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127화 (127/230)

회귀한 탑 등반자 127화

127화 퀸 넬리지 (2)

아슬아슬한 차이로 전개한 어둠이 그 자리를 지나쳤다.

하지만 대상은 이미 사라졌기에 다크포스는 무의미해졌다.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에는 나와 다칼만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재빨리 마법 시전을 해제하고 블랙홀로 몸을 던졌지만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젠장!”

넬리지를 자기만의 공간으로 끌고 간 것이 분명했다.

설마 거기서 나랑 같은 판단을 하고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미리 알았다면 다크포스가 전개되는 동안 견제를 했을 것이다.

-선수를 빼앗겼군.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개인만 알고 있는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설사 찾았다고 해도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건 더 어려울 거다.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 조용히 좀 해 봐. 생각 좀 하게.”

팔짱을 끼곤 생각에 잠겼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비록 정체불명의 셋이 넬리지를 끌고 갔지만 어디까지나 끌고 가기만 한 것일 뿐.

넬리지를 상대하는 것은 별개의 얘기였다.

‘녀석들이 21층 기준의 등반자들보다 강하다고 해도 넬리지를 쉽게 제거하지는 못할 거야.’

만일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차원의 공간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 그 자리에서 바로 제거했을 것이다.

나 또한 상대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다크포스를 전개한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녀석이 있는 곳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넬리지는 다시 되찾아올 수 있었다.

현재 상황에서 충족시켜야 할 조건은 두 가지였다.

위치 그리고 이동방법.

우선 어떤 공간으로 이동했는지 위치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법 또한 필요했다.

“아!”

-방법을 찾았나 보군.

다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아공간에서 천리안 와드를 꺼냈다.

그간 필요하지 않아서 아껴 두고 있던 아이템인데. 지금이 그 타이밍이었다.

천리안 와드는 찾는 상대가 어디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찾아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거리가 천 리까지 한정되어 있지.’

그러나 녀석들이 천 리 밖으로 벗어날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들이 21층의 미션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또한 미션의 일부인 넬리지가 자리를 완전히 떠나는 건 탑이 나서서 제지할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과 서 있는 공간이 다를 뿐. 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고 보면 됐다.

매의 눈동자가 각인된 목제 인형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천리안 와드가 활성화합니다.]

[마나 각인자는 추적할 대상을 떠올려 주십시오.]

퀸 넬리지.

[대상이 확정되었습니다.]

[추적을 시작합니다.]

매의 눈이 황금빛을 발출했다.

동시에 나의 한쪽 눈과 매의 눈이 하나로 연결되어 와드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시야는 흐릿한 안개를 나아가, 어느 백색의 공간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내가 찾던 넬리지가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누구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는 시야 밖이라 보이지 않았지만 상대가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 딱히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거기에 신경을 끄고,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위치는 알아냈으니 이제 이동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

내가 가지고 있는 마법 중에 이동마법은 다크스윔뿐이었다.

하지만 다크스윔은 눈에 보이는 위치로 이동하는 마법일 뿐이고, 엄연히 따지고 들면 공간이동 마법이 아니었다.

목표한 곳에 빠르게 이동하는 것일 뿐.

그렇다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등가교환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공간이동 마법도 마나소모가 심한 편이다.

만일 그런 마법을 등가교환으로 시전한다면, 기존보다 10배가 넘는 마나가 소모될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마나가 차 있는 상태에서 시도를 하는 게 좋았다.

그게 넬리지의 위치를 찾을 때 등가교환이 아닌 천리안 와드를 사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등가교환.

공간이동은 상당량의 마나가 소모되기도 하지만 시전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

정해진 수식대로 만들어 낸 마법이 아니라고는 하나, 어느 마법이던 준비과정이 필요한 법.

바닥에 커다란 붓으로 그린 듯, 파란색 마법진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체내의 마나가 빠르게 소모되어 갔다.

