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22화
122화 격돌
콰가가가가강!
전방위를 걸친 폭발이 일어났다.
자욱하게 피어난 검은 연기 아래로 탄내 나는 찌꺼기들이 떨어진다.
방금 전에 모습을 드러냈던 꽃들은 루플이라는 식충식물의 일종이었다.
환영을 이용해서 먹잇감을 끌어들여 잡아먹는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353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341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359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39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302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
…….
…….
한 번에 해치운 숫자가 많다 보니 포인트 획득 메시지의 행렬이 이어졌다.
다만 21층에 있는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받은 대가라기에는 기본적인 포인트의 수치가 낮았다.
그렇다고 해도 아가리에 있는 독은 무시 못 할 정도로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맨몸에 독이 노출되면 단숨에 몸의 일부가 마비될 것이다.
하나 치명적인 독을 가진 것과 상반되게 맷집과 방어력이 매우 떨어졌다.
촤륵!
연기를 뚫고 나온 줄기가 아가리를 벌려 위협해 온다.
“푸헥!”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독액을 방출했지만 허무하게도 보호막에 가로막혔다.
“좀 남았나.”
폭발에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녀석들이 존재하는 듯, 여기저기서 줄기가 뻗어 나왔다.
그때 주도적으로 나서는 이가 있었다.
강예지가 수백여 개의 실끈을 소환해 온 사방을 거미줄처럼 꼬아 냈다.
무작위 공격인지, 실끈 하나가 순간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실끈에 손을 대 보았다.
팅.
매우 팽팽한 실끈은 겉보기엔 위협적이지 않았으나 그 안에는 마나가 응집되어 있었다.
그리고 고유의 힘이 같이 섞여 있어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케헥!”
“쿠헤헥!”
그렇게 날아든 실끈은 미처 정리되지 않은 녀석들을 모조리 정리해 버렸다.
한데 그 과정에 피해를 본 등반자가 강예지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이 미친년이 사람 죽일려고 환장했어!?”
“뭐……? 미친년?”
그 말이 아무래도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쉐에엑! 푹!
“끄억!”
강예지는 그를 단호히 처단했다.
그러고는 가까이 있는 등반자들을 한 번씩 훑는다.
“더 불만 있는 사람 있어?”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안철호가 나섰다.
“적당히 좀 하지?”
그가 나오자 강예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미 그에게는 패배를 한 전적이 있으니 함부로 나댈 수도 없는 상황이리라.
하지만 강예지는 수그러들기는커녕 담대하게 나왔다.
“한번 이겼다고 우쭐대기는 1대1로 뜨면 지는 주제에. 다구리 쳐서 이기니 좋니?”
“뭐? 이 여자가 또 사람의 신경을 긁네.”
“그럼 뭐? 어쩔 건데. 또 똘마니들 데리고 덤비려고? 그런데 어쩌나~ 주위에 그 똘마니가 별로 없네. 다들 어디로 가셨을까?”
으득.
안철호가 분노하듯 이를 갈았다.
그의 곁에 따라붙었던 이들의 대다수는 세 번째 방에 오기 전에 이미 다들 죽어 버렸다.
그만큼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여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그의 곁에 붙어 있는 이들은 조금은 쓸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널 도와줬던 놈들이 죽는 동안 그쪽은 뭐 하고? 그러니까 이제 정의의 사도 흉내는 그만 내라니까.”
“흉내? 지금 말 다했냐?”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왜? 아니야?”
“그때 죽여 버리는 거였는데.”
“지금이라도 죽여 보던가.”
계속되는 도발에 안철호의 표정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서지 않는 이유는 명확했다.
‘미션을 우선으로 두는 거겠지.’
지금 여기서 그녀와 싸우게 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거의 다 소진하게 될 것이고.
그럼 어떤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제대로 싸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안철호가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지금은 상황이 널 살린 줄 알아. 두고 봐.”
“쫄았네. 쫄았어.”
강예지는 마지막까지도 도발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하나 이미 그는 그녀에게 몸을 돌리고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를 같이 지켜보던 다칼이 입을 열었다.
-강예지, 저 여자. 이제 본성을 숨기지 않기로 했나 보군.
“딱히 숨길 이유가 없는 거겠지.”
항구에서 자신을 드러낸 순간부터 이미 이전처럼은 돌아갈 수가 없었다.
목격자들을 다 죽이면 모를까.
그리고 강예지도 도발을 하긴 했지만 먼저 선제공격을 취하지 않는 걸 보면 그와의 싸움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보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다 꼴찌로 남게 된 나는 뒤늦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안천호를 따라 먼저 가 있던 인원들이 어수선하게 입구 앞에서 떠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이동한 방에는 나머지 두 개의 문에서 온 이들이 맞은편에 서 있었다.
‘합해서 대략 마흔 명 정도인가.’
한 개의 방마다 넘어온 숫자는 얼추 스무 명 정도로 이쪽에 남은 숫자와도 비슷했다.
내가 있는 곳은 정확하게 열여덟 명.
절반 이상이 네 번째 방에 오기도 전에 죽어 버린 것이다.
그보다 맞은편에 서 있는 이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방에서 무엇이 나올지 경계를 하는 것보다는 3대7 비율로 서로 대치하는 중이었다.
양쪽에 맨 앞에 서 있는 남자 둘이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볼까.’
나는 듣기에 집중했다.
“너희들 뭐야?”
해골 가면을 쓴 남자가 단검을 상대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
그러자 하얀 고목나무 지팡이를 든 남자가 조소를 띠었다.
“우리들? 야. 네가 대신 말해 줘라.”
자기 바로 뒤에 서 있는 놈을 콕 집어 얘기한다.
“망한 왕조를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진 놈들을 처단하러 온 저승사자?”
