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13화
113화 바다를 지배하는 자
나자카는 두 날개를 활짝 피고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반짝이는 모래 가루를 휘날렸다.
곧 나와 시선을 맞춘 나자카는 검으로 방패를 두들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명령을.”
“날 보호하는 게 네 임무야! 내게 날아드는 공격은 전부 막아 내!”
“충!”
명령을 받은 나자카의 몸이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하아아아-.
그것이 주변에 모래의 폭풍을 일으키더니 이쪽으로 접근해 오는 모든 것을 튕겨 내 버렸다.
굳이 모래의 폭풍이 아니더라도 나자카의 힘이면 크라켄의 일격을 당분간은 막아 낼 수 있을 터다.
잠시 후.
“후우~.”
움직이지 못하던 몸이 움직여졌다.
하지만 체력이 바닥이 나 있던 상황.
[나자카가 소환되며 진(眞) 삼위일체 견갑의 효과가 증폭됩니다!]
[효과: 체력x4, 보호막 대폭강화]
다행히도 견갑의 효과가 두 배로 증폭되며 전투에 짜낼 수 있는 체력이 생겨났다.
챙!
옆에서는 모래의 폭풍을 뚫고 들어온 크라켄의 다리 촉수를 나자카가 방패로 막아 내는 중이었다.
작은 몸집인데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한 공격을 잘도 받아 냈다.
‘든든하군.’
그러나 나자카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심각한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신체 능력이 빠르게 저하되기 시작합니다.]
촉수 공격을 몇 번이나 받아 내며 몸에 천천히 스며든 독이 문제였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
이내 다른 메시지도 떴다.
[영광의 장갑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영광의 불’이 발동합니다!]
[영광의 불로 인해 일시적으로 정신력이 상승합니다!]
[영광의 불로 인해 일시적으로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갖습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화륵!
피를 많이 흘렸기에 발동한 영광의 불이 전신을 휘감았다.
일시적으로 정신력이 올라가며 불타오르는 의지가 생겼다.
“마치 병주고 약주고 하는 것 같잖아.”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눈 세 개를 마무리하기 위한 마법을 시전했다.
홀리크로스.
체내에서 마나가 빠르게 빠져나간다.
하지만 십자가만큼 녀석의 눈알을 확실히 소멸시킬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가라!’
십자가의 빛이 눈 세 개가 있는 정중앙에 꽂혔다.
씨이이이!
주위로 뜨거운 열기가 발생하며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그오오오!”
그때 크라켄이 몸을 비틀어, 눈 한 개가 빗겨 갔다.
“칫!”
다크소드.
직접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 찰나.
“고오오오옹-!”
“……!?”
울음소리가 들려온 뒤, 바다 아래서 심상치 않은 파동이 느껴졌다.
푸화아아앙!
“어, 어!?”
크라켄이 바닷속에 잠긴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간 나도 크라켄의 몸에서 떠나 공중에 부유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전개에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나는 아직 남아 있는 한 개의 눈에 집중했다.
순간 몸이 뒤집혀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다.
윈드퍼드!
보이는 시야각을 찾기 위해 바람을 이용했다.
‘저기 있다!’
나는 찾던 눈을 발견하자마자 다크소드를 움직였다.
싸아아학- 푹!
“고호오오오옹!”
크라켄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며 크라켄의 피부색이 변하고 있었다.
남색과 조금 섞인 검은색에서 점차 하얗게 변질되어 간다.
32개의 눈을 전부 잃으며 상태가 악화되는 것이다.
‘됐어!’
마음속에는 이미 성공했다는 기쁨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아직 끝이 난 것이 아니기에 약해진 지금을 노렸다.
나는 주피로의 단검을 손에 꽉 쥐었다.
그리고.
푸화아아아앙!
바다에 떨어지마자 즉각 행동에 나섰다.
파직! 파지직!
단검 끝에 형성된 전기에너지를 칼날처럼 형상화해 키 높이만큼 맞추고 크라켄의 몸뚱이 전체를 가를 기세로 달리기 시작했다.
신발에 달린 날개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날개 달린 목동의 신발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효과 증폭’ 발동합니다!]
[효과: 이동방해면역, 이동속도 600%증가, 민첩x6]
허벅지 다리의 근육들이 강하게 팽창했다.
허벅지를 거쳐 종아리, 발끝까지 이른 응축된 힘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파아앙!
지나가는 시야가 빠르게 변한다.
뒤를 쫓던 크라켄의 다리 촉수도 이번에는 따라오지 못했다.
촤하아악!
그리고 내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그렇게도 단단했던 크라켄의 피부가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탕!
더 이상 달릴 곳이 없어 급하게 멈춘다.
고개를 돌렸다.
주르르륵……
녀석의 붉은 피가 온몸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는 것처럼, 피가 사방에 마구 튀었다.
“하아~ 하~.”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가뜩 무리가 온몸을 풀어 주었다.
당장에 마무리를 시도하는 것도 좋지만 이대로 무리해서 움직였다간 정말로 큰 부작용이 올지도 몰랐다.
여기서 모든 걸 쏟아부울 게 아니라면 조절은 필요했다.
“큭!”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통이 오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더는 무리인가.’
악재통과 영광의 불이 버텨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의 기운을 통제하는 일에 한계가 온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도 참 길게 끌고 온 셈이다.
‘더 유지했다간 위험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들어 올려 악의 기운을 거둬들였다.
“고호오오옥!”
크라켄이 머리를 움찔거린다.
그동안 크라켄의 정신을 어지럽혀 집중공격을 받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제 그 시간도 끝나 버렸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걸릴 거야. 그 전에 승부를 본다.’
크라켄의 다리가 날 깔아뭉갤 생각으로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신발의 효과가 유지되고 있는 만큼, 공격을 피하는 건 매우 쉬웠다.