‘기본적으로 공간이동 마법이 마나가 얼마나 소모되는지 알고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리스크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몰라 행동을 망설였겠지.’

등가교환 마법은 확실하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뤄 주는 힘을 가졌으나, 그렇다고 내가 무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마나가 무한하면 모를까.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힘이라는 인식을 항상 머릿속에 각인하고 있었다.

곧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몸을 뒤덮었다.

“다칼, 넌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혹시 변수가 발생하면 알아서 판단해 대처하고.”

-여긴 걱정 마라.

“그래.”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지.

대화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 *

퀸 넬리지가 손에 들고 있는 부채를 흔들 때마다 피의 바람이 몰아쳤다.

“크윽!”

“이구진! 뭐 하고 있어! 뒤에 있으면 공격할 틈을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니야! 빨리 화력 좀 더해 봐!”

넬리지와 가까이 근접해 있는 이구진의 일행 중에 한 명이 다급히 소리친다.

이구진이 인상을 구겼다.

“중얼중얼 말로는 쉽지.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는 준비된 화승총을 정면으로 겨누고 격발했다.

탕! 탕탕탕탕!

동시에 온 사방에 생성되어 있는 화승총에서 탄환이 발사됐다.

무시무시한 화력이었지만 그것도 닿지 않으면 무의미했다.

후우우우!

수십 발의 탄환은 부채가 만들어 낸 폭풍에 휘말려 방향이 완전히 꺾여 버렸다.

명중한 탄환마저 큰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넬리지의 몸에 흠집만 남겼을 뿐이다.

그래도 진전은 있었다.

“끄억! 이놈들!”

이구진이 시선을 끈 사이에 나머지 둘이 넬리지에게 지속적으로 타격을 준 것이다.

‘시간만 주어지면 우리들의 승리다.’

체스방을 돌며 처음 마주한 보스 놈인 만큼 분명히 좋은 보상이 주어지리라 장담했다.

넬리지를 상대하기 위해선 전력을 다해야 하기에 힘이 들긴 했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나, 얼마 있지 않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독자적 공간에 침입자가 들어온 것이다.

“저놈 뭐야……?”

남색 로브를 걸친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갑자기 나타났다.

이구진은 얼굴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아까 전에 먼저 보스에게 수작질을 벌이려고 했던 그놈이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여태껏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남자의 시선은 넬리지에게로 향했다.

‘저 녀석, 우리랑 목적이 같아.’

기껏 밥상을 차려 놨는데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이구진의 얼굴에는 집착의 광기가 서렸다.

“빼앗기게 내버려 둘 순 없지.”

그의 총구가 곧 남자를 향했다.

그러자 다른 총구들도 그 남자를 향한다.

철컥.

이제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됐다.

탕! 타타타타탕!

망설임 따윈 없었다.

이구진은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놈이면 일말의 감정도 없이 죽일 수 있었다.

여태 그래 왔고, 앞으로 그럴 생각이었다.

“어……?”

이구진은 무언가를 잘못 본 사람처럼 한쪽 눈썹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두 동공은 양옆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내 그가 총 쏠 준비를 한다.

철컥. 탕! 타타타타탕!

다시 한번의 격발이 이뤄졌다.

그러고는 옅게 미소를 짓는다.

이번은 절대로 피해 가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하나, 잠시 후의 결과를 마주하게 된 그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멀쩡하다고……?”

수십 발의 총격이 한순간에 쏟아지는데. 그 안에서 멀쩡할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방금 전의 총격을 견딘 인간은 있어도 모습이 멀쩡한 인간은 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되레 반격까지 가해 오며 다시 공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작은 물방울 크기의 전기 구체가 하늘에서 쏟아졌다.

콰가가강! 콰앙!

“크헉!”

피하다가 기어코 타격을 입은 이구진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무리해서 공격을 시도했다.

하나, 그 판단은 틀렸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오히려 그가 더 큰 손해를 보았다.

