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25화
125화 룩, 나이트, 비숍 (2)
다크월.
견고한 어둠의 벽 두 개를 나란히 세웠다.
콰아앙!
빛과 충돌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돌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아직 빛의 줄기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콰앙!
벽을 한 번 더 세우고 나서야 거침없는 전진이 멈추었다.
-내가 시선을 끌겠다.
다칼의 말에 나는 즉답했다.
“아니. 저기 있는 타브와 아츠 좀 맡아 줘. 녀석들을 잡는 건 너 아니면 나여야 해.”
나는 안철호와 강예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둘의 상태로는 잡지 못하겠지만 혹시 모르잖아?”
-그럼, 그대 말대로 하지.
다칼이 점프하며 어둠이 되었다.
지잉!
저 멀리서는 두 개의 빛이 번쩍였다.
이번에는 연달아 날아들었다.
엘나크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강력한 빛 마법을 구사하는 중이었다.
나 또한 대응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등가교환!
큼지막한 거울을 하나 소환해 그대로 공격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물론 뜨거운 열기를 가진 빛의 줄기를 견딜 수 있게끔 만들어야 했다.
팅! 팅!
두 개의 빛이 반사되어 엘나크에게 날아갔다.
다크스윔.
재빠르게 엘나크 앞으로 이동한 후 지팡이를 움직여 다크볼트를 난사했다.
콰광!
하지만 녀석이 두르고 있는 보호막에 의해서 전부 막혀 버렸다.
지이이잉-
동시에 되돌아온 두 개의 빛도 녀석에게 강타한다!
그러나 단단한 보호막을 뚫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것을 뚫어 내려면 더 큰 화력이 필요했다.
‘굳이 뚫을 필요는 없지.’
뒤로 돌은 엘나크가 지팡이를 가로로 휘두르며 빛의 고리들을 소환했다.
나를 옭아매려는 속셈이다.
메나이어 배지로 시전한 보호막이 고리들을 막아 냈다.
빛의 고리들을 무시한 채로 다크볼트를 시전했다.
그리고 등가교환을 이용해 녀석의 보호막 내부로 구체를 이동시켰다.
보호막이란 것은 외부의 충격을 받아 내도록 특화되어 있었다.
내부의 충격까지 견뎌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콰하앙! 파창!
예상대로 보호막이 깨져 나갔다.
“끄어억!”
동시에 엘나크가 신음을 흘렸다.
그때 음영 바다의 팔찌 효과를 사용했다.
[상대에게 ‘극한의 공포’를 부여합니다!]
효과가 적용돼 몸이 경직된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뛰어들었다.
엘나크는 빛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만큼 빛속성에 강력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처단하는 용도로 홀리크로스 대신 다크소드를 시전해 찌르기를 가했다.
푹!
“으윽!”
검이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나는 하나에 멈추지 않고 다크소드를 계속 시전해 녀석의 몸에 때려 박았다.
“어둠의 종자가 감히……!”
하지만 엘나크는 쓰러지기는커녕 되레 분노한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경직이 풀리자마자, 빛의 화살을 만들어 쏘아 보냈다.
그러며 자기 몸에 박힌 검을 빼려고 시도했다.
파앙! 팡!
나는 보호막을 믿고 빛의 화살이 날아드는 걸 무시하고 곧장 저주를 걸었다.
컬스버닝!
마법을 중첩으로 사용한다.
그러자 엘나크가 두 눈을 번뜩 뜨며 전신의 빛을 뿜어냈다.
곧 충격파가 들이닥쳤다.
쿠하아아앙!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이었기에 뒤로 물러났다.
강렬한 빛 때문에 잠시 시야가 차단되었다.
시야가 회복되자마자 엘나크의 상태를 확인한다.
‘벌써 일부는 회복했군.’
엘나크는 일부 검을 떼어 내고 자기 몸을 이미 치유한 상태였다.
마법으로 치유했다고 해도 매우 빠른 속도이다.
내가 룩, 나이트, 비숍 중에 이놈을 가장 먼저 선택한 이유가 저것이었다.
