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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14화 (114/230)

회귀한 탑 등반자 114화

114화 포세이돈

서슬 퍼런 눈동자는 심해 물고기의 눈을 닮아 있었다.

안개처럼 뿌연 각막과 두 개의 원을 가진 검은 홍채를 보고 있노라면 꼭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즈으으!

한 손에 쥐고 있는 순백의 삼지창에는 짙은 파란색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슥-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공격!?”

반사적으로 나는 단검을 가슴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포세이돈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더니 세 손가락을 이용해 삼지창을 한 바퀴 돌렸다.

수웅!

단숨에 물이 없는 공간이 만들어 낸 그가 날 끝에 자그만 방울을 형성했다.

방울은 곧 거대한 장막을 형성한다.

장막은 밀려난 물이 안으로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

“후아!”

밀려나지 않고 장막 안에 서 있던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포세이돈과 두 눈을 마주쳤다.

‘공격할 기세는 아닌데.’

생각해 보면 딱히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도 없었다.

포세이돈은 등반자들이 바다의 생명체를 죽이든 말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하는 자이다.

‘그러면 대체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바다는 그의 영역이니 만큼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었다.

다만 포세이돈은 이유 없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었다.

구태여 물속에 산소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 걸 보면 나랑 대화할 의지가 충만해 보였다.

‘일단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 볼까.’

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아래층에 꽤 시끌시끌한 녀석이 한 명 있다고는 들었지만, 겨우 20층을 오른 등반자가 뭘 하겠냐고 생각했거늘. 크라켄을 상대로 위기에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죽음의 문턱까지 보게 하다니. 탑이 개입하고 곁에서 신수가 도왔다고 해도 이는 불가능한 일.”

심중을 드러내듯 두 눈을 빛내며 말을 잇는다.

“네놈, 정체가 무어냐? 여태 행보를 보아 예언의 능력을 가진 것 같다만. 네놈같이 독보적인 힘을 보여 준 놈은 없었지.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을 터.”

‘그런 거였나.’

포세이돈이 이곳에 왜 나타났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이제 보니 나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크라켄을 상대하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회귀 전에 크라켄을 힘겹게 잡은 기억이 있었지만, 그건 20층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해졌지.’

그러니 포세이돈이 이리 나타나서 저리 묻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네.’

포세이돈은 내가 예언의 능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걸 눈치챈 듯하다.

뭘 보고 판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입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그 또한 결국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탑에 단 한 번도 없던 회귀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포세이돈이 입을 뗐다.

“입을 다물겠다는 건가? 좋아. 숨기는 것이 무엇인지 그거야 차차 알게 되겠지. 그보다 하데스와 신약을 맺었다지? 처음에는 왜 인간하고 신약을 맺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말을 하다 말고 포세이돈은 가까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눈으로 내 몸을 훑었다.

“직접 이렇게 마주하니 이해가 되기도 하는군. 저층부에 머무는 등반자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어둠과 가까워. 짧은 시간 동안 신좌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수 있다니.”

어둠과 가깝다는 것은 친화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어둠의 반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 이상부터는 전부 루트딥트리 마법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의 친화력을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배력도 빨리 끌어올리질 못했을 것이다.

“오호~ 가까운 건 어둠만이 아니군. 다른 속성들하고도 매우 가까워. 뇌속성과 지속성까지.”

포세이돈은 육안으로만 보고 어떤 속성과 가까운지 파악하고 있었다.

‘남다른 시각은 여전하네.’

상대가 어떤 속성과 가까운지 파악하는 건 그만의 특기였다.

이내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데 물속성과는 거리가 멀군. 다만 재능은 있어.”

안타깝게도 빙결 내성은 어느 정도 지니고 있지만 물속성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포세이돈은 자기 턱을 쓸어 넘기더니 이내 큰 결심을 한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좋다. 나와 신약을 맺도록 하지.”

“……어? 응?”

워낙 예상치 못했던 발언이었던지라 순간 나는 당황해 버렸다.

“방금 뭐라고…….”

“신약을 맺자고 했다. 물론 나와 신약을 맺게 되면 하데스와 맺었던 신약은 끊어야겠지만. 하나 그런 어리석은 놈보다 이 내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쐐기를 박은 포세이돈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이자, 진심이다.’

설마 신좌가 먼저 신약을 맺자고 할 줄이야.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신약은 신좌가 손해를 보는 계약이었다.

그렇기에 하데스와 신약을 맺을 때도 협박과 회유를 구술 삼은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먼저 자신의 힘을 내주겠다고 하는데 그걸 걷어찰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두 개의 신약은 맺지 못하는 것이 탑의 규칙이기에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물론 거기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고맙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어.”

그 말을 하자마자 시야에는 메시지창이 떴다.

[죽음이자 어둠을 그늘에 진 자가 잘 결정한 것이라고 칭찬합니다!]

“영감은 좀 조용히 있지? 그쪽한테 칭찬받자고 거절한 거 아니니까.”

아무래도 주위에 어둠이 존재하다 보니 우리들의 대화를 엿들은 듯했다.

포세이돈은 거절한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지? 나의 힘이 하데스보다 약한 것 같은가? 그래서 거절하는 것인가? 아니지. 애초에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

포세이돈은 두 손으로 창을 쥐고 진정한 자신의 힘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아직 힘을 드러내기 전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력한 힘이 온 감각으로 전해졌다.