지팡이를 든 남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에휴~ 병신. 저승사자는 무슨. 그놈의 중2병은 아직도 안 고쳤냐? 아. 됐고. 용건만 간단하게 하지. 내 용건은 하나야.”
남자가 지팡이 끝으로 마나를 응집시켰다.
파즈즈즈!
곧 번개의 화살이 만들어지자, 가면을 쓴 남자가 단검에 주홍색 불꽃을 피워 올렸다.
“죽어라! 올튼의 개들.”
나는 지팡이를 든 남자의 말을 듣고 스스로에게 되묻듯 말했다.
“올튼?”
단순한 마찰이 일어난 것인 줄 알았는데.
라네스가 말한 층의 곳곳에 숨어 있다는 올튼 왕가 녀석들이 바로 저 녀석들인 듯했다.
그런데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저들은 대체 누굴까?
* * *
올튼 왕가 녀석들에게 화살 폭격을 쏟아붓고 있는 박우철은 상대의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적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기는 이쪽으로 넘어오는 중이었다.
그는 죽은 적의 시신을 짓밟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녀석들만 처리하면 방해꾼은 사라진다.’
박우철은 혼자서 10명 이상을 상대했지만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싸우기 전보다 생생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21층의 인간이 아니었다.
38층에서 내려온 등반자.
그것도 하드 난이도에 89층의 최강자 강민욱이 이끄는 인듀어 길드에 소속된 간부였다.
인듀어 길드는 전 층을 아우르는 집단.
수많은 집단 중에 가히 최고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강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마음을 먹으면 탑에서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만드는 절대적인 힘을 지녔다.
또한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게 그들이다.
수많은 이들을 학살하는 건 기본이고, 자신보다 약한 자는 도구로 취급하고 혹은 노예 취급해 버렸다.
박우철은 그런 거대한 뒷배를 두고 있었기에 무엇을 하든지 자신감이 넘쳤다.
‘이번에 그걸 얻기만 하면 길마의 신임을 살 수 있을 거다. 그럼 지원을 팍팍 받아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겠지.’
그가 굳이 38층에서 21층으로 내려온 이유는 21층에서 숨겨져 있는 페이크북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는 최근에 얻게 된 정보인데, 페이크북은 아이템의 진짜 성능을 가리고 가짜 성능을 부여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이템의 성능을 페이크북으로 고친 뒤 남에게 속여 팔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엄청난 아이템을 길드를 위해 갖다 바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간부진에서 벗어나 부길마까지도 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길드 마스터 강민욱은 욕망이 그득한 인간이었다.
그 욕망만 제대로 충족시켜 주면 충분히 권력이 있는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박우철은 벌써부터 행복한 상상의 나래에 펼치고 있었다.
하나 그런 상상을 하는 것도 잠시.
몇 남지도 않은 올튼 왕가 녀석들이 골을 썩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끈질기군.’
싸움을 빨리 끝낼 생각으로 조금 더 강력한 일격을 준비했다.
지잉!
그런데 갑작스레 마법이 해제되었다.
‘누구야!?’
주변을 둘러보아 그 힘을 사용한 놈을 금방 찾아냈다.
해골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손에 브레이크쏜이라는 붉은 가시 아이템을 들고 있었다.
‘저 아이템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필 유지 중이던 마법도 해제되어 버렸다.
그동안 진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라이페이스라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마법이 풀리면서 가짜 얼굴이 사라지고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입고 있던 옷과 무기도 본래 모습을 찾아간다.
저층부에서 그의 얼굴은 유명했다.
하도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다녀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그들이 알아서 피해 갈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작전에서는 오히려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이 치명적인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또한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간부들의 견제도 있을 수 있기에 최대한 변수는 줄이는 게 좋았다.
“쳇!”
박우철은 얼굴을 가리길 포기하고 해골 가면을 쓴 남자에게 속박 아이템을 던졌다.
그리고 가까이 근접해 브레이크쏜을 들고 있는 손을 지팡이로 내리치고 녀석의 면상을 때렸다.
가면이 벗겨지며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챙그랑!
그리고 내구성이 매우 약한 브레이크쏜은 바닥에 떨어져, 유리처럼 박살이 나 버렸다.
힘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 박우철은 강력한 마법을 시전했다.
수백여 개의 무지갯빛 줄기가 남자의 몸을 관통한다.
“핫! 별것도 아닌 놈이. 퉤!”
그는 죽은 놈에게 침을 뱉고 뒤로 돌았다.
“……!?”
세에에엑! 파앙!
갑자기 날아든 날카로운 바람이 그에게 직격했다.
급급하게 마법 반사 능력을 지닌 지팡이로 쳐 내긴 했지만 손과 손목. 그리고 어깨까지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다.
박우철의 흔들림 없던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21층에 이 정도로 강한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놈이 있다고……? 누구지?’
그는 마법이 날아 들어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자신과 똑같이 지팡이를 들고, 그의 어깨에는 새끼 늑대가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다.
‘낯선 얼굴이야.’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놈이 날린 공격에 놀랐다는 사실에 뒤늦게 수치심이 들었다.
‘애송이를 상대로 이 내가…….’
그러나 그는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래. 방금 전에 날린 일격은 녀석도 꽤 힘줘서 날린 일격이겠지. 겨우 21층에 올라온 녀석이 세 봐야 얼마나 세다고.’
잠깐 흥분했던 것을 반성하며 그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덤벼든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절실히 깨닫게 해 주리라 마음을 먹었건만.
“어……?”
녀석은 자신에게 날렸던 일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 시전이 얼마나 빠른지 멈출 줄도 모르고 빠르게 늘어났다.
둘. 셋. 넷. 다섯……
그는 세는 걸 포기했다.
대신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