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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10화 (110/230)

회귀한 탑 등반자 110화

110화 크라켄

얼핏 보면 문어처럼 생겼지만, 녀석은 확실히 크라켄이었다.

크라켄만이 가진 외형적 특성인 32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성체가 아닌, 새끼 크라켄이었다.

“꾸우-.”

“대체 왜 여기에 새끼 크라켄이 있는 거지?”

이것과 관련된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또한 이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것인지라 이걸 어디다가 써먹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아니…… 애초에 쓸모가 있는 건 맞나?”

크라켄은 전설에 나오는 바다 괴물이다.

하나 바다가 아닌 지상에서는 그저 먹잇감일 뿐이다.

그리고 다칼처럼 길들인다고 해서 길들일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말이다.

설사 길들인다고 해도 문제였다.

‘성체가 되는데만 수백 년은 걸리지.’

그나마 성체가 돼야 쓸 만할 텐데. 쓸 만해질 때쯤이면 난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이 여기에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이다.

“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비록 길들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걸 팔아먹는다면 분명히 비싼값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려 새끼 크라켄이다.

희소성도 뛰어나고 반드시 사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중층부에 가면 괴짜들도 많으니까.’

그때.

사악!

다칼이 녀석을 잡아채 가며 그대로 입 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어딜!”

나는 다시 잽싸게 가져왔다.

그러고는 다칼의 머리통을 한 대 때렸다.

“씁. 이게 얼마나 비싼 상품인데! 다짜고짜 먹으려고 해. 절대로 안 돼.”

“캬하아아응…….”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에는 쓸모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먹어 주려고 했더니.

“그건 그때고. 비싼 상품이니까 건들 생각하지 마라.”

“추르읍.”

혀를 날름거리는 다칼.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먹어 버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먹지 못하게 관리를 잘해야 할 듯싶었다.

“근데 어디다가 두지.”

살아 있는 걸 아공간에 넣을 수는 없으니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방법을 떠올리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래. 저걸로…….”

박스 옆에 있는 나무작대기 하나를 가져와 새끼 크라켄을 거기다 꼬았다.

“꾸우~.”

“좀만 기다리라고…… 다 됐다!”

꼬챙이로 만들어 허리춤에 끼워 넣었다.

새끼 크라켄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온몸이 꼬여 있었기에 소용이 없었다.

되레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자기 몸이 꼬일 뿐이었다.

“쩌업.”

다칼이 입맛을 다신다.

나는 다시 한번 경고했다.

“이놈은 먹으면 안 돼. 절대로.”

-아깝긴 하지만 알겠다.

여기서 더 이상의 볼일은 없기에 선주 창고를 빠져나왔다.

“꾸우~.”

수확도 끝냈겠다, 이제는 D구역에 남아 있는 씨로버들을 마저 토벌할 차례였다.

* * *

금방 소문이라도 난 것인지 아무도 없던 4층에는 등반자들로 미어 터졌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수확을 제대로 못할 뻔했다.

“후~.”

나는 소울을 얼마나 수확했는지 확인했다.

213.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수준이네.”

흐뭇하게 수치를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을 날아왔다.

옆을 돌아보니 등반자 대여섯 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블랙 소울을 많이 수확한 것을 알고 빼앗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가서 치워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보다 더 걱정되는 시선이 있었다.

“크으응.”

다칼이 오직 새끼 크라켄만을 지그시 바라봤다.

‘보고 있으면 왜 이리 불안하지?’

오래 산 신수고 뭐고 먹을 것 앞에서는 이성을 잃는 경우가 있기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래도 먹지 말라고 한 이후에는 조용히 있었다.

다만 그 인내심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다들 일로 와! 5층도 열렸다고!”

“뭐? 정말이야? 가 보자!”

누군가가 5층의 입구 앞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5층은 4층보다 조금 늦게 개방되니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5층에서 잡을 놈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그 와중에 나를 쫓는 녀석들을 시야 안에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5층은 밑에 층들과는 다르게 공간이 뻥 뚫려 있었다.

