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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18화 (118/230)

회귀한 탑 등반자 118화

118화 음영 바다의 팔찌

나는 골목을 통해서 번화가의 중심에서 벗어났다.

생기로 가득 차 있던 중심지와 달리 골목에는 지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나 삶의 의지가 없어 보이는 이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그리고 허름한 옷을 입은 삐쩍 마른 어린아이들도 보인다.

어린아이가 이곳까지 올라왔을 리는 없을 테니, 저들 모두 탑에서 태어난 거주민들일 터다.

주변의 환경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이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하던 놀이를 멈추고 지들끼리 속닥인다.

“애들아, 저기 있는 아저씨. 돈 많아 보이지 않아?”

“한 푼만 달라고 해 볼까? 오늘 하루 종일 굶었잖아.”

“오늘만이야? 난 삼 일째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내가 보기에 줄 것 같은데. 해 보자. 해 보자.”

그러곤 이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온다.

남자아이 둘. 여자아이 하나.

총 셋이었다.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옷으로 더러워진 손을 닦아 내곤 내게 두 손을 벌렸다.

“멋쟁이 아저씨! 한 푼만 주세요!”

“배고파! 많이는 안 바라요! 한 끼 때울 돈만 어떻게 안 될까요!?”

남자 둘이 나서서 당당히 구걸해 왔다.

어느새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다칼이 으르렁거리며 입을 뗐다.

-저 여자아이는 두 남자아이보다 더 오래 굶은 것 같은데. 대체 저리 굶도록 부모는 뭐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으아악!”

“엄마야!”

다칼의 으르렁거림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줄 알고 세 아이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런 애들에게 다가가 거래 큐브 대신 아공간에 있던 비상식량을 꺼내 주었다.

“자. 이거면 셋이서 일주일도 거뜬히 먹을 수 있을 거야.”

다칼 때문인지 그들은 여전히 긴장해 있었다.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비상식량을 바닥에 내려 두었다.

그러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열 걸음쯤 걸었을 때, 뒤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이내 다칼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게 물어 왔다.

-왜 포인트 대신 식량으로 준 거지? 포인트를 주면 저것보다 맛있는 걸 더 많이 사먹을 수 있을 텐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내가 거기서 거래 큐브를 쥐어 줬으면 주변에 있던 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애 코 묻은 돈도 훔치는 게 인간이야.”

그제야 다칼은 이해를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이 짧았군. 그런데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가? 여기로 쭉 가면 오래된 전망대 하나만 나올 거다. 가게들이 널려 있는 곳을 가려면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 한다.

“그 전망대로 가는 거 맞아.”

다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망대를? 그곳에는 왜……?

“내가 말했던 사람이 그곳에 있거든.”

얼마 가지 않아 높이 100미터쯤 되는 전망대가 나왔다.

쏴아아-

바다 앞쪽에 있는 전망대 입구에는 위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존재했다.

나는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탔다.

중간중간에 램프가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녹슨 문이 나왔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드넓은 공간이 드러난다.

잠수함 속에 들어온 것처럼 바닷속 풍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작업용 책상과 무수한 책이 쌓여 있는 책꽂이, 침대 등등이 갖춰졌다.

그때. 구석 한편에 있는 방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누구신데 노크도 없이 이곳에 들어옵니까?”

덥수룩한 수염에 꾀죄죄해 보이는 인상은 폐인이 되어 버린 인간을 보는 듯했다.

하나 보기와는 다르게 그가 가진 능력은 특별하다.

무엇이든 고쳐 내고 원인을 찾아내는 고유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흠. 보아하니 평범하신 분은 아니군. 신수인 다크울프를 데리고 다니다니. 거기에 새끼 크라켄까지? 허허. 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역시 그는 탑을 연구하는 등반자답게 육안으로만 보고 많은 것을 파악해 냈다.

“정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층을 오르는 등반자입니다.”

“그냥 층을 오르는 등반자라? 겸손하군요. 아님 기만입니까?”

그에게 솔직한 감정을 토로했다.