비숍은 사용하는 빛마법도 강력하지만 마나를 사용한 무한한 회복이 특기였다.
물론 회복을 계속하다 보면 마나가 다 떨어져 사용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테지만 그럴 때까지 기다리는 건 엄청나게 비효율적이었다.
그렇게 하기 전에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어둠으로 회복을 막는 것이다.
지금도 겉으로는 회복이 되긴 했지만 몸속에 어둠의 힘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속적으로 어둠의 잔해를 남기면 회복은 늦어지고 결국 한계가 찾아온다.
거기다 회복하는 속도보다 피해를 입는 속도가 빠르다면 금상천화가 따로 없다.
엘리렌스.
[엘리렌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각 마법의 속성이 강화됩니다.]
[각 속성의 내성이 일부 형성됩니다.]
다크웹, 다크레인.
엘나크의 머리 위로 거미줄이 감겼다.
투두둑, 쏴아아-!
그리고 인위적으로 형성된 구름에서 검은 비가 쏟아 내렸다.
아직이다.
다크싱어.
“끄으으아아!”
공중에 검정색 음표가 떠오르더니, 음악에 노출된 엘나크가 비명을 질렀다.
눈에 띄게 움직임이 둔화된 게 느껴진다.
다크소드.
곧바로 열 개가 넘는 검을 소환해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팔과 다리가 댕강 잘려 나갈 때마다 재빠른 속도로 회복한다.
치유에만 급급한 나머지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회복도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온몸에 노출된 어둠은 신체를 부패시키고 회복력을 악화시켰다.
엘나크가 거친 호흡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렇게 어둠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엘나크의 육신이 빛의 알갱이로 변하더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
녀석을 찾기 위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기다!’
중앙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중앙에 있는 건 엘나크만이 아니었다.
룩의 왕 타브와 나이트의 왕 아츠도 같이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건 나뿐이 아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뭘 하려는 거지?’
자그만 알갱이로 변한 그들은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며 하나로 뭉치고 있었다.
잠시 후, 메시지가 떴다.
[룩의 왕 타브, 나이트의 왕 아츠, 비숍의 왕 엘나크가 하나로 합체를 시도합니다!]
후우우우우웅!
폭풍만큼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중심에 생겨난 소용돌이 속에 새로운 형체가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크하아아앙!”
다칼이 나서서 그것을 파훼하려고 들었다.
“멈춰!”
내 말에 고개를 돌린 다칼이 물었다.
-왜 그러지?
“그냥 냅 둬.”
-보아하니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 것 같은데, 그 전에 쳐야 한다.
“하나로 합체하려는 거야. 셋을 상대하는 것보단 하나를 상대하는 게 오히려 편해.”
파훼하려고 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변수는 안 만드는 게 좋았다.
단 하나라도 남에게 빼앗기게 되면, 얻으려고 했던 올체크메이트를 손에 넣지 못하게 된다.
그러느니 하나로 뭉친 녀석을 다크포스로 가둬 두고 패는 게 더욱 안전한 방법이었다.
얼마나 강한 놈이 탄생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점차 커져 가는 덩치에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얼굴은 엘나크의 것을 따온 듯 그녀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몸의 절반씩은 타브와 아츠의 것이 차지했다.
그리고 각자 들고 있던 무기는 허공에 뜬 채로 몸체 주변을 맴돌았다.
[세 개의 주체를 가진 왕 타엘이 탄생하였습니다!]
새로운 이름까지 부여받은 타엘은 곧장 허공에 떠 있는 무기를 움직였다.
콰하앙! 수아아악!
할버드의 일격과 창의 일격이 날아 들어온다.
지잉!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빛의 줄기도 같이 날아들었다.
한데 모든 공격이 오직 나를 향하고 있었다.
채챙!
이미 소환되어 있는 다크소드를 이용해 할버드와 창을 쳐 내 버렸다.
그리고 날아드는 빛의 줄기는 다칼이 직접 나섰다.
“크으하아앙!”
