고 표현했다.
‘보통 스킬 레벨을 올리려고 하면 반복 사용과 응용만을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도 레벨이 오른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럼 그동안 내가 보아 왔던 히든피스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잖아?’
이지 난이도에 있는 히든피스를 전부 취하고 데카인을 상대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니.
허탈감이 밀려오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1층.
중층부 이상에서 발견했다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저층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인 만큼, 새롭게 힘이 개방된 점지를 통해 히든피스가 있는 곳을 추가적으로 안내를 받게 되리라.
-준석!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한다!
다칼의 말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천장이 이미 반쯤 부서졌고 아래에는 파편들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서 나가자.’
여기서 더 있다가는 빠져나갈 길이 없어지고, 돌 파편을 일일이 부수며 길을 개척해야 했다.
다크스윔은 시야가 닿는 곳으로 이동시켜 주는 마법이기에 큰 도움이 되어 주지는 못할 터.
물론 등가교환을 시전한다면 곧바로 안전한 장소로 이동이 가능하겠지만, 마나가 바닥을 보이는 중이라 그만한 마법을 사용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귀환석도 안 돼. 그럼 시작지부터 다시 이곳까지 와야 된다.’
곧장 페이크 북을 아공간에 집어넣고서,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도와주세요!”
그때 뒤에서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목소리만 들었을진대,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니. 그걸 떠나서 누구지?’
분명히 이곳에 들어왔을 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고개를 돌리자, 아름다운 여성이 돌에 깔린 채로 살려 달라고 애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나는 여성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연기는 그만하지?”
그녀, 아니 그에게 다가서며 말을 잇는다.
“로키.”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여성의 모습이 남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주 간단히 깔린 돌 속에서 빠져나와 싱그럽게 웃었다.
“어떻게 알았지? 완벽한 변신이었는데 말이야.”
“오드아이. 혼돈을 뜻하는 검보랏빛 눈동자와 자유분방함을 나타내는 무지갯빛 눈동자. 다른 데는 완벽히 변신을 했어도 눈동자는 바꾸지 않았잖아.”
‘방금 표정이 살짝 굳어진 것 같은데.’
이내 로키가 손뼉을 쳤다.
천장에서 떨어지던 돌 파편들이 허공에 멈추었다.
백색의 구체가 주변을 둘러싼다.
바깥 소리는 차단되어 숨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냉랭하게 그를 바라봤다.
“이건 계약자에 대한 복수인가? 이럼 그쪽한테도 막심한 피해가 갈 텐데?”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로키가 지팡이를 소환해 그걸로 바닥에 툭툭 치며 나를 중심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복수? 그런 거엔 흥미 없어. 박우철은 그저 나의 거름이 될 계약자들 중에 한 명일 뿐이지.”
회귀 전에 로키와 이렇게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의 성격은 다른 신좌들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애초에 지구상에서도 떠돌았던 로키의 얘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혼돈을 초래하는 자.
장난꾸러기에 거짓말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문제아.
지금도 자신의 계약자를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고 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신좌이나 아마 방금 한 말은 진실일 것이다.
로키의 성정상 자신의 계약자들에게 정을 주고 대신 복수를 해 줄 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게 개인적인 볼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더 꺼림칙하네.’
차라리 복수를 하러 온 것이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는데,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나는 대놓고 물어보았다.
“목적이 뭐지?”
“흐음. 내 목적. 그쪽이라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응? 설마 자신이 먼저 드러내 놓고 모른 척할 셈이야? 겨우 21층에 있는 놈이 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어. 내 눈에 대한 특징을 안다는 건 둘 중에 하나이지. 날 직접 본 적이 있거나 아님 얘기를 전해 들었거나. 하지만 이상하단 말이지. 난 그 누구에게도 눈 색깔에 담긴 뜻을 알린 적이 없거든. 신좌들조차 모르는 얘기를 그쪽이 알고 있다면 정답은 하나지.”
잘못 알고 있다.
그의 눈 색깔에 담긴 뜻을 알고 있는 유일한 신좌가 있었다.
오딘.
내가 눈 색깔에 담긴 뜻을 알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로키는 확신하고 있었다.
“예언자.”
로키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확인을 받고 싶어 하듯 내 대답을 기다렸다.
하나 그것은 로키가 원하는 것일 뿐이고, 나는 굳이 대답을 해 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필요 없고, 용건만 말하지. 그쪽도 오랫동안 여기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을 텐데?”
실망스러운 눈빛을 띤 그가 말을 이었다.
“좋아. 우선 말하기에 앞서 지금 하는 대화들은 다른 신좌는 듣지 못한다는 걸 알아 두라고. 안심해도 좋다는 얘기야.”
고개를 끄덕이자, 계속 빙글 돌기만 하던 로키가 내게 가까이 접근했다.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하지.”
“무슨 제안?”
“페이크 북. 그걸로 탑에 큰 혼란을 준다면 난 그쪽한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려 주겠어. 어때?”
그런 거였나. 흥미가 살짝 식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은 물어보았다.
“그 정보가 뭐지?”
“호옹~ 역시 이건 예언으로 보지 못했나 보군. 그거야 지금은 알려 줄 수 없지. 페이크 북으로 탑에 큰 혼란을 주었을 때, 그때 알려 주도록 하지.”
“그럼 그쪽 제안은 없던 거로 하지.”
나는 뒤로 돌아 구체를 없애 달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로키가 바로 뒤에서 속삭였다.
“아니. 너에게 엄청 큰 도움이 될 정보인데. 이 기회를 놓치겠다고?”