“뭣 하러 기만질을 합니까. 당장에 위층으로 올라가기만 해도 저보다 뛰어난 자들이 많을 텐데. 그리고 자신이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성장도 같이 멈춰 버릴 테니까.”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으로 바라보는 그는 한동안 입을 떼지 않다가 이내 큰 웃음을 터트렸다.

“간만에 재밌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 보네. 그쪽, 이름이 뭡니까?”

“이준석입니다.”

그가 손을 뻗어 온다.

손을 맞잡자, 말을 잇는다.

“라이너, 라이라고 불러도 딱히 상관없습니다.”

“그럼 편하게 라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라이는 손을 떼고 작업용 책상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그보다 이곳에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온 것 같은데. 용건이 뭡니까?”

“물건 하나만 봐 줬으면 합니다.”

나는 음영 바다의 팔찌를 꺼냈다.

곧 이쪽을 돌아본 그는 쓰고 있는 뿔테 안경을 한번 들어 올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그의 두 눈이 노랗게 변했다.

“흐음~ 그리 많이 파손되지는 않았네. 근데 재질이…… 어떤 재질인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 얘긴 못 고친다는 말입니까?”

“일단은 해 봐야 알 것 같은데. 음……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스킬로도 재질 파악이 안 된다는 건 그만큼 특수한 재질이 들어가 있다는 건데, 보통 특수한 재질을 사용하면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어서 복구가 더 어려워집니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회귀 전에 40층에서 마주친 그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일단 시도라고 해 주십시오. 물론 사례는 하겠습니다.”

“스킬을 사용하는데 상당한 마나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고치는 것에 따라 일정 대가가 따르고요. 제시하는 포인트가 낮으면 죄송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포인트 대신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정보? 어지간한 정보로는 안 될 텐데.”

“그쪽이 찾고 있는 아틀란티스. 그곳의 정보라면?”

아틀란티스를 언급하자마자 라이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더니 곧장 다가와 두 어깨를 붙잡는다.

“제가 그 도시를 찾는다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정말로 그 위치를 정말로 알고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는 게 순서 아닙니까.”

“그 위치, 알고 있다면 지금 당장 말씀해 주세요! 저한테는 중요한 일입니다!”

라이는 40층의 등반자였다.

정확하게는 층을 더 이상 오르지 않고 그곳에서 머무는 등반자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이곳까지 내려온 이유는 바닷속에 숨겨진 도시, 아틀란티스를 찾기 위해서이다.

아틀란티스를 그토록 찾는 건 탑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

소문을 낸 자가 상층부에 있는 유명한 등반자의 말이었기에 꽤 신빙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실제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틀란티스에 탑의 비밀이 숨겨져 있긴 했지. 저자가 기대했던 비밀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가 올려놓은 두 손을 내리고 말을 이었다.

“일단은 팔찌부터 고쳐 주십시오. 그럼 아는 건 전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만일. 그쪽 말대로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사실, 확실하게 증명할 길은 없죠. 직접 가 보는 게 아닌 한. 하지만 신수가 한 말이라면?”

“캬항?”

-내가 언제 말했다는 거지?

나는 눈빛으로 조용히 하고 있으라고 사인을 보냈다.

“설마! 아틀란티스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도!”

“네.”

애초에 다칼에게 아틀란티스의 위치를 들은 적이 없었다.

하나, 등반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탑의 거주민들이 신수를 신성한 존재로 여긴다.

그렇기에 신수가 가져다주는 신뢰감은 더없이 이용하기가 좋았다.

-일부러 오해하게 만들었군.

‘그래야 얘기가 진행되니 편할 테니까.’

라이가 마음을 먹은 듯이 비장한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믿고 고쳐 보죠.”

나는 곧장 그에게 팔찌를 건넸다.

가까이서 팔찌를 들여다본 라이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그리고 혼자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두 손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스아아-

힘의 영향을 받아 주변에는 냉기가 흘렀다.

나는 방해하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나 있었다.

5분쯤 흘렀을까?

