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19화
119화 때론 휴식도 필요한 법
“으억……!”
“뭐, 뭐야!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절반이 넘게 꿈쩍도 하지 못하거나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야! 너희들 왜 그래. 갑자기!”
“저놈이 수를 쓴 게 분명해! 뭣들하고 있어!? 빨리 쳐!”
한 명이 달려들자 나머지도 뒤따랐다.
나는 녀석들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효과가 불안정한 건가.’
분명히 전부에게 살기를 드러냈건만, 능력은 50퍼센트 확률로만 적용되고 있었다.
어차피 불안정한 상태의 아이템이 멀쩡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흐앗!”
가장 먼저 다가온 놈이 못이 박혀 있는 몽둥이를 머리 위로 들어 휘둘렀다.
몽둥이에서 흘러나온 수증기가 곧 차가운 얼음으로 변했다.
속성 부여가 된 무기였다.
길거리 양아치라도 20층에 있는 녀석들의 수준은 질적으로 달랐다.
하나 딱 그뿐이다.
파앙!
“커허억!”
지팡이로 녀석의 복부를 가격했다.
맞자마자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갔다.
나는 가볍게 발을 굴려 한 보씩 나아갔다.
그럴 때마다 근접해 있던 녀석들이 페트병처럼 하늘을 날며 나가떨어졌다.
“우웨엑!”
“끄으으…….”
나가떨어진 이들은 구토를 하거나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아예 기절을 한 이들도 몇몇 보였다.
보호막을 두르고 있던 녀석도 단 한 번의 공격을 견디질 못했다.
한눈에 봐도 근력과 민첩이 상승한 게 느껴졌다.
이윽고 꼬마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셋은 나를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맨 앞에 있던 남자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 아저씨. 저흰…….”
“말 안 해도 괜찮으니까. 가라.”
그 얘기를 듣자마자 아이들은 서둘러 도망쳤다. 그런데 여자아이가 멈춰 서서 뒤로 돌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아저씨, 정말로 죄송해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뒤늦게 남자아이 둘을 쫓아갔다.
“크릉.”
-귀여운 녀석들.
다칼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어린 애들은 잘못 없지. 잘못한 건…….”
나는 여전히 끙끙 앓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이대로 가 버리면 또 같은 짓을 반복할 것이다.
윈드퍼드.
녀석들의 손이나 발을 잘라 냈다.
몸이 성치 않으면 더 이상 이 짓거리는 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작은 해프닝이 끝나고, 나는 시스템이 운영하는 상점에 들렀다.
4층 구조로 된 매장에는 각종 무기나 방어구, 액세서리, 기타 등등 등반자에게 필요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물건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수많은 인파를 뚫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2층 매장을 이용하려면 10,0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포인트를 지불하겠습니까?]
[이용료로 10,000포인트가 차감되었습니다.]
이곳의 층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포인트가 필요하다.
하나 내가 원하는 걸 사려면 층을 올라가야 했다.
층을 올라갈수록 판매하는 아이템의 수준이 올라가며 구하기 어려운 희귀템들이 존재했다.
[3층 매장을 이용하려면 20,0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포인트를 지불하겠습니까?]
[이용료로 20,000포인트가 차감되었습니다.]
[4층 매장을 이용하려면 50,0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포인트를 지불하겠습니까?]
[이용료로 50,000포인트가 차감되었습니다.]
4층까지 올라오는데 총 8만 포인트를 소모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로 북적였던 1층과 다르게 4층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인원은 겨우 스무 명쯤이었는데, 개중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안철호, 결국 이겼나 보네.’
치열하게 싸운 흔적이 온 곳곳에 남아 있었다.
특히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그래서 갑옷 하나를 새로 장만하려고 이곳을 찾아온 것 같았다.
이내 나는 시선을 돌려 중앙에 위치한 진열대로 이동했다.
기타로 분류된 진열대에는 하얀 깃털이 달려 있는 인도자의 만년필이 소중히 놓여 있었다.
그것을 손에 쥐려고 하자 메시지가 떴다.
[인도자의 만년필을 구매하려면 500,0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500,000포인트를 지불하겠습니까?]