점점 코너에 몰리자, 그는 감정적으로 격해졌다.

“이 시발놈이! 어디 이것도 받나 보자!”

허공에 떠 있던 화승총을 하나로 모아 형태를 변화시켰다.

이윽고 거대한 총 한 자루가 생겨나더니, 대포만 한 총구가 남자에게 겨누어졌다.

마나가 절반 가까이 소비되는 공격이다 보니, 공격 상대를 저 남자만이 아니라 넬리지도 같은 위치에 두었다.

이것을 맞으면 상대가 어떤 놈일지라도 뼈도 못 추리리라.

철컥. 탕!

손에 든 화승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총의 방아쇠도 당겨졌다.

콰하아아앙! 화아악!

강력한 화력이 전방을 뒤덮었다.

이구진은 지옥처럼 불타오르는 광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크흐하하하! 꼴좋다~.”

하지만 그의 웃음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구진의 표정은 당황함을 넘어서 살짝 공포감에 젖어 있었다.

뚜벅뚜벅, 불길 속을 유유히 걸어 나오는 남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무표정한 눈길로 마법을 시전했다.

자신에게 겨누어진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검 한 자루.

“뭐야!?”

머리 위로 떨어진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푸욱!

“꺼어억…….”

이어서 그는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고개를 내린다.

방금 전까지 저곳에 있던 검이 자신의 배를 찌르고 있었다.

촤악!

급히 손으로 검을 빼내어 배를 움켜잡는다.

“허억, 허억…….”

숨이 거칠었다.

“하, 하하.”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은 이구진은 그제야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 *

채채채챙!

하늘에서 하얀 조각 파편들이 떨어지고, 공간에는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화승총을 쓰는 사내가 죽으며 이 공간을 유지하고 있던 힘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죽은 사내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상대는 보고 덤볐어야지.”

애초에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박우철과 싸우기 전에 상당량의 마나를 소모해 버린 건 열이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앗아 갈 정도로 미쳐 있지는 않았다.

그저 넬리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공간이동을 해 왔을 뿐.

하지만 상대가 살의를 드러내고 행동한 이상, 그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했다.

이내 다크딥트리로 제압한 나머지 둘을 쳐다봤다.

나는 기절해 있는 그들을 마무리 지었다.

박우철을 죽인 이후, 살의를 가지고 달려들었기에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후환을 남겨 둘 필요는 없다.

자연스레 원래 있던 공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외에도 강예지, 안철호의 얼굴도 보였다.

다칼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이쪽으로 달려왔다.

-일이 잘 풀렸나 보군!

목소리에서는 반가움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도 속으로 걱정하고 있던 것이 티가 났다.

“아. 잘 풀렸지.”

입가에 미소를 지어졌다.

결과적으로, 그냥 잘 풀린 것이 아니고 상당히 잘 풀렸다고 볼 수 있었다.

퀸 넬리지를 잡은 것은 당연하고, 의외의 결과물을 얼어 냈다.

싸우는 도중에 다크스윔과 다크웹 스킬이 동시에 10레벨을 달성하며 숨겨져 있던 반지의 힘이 발동했다.

단순히 계약을 맺었을 땐 존재하지 않았던 힘. 신약을 맺었기에 새로 발견된 힘이었다.

나는 그 결과물의 메시지를 다시금 보았다.

[다크스윔과 다크웹을 합성해 다크웨스트림이 탄생하였습니다!]

[다크웨스트림(Lv1)을 습득합니다.]

[다크웨스트림은 다크스윔과 다크웹의 힘을 합친 축약제이며 훨씬 더 강력한 상위 마법입니다.]

[새로운 힘에 깃든 신좌의 힘의 흔적을 일부 엿보았습니다.]

[진리의 일부를 쫓았습니다.]

[길(道)의 특성이 발동합니다.]

[대량의 마나가 올랐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