아주 커다란 복도가 하나이고 사이드에 시설들이 갖춰진 형태였다.

“이준석!”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딱히 반응하지 않은 채 하던 일을 계속했다.

“들었으면서 사람 말을 무시하긴.”

코앞까지 온 강예지가 두 손에 쥔 실끈을 팽팽히 당겼다.

“왜 그걸로 내 목이라도 조르려고?”

“어머. 그쪽 소원인가 봐? 목졸림을 당하는 게.”

“아니. 미안하지만 그런 취미는 없어서. 워낙 살벌하게 쳐다봐야지.”

“뒤에서 아까 전부터 불렀는데. 반응하지 않으면 누구든 이렇게 쳐다볼걸?”

강예지는 더 할 말이 남아 있는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쿠우웅! 쿠우웅! 쿠우웅!

“뭐, 뭐야!?”

열려 있던 문들이 전부 닫히고 있었다.

심지어 계단에도 두꺼운 철문이 내려앉았다.

꼼짝없이 5층에 갇혀 버린 것이다.

하지만 5층에 올라온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걸 모르고 있는 등반자들은 꽤 당황한 표정이었다.

강예지도 예상치 못했다는 듯 표정이 굳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우어어어-

벽과 바닥에 있는 그림자를 타고, 녀석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섀도우.”

온 신체가 어둠으로만 되어 있는 섀도우는 크루즈 선장에게 충성하는 암살자들이었다.

채앵! 서걱!

“으아악!”

암살에 특화되어 있는 놈들인 만큼 움직임이 매우 날렵했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라 할 수 있는 칠흑의 검은 길이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서도 찌르기가 가능했다.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되며 이내 시야에는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5층을 지배하는 섀도우들이 중앙 복도로 집결하여 새로운 존재로의 변신을 꾀합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기 전에 그들을 저지하십시오.]

새로운 존재라 하면 섀도우의 상위 존재인 커즈섀도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섀도우 백여 마리 이상이 모여서 학살을 자행하면 탄생하는 놈이었다.

나는 커즈섀도우가 되지 못하게 사람들을 보호했다.

모르는 놈들을 보호하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들이 학살을 당하면 꼼짝없이 커즈섀도우를 맞이해야만 한다.

물론 상황이 악화되어 커즈섀도우가 탄생한다고 해도 그놈을 못 처리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되면 내가 짜놓은 계획이 틀어져 버린다.

‘커즈섀도우를 상대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지체돼.’

내 목적은 커즈섀도가 아닌 실질적으로 5층을 지배하는 보스였다.

크루즈의 선장 카발.

녀석을 쉽게 잡는 타이밍은 5층이 오픈되었을 때 극초반뿐이다.

그렇기에 섀도우들을 빠르게 제거해 나갔다.

“으윽! 이 새끼들. 왜 이리 빨라!”

섀도우가 만만치가 않다는 것은 강예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항상 가볍게 적을 처리해 오던 그녀는 섀도우를 상대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몸 곳곳에는 자상을 입었다.

“다칼! 뭐 하고 있어? 날뛰지 않고! 새끼 크라켄은 그만 좀 보고!”

“캬하아아앙!”

-내가 언, 언제 새끼 크라켄을 보았다고! 안 보았다!

거짓말.

아까 전부터 보고 있었던 거 다 알고 있다.

주변의 전투가 너무 격렬히 일어나서일까?

“꾸우우! 꾸우우!”

새끼 크라켄이 아까보다 더 크게 울고 있었다.

소리가 시끄러워, 싸우는데 방해가 되긴 했지만 섀도우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이기에 애써 무시했다.

“하아~ 하~.”

조금 무리해서 처리한 탓인지 숨이 차온다.

그러나 중앙 복도로 모여들던 녀석들을 모조리 정리해 냈다.

[섀도우들을 전부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30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짧은 시간이긴 해도 고생한 것치고는 보상이 짰다.