나는 50만 포인트를 기꺼이 지불했다.
고작 1회성에 불과한 아이템이긴 하지만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데 저 멀리 있던 안철호가 어느새 이쪽으로 오더니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인도자의 만년필은 고유 아이템이 아닌지라, 누구든지 중복으로 구매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만년필을 들더니 물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아마 아이템의 정보창을 확인해 보고 있을 터다.
나는 그가 사는지 안 사는지 확인하지 않고 밑으로 내려왔다.
굳이 그걸 지켜보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만일 따라서 사면 경쟁에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밀릴 거란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잠시 후, 밖을 나와 거리를 배회했다.
번화가 근처에는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만이 아니라 쉴 수 있는 여관이 있었다.
여관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를 본 다칼이 물었다.
-쉬다 갈 건가?
“아니. 배에서 그 정도 쉬었으면 됐지. 그냥 본 것뿐이야.”
-그렇담, 바로 다음 층으로 이동하면 되겠군. 이번에는 어떻게 올라갈 거지? 포탈? 아님 통로로?
“통로.”
20, 21층 사이의 계단을 오르게 되면 썩 괜찮은 보상이 들어온다.
그러면서 걸리는 시간도 그다지 길지 않았다.
항구에서 포탈과 통로의 위치를 찾기는 쉬웠다. 가장 큰 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 장소가 나온다.
나는 그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도로를 따라 걷는 이들은 수백 명이었다.
모두가 같은 목적지는 아니지만 대다수는 나랑 목적지가 똑같았다.
“꾸우! 꾸우!”
그 와중에 새끼 크라켄이 울부짖었다.
이 녀석을 계속 허리춤에 둬야 하나 심히 생각을 하다가도 딱히 다른 곳에는 둘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체념했다.
“꾸이이!”
울부짖는 소리가 시끄럽다.
‘중층부에 다다를 때까지만 참자.’
그곳에 도달하는 순간, 이 녀석을 망설임 없이 팔아 버리리라.
* * *
18층.
거대한 싱크홀에 무수히 많은 몬스터 시체가 산처럼 깔렸다.
그리고 그 정상에 선 유희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녀를 제외한 화이트 길드원 일곱 명이 눈에 들어온다.
다들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몬스터만 상대하느라고 진이 빠진 모습이다.
“후아~ 힘드네. 힘들어.”
하성태가 시체를 밟고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그가 그녀에게 한마디 한다.
“유희 씨, 괜찮아요?”
유희는 다친 오른팔을 감싸며 말했다.
“네. 팔에 상처가 나긴 했는데. 금방 치유될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녀의 오른팔은 부러진 상태이다.
그만큼 힘겨운 전투였다.
“후~ 형님은 이 녀석들을 어떻게 혼자 상대했대? 우린 여덟 명이서도 힘들어 죽겠는데.”
싱크홀 입구를 지키던 등반자들에게 들은 얘기였다.
새끼 늑대를 어깨에 짊어진 남자가 개미굴의 개미보다 많은 몬스터가 밀집되어 있는 싱크홀에 들어가 녀석들을 전부 쓸어버렸다고 말이다.
이름은 듣지 못했으나 새끼 늑대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유희는 하성태처럼 말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새삼 준석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탑을 오르면 오를수록 자신과의 한계에 부딪치는 느낌이 든다.
비록 육체는 강해지나 정신은 마모되어 간다.
그걸 견뎌 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것과 같았다.
한데 회귀 전의 준석은 이 모든 걸 혼자서 이겨 냈다.
자신은 쪽지로 그의 도움을 받고 길드원들과 함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겨 내기 힘들었는데 말이다.
점점 그와 비교가 됐다.
꾸욱.
그녀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비교하지말자 준석이랑 나는 달라.’
세상에는 노력으로 안 되는 타고난 재능이란 게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 타고난 재능이 달랐다.
준석은 혼자서 모든 걸 이겨 내고 앞서 나아가는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
반면 자신은 누군가와 함께했을 때 비로소 재능이 발휘된다.
비록 그 힘이 준석이 가진 힘보다 부족할지라도 그리고 어쩌면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이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인지도 모른다.