힘이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탑이 개입하겠지만 간접적인 영향까지 막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괜한 피곤한 일이 생기기 전에 입을 뗐다.

“포세이돈, 그쪽이 누군지는 이미 알아.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신좌라는 것도.”

힘을 끌어올리던 그가 모았던 두 손을 풀었다.

“그런데 어찌?”

“당장에 원하는 힘은 어둠이니까. 만약 지금 필요한 힘이 물이었으면 망설이지 않고 그쪽과 신약을 맺었을 수도 있지.”

“당장이라면 추후에는 원하는 힘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 이유로 거절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신약 얘기까지 꺼내 들었으니 계속해서 물고 늘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결과를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거절하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순수하게 힘으로만 따진다면 포세이돈이 가진 물의 힘이 훨씬 더 강력했다.

다만 정상층에 있는 데카인을 상대하려면 순수한 힘이 아니라 어둠이 가진 특수성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회귀 전과 똑같이 이번에도 어둠을 택한 것이고 말이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들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쭉 지켜보도록 하겠다. 혹여나 도중에 마음이 바뀐다면 날 찾아라. 언제든지 그댈 받아 주지.”

동시에 주변을 보호하던 장막이 사라진다.

쏴아아아!

사방에서 물이 덮쳤다.

“후읍!”

숨을 들이켜며 다시 물에 빠진 신세가 된 나는 포세이돈이 서 있던 곳을 쳐다봤다.

포세이돈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언제든지 받아 준다고? 이거 영감. 은근히 똥줄 좀 타겠는데?’

그간, 하데스에게 우리의 사이가 뒤틀리면 제우스와 신약을 맺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었지만, 그것은 제우스와 나의 관계가 틀어지며 이미 사라져 버린 계획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억지로 관계를 이어 붙여 신약을 맺게끔 만들 수야 있겠지만.

그보다 더 확실하게 저울질할 카드가 생겼다.

포세이돈.

바다의 지배자이자 하데스와 제우스, 둘과 마찬가지로 최상위 신좌 중에 하나였다.

그런 신좌가 내 보험이 되어 준 것이니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가 없다.

한데. 지금 생각해도 포세이돈이 먼저 신약을 맺자고 제안해 온 건 놀라웠다.

물론 정상 층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는 등반자를 찾아 계약을 맺는 건 신좌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계약을 맺은 등반자가 더 높은 층을 오를수록 신좌가 얻는 이득도 그만큼 커지니까.

하나 신좌들의 특성상,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죽어도 하기 싫어했다.

확실하게 손해보다 이득이 크다면 그들도 베팅을 과감히 하겠지만, 계약은 불안정한 미래,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보고 맺는 것이다.

기대됐던 유망주가 어떤 층에 고전하거나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이 손해 볼 것 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한 푼도 베팅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포세이돈은 자처해서 손해를 감수하려고 했다.

심지어 이미 다른 신좌와 신약을 맺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귀 전의 포세이돈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야.’

회귀 후 바뀐 것은 비단 내 힘만이 아니었다.

유희의 미래.

다칼의 미래.

주변 인물들의 미래.

심지어 신좌들의 미래까지도.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따라 바뀌어 가고 있었다.

과연 다시 정상 층에 도달했을 때, 그 많은 것이 대체 어떤 식으로 변해 있을까?

회귀 전의 나는 정상 층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았다.

회귀 후에도 다시 원래대로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강해지기만을 소원했다.

하지만 지금 변해 가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니. 비단 기대가 되는 것은 데카인의 죽음만이 아니었다.

내가 만들어 낸 새로운 미래가 보고 싶어졌다.

뽀글뽀글!

생각에 잠겼던 나는 이내 주변의 변화를 느끼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너무 여유를 부렸다.

아무래도 당장 여길 빠져나가야 할 것 같다.

“꾸루루루!”

순간 주변의 압력이 세지면서 머금고 있던 공기를 내뱉고 말았다.

점점 귀가 먹먹해지고 온몸에 강한 압박이 들어오고 있었다.

크라켄이 점점 수심이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죽는다.’

이미 얻고자 했던 팔찌는 얻은 상태.

크라켄을 잡는 건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곧바로 벗어나려고 하는데 다크스윔보단 귀환석이 먼저 떠올랐다.

하나 허리춤에 있는 새끼 크라켄을 떠올리며 하는 수 없이 귀환석 사용은 포기했다.

다칼은 맹세를 맺었기에 같이 이동이 가능했지만 새끼 크라켄은 같이 이동이 불가능했다.

‘생각해 보니 다칼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아까 전투할 때까지만 해도 보였는데.

‘밖에 있겠지.’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다크스윔!

크라켄의 몸 밖으로 나온 나는 심연의 어둠을 보았다.

마법의 최대 이동거리가 부족해 단번에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다크스윔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마나를 남겨 둔 상황이기에 숨이 막히기 전에는 도달이 가능하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급하게 도망치는 크라켄이 보였다.

‘쩝…… 아깝네.’

사냥감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현재의 몸 상태를 따져 보면 나도 한계까지 이르렀다.

정말로 마음먹고 쫓는다고 해도 저 녀석을 죽이려다 나도 어찌 될지 모른다.

“고호오오오오-.”

멀어져 가는 크라켄은 마치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창이 연달아 올라왔다.

[힘의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라켄에게 치명상을 남겨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합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해냅니다!]

[역전의 사냥꾼 칭호가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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