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11화
111화 어부지리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32개의 눈동자가 오직 한 곳을 응시했다.
“꾸우우! 꾸우우!”
새끼 크라켄이 우는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어미를 찾는 울부짖음이었던 것이다.
“이런 미친.”
진작에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죽음이자 어둠을 그늘에 진 자가 크라켄의 등장에 흥미로워합니다.]
“꾸우! 끄웁.”
다급히 새끼 크라켄의 입을 틀어막는다.
지금에 와서 입을 틀어막아 봐야 의미가 없을 테지만, 울음소리로 어미를 자극해 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새끼가 있다면 어미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
처음 창고에서 새끼를 발견했을 때부터 그 생각을 아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끼가 꽤 오랫동안 배에 머물렀을 텐데 그동안 어미 크라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가능성을 낮게 두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새끼에 대한 애착이 없는 줄 알고 그냥 넘어갔는데, 난관에 봉착해 버렸다.
크라켄은 중층부 등반자들도 혼자서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놈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현재의 나로서는 감당이 불가능했다.
‘본체에 생체기 하나 정도 남기는 게 전부겠지.’
하나 상대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크라켄이 공격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메시지가 떴다.
[탑이 개입합니다.]
[크라켄의 힘이 현격이 낮아집니다.]
예상대로 탑이 밸런스를 조정했다.
그렇다고 해도 경계심을 풀 수는 없다.
힘은 약해졌을지언정 상대는 성체 크라켄이었다.
쿵! 콰앙!
크라켄이 굵직하고 거대한 다리를 이용해서 배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 충격에 배가 크게 흔들렸다.
“여, 여기로 온다!”
건물 두께만 한 크라켄의 다리가 이쪽을 향해 떨어졌다.
나는 서둘러서 뒤로 물러났다.
파챠장! 쿠하아앙!
크라켄의 다리가 떠나간 자리에는 물건. 사람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압착시켜 버렸다.
바닥은 아예 꺼진 절벽이 되어 버렸다.
그나저나 누가 마물이 아니랄까 봐, 이곳에 자기 새끼가 있는데도 가감 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나는 시전해 둔 마법들을 쳐다보았다.
아직 카발에게 공격을 퍼붓지 않은 상황이다.
‘저것들을 생성하려고 마나의 절반을 썼어.’
특히나 홀리크로스에 상당량의 마나가 들어갔다.
만일 저것을 선장 카발에게만 전부 다 쏟아붓는다면, 그다음에 상대할 어미 크라켄에게 많은 전력을 쏟아붓지 못하게 된다.
‘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시전해 둔 다크볼트 한 개를 카발에게 날려 녀석의 시선을 끌었다.
바로 이쪽을 보더니 포를 겨눈다.
수욱, 콰아아아앙!
다크볼트 하나를 더 날려 도중에 포탄을 터트렸다.
폭발에 먼지가 휘날린다.
가려져 버린 시야.
그때, 새끼 크라켄의 틀어막은 입을 풀어 줬다.
“꾸우우! 꾸우우!”
새끼 크라켄은 그동안 내지 못했던 울음소리를 다 토해 내듯 더 크게 울어댔다.
“그래. 크게 울어. 너희 어미가 들을 수 있도록.”
고개를 들어 크라켄의 다리를 살폈다.
다른 곳을 노리던 크라켄의 다리가 이내 이쪽을 향한다.
그 자리에 아무것도 모르고 서 있는 카발.
나는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몸을 굴렸다.
콰아아앙!
카발이 크라켄의 다리에 짓뭉개지는 모습을 확인했다.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선장 카발을 처치하였습니다!]
[카발을 처치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8,5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타락한 선장의 팔찌가 지급됩니다.]
카발을 단 일격에 보내 버리다니, 파괴력 하나는 끝내줬다.
그래도 두세 번 공격은 견딜 줄 알았건만, 덕분에 보상도 제대로 얻고 시전 중인 마법들도 소모하지 않을 수 있었다.
크라켄의 다리가 떠나간 자리에는 쥐포가 되어 버린 카발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캬하하하!”
