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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15화 (115/230)

회귀한 탑 등반자 115화

115화 역전의 사냥꾼

크루즈 내부는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특히나 5층은 천장이 날아가고 벽은 절반 이상이 파손되었다.

바닥에는 수십 구의 시신이 쓰러져 있고, 피와 바닷물이 섞인 붉은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쏴아아-

주변은 파도 소리 이외에는 모두 묻혀 버렸다.

“쿠헉!”

선체에 서 있던 남자가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다.

그런 그에게 다가서는 그림자.

남자는 고개를 쳐들어 그림자의 주인인 강예지를 죽일 듯이 쳐다봤다.

“퉤! 비겁한 년!”

“어머. 칭찬 고맙게 들을 게.”

“맘껏 웃어 둬. 네년도 머지않아 여기 있는 시체들처럼 죽게 될 테니까. 쿨럭쿨럭!”

강예지는 입에서 피를 쏟아 내는 남자를 보며 비웃었다.

“오지도 않은 내 미래를 확신하며 말하는 걸 보니 그쪽도 무슨 점쟁이라도 되나 봐?”

말끝으로 양손에 들고 있는 실끈을 팽팽하게 당긴다. 그러고는 두 눈을 잘게 뜨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죽는 날은 왜 모르셨을까.”

남자가 입을 열기 전.

스륵!

강예지는 그의 목에 실끈을 둘러 힘으로 압박했다.

“끄으억!”

붉어진 얼굴.

푸화악!

얼마 가지 못해 머리와 몸통이 따로 분리되며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셨다.

강예지는 얼굴에 튄 피를 무심히 슥 닦았다.

“죽을 때가 되면 다들 말이 많아진단 말이지. 뭐~ 아무런 반응도 없는, 따분한 녀석들보단 백 배는 낫지만.”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녀가 주변을 둘러본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크라켄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5층은 더 이상 별 볼 일이 없는 곳이 됐고, 아래층들도 막무가내로 공격을 당했으니 파손된 곳이 넘쳐 날 것이다.

그런 최악의 환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예지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원하는 걸 쉽게 얻었어.’

그녀도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 발생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쭉 상황을 지켜보니, 오히려 혼란은 그녀에게 기회가 되어 주었다.

크라켄에게 정신을 빼앗긴 등반자들은 그녀가 노리기에 매우 쉬운 먹잇감이었다.

이는 블랙 소울을 왕창 끌어모을 수 있는 기회!

그래서 그녀는 몰래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갔고, 결국엔 수십 명이 넘는 등반자들이 그녀의 손에 사냥을 당했다.

방금 전의 남자가 그 마지막 상대.

곧 강예지는 남자가 소지하고 있던 블랙소울을 회수해 여태 회수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했다.

“흐응~ 153개라. 처리한 거에 비해 적은데? 쯧. 그지 녀석들.”

153개도 충분히 많은 개수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웠다.

“한 300개 정도만 있어도 좋을 텐데.”

남은 150개를 충당하려면 그만한 개수를 가진 등반자를 죽여야 한다.

이내 그녀의 머릿속에는 두 명이 떠올랐다.

왠지 많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철혈의 기사 안철호.

그리고 자신과 같이 동행했던 이준석.

두 놈 중에 한 놈만 죽여도 목표한 개수를 채울 수도 있었다.

하나 문제는 둘 다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측이 아닌 개수가 확실한 쪽을 노려야 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강예지는 배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닷속으로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났어. 이쯤 됐으면 그놈이라도 살기는 어렵겠지.’

그녀는 아까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모두가 정신이 없고, 바다괴물을 보며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을 때.

유일하게 준석은 크라켄을 상대했다.

배보다 큰 녀석에게 주눅이 들기는커녕 마지막에는 궁지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문제는 궁지로 몰아넣고서, 갑자기 크라켄에게 잡아먹혔다는 것이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쉰 그녀의 표정은 우울했다.

그러다 갑자기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소리친다.

“아우! 그 녀석이 가지고 있던 블랙 소울이 대체 몇 갠데! 이렇게 사라지냐고오! 죽더라도 배 위에서 죽던가!”

그와 함께 사라져 버린 블랙 소울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쉽사리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았다.

“야아아아아!”

한껏 소리를 지르니 그래도 답답했던 게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다.

그리고 진정한 뒤에 다시 생각해 보니 그가 살아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과연 놈을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오징어놈을 상대할 때 보여 준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어.’

솔직하게 그 공격들이 자신에게 날아든다면 받아 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녀석이 데리고 있던 펫도 괴물 같이 강했단 말이지.’