섀도우를 처리하고 복귀한 다칼이 키웠던 몸집을 줄이며 말했다.

-놈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군.

말하기 무섭게.

콰하앙!

복도 끝에 있던 문이 직선으로 날아왔다.

나는 살짝 점프해 뒤돌려차기로 날아든 문을 걷어차 버렸다.

파삭!

바닥에 착지한 뒤 문이 날아든 곳을 주시했다.

툭. 툭. 툭.

한쪽은 목발을 짚은 채 방에서 걸어나오는 한 인물.

키는 2미터에 선장의 모자를 쓴 그는 듬성듬성자란 수염 대신에 불을 머금은 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기괴할 정도로 큰 오른팔은 썩어 뭉드러진 것처럼 검었다.

오른손에는 주홍빛으로 물든 장검이 들려 있다.

또 왼손에는 거대한 포를 지니고 있었다.

저놈이 바로 크루즈의 선장 카발.

툭. 툭. 툭! 툭!

점차 가까워질수록 덩치가 커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커져 가고 있었다.

다칼이 몸집을 키웠던 것처럼 그 또한 몸집을 키웠다.

2미터에 불과하던 키는 어느덧 5미터를 넘었다.

하지만 단순히 덩치만 큰 것이 아니었다.

몸집이 커지며 그가 들고 있던 무기들도 같이 커졌다.

탱크 포신보다 더 커진 포는 위협적으로 보였다.

“꿀꺽…….”

그를 쳐다보는 등반자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여태 만난 녀석들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쿵!

코앞까지 온 카발이 이쪽을 쓱 훑어본다.

그러더니 이내 포를 겨누었다.

“피해에에에!”

수욱, 콰아아아앙!

포에서 뿜어져 나온 포탄은 굉장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냈을 뿐만 아니라 단숨에 열댓 명이 넘는 등반자들을 소멸시켜 버렸다.

카발은 말없이 또 이쪽을 훑더니 이번엔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검을 묵직히 휘둘렀다.

대각선으로 휘두른 검의 일격이, 거센 폭풍이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바닥의 나무판들이 전부 뒤집어지고 공중으로 비산했다.

“크악! 버텨!”

등반자들이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발에 힘을 주고 있었다.

하나, 몰아치는 바람은 그저 견디는 것만으로도 몸에 충격을 줬다.

“쿠화악! 쿨럭!”

대다수가 피를 토했다.

“으으윽!”

강예지 또한 버거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런 선장놈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속삭였다.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질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파괴력만 센 돼지네.”

지금의 카발을 상대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까다롭고 어려운 것으로 따지면 이전에 만났던 그레이 선원이 훨씬 더 귀찮았다.

‘네놈이 파워로 밀어붙이는 만큼 나도 파워로 밀어 주지.’

리치네스와 엘리렌스를 시전한 뒤, 빠르게 검은 구체를 생성해 나갔다.

[행운의 룰렛이 발동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룰렛에서 <5>가 나왔습니다!]

[발동한 스킬 레벨에 <+5>가 일시적을 적용됩니다!]

[마나볼트 레벨이 일정 레벨에 도달하여 더 파괴적인 공격이 가능해집니다.]

마침 룰렛도 터졌고.

어둠의 반지의 고속캐스팅 유지와 올랜드 마나 반지의 조건부 효과도 터지며 마법 시전 시간이 단축됐다.

구체를 쪼개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구체덩어리가 금방 오십여 개를 넘겼다.

그것으로 모자라 홀리크로스까지 시전했다.

‘간다!’

지팡이를 앞으로 움직이며 마법 폭격을 가하려는 순간.

우우우우우옹-!

바깥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뒤.

쿵!

엄청난 충격이 배를 덮쳤다.

그때 또 다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꾸우우! 꾸우우!”

‘설마…….’

나는 다급히 창문을 내다봤다.

“허어…….”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쏴아아아!

바닷물을 뚫고 올라온 거대한 그림자.

성체 크라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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