다칼이 그것을 보고 크게 웃었다.
-뭘 하나 했더니 설마 그런 식으로 선장을 잡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한 방식이군!
“원래 손을 안 쓰고 일을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근데. 크라켄은 어찌할 생각이냐? 보니까 새끼 크라켄 때문에 찾아온 것 같은데. 아쉽지만 새끼 크라켄을 보내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는가.
고개를 저었다.
“새끼를 풀어 준다고 해도 어차피 남아서 분풀이를 할 가능성이 높아. 물론 안하고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것도 100퍼센트 확신은 못해. 그럼 차라리 지니고 있는 게 낫지.”
물론 새끼를 지니고 있는다고 해서 당장에 크게 이득을 볼 것이 없었다.
새끼가 있든 없든 어미 크라켄은 공격을 해 오고 있었다.
‘뭐. 자기 공격도 버티지 못하는 약한 새끼는 필요 없다 그건가?’
크라켄에게 직접 대답을 들어 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서 녀석을 상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건 알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현재의 내가 녀석에게 얼마나 통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동안 전력을 다해 볼 대상이 없었으니까.
쿠우우웅!
어느새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45도 경사가 진 상태로 크라켄과 마주 보았다.
크라켄의 약점은 바로 저 눈.
32개나 되는 눈은 사각지대를 없애 주는 장점을 지녔지만 동시에 가장 약한 부위였다.
배가 더욱 기울었다.
“으, 으어어!”
“악!”
등반자들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파악!
나 역시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바닥에 있는 나무판에 발을 고정했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 시전해 둔 마법을 조종했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공격해 오려고 한다는 것을 안 것인지 배를 움켜잡고 있던 다리를 이용해 눈을 방어하고 있었다.
하나 날아가는 공격이 더욱 빨랐다.
파앙! 파파파파팡!
연달아 터지는 다크볼트의 강력한 폭발력이 충격파를 통해 전해져 온다.
“크호오오오옹-!”
크라켄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이 비명의 울음소리인지 분노의 울음소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 안 끝났어.”
제일 강한 힘이 담겨 있는 십자가의 빛이 녀석에게로 날아갔다.
빛이 녀석의 눈에 닿기 직전.
사아아악!
재빠르게 크라켄의 다리가 막아섰다.
치익……!
초고열의 빛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에는 검은 그을림만 남아 있었다.
탑이 개입해 밸런스가 되었어도 다리의 튼튼한 맷집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다.
[풍요를 품은 술의 도취자가 그보다 더 강한 공격이 없냐며 호탕하게 웃습니다!]
[힘을 중시하는 자가 방금 전의 일격은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크라켄이 등장하니 조용하던 신좌들이 시끄러워졌다.
끼기기기!
그래도 공격이 아예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배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우오오옹-!”
몇 개의 눈을 잃은 크라켄이 살짝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지레 겁을 먹어서? 절대로 아니었다.
“공격 방식을 바꾸려는 거야.”
“캬항?”
-방식?
크라켄의 다리가 순식간에 홀쭉하게 변했다.
“온다!”
쉐에에엑!
다칼의 물음에 답할 틈도 없이 크라켄의 다리 끝에 있는 뾰족한 촉수가 직선으로 파고들었다.
푸욱!
“커억!”
보호막도 두른 상태이고, 보자마자 반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공격을 피해 가질 못했다.
오른쪽 옆구리를 찔러 버렸다.
뚝. 뚝.
피가 흘러내린다.
-준석! 괜찮나!?
다칼이 다급하게 물어 왔다.
나는 상처 난 옆구리를 손으로 압박하며 힘겹게 입을 뗐다.
“역시 쉽진 않네…….”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다.
그리고 크라켄의 촉수에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두면 몸이 마비되고 심하면 즉사에 이를 수 있었다.
-당장 치유가 필요해. 내가 엄호를 할 테니 그동안 치유해라.
“그래.”
등가교환.
잠시 전선을 다칼에게 맡기고 나는 치유에만 집중했다.
