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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20화 (120/230)

회귀한 탑 등반자 120화

120화 체스방

[등반자들 중에 가장 많은 아이언보어를 처치하였습니다!]

[그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집니다.]

[S급 흑철재를 획득합니다.]

20.5층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산품 흑철재.

흑철재는 어둠에 대한 흡수력이 좋으며, 어둠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내구성이 좋아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등급마다 성능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뉘어서, 한 등급 차이로만 수만에서 수십만 포인트까지도 가격차가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S급 흑철재는 상인들이 탐내는 특별한 물건이었다.

20.5층에서 등반자에게 주어지는 단일 미션의 첫 보상으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참여자들 중에 S급 흑철재를 얻을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

나는 손에 쥐어진 정사각형의 검은 철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광택 때문에 살짝 눈이 부신 것이 S급 흑철재만의 고유성을 증명한다.

“에이씨. 보상이 겨우 철덩이 하나야? 이걸 어디에다가 쓰라고.”

“그래도 챙겨 둬. 탑에서 쓸모없는 보상을 주는 거 봤냐? 언젠가 쓸모 있겠지.”

옆에서는 흑철재의 진면모를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가 오갔다.

대다수는 흑철재를 돌멩이 취급했다.

정보를 얻은 일부 사람들만 그 정체를 알고 되레 사람들에게 추가로 구매해 얻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뭐. 한둘이야 뭣도 모르고 판매할지는 몰라도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이면 그래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편이었다.

누군가가 물건을 산다는 건 쓸 만하다는 걸 의미한다.

벌써 몇몇이 눈치채고 상대가 얼마를 부르던 등반자들은 흑철재를 팔지 않고 뒤로 내뺐다.

나는 필요하다면 아무런 흑철재나 정가에 대량으로 구매했을 테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건 S급이지 그 이하는 필요 없었다.

사람들이 거래 때문에 주춤하는 동안 나는 오르지 않은 계단을 마저 올라갔다.

이내 끝자락에 있는 하얀빛에 스며들었다.

잠깐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았던 시야가 보였다.

넓이 100미터 정도 되는 정사각형의 차단된 공간은 온통 새하얗다.

그리고 포탈을 통해 먼저 온 수십 명의 등반자들이 미리 대기하는 중이었다.

여타 층들과는 다르게 리스폰되는 지역의 공간이 비좁다 보니 답답함이 조금 느껴졌다.

샤아로 메시지가 떴다.

[일정 인원이 모여야 21층 클리어 조건이 생성됩니다.]

[현재 인원과 필요한 인원을 표시합니다.]

[95/200]

약 100여명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랑 같이 계단을 오른 인원만 해도 얼추 그 정도 인원은 될 터이니 말이다.

숫자가 점점 차오른다.

대략 180명쯤 찼을 때 나는 인도자의 만년필을 꺼냈다.

만년필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누르자, 체내에 있던 소량의 마나가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인도자의 만년필에 마나가 각인되었습니다.]

[인도자의 만년필이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주인을 제외하곤 만년필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만년필이 푸른빛을 머금은 채로 허공에 떠올랐다.

그 상태서 대기했다.

[200/200]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21층 클리어 조건이 생성됩니다.]

[이번 미션은 체스방 게임입니다.]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방들을 거쳐 그 누구보다도 빨리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십시오.]

[남은 시간: 06:00:00]

“6시간?”

이지 때는 넉넉하게 12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부족해 이지 때 최종목적지에 도달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한데 그에 절반의 시간을 주다니.

‘더 많이 나가떨어지겠군.’

미션이 시작되자마자 포탈과 계단으로 오는 길은 차단되었다.

달캉! 달캉! 달캉!

그리고 삼면으로 커다란 문이 생겼다.

웅성웅성.

다른 등반자들은 동료들끼리 어디로 갈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나는 삼면으로 열려 있는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방 두 개, 하얀색으로 칠해진 방 하나였다.

21층은 기본적으로 체스판 환경과 비슷했다. 하지만 방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는지,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님 또 다른 게 기다리고 있는지.

방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추측하며 움직여야 하다 보니 보통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쪽 방으로 이동했다.

그냥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인도자의 만년필이 안내해 주는 길로 가는 것이었다.

가장 문을 통과하고, 여러 명이 뒤를 따라왔다.

“크흥?”

-저 여자. 살아 있었군.

다칼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강예지가 서 있었다.

-안철호인가 하는 그 인간한테 당한 줄 알았더니. 목숨이 질긴 여자야.

그 말에 동감했다.

나 또한 안철호의 손에 죽은 줄 알았는데, 그녀는 싸움에서 패배한 것치고는 몸이 멀쩡해 보였다.

웃긴 것은 그 뒤로 안철호가 있다는 점이었다.

둘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이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나는 둘 중에 안철호를 주시했다.

20층에서는 존재감이 없었을지 몰라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저 남자도 만년필을 샀지.’

강예지도 점을 볼 수 있어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들어가는 재물 때문에 계속 점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만년필을 가진 안철호를 주시하고 있는 게 맞았다.

나는 그에게 힘의 천칭저울을 시전해 보았다.

저울은 곧바로 내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혹시나 견제해야 할 만한 놈이 있는지 같은 방에 있는 인원들을 하나씩 저울질했다.

‘딱히 없네.’

같은 공간에는 마흔 명쯤 되는 인원이 있었다.

쿵!

매섭게 문이 닫히자마자 어둠이 들이닥쳤다.

등반자들이 즉시 불빛을 밝혔다.

화아악!

하나 딱히 불을 밝힐 필요가 없다.

실제 바닥에 불이 치솟기 시작했다.

“아! 뜨거!”

“피해!”

높이 2미터가 넘는 불길은 사람이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화악! 화악!