등반자들은 크라켄의 다리 하나도 상대하기 버거워했는데. 그놈의 펫은 크라켄의 다리에 둘러싸여 난전을 펼쳤다.

둘 다 괴물이라는 표현에 전혀 아깝지가 않다.

한데 그가 가진 블랙 소울을 가지려면 그 괴물 같은 두 놈을 같이 상대해야만 한다.

“하아~ 글렀네. 글렀어. 다시 나타난다 해도 그림의 떡이야. 떡. 차라리 눈앞에 없어져 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마음속 한편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나는 물 건너갔고, 그럼 안철호라도 노려볼까.”

5층에서 안 보였던 걸 보면, 4층 어딘가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내려가서 찾아 봐야지.’

발걸음을 떼려던 그때.

“어……?”

순간 바다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튀어 올랐다.

그것은 단숨에 배의 5층 선체까지 이르렀다.

쿠웅!

거칠게 착지하는 소리가 들린다.

강예지는 약 10미터 거리에서 떨어진 그 정체를 확인했다.

“어어!?”

보고서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 밥이 되었다고 확신한 준석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크라켄과 함께 사라지고 10분이 넘게 지났을 터다.

그보다 그가 돌아왔다는 것은 같이 사라진 크라켄도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강예지는 황급히 바다를 쳐다봤다.

하지만 크라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바다는 잠잠하기만 했다.

“후아~.”

대신 상당히 지쳐 보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준석을 다시 바라봤다.

그는 배 위에 착지하자마자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애초부터 반대편에 서 있는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이내 그가 완전히 등을 보였다.

말 그대로 빈틈투성이.

그걸 보고 강예지는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몰라.’

크라켄을 상대하느라 상당한 힘을 뺐을 것이다.

어쩌면 몸 하나 겨누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나 자꾸만 머릿속에서 그가 크라켄과 혈투를 벌였던 모습이 떠올랐다.

압도적인 힘을 보았으니, 본능적으로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한 일.

혹시나 덤볐다가 힘이 많이 남아 있기라도 한다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혼란을 틈타 아무리 등반자들을 쉽게 제거했어도 그녀 또한 힘이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강예지는 손에 쥔 실끈에 밀집된 마나를 실었다가 이내 포기해 버렸다.

“아우우우우!”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던 늑대 놈이 돌아온 것이다.

하나라면 몰라도 둘은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점을 한번 봐?’

점을 보기로 결정한 그녀가 점치기 스킬을 발동했다.

만일 자신의 승리가 점쳐지면 망설임 없이 뛰어들리라.

그리 마음먹었다.

“하씨…….”

결과는 최악이었다.

‘덤비면 내가 죽는다고?’

부정하고 싶었으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녀에게 있어 점의 결과는 절대적이었다.

공격할 마음을 깨끗이 접은 강예지는 혼자 욕지거리를 뱉고는 뒤늦게 준석에게 다가갔다.

그가 가진 블랙 소울은 빼앗지 못하게 됐으니 곧바로 노선을 변경했다.

애초에 미션에 도움이 될 인간이라고 했으니, 그 수혜라도 받으려고 했다.

“용케 살아 돌아왔네요? 더 오래 안 나타났으면 구해 주려고 가려고 했는데.”

슥-

다칼을 보던 준석이 그녀를 흘깃 쳐다봤다.

시선을 마주친 강예지는 순간 흠칫했다.

바라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원래도 그는 사나운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내가 죽이려고 한 걸 알아챘나……?’

그럴 리가 없었다.

잠깐 실끈에 마나를 실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기만 했을 뿐.

이후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또한 뒤로 돌아 있던 준석은 그걸 보지 못했다.

‘그런데 왜…….’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가 내뿜던 살기가 사라졌다.

저도 모르게 크게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일까?

살기가 사라지자마자 숨을 가쁘게 내쉬는 그녀였다.

* * *

“후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5층 선체로 착지한 나는 숨을 골랐다.

크라켄이 생각보다 수심을 깊게 들어갔는지 올라오는데 고생을 좀 했다.

뚝. 뚝. 뚝.

옷에 묻은 물기 때문일까? 지쳐서일까?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팔찌 한 개와 괜찮은 칭호 하나를 건져 냈으니 이 정도 지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두 가지 전부 회귀 전에는 얻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팔찌의 기능도 궁금했지만 특히나 역전의 사냥꾼 칭호 효과가 궁금했다.

빠르게 두 개의 정보창을 모두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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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손된 음영 바다의 팔찌

효과: 파손되어 알 수 없음

조건부 효과: 파손되어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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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사냥꾼

효과: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를 만나 죽음의 위기가 찾아오면 일정 확률로 일부 체력 회복과 마나 회복을 한다.

