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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29화 (129/230)

회귀한 탑 등반자 129화

129화 체크 메이트 (1)

2, 3분쯤 날았을까.

답답하게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미로 사이로, 밝게 빛나고 있는 광활한 공간이 고개를 빼꼼 내밀듯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주변에는 답답하게 앞을 가로막는 벽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에 거대한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바닥은 검정색과 하얀색으로 32개씩 균등하게 나뉘어져 있다.

하나 그 위에 존재해야 할 체스말은 단 하나를 제외하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체스판 한쪽 끝에는 황금 왕관을 쓰고, 은색의 체인 메일과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망토를 두르고 있는 자가 뒤로 돌아 있었다.

기척이라고 느낀 것일까?

이내 그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얼굴은 흔한 외형의 30대 남자 얼굴이었으나 눈매는 야수처럼 사나웠다.

두 팔을 가운데로 모은 채로 대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날갯짓을 멈추고 그와는 완전히 반대편인 끝에 조용히 착지했다.

“크헤에…….”

-속이 다 울렁거리는군.

다칼은 내 어깨에서 내려와 바닥에 축 늘어졌다.

쿠웅!

땅울림과 함께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앞으로 두자, 왕관을 쓴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손에 쥐고 있던 대검을 바닥에 내리찍은 흔적이 갈라진 파편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감히! 나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성역에 침범하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자로구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진 저 사내가 바로 킹 웨일즈였다.

올체크메이트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가진 마지막 조각이 필요했다.

“침입자에게는 오직 죽음을 선사할 뿐.”

웨일즈가 자신의 몸보다 큰 대검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우측 어깨에 걸쳤다.

이내 자세를 낮춰 크게 포물선을 그리는 행동을 취하다가 멈추었다.

마치 무언가를 감지라도 한 듯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이제 보니 단순한 침입자가 아니었군. 나를 보필하는 여왕과 충직한 부하들의 혼이 그대에게 느껴진다.”

이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웨일즈가 말을 잇는다.

“그대는 침입자가 아닌 권위에 도전하는 자. 그대에게는 도전할 권리가 있다.”

웨일즈는 대검으로 날 겨누었다.

“도전자여,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체스말의 모든 조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선택 미션이 주어집니다!]

킹을 제외한 체스말의 모든 조각을 얻어야만 활성화되는 미션이었다.

곧 대검에서는 광휘 넘치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영향 때문일까?

그의 전신이 빛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입을 달싹인다.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체스게임을 하는 것이 어떠한가?”

[킹 웨일즈의 제안을 무시하고 혈투를 벌여 승리하십시오.]

[킹 웨일즈와 모든 것을 걸고 체스게임에서 승리하십시오.]

내게 두 가지의 선택지가 놓여졌다.

하지만 애초에 무얼 선택할지 정해져 있었다.

[미션을 선택하셨습니다.]

[킹 웨일즈와 모든 것을 걸고 체스게임에서 승리하십시오.]

제안을 무시하고 혈투를 벌이는 시나리오는 굳이 모든 조각을 모으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스게임은 다르다.

반드시 웨일즈에게 먼저 제안을 받아야만 성사가 되는 게임이었다.

또한 원하는 것을 가지려면 반드시 이걸 선택해야 했다.

웨일즈가 나의 선택이 마음에 들은 듯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바로 시작하지.”

쿠웅!

다시금 대검을 땅에 내리찍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땅울림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하아아-

대검에서 퍼져 나온 빛의 충격파가 체스판에 말들을 생성해 나갔다.

순식간에 체스판을 가득 메운 말들은 고개를 들어서 봐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하나, 모든 칸이 채워져 있는 웨일즈 진영과 달리 내 진영에는 말이 없는 빈 칸이 존재하고 있었다.

저 칸들이 왜 비어져 있는지 모르는 놈이라면 초장부터 불리한 싸움이라고 판단했겠지만.

칸이 비어져 있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여태 얻었던 체스말 조각 다섯 개를 꺼냈다.

폰. 룩. 비숍. 나이트. 퀸.

빈 칸에 없던 말들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체스말의 조각들을 게임에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위잉!

손바닥에 있던 조각들이 알아서 공중에 떠오르더니 제자리를 찾아간다.

일반 체스말의 외형을 지닌 것과는 다르게 조각에서 소환된 말들은 전부 내가 상대했던 놈들의 외형을 닮아 있었다.

준비는 끝났다.

[체스게임이 시작됩니다.]

[선후를 정합니다.]

[각 진영의 킹 중에 더욱 많은 마나를 지니고 있는 쪽이 선으로 결정됩니다.]

[선으로 결정되셨습니다.]

여유로운 미소가 지어졌다.

선공을 차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해 보지 않은 놈들은 모른다.

특히나 회귀 전에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것이 일반 체스게임이면 선공이 조금의 우위를 차지할 수는 있어도 엄청난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 웨일즈와 하려는 체스게임은 선공을 차지하는 게 승리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상당히 중요했다.

왜냐하면 선공자는 처음에 말을 두 번이나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드르르!

그때 아직 말을 선택하지도 않았건만. 내 체스말 중에 폰 하나가 움직였다.

처음이라면 당황했을 것이다.

하나, 체스게임의 룰을 알고 있는 나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말을 선택해 움직여 주십시오.]

두 번의 기회 중에 한 번은 내게 돌아왔다.

가지고 있는 말들 중에 다섯 개만 하얀색 빛기둥이 치솟았다.

빛기둥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말을 뜻한다.

나는 이 게임에서 조각으로 얻은 말들만 조종을 할 수 있었다.

다른 말들은 전부 자동이다.