여기저기서 치솟는 불길이 서서히 공간을 조여 왔다.

“당장 불을 꺼봐!”

“얼음 마법 사용할 줄 아는 사람 없어!?”

쩌저적!

누군가가 나서서 얼음 화살을 날렸다.

이어서 얼음벽까지 세웠다.

하지만 불꽃은 사그라들기는커녕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뭐야! 이거 왜 안 꺼져!?”

다른 누군가가 흙 마법을 사용해 불에 끼얹어 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크르릉.”

그걸 지켜보던 다칼이 한마디 했다.

-어리석군. 지옥의 불꽃을 저런 저급한 마법으로 끄려 하다니.

꺼지지 않은 불꽃이 함정으로 발동한 순간부터 그것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나 역시 미리 만년필이 안내한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만년필은 최종목적지를 안내하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21층의 체스방은 매번 방이 랜덤으로 바뀌어 맵을 외운다고 하더라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내 같은 답안지를 알고 있는 안철호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뒤이어 강예지도 걸어온다.

안철호는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주변을 경계했다.

화륵!

불꽃은 바닥만이 아니라 천장에서도 뿜어져 나왔다.

“으아악! 아아악!”

어쩌다 몸에 불이 붙은 사람들은 타오르는 불길을 떼어 내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비명을 질러 댔다.

“으어어. 도망쳐!”

“불꽃에 가까이 다가가지 마!”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이 끄길 포기하고 살길을 찾아 나선다.

화아아악!

사람들은 내가 있는 쪽과 반대편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저쪽은 지옥길이었다.

그걸 모르고 있는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도 문제가 발생했다.

“비켜! 내 자리야!”

“어딜 넘봐!”

“시발! 저놈들 다 밀어내! 그래야 우리가 살아!”

공간이 부족해 자리싸움이 난 것이다.

그때, 가만히 있던 안철호가 소리쳤다.

“다들 그만! 이렇게 싸운다고 안 죽고 해결이 돼? 다 살 생각을 해야지!”

하지만 그의 말은 묵살되어 버렸다.

“다 살긴 개뿔! 벌써 불이 바로 뒤까지 쫓아왔어! 그냥 밀어붙여!”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은 등반자들이 미친놈처럼 달려들었다.

그러자 참다못한 안철호가 랜스를 휘둘러 흥분한 등반자들을 저지했다. 랜스에 위협을 느끼고 물러난 등반자들은 안철호를 죽일 듯이 바라본다.

안철호는 그들에게 무기를 겨누며 말했다.

“말귀가 통하지 않으면 죽는 수밖에.”

그의 두 눈이 번쩍였다.

동시에 랜스 주변으로 수십 여 개의 잔상이 만들어졌다.

그 잔상은 공격을 해 오던 등반자들을 전부 뒤로 밀어냈다.

“으악! 으아아아!”

밀려난 이들 중에 몇 명이 불을 품고 이곳으로 달려들었다.

한데 그 행동은 의도되어 있었다.

개중에 한 명이 안철호의 공격을 쳐 내고 안쪽까지 파고든다.

나 혼자만 죽을 수 없다는 심보인지, 남에게 불을 옮기고 있었다.

녀석은 내 주변까지 접근했다.

“하아~.”

윈드퍼드.

찰나의 순간에 다섯 번의 마법을 시전했다.

촤작! 서걱!

몸에 불이 옮겨붙은 녀석들은 전부 베어 버렸다

그러자 그들을 제압하고 있던 안철호가 멍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와 두 눈을 마주쳤지만 내 시선은 금방 다른 곳으로 향했다.

달캉! 달캉! 달캉!

또다시 삼면으로 문이 열리고, 방금 전까지 타오르던 불길은 사라져 버렸다.

물론 몸에 불이 옮겨붙은 이들은 끝까지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우리와 반대편 쪽에 있던 그룹은 모두 타서 시커먼 재가 되어 있었다.

저 정도로 재로 만들려면 보통은 시간이 걸리는데 지옥의 불꽃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해냈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인도자의 만년필이 안내하는 대로 정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있던 강예지가 가장 먼저 따라붙었다.

강예지는 내 앞에까지 오더니 말을 잇는다.

“너, 길은 알고 가는 거야?”

배에서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처음으로 말을 섞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대충 대답했다.

“그냥 가는 거지.”

딱히 그녀에게 인도자의 만년필에 대해서는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나한테 거짓말은 안 통해. 잊었어?

“그 점으로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보던가.”

“알고 있는 게 있음,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임시로 동맹을 맺었는데.”

“그 동맹은 배에서 이미 끝났어. 그러니 뭔가 알고 있다고 해도 그쪽한테 말해 줄 이유는 없지.”

“치. 쌀쌀맞긴.”

그녀와 말을 하는 사이에 이전 방에서 살아남은 대다수가 이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숫자가 적었다.

‘거의 삼분의 일이 죽었군.’

첫 번째 방에서부터 그 정도 인원이 죽은 건 21층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려 주었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서남북으로 포탈이 생겨났다.

그 포탈 안에서는 각종 무기를 든 체스판의 하얀색 폰들이 쏟아져 나왔다.

손과 발이 달린 폰들은 전사, 마법사, 성기사, 성직자 등등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다.

하나 가장 크게 주목해야 할 것은 마지막에 등장한 놈이었다.

1미터60센티 남짓의 작은 몸집과 광휘의 투구와 철갑을 둘러쓴 백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마녀.

폰의 왕 에스트라.

사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점지가 발동하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에스트라가 21층에 숨겨져 있는 히든 보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폰, 룩, 비숍, 나이트, 퀸. 킹 중에 최약체이자 최강체가 될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는 에스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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