“정보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요구를 들어주는 게 얼마나 병신 같은 짓인지 그쪽도 잘 알 텐데? 그리고 궁한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고. 그러니 이거나 풀지?”
그리고 로키가 원하는 요구는 들어주기 어려웠다.
탑에 큰 혼란이 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이것을 먼저 얻고자 한 것인데, 그걸 해 달라고?
그럼, 박우철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한 노력이 무의미해져 버리는 것이다.
또한 놈하고 똑같은 놈이 되어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내 진심을 엿본 것일까?
“하아~ 이렇게 제멋대로인 놈은 또 처음 보네. 좋아. 정보를 먼저 말해 주지. 대신 요구한 사항은 꼭 지켜 줘야 한다고?”
“그것도 들어 보고 판단해야지. 만일 내가 행동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라면 내가 손해를 보는 거래일 테니.”
“후우~.”
자기 뜻대로 되질 않으니, 그는 답답함을 숨으로 내뱉었다.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도 사라져 있었다.
“그냥 말하는 거지만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뜬금없이 고백을? 이건 생각지 못한 말인데.’
“탑에 이변을 불어넣고 있지.”
‘아 그 얘기군.’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 넘기며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로 인해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널 처음 발견했을 때 이미 임자가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
신좌와 계약을 맺는 걸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임자라고 표현하니 조금 이상하네.’
“아무튼.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그러니 특별히 내가 손해 보는 거래를 하도록 하지. 정보를 듣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래.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나중에 그 정보를 써먹게 되는 순간이 오면 내 요구를 들어주는 걸로 하지.”
‘그 정도면 뭐…….’
리스크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그건 괜찮네.”
얘기가 성사되자, 로키가 곧장 귀에 대고 말했다.
“페이크 북에는 숨겨진 힘이 있어. 정보창에도 나오지 않는…… 다들 페이크 북은 정보를 속이는 힘만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야.”
‘능력이 더 있다고?’
“조작한 정보를 진짜로 만드는 힘.”
순간 닭살이 돋았다.
“그게 페이크 북의 숨겨진 힘이야. 물론 조작한 정보를 진짜로 만들게 되면 페이크 북은 소멸하게 되고, 조작한 정보의 힘을 가지게 된 아이템 또한 그 힘을 유지하는 시간이 존재하지. 영구적인 힘은 아니나 내가 파악하기로 그 힘은 신좌에게조차 타격을 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신좌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이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페이크 북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엄청난 아이템이었다.
흥분하는 것도 잠시.
‘정보는 정보일 뿐이야. 로키의 말이 전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정보를 사용한 순간, 자신이 요구한 것을 들어 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 얘기는 이 정보는 진짜라는 뜻이다.
다만 신좌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말이다.
로키가 뒤로 떨어지며 말했다.
“어때? 정보가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방금 한 얘기가 사실이라면 신좌인 그쪽한테도 안 좋을 텐데.”
“왜지?”
“신좌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그렇다면 내가 그쪽한테 악한 마음을 품고 해를 끼칠 수도 있지 않나.”
“큭큭큭…….”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로키는 내 말을 듣고 한참을 웃어댔다.
“역시 재밌는 녀석이야. 그런 말을 신좌 앞에서 서슴없이 하다니. 그래. 내 결정이 틀리지 않은 것 같군. 이제 이 다음부터는 너의 선택이야. 정보를 사용한다면 내가 요구한 것을 들어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방금 한 얘기들은 전부 잊어도 돼.”
로키가 대화를 끝내려고 하고 있었다.
“잠깐! 아직 얘기 안 했잖아.”
“무엇을?”
“페이크 북의 숨겨진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아~ 간단해. 페이크 북을 갈가리 찢어 버려.”
“뭐?”
“찢으라고.”
하긴, 파괴를 통해 아이템의 능력이 발동하는 경우가 꽤 있으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니었다.
스으으-
백색의 구체가 사라진다.
쾅! 쾅!
이어서 허공에 떠 있던 들들이 다시 떨어졌다.
로키가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대화 즐거웠어. 나중에 또 보자고. 친구.”
그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전투에 미친 투신이 로키와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것이냐며 따져 묻습니다!]
토르의 질문이 곧장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지금은 탈출하는 것이 먼저였다.
* * *
“후우~.”
나는 이마에 땀을 훔쳤다.
때에 맞춰서 겨우 탈출했다.
“하마터면 저 안에서 시간 버릴 뻔했네.”
-정말로 아슬아슬했다.
머리 위에 있는 다칼에게 눈길을 주다가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예지와 안철호가 보이지 않았다.
‘먼저 도착지로 간 건가.’
시간이 조금 흘렀으니 오히려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게 더 이상하다.
제일 먼저 골인 지점에 도착하는 건 물 건너가 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21층 미션 역시도 1위는 내 차지일 것이다.
체스방에 있는 모든 보스를 잡았으니 상당한 기여도를 챙긴 상태이다.
그것으로 역전이 가능할 터.
나는 다칼과 함께 서둘러 도착지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예지와 안철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이외에 모르는 얼굴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럼 다섯 번째로 들어온 건가.’
도착지에는 대기실이 따로 있었다.
나는 구석 한편에 있는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마나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됐을 즈음, 어깨에 난 상처를 치유했다.
“후~ 이제야 살 것 같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미션이 종료되는 시점은 살아 있는 참가자가 전부 도착지에 오거나 아님 시간이 초과되었을 경우이다.
결과적으로는 6시간이 초과하며 미션은 자동으로 종료가 됐다.
살아 있는 참가자들 중에 도착지에 오지 못한 이들은 지금쯤 체스방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을 것이다.
이내 나는 공개된 기여도 순위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