“하아~ 하~.”

라이는 얼굴에 땀을 잔뜩 훔친 채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끝났습니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으면 표정이 밝았을 텐데, 지금 그의 얼굴을 보니 뭔가 찜찜하다는 표정이었다.

“결과가 별로입니까?”

“직접 확인해 보세요.”

나는 팔찌를 건네받곤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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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음영 바다의 팔찌

효과: 살기를 드러낸 적에게 ‘극한의 공포’를 부여해 경직, 신체기능 정지, 마나고갈 등등 다양한 패널티를 준다.

조건부 효과: 불안정한 상태라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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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손된이라는 단어에서 불안정한으로 바뀌었다.

고치는데 절반은 성공한 셈.

그로 인해 효과는 제대로 드러났지만 조건부 효과는 여전히 가려져 있었다.

‘효과만 봤을 땐 어둠의 반지와 공명을 할 만한 이유가 없어. 그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조건부 효과와 연관이 있는 건가.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둠의 반지와 공명했다면 그 반지의 주인인 하데스가 이 팔찌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자리에 사람이 있으니 이곳을 벗어나면 물어보기로 했다.

“보셨으면 알다시피 제가 고칠 수 있는 건 그게 한계입니다. 비록…… 다 고치지는 못했지만. 반은 고친 셈이니 약속대로 아틀란티스 위치를 알려 주십시오.”

아예 고치지 못했으면 안 알려 줄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기대에 부응한 셈이었다.

“알겠습니다. 알려 드리죠.”

라이가 가까이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얘기했다.

“아틀란티스는 55층의 바다. 북쪽으로 쭉 가다 보면 이와 비슷한 전망대가 있을 겁니다. 그 전망대 밑에 있습니다.”

“55층이라고……?”

“애초부터 찾는 위치부터 잘못됐습니다.”

그는 20층과 40층에 있는 바다를 위주로 탐색했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였던 셈이다.

‘55층에 가려면 그의 입장에선 14계단을 더 올라야겠지.’

“말도 안 돼…… 그동안 내가 한 짓이 무의미했다니.”

55층에 있다는 사실이 워낙 충격이었는지 그는 끝내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내가 가든 말든 그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골똘히 고민 중이었다.

‘위치를 알려 줬으니 알아서 하겠지.’

용무를 끝마쳤으니 곧바로 지하에서 빠져나왔다.

라이, 그와는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될 터.

바깥으로 나온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영감! 이 팔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으면 뭐든 말 좀 해 봐!”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죽음이자 어둠을 그늘에 진 자가 모르는 물건이라고 말합니다. 알았으면 진작에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흠…… 저 양반도 모른다고?’

그러니 조건부 효과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좋아. 추가 능력은 차차 알게 되겠지.’

그럼 이제 재정비를 좀 하러 가 볼까.

항구 번화가에는 꽤 쓸 만한 물건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위층에 있는 등반자들도 내려와 쇼핑을 볼 정도이다.

하나 나는 등반자들이 파는 물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은 번화가의 시스템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인도자의 만연필.

21층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나는 상점이 있는 데로 이동했다.

한데 가는 길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다.

성인 열댓 명에…… 세 명의 꼬마아이.

특히나 꼬마들은 낯이 익었다.

‘아까 전에 식량을 나눠 줬던 애들이군.’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흐흐흐.”

그리고 같이 온 성인들은 무기를 들고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찾아온 의도 자체가 불손하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의 것에 욕심을 부리는 녀석들이 왜 없나 했더니. 아주 딱 맞춰서 등장해 주셨다.

안 그래도 강해진 힘을 테스트해 볼 상대가 필요했는데.

하나 육체를 쓰기보단 새로 얻은 아이템들을 테스트해 보자.

황혼의 죽음 목걸이는 여기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고, 음영 바다의 팔찌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 한번 제대로 맛보기로 했다.

‘꼬마 셋을 제외하면…… 총 열넷.’

나는 그 열넷을 향해, 동시에 살기를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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