마치 인공지능 컴퓨터랑 편을 먹고 하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순서가 올 때마다 교차로 번갈아 가면서 말을 움직여야 한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하면 그다음에 내가 하고 그다음에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다시 하는 걸 반복한다.

만일 체스말에 내가 조종할 수 있는 말이 더 이상 없다면 인공지능 컴퓨터가 대신해서 끝까지 게임을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할 수 있는 말이 죽지 않고 오래도록 살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드르르!

나는 가장 먼저 나이트를 움직였다.

이제 웨일즈의 차례.

드르르!

드르르!

드르르!

한동안 체스판 위는 침묵이 흘렀다.

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다칼이었다.

-적의 퀸을 잡았군. 그렇담 승기가 이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었다고 봐야지.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보지?”

-보다시피. 어, 음…… 지금 그 자리에서는 폰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게 어떤가? 아니면 룩을 움직여서 상대 나이트를 먹어도 괜찮을 듯싶은데.

-결국 하나가 먹히고 말았군. 준석, 아무리 적의 퀸을 잡았다고 해도 긴장감을 놓으면 안 된다. 승기가 확실하게 기울어 있는 것은 맞으나 이렇게 계속 진행되면 언제 승기가 저쪽으로 기울지…….

-크허! 결국 퀸이 잡히고 말았군. 아직까지는 우리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젠 승부를 알 수 없게 됐어.

-준석. 그건 저기에…….

-준석! 지금이다! 지금 룩을 움직여야……!

나는 점점 짜증수치가 올라갔다.

다칼 녀석이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일까?

옆에서 계속 훈수를 해 대는 바람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아! 그러면 안 되는데!

결국 참다못한 나는 다칼의 목덜미를 붙잡아 들어 올리곤, 가까이 정면을 마주 본 채 크게 소리쳤다.

“집중 안 되니까 닥쳐 봐 조오옴!”

“딸꾹!”

다칼이 내 목소리에 상당히 놀랐는지 딸꾹질을 해 댔다.

나는 다칼을 내려 두고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다행히도 다칼이 더 이상 방해를 해 오지 않았다.

집중력이 올라간 것이 단번에 느껴질 정도로, 수세에 몰리던 상황에서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끝내.

“체크메이트.”

룩과 나이트를 최대한 살려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를 만들어 냈다.

차례가 저쪽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웨일즈는 결과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반복해서 흔들었다.

“이럴 수 없다…… 이럴 수는…….”

현실 부정만 하고 웨일즈는 말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게임의 결과는 나오게 되어 있었다.

차례가 넘어갈 때마다 제한시간이 존재한다.

주어지는 시간은 1분.

‘이제 그만 결과에 승복하라고.’

하나 웨일즈는 끝까지 말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주어진 시간이 끝나며 자연스레 내 차례로 넘어왔다.

나는 조용히 나이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나이트가 곧장 하늘로 날아올라 킹의 심장에 창을 박아넣었다.

“크허억……! 이 내가…… 체스게임에서 지다니.”

[체스게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미션은 클리어였다.

이제 미션으로 주어지는 특별 보상과 웨일즈에게서 나온 조각을 받아 올체크메이트를 손에 넣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보상에 대한 메시지는커녕 웨일즈는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뭐지?”

“이곳은 나의 성역! 그 누구도 건들이지 못한다!”

서걱!

단숨에 대검으로 나이트를 제거한 웨일즈가 나를 노려다보았다.

두 눈에는 하얀 안광이 서렸다.

“하아~ 결국엔 이렇게 되는 건가.”

체스게임에서 도중에 위기가 있긴 했지만 사실 이지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때, 어느 정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하드라면 이리 쉽게 끝날 리가 없을 텐데라고 말이다.

그래서 뭔가 더 있을 거라고 판단을 하긴 했는데. 끝내 예상한 것 중에 하나인 막바지에 발악을 하는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웨일즈는 강하다.

내게 마나로는 밀릴지 몰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는 사기적인 힘이 존재했다.

우우웅!

생각하자마자 웨일즈가 그 힘을 드러냈다.

둥그런 황금색 구체가 그를 감싼다.

절대영역.

저 영역 안으로 들어선 순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 능력도 크게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날아드는 마법은 전부 무효화로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나이트에게 찔린 상처로 인해 완전하지가 못한 듯, 황금색 구체가 흐려졌다 진해졌다가 하는 불안정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자체 회복력이 뛰어나기에 저대로 내버려 두면 힘을 회복할 것이다.

그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다크포스.

어둠을 전개했다.

그리고 삐쳐 있는 다칼을 나지막이 불렀다.

“다칼.”

“케엥!”

-다칼이 누구지?

“아깐 방해가 돼서 그런 거니까 네가 좀 이해해.”

내 말은 듣지도 않겠다는 듯이 발로 귀를 후비적거렸다.

“후~ 맘대로 해. 전투 끝나고 몰래 숨겨 뒀던 특제요리를 주려고 했는데.”

특제요리 언급에 다칼이 두 귀를 팔락였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최대로 어둠을 컨트롤해 거대한 창을 형성했다.

그것을 웨일즈를 향해 날려 보내려는 순간.

스윽-!

다칼이 먼저 튀어 나가며, 자신이 소유한 어둠을 꺼내 웨일즈를 공격했다.

“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지배하는 거대한 창보다 더 큰 어둠이 웨일즈 주변을 뒤덮었다.

특제요리에 진심인지, 저렇게 힘을 드러낸 것은 처음 보았다.

“끄아아!”

웨일즈의 짧은 비명이 들려온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 도움은 필요 없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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