하지만 피할 필요도 없이 견갑에서 소환된 나자카가 직접 나섰다.
쿠후웅!
나자카가 들고 있는 방패에서 황금빛의 보호막이 생겨나더니, 공격을 견뎌 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다리 위에 올라타곤 주피로의 단검을 거꾸로 잡은 채 앞으로 쭉 달렸다.
파지직! 파지지!
검의 형상을 한 전기 에너지가 다리를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중간쯤에 멈춰 서서 갈라져 있는 두 살을 완전히 베어 내 버렸다.
서걱!
“고호오오오!”
굵직한 다리 한 개를 잘라 낸 나는 곧장 크라켄의 머리를 향했다.
“허억…… 헉…….”
한계를 넘어선 질주를 지속하다 보니 금방 숨이 차오른다.
이내 일정 거리에 도달했을 때.
다크스윔!
단숨에 목표 지점에 다다랐다.
거대한 덩치만큼, 거대한 뇌를 지니고 있는 크라켄.
녀석을 죽이기 위해선 그 거대한 뇌 전부에 타격을 줘야 했다.
나는 주피로의 단검을 아래로 향하며 소리쳤다.
파직! 파지지!
“죽어라!”
삼신용의 반지와 단검의 힘, 그리고 등가교환으로 만들어 낸 공격!
[일시적으로 전기에 대한 증폭과 관통력이 상승합니다!]
파쟈쟈쟈쟈쟈!
“고호오오옹!”
엄청난 전류가 사방으로 퍼졌다.
어찌나 범위가 크던지, 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만일 만뢰를 섭취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전류에 휩쓸려서 통구이가 됐으리라.
“오오오…….”
이내 울음소리가 그치고 녀석의 남은 다리가 힘없이 축 처져 바다 수면에 떨어졌다.
“하아~ 하아~.”
고요함 속에 숨소리만 들려온다.
정말로 끝인 건가?
보기에는 그랬으나,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모르는 일이다.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지.”
푸화아아아아!
그때 죽을 줄만 알았던 크라켄이 몸을 뒤집었다.
요동치는 바다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거대한 파도!
“……!?”
몸을 한 바퀴 돌린 크라켄이 머리를 들어 입을 크게 벌린다.
나는 본능적으로 높이 점프했다.
곧장 아래를 내려다보니 크라켄의 거대한 입 안이 보인다.
뾰족한 이빨이 둥그런 원형으로 수백 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심연처럼 어두운 목구멍이 존재했다.
“음? 저건…….”
목구멍 속에 무언가가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
회귀 전에 크라켄을 상대하며, 어쩌다 녀석의 몸 내부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한데 목구멍 끝에 저런 빛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혹시 히든 피스인가?’
이내 밑으로 떨어지며, 어떤 메시지가 떴다.
[안으로 파고들자. 어쩌면 천운의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점지 스킬이 발동한 것이었다.
잠깐 동안 히든 피스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었는데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크라켄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히든 피스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
저것을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시도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이대로 떨어지기만 하면 됐다.
‘어차피 녀석의 몸 안에서 들어간다고 해도 빠져나오는 건 그다지 어렵지도 않아.’
“오아아앙!”
이내 크라켄이 벌렸던 입을 닫는다.
동시에 바닷속으로 몸을 숨기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쿠우웅! 푸화아아아!
들어왔던 입구에서 거센 물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내내 수면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가 바닷속으로 몸을 숨긴다는 건 딱 한 가지 이유뿐이었다.
‘도망치려는 거군.’
몸의 치명상을 입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꾸우! 꾸우우!”
같이 있던 새끼 크라켄이 여전히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미를 찾는 것 같지만, 어미는 새끼를 찾지 않았다.
여기에 자기 새끼가 있는 걸 뻔히 알 텐데 일체의 망설임 없이 나를 집어삼켰다.
하긴 자기가 죽게 생겼는데.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자기 살기 위해서라면 인간도 이기적으로 구는데 마물이라고 다를까.
“푸하!”
쏟아지는 물에 휩쓸리지 않게 수영하며 몸의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밀고 들어오는 물이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채우면서 여유로이 숨을 쉬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우읍!”
몸이 물속에 완전히 잠겨 버렸다.
나는 숨을 참고, 물이 흘러 들어가고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여전히 빛은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저게 무엇인지 알려면 조금 더 가까이 가 봐야 한다.
다크스윔!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목구멍 끝 주위에는 온통 오돌토돌한 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뼈들 사이에 유독 뾰족하게 튀어나온 뼈가 있었다.
그곳에 물건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팔찌?’
팔찌는 빛이 푸르스름하게 나고 있을 뿐, 녹이 슬고 초록 이끼가 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집었다.
[파손된 음영 바다의 팔찌를 획득하였습니다.]
‘음영 바다의 팔찌? 처음 보는 아이템이군.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파손됐어.’
가까이서 보니 녹이 슬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금이 가 있었다.
우우웅!
순간 전신으로 강한 진동이 훑고 지나갔다.
‘공명!?’
분명히 음영 바다의 팔찌와 어둠의 반지가 일으킨 공명이었다.
‘뭐지…… 왜 어둠의 반지와 팔찌가…….’
이런 것에는 우연이란 없기에, 음영 바다의 팔찌의 정보창을 열어 보려고 했다.
한데 그 순간.
뽀글뽀글! 수후우우우-
코앞에서 엄청난 기포가 일며 소용돌이가 쳤다.
소용돌이 중심에서 파랗게 일렁이는 두 개의 빛이 보인다.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이윽고. 소용돌이 안에서 파란색 형상을 가진 거인이 걸어 나왔다.
나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눈앞에 나타난 정체는 다름 아닌…… 포세이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