[천공의 주인이 꼴좋다고 크게 웃어 댑니다.]
메시지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제우스는 12층 이후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더니 내가 다치고 나서야 비웃음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온다.
“어디 방구석에 처박혀 여자랑 놀고 있는 줄 알았더니, 설마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거야? 변태도 아니고. 그리고 신좌가 그렇게 할 짓이 없나. 쯧쯧. 한심하다. 한심해.”
일부러 들릴 듯 말 듯 얘기했다.
하늘에 천둥 번개가 치고 있긴 하지만 이곳은 제우스의 영역이 아니었다.
[천공의 주인이 대체 뭐라고 지껄인 건지 더 크게 말해 보라고 합니다.]
“못 들었으면 닥치고 보고 있기나 해.”
나는 상처 치유를 끝낸 뒤 앞을 지키고 있는 다칼을 쳐다보았다.
그는 몸집을 키운 채로 뻗어 오는 촉수들을 막아 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 막아 내기 벅차 보인다.
아무래도 묵직한 공격들을 계속 받아 내고 있으려니 무리가 따르는 것일 터.
“이제 물러나!”
옆으로 빠지는 다칼을 보며 마법을 시전했다.
다크스윔.
다칼의 등에 올라탄 채 곧바로 외쳤다.
“달려!”
“캬하아아앙!”
다칼이 촉수를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쉐에에엑!
촉수들이 아슬아슬한 차이로 뒤를 지나친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이대로 있다간 우리가 당해!”
나는 달리고 있는 방향을 보며 좌측으로 꺾으라 말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점프해!”
점프하는 방향에는 크라켄이 있었다.
다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면을 세게 박찼다.
파앙!
공중에 떠오른 나는 다크소울을 시전했다.
우어어어-
반지에 있던 영혼들이 몸에 스며들었다.
[다크소울(Lv2)을 사용하였습니다.]
[영혼들의 힘을 흡수하여 모든 능력치가 놀라울 정도로 상승합니다!]
[다크소울 스킬이 시전되는 동안에만 상승한 능력치가 유지됩니다.]
[신체 부하가 시작됩니다!]
[영혼들이 가지고 있던 일부 스킬들을 획득합니다!]
[매직스피어(Lv13)를 배웠습니다.]
[치명적인 타격(Lv7)을 배웠습니다.]
[프리징워크(Lv14)를 배웠습니다.]
[다크소울 스킬이 시전되는 동안에만 획득한 스킬들을 사용이 가능합니다.]
정신 부하는 오지 않았다.
빠르게 얻은 스킬들을 살핀다.
‘매직스피어는 가진 것보다 약하니 필요 없고, 치명적인 타격이랑 프리징워크는 쓸 만하겠어.’
그 사이에 촉수들이 날아 들어온다.
이전보다 조금 더 느리게 날아오는 느낌이었다.
신체 능력이 올라가며 눈의 반응이 달라진 것이다.
다칼이 어둠으로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태태태탱!
한 번은 막아 냈으나 그것이 계속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다칼! 힘을 비축해!”
다칼이 보호막을 걷어 내자마자, 나는 다크스윔을 사용해 단숨에 크라켄의 머리에 다다랐다.
“시선을 끌어!”
이어서 머리에 착지한 다칼에게 소리쳤다.
-알았다!
다칼이 시선을 끄는 동안 나는.
프리징워크.
쩌저적. 쩌저적.
한 발자국씩 걸으며 크라켄의 머리를 천천히 얼려 나간다.
그러다 32개의 눈동자가 있는 곳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다크버닝!
[저주가 통하지 않아 튕겨져 나옵니다!]
‘역시 이 마법은 통하지 않는군.’
다크레인.
하늘에서 검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광염! 홀리크로스!
씨이잉-
지팡이 끝 부분을 땅에 끌며 나머지 한 손에 만들어진 십자가 형상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이런 걸로는 크라켄에게 더 큰 흠집을 낼 수가 없다.
나는 지팡이에 담긴 힘을 오랜만에 방출시켰다.
“일시 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