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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12화 (112/230)

회귀한 탑 등반자 112화

112화 삼위일체

외침과 동시에 지팡이 끝에 잠들어 있던 악의 기운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 쏟아져 나오는 기운을 꽉 잡고 있어야 하다 보니 정신이 급격히 피로해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태 쌓아 올린 정신력 수치 덕분에 이전에 사용했을 때보다는 수월히 통제가 가능했다.

수화아아아아-

삽시간에 주변을 뒤덮은 악의 기운을 흩어지지 못하도록 집중적으로 컨트롤했다.

악의 기운에 노출된 생명체는 정신이 무너지고 광기화가 진행된다.

광기화를 빠르게 완성시키려면 그만큼 정신을 빠르게 무너뜨려야 했다.

머리에 집중력으로 악의 기운을 모은다면 무너뜨리는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었다.

설사 크라켄일지라도 여간 버텨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고오오오-!”

낯선 기운에 당황한 것인지 크라켄이 몸을 치켜들었다.

그와 함께 신체가 앞쪽으로 기울었다.

쩌저적!

프리징워크 덕분에 두 발을 지탱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윽고 눈앞에 크라켄의 거대한 입이 실체를 드러낸다.

‘지금이다!’

사화아아아!

나는 한곳에 모아 뒀던 악의 기운을 크라켄의 입속으로 날려 보냈다.

“고오옹-!?”

크라켄이 그 속에 빨려 들어가려는 기운을 막아보려고 입을 굳게 닫았지만 소용없었다.

악의 기운은 자그마한 빈틈으로도 파고든다.

‘그래…… 좋았어.’

이제 입속으로 들어갔으니 뇌로 침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상황을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크라켄의 정신이 무너지게 되면 공격할 타깃을 제대로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광포해진 대로 길길이 날뛰기야 하겠지만, 무분별한 공격은 1대1 전투에서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그오오오옥-.”

악의 기운이 파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라켄이 곧장 반응을 보였다.

쿵! 촤하아아아-

몸을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아직이다.

타다닷!

나는 앞으로 달려가 힘껏 도약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나를 끌어모은 십자가를 정면으로 내리꽂았다.

씨이이이-!

초고열의 빛이 번쩍였다.

다섯 개의 눈이 한순간에 소멸해 가는 것을 보았다.

[치명적인 타격이 터졌습니다!]

임시로 얻은 스킬의 힘까지 발휘되며 빛의 힘이 증폭했다.

그 파장으로 인해 근처에 있던 두 개의 눈을 같이 소멸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

다칼이 시선을 끌고 있고, 거기다 머릿속에 침투한 악의 기운이 녀석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내 크라켄의 몸에서 보랏빛이 물들었다.

이는 크라켄이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는 뜻이었다.

싸아아악!

하나 그 여유도 얼마 가지 않았다.

크라켄의 다리 두 개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촉수 공격이었다.

‘빨라!’

일시적으로 신체능력이 상승되며 무리 없이 크라켄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한데. 아까 전보다 더욱 빨라진 크라켄의 움직임은 날카로운 검처럼 예사롭지 않았다.

궁지에 몰려서 전력을 쏟아붓는 것이었다.

윈드퍼드!

팡! 촤악!

하나는 바람으로 겨우 빗겨 쳐 냈다.

나머지 하나는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민첩이 올랐습니다!]

이마 위로 피가 흘러내린다.

다리가 바삐 움직인다.

두 개의 촉수가 다시금 파고들었다.

다크스윔!

연달아 두 번을 회피하고 남아 있는 마나를 확인했다.

‘제길…… 10퍼센트도 남지 않았어.’

최후를 생각하면 마나는 아껴 둬야 했다.

아님 마나가 바닥이 나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와 버릴지도 모른다.

‘마나 소모가 적은 마법을 펼치거나 다른 물건의 도움을 받아야 돼.’

나는 지팡이를 들지 않은 손으로 주피로의 단검을 꺼내 들어 삼신용의 반지와 연계를 일으켰다.

[삼신용 중에 하나인 뇌룡이 당신에게 힘을 빌려줍니다.]

파즈직! 파직!

뇌룡의 전기가 주피로의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와 합해져 새로운 검격을 만들어 냈다.

캬하앙! 파쟈쟈쟈!

정면으로 충돌하는 공격!

촉수에 묻어 있는 물기가 전류의 이동을 증폭시켰다.

전기가 녀석의 다리 전체로 퍼져 나가자, 주춤하는 기색이 보인다.

하나 잠깐 동안 공격을 멈췄을 뿐이지. 경직 현상이 풀리면 다시금 공격을 해 올 것이다.

예상대로 경직됐던 움직임이 다시 원활해졌다.

캬항! 카항! 파쟈쟈쟈!

주피로의 단검과 삼신용의 반지 힘이 합쳐진 전기를 자꾸 먹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의 움직임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더욱 빨라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괴물 녀석!’

첫 번째 타격에만 반응이 오고 나머지는 전기에 살이 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공격해 왔다.

채앵! 챙!

찰나, 막기에 급급한 십여 번이 넘는 공방이 오갔다.

“후우~.”

흐트러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그리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촤악!

미처 피하지 못한 공격에 몸에는 잔 상처가 늘어만 갔다.

그때.

스윽.

직선으로 날아들던 촉수가 멈춰 섰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자신의 몸을 찌르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반응이 온 건가…….’

실수도 아닌 그냥 자신의 몸을 직접 공격했다는 것은 크라켄의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를 공격하던 또 다른 촉수도 이내 타깃을 바꿨다.

이제야 악의 기운이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 버렸다.

[정신 부하가 시작됩니다!]

잘 견뎌 주던 정신의 한계치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망치거나 이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기를 품고 싸움의 의지를 불태웠다.