단 능력이 발휘되고 난 후에 하루 동안은 다시 발동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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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찌는 파손되어서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고치기 전까지는 파악이 불가능하리라.

그리고 칭호는 죽음의 위기가 찾아오면 일정 확률로 일부 체력 회복과 마나 회복을 해 준다고 하였는데.

어느 정도의 확률인지는 모르겠으나, 낮은 확률이더라도 돌아오는 혜택이 상당히 좋았다.

아니. 매우 좋다고 볼 수 있었다.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체력과 마나가 회복된다면 역전의 기회가 생기는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보다 다칼은 어디에 간 거지?’

잠시 이쪽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몰랐는데 금방 나타날 줄 알았던 다칼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사라진 다칼 녀석부터 찾아 나섰다.

하지만 주변에 다칼은 안 보이고 5층 선체에 혼자 남은 강예지만 보였다.

주변에 시체들을 대충 훑어봤다.

‘크라켄에게 당한 놈이 반 정도 되고, 나머지는 저 여자한테 당했군.’

누구에게 당했는지는 상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지금쯤 죽은 녀석들의 블랙 소울을 모조리 회수했을 테니 꽤 많이 가지고 있을 터다.

‘저 여자가 가진 걸 지금 빼앗으면 300개도 가뿐히 넘겠지.’

다만 그녀를 상대하기에는 몸 상태가 최악에 가까웠다.

선장을 죽이고 크라켄까지 상대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하나 저 여자에겐 지금만큼 나를 노리기 좋은 기회도 없을 것이다.

내가 지쳐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당장에 기습을 해 온다면 이 빌어먹을 육신은 말을 듣지 않겠지만 따로 방안은 있었다.

황혼의 죽음 목걸이 효과.

50미터 이내 시체들이야 널려 있으니 그걸 이용하면 충분히 시간을 끌며 상대가 가능하리라.

그게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강예지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혹시나 조심하는 건가? 아님 나중을 기약하는 거야? 하여간. 속을 알 수가 없는 여자라니까.’

“아우우우우!”

그때 다칼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몸집이 작아진 다칼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다칼!”

가까이 다가온 다칼에게 말을 잇는다.

“어디로 갔는지 한참 찾았네.”

-나야말로 한참 동안 찾아 헤맸다. 크라켄에게 잡아먹힌 것을 알고 뒤쫓아 갔더니만. 아무래도 엇갈린 것 같군. 그보다 괜찮은가?

“보다시피. 멀쩡해. 너는?”

-힘을 많이 쓴 것 말고는 딱히 다친 데는 없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상당히 지쳐 있을 것이다.

크라켄은 다칼처럼 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 맞먹는 힘을 지닌 괴물 녀석이니까.

“고생했어.”

나는 다칼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 가만히 서 있던 강예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용케 살아 돌아왔네요? 더 오래 안 나타났으면 구해 주려고 가려고 했는데.”

‘하! 구해 주긴 무슨.’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블랙 소울이 바닷속에 영영 사라지게 될까 잔뜩 걱정만 했으리라.

그보다 정말로 덤비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냥 공격해 올 때를 기다리지 말고 죽여?’

순간, 강예지가 겁을 먹은 사람처럼 뒤로 물러섰다.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나도 모르게 살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데 그렇다고 해도 상대의 반응이 너무 과민했다.

상대는 조무래기에 불과한 약한 녀석도 아니고 탑에서 강한 축에 속한다.

그런 그녀가 단순한 살기에 저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다.

우웅, 우웅-

크라켄의 입속에서 가져온 파손된 음영 바다의 팔찌가 빛이 나며 진동하고 있었다.

진동이 올 때마다 강예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린다.

아무래도 지금의 반응은 팔찌의 힘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파손됐는데도 여전히 힘이 남아 있는 건가.’

보통 아이템이 파손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신기한 팔찌였다.

처음엔 어둠의 반지와 공명을 이루었던 것도 그렇고, 포세이돈과 연관된 팔찌인 줄 알았는데, 그의 반응을 보면 그도 아니었다.

아무튼. 파손된 걸 복구해 보면 그 정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전에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으음……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두자.’

강예지를 상대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안일 뿐이다.

몸이 성치도 않은 상황에서 괜히 싸웠다가, 저 여자 뒷배로 있는 신좌가 나서기라도 하면 피곤해질 수 있었다.

이내 팔찌에서 흘러나오던 진동이 멎었다.

동시에 강예지가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팔찌에는 살기와 연관된 힘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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