‘그래…… 난 나만의 재능으로 탑을 오르면 되는 거야.’
유희는 길드원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오직 준석을 따라잡기 위해서 11층부터 잠도 쪼개 가며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이번 전투가 힘든 싸움이긴 했으나,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어 있던 것도 한몫했다.
친구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다급함을 내고 만 것이다.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오히려 침착하게 돌아가야 하는 법이거늘.
자신의 욕심을 길드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후에 메시지가 떴다.
미션이 클리어되며 19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권한과 함께 보상이 들어왔다.
모두가 활약한 덕분에 1위부터 5위까지 전부 길드원들의 이름이 올라갔다.
1위를 한 하성태는 해맑게 웃었다.
“우와~ 나한테 딱 맞는 보상이 나왔네.”
그는 마나를 영구적으로 증가시켜 주는 S급 마나수를 입에 털어 넣곤 유희를 바라봤다.
“유희 씨는 뭐 나왔어요?”
“저요? 전…… 오우거의 핏줄이라는데. 근력을 올려 주는 비약이에요.”
“오~ 근력. 유희 씨한테 필요한 게 나왔네요.”
“네.”
파란 산삼처럼 생긴 오우거의 핏줄을 입에 털어 넣은 유희는 쓰디쓴 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섭취가 끝난 후에는 길드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주목!”
각자의 행동을 하던 길드원들이 유희를 주시했다.
유희는 한 명씩 두 눈을 마주치곤, 머릿속에 내린 결정을 입 밖으로 꺼냈다.
“당분간 저흰 층을 안 오를 겁니다!”
“응? 층을 안 올라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언니.”
박자린이 먼저 얘기를 꺼냈지만 다른 길드원들도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했다.
“11층부터 18층까지. 쉬지 않고 올라왔어. 솔직히 그동안 내 욕심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무리한 이들도 있을 거야. 그래서 19층은 당분간 안 올라가고, 18층에서 조금 쉬었다가 가려고 해.”
그러자 에레나가 발끈하고 나섰다.
“김유희! 네 욕심 때문이라니? 그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야? 내가 쉬지 않고 올라온 건 내 욕심이지. 네 욕심 채워 주려고 무리한 적은 없어.”
하성태도 그 말을 거들었다.
“유희 씨, 저도 제가 오르고 싶은 욕심 때문이지, 유희 씨가 올라가길 강요해서 오른 게 아닙니다.”
양팔을 뻗어 목에 창을 걸고 있는 카를로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기 있는 이들 중에 강요해서 움직인 인간이 있다면 그걸 이겨 내지 못하고 진작에 엎어졌을 거다.”
이외에 길드원들도 공감한다는 듯이 동조하고 나섰다.
마지막으론 가까이 있는 하성태가 다시 입을 뗐다.
“그러니까, 유희 씨. 저희를 생각해서 말하는 거라면 굳이 쉬었다가 안 가도 됩니다.”
길드원들의 얘기를 들은 유희는 그동안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던 거야.’
물론 오르고자 하는 이유는 각자마자 다르지만, 탑을 빨리 오르고 싶다는 마음만은 공통되어 있었다.
이내 결정을 내린 유희가 한결 편안해진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제 의견은 안 바뀌어요. 저희는 당분간 18층에서 머뭅니다.”
비록 길드원들이 자신의 욕심에 떠밀려 오르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지만 지금은 속도를 조절해야 할 때이다.
그러자 하성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유희 씨, 괜찮겠어요? 이제야 형님하고 만날 수 있는 각이 보이는데. 여기서 휴식을 취하게 되면 또 그 거리가 벌어질 거예요.”
“괜찮아. 이대로 무리해서 쫓아간다고 해도 준석이 짐만 될 뿐이야. 그리고 길드원들의 상태를 봐. 조금은 쉬어야 돼.”
그래 봐야 일주일이다.
일주일 후면 다시 층을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잠시 후, 유희는 길드원들을 데리고 싱크홀을 빠져나갔다.
그러며 그녀는 위층에 있을 준석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지금쯤 내가 보낸 쪽지는 잘 받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