다크소울의 유지시간이 끝나기 전에. 그리고 악의 기운이 내 통제를 벗어나기 전에.

녀석에게 하나의 치명상이라도 입히리라 굳게 마음먹는다.

‘죽이는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아.’

20층에서 크라켄을 죽인다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루기 불가능한 업적이다.

하나 왜일까?

마음속 한편에서는 자꾸만 내게 할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아무튼, 더 이상 크라켄의 공격은 오지 않았다.

이때다 싶어 나는 주피로의 단검을 들고 눈알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푸확!

대략 절반쯤 제거했을까?

“고호오오오!”

우연인지 아님 무너진 정신마저 이겨 낸 본능의 승리인지.

크라켄이 다시금 이쪽으로 자신의 다리를 보내왔다.

하지만 그 위력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쿠화앙! 수아악-!

촉수로 찌르는 정확도도 떨어지고 다리로 내리찍는 공격은 자해 행위밖에 되지 않았다.

푸욱!

심지어 자신의 눈알을 스스로 찌르기까지 했다.

“허억. 헉…….”

그러나 공격을 피하는 입장인 나도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정확도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움직임은 빨라 그만큼 체력 소모가 심했다.

“꾸우우! 꾸우우!”

그리고 아까 전부터 시끄럽게 울어 대는 새끼 크라켄의 울음소리는 은근히 내 신경을 긁었다.

“조용히 해! 확! 다칼에게 먹어 버리라 해 버릴라.”

포인트이고 뭐고 때려치우려고 했지만 금방 이성을 되찾는다.

‘팔면 수백만 포인트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을 텐데. 그건 아니야. 준석아, 정신 차리자.’

악의 기운의 오랫동안 통제하면서 점점 정신력이 바닥을 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판단력이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이를 악물어야 한다.

나는 하던 행동을 계속 수행했다.

푹- 촤악!

거의 스무 개가 넘는 눈을 제거했을 때쯤.

“크윽!”

더는 악의 기운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대로 있다간 악의 기운을 제자리로 되돌리지 못하고 내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버릴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크라켄의 시야를 전부 장악할 수 있건만. 하지만 그런 욕심이 화를 부르고 있었다.

‘안 돼! 더 이상은……!’

이만 거둬들여야 할 때였다.

그런데 그때.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악재통(Lv1)를 배웠습니다.]

악재통.

생소한 단어였으나 대체 어떤 스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통제력이 올라갔다!’

그동안 악의 기운을 바닥난 정신으로 겨우겨우 붙잡고 있었는데, 스킬을 얻자마자 그런 괴로움이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기회.

어쩌면. 크라켄에게 치명상을 입힐 때까지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끝장낼 때까지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다른 부위를 노리지 않고 굳이 32개의 눈을 제거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녀석의 가장 약한 부위이기도 하지만. 다른 부위를 공략해 봐야 공격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32개의 눈에는 크라켄의 마나가 담겨 있다.

녀석이 마법의 일부 면역을 지니고 있고 몸이 엄청나게 튼튼한 것도 전부 마나를 통해 몸을 보호하기 때문이었다.

한데 마나가 담겨져 있는 눈을 전부 제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크라켄의 몸을 보호하던 기능이 전부 사라져 버리리라.

그렇게만 되면 지금 통하지 않는 공격들도 전부 먹힐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그래서 나는 몸의 온 힘을 짜내어 계속 눈을 제거해 나갔다.

촤악!

여전히 다리 촉수의 견제가 심하게 들어온다.

“허어억. 헉…….”

정신없이 전투가 흘러간다.

잠시 남은 숫자를 세기 위해 두 눈을 번뜩 떴을 땐, 눈앞에 눈 세 개가 남아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나머지는 마법을 사용해서 단번에 제거하는 거야.’

그리 생각하며 마법을 시전하려는데.

[신체가 과부하에 걸렸습니다!]

[일시적으로 신체를 움직이기 어려워집니다.]

[다크소울 스킬 발동이 강제로 해제됩니다.]

[영혼들의 힘으로 얻었던 모든 능력치가 회수됩니다.]

[영혼들의 힘으로 획득했던 스킬들이 모두 회수됩니다.]

‘젠장! 하필 이때!’

다크소울의 유지시간이 끝나면서 일시적으로 신체가 움직여지질 않았다.

푹!

“커억!”

꼼짝없이 촉수의 공격을 당해 버렸다.

나머지 공격도 한 바퀴를 돌아서 이쪽으로 올 조짐을 보인다.

주변에 어둠이 있었다면 진작에 끌어와 몸을 보호했겠지만, 하필 하늘에는 햇볕이 조금씩 쏟아지고 있었다.

몰려들었던 먹구름도 서서히 물러나는 중이었다.

“……다칼!”

급히 다칼을 찾지만 바쁜지 반응이 없었다.

곧 한 바퀴를 돈 촉수가 날아 들어온다.

방향을 보았을 때 심장을 뚫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걸 하는 수밖에 없나…….’

등가교환을 시전해 신체를 강제로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리하면 마나 이상의 무언가를 대가로 바쳐야 할지도 몰랐다.

‘마나가 조금만 더 충분했으면…… 아!’

그래. 살짝만 움직이면 된다.

더도 말고 살짝만, 그러면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있었다.

등가교환!

마나가 쏙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동시에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나는 재빨리 몸을 비틀어 견갑을 들이밀었다.

칭!

“크윽!”

충격이 오긴 했지만 견갑이 크라켄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진(眞) 삼위일체 견갑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나타. 자카. 다카가 삼위일체를 이룬 나자카가 소환됩니다!]

견갑에서 신성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내 눈앞으로 황금 철갑을 두른 자그만 인형 크기의 전사가 검과 방패를 움켜쥔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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