한쪽 앞발에서 뻗어 나온 세 갈래의 검은 줄기가 빛의 줄기를 집어삼키고 타엘에게 직격했다.
카항!
하지만 단단한 갑주를 뚫기에는 부족했는지, 스크래치만 조금 생겨났다.
그리고 뒤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강예지와 안철호가 튀어나와 녀석을 상대하려고 했다.
다크포스를 시전해 둘을 이 공간에서 쫓아내려고 했으나.
지잉, 징징징징!
갑자기 사방에서 생긴 수많은 빛이 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날아갔다.
급히 막아 보려고 하지만, 힘이 다 떨어진 그들에게 막을 힘 따위는 없었다.
“끄억!”
“꺄아악!”
동시에 나가떨어지며 방해꾼은 모두 사라졌다.
다크포스.
한순간에 주변을 어둠으로 잠식시켰다.
[어둠의 반지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고속 캐스팅’이 발동합니다!]
다칼과 나를 제외하고는 오직 타엘만이 남았다.
타엘은 마치 자신이 고귀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네놈 같은 어둠의 종자 따위가 올 곳이 아니다! 체스판은 신성한 곳! 타락한 자가 딛고 서 있을 자리는 없다!”
화아악!
불꽃의 창이 잔상처럼 빠르게 늘어 간다.
나는 어둠의 지배력을 끌어 올려 공간을 장악했다.
활활 타올랐던 창들이 어둠에 의해서 집어삼켜진다.
“빛이여! 타올라라!”
그러자 타엘은 빛의 날개를 펼치며 주변의 어둠을 걷어 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밀려들어오는 빛을 어둠으로 밀어내며 마법을 시전했다.
다크딥트리.
중앙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나무는 끝도 없이 치솟아 오르더니 기어코 옆으로 성장했다.
이내 나무줄기들이 타엘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속박한다.
타엘은 섬뜩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거 놔라! 이 더러운 걸 내게 들이밀다니!”
“침착하라, 엘나크.”
“힘만 합친다면 그 어떠한 시련도 이겨 낼 수 있다.”
양쪽 어깨에 타브와 아츠가 한마디씩 지껄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였다.
“크하아앙!”
다칼이 타엘의 목을 물어뜯으며, 양쪽 어깨에 있는 둘을 자신의 어둠으로 숨통을 조였다.
나 또한 어둠을 이용해 다리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쿠후웅!
쓰러진 그 녀석의 몸 위로 검은 나무줄기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끄아아아!”
콰쟉!
다칼이 엘나크의 머리를 뜯어낸다.
거의 동시에 타브와 아츠의 머리도 달아나 버렸다.
이내 회복능력이 발동해 다시 머리를 생성하려고 했다.
‘와라.’
나는 통제할 수 있는 만큼의 어둠을 전부 끌어와 녀석의 몸을 뒤덮었다.
회복하려던 몸은 결국 회복되지 못한 채 오히려 부패하기 시작했다.
“끄어어…… 이럴 순 없어……!”
반쯤 얼굴의 절반이 회복했던 엘나크는 현실을 부정하듯 입만 떠벌이다 이내 소멸하며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있던 아츠 또한 잠시 회복됐던 사이에 말을 남겼다.
“……우리들의 왕께서 널 심판할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어둠의 반지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완전한 부패’가 발동합니다!]
간만에 반지에 숨겨져 또 다른 효과가 터지며 녀석의 몸이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윽고.
[세 개의 주체를 가진 왕 타엘을 처치하였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룩의 조각이 지급되었습니다.]
[나이트의 조각이 지급되었습니다.]
[비숍의 조각이 지급되었습니다.]
[타엘의 날개가 지급되었습니다.]
세 개의 조각이 전부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런데 딱 하나.
회귀 전에도 보지 못한 물건이 내게 주어졌다.
지급된 메시지에는 날개라고 쓰여 있었지만 실제 생긴 것은 그냥 빛덩이었다.
“응?”
빛덩이를 손으로 살짝 쥐자, 갑자기 빛덩이가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등에서 날개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다만 날개는 한 쪽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