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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07화 (107/230)

회귀한 탑 등반자 107화

107화 그레이 선원

크루즈 내부는 사각형 구조로 쪼갰을 때 A, B, C, D 총 네 구역으로 나뉘고 5층까지 존재했다.

지금 서 있는 자리는 1층의 A구역과 가까운 대형 아트리움이었다.

B, C, D 구역을 이어 주는 연결지이기도 한 이곳은 드넓은 공간에 옥상까지 개방되어 있어 올려다보기만 하면 위층의 광경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유리천장 너머로는 먹구름과 함께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것도 매우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큰 보름달이다.

“아우우우-!”

다칼이 보름달을 보며 길게 울부짖었다.

-달을 보고 있으니 힘이 솟는 기분이군.

나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식사를 해서 그런 게 아니고?”

-음? 내가 뼛다귀를 먹었다는 거 어떻게 알았지?

“입에 옷 찌꺼기가 묻었잖아.”

“캬항? 퉤!”

옷 찌꺼기를 뱉은 다칼은 혀로 한번 입술을 핥았다.

-그런데 강예지, 그 여자는 왜 안 보이지?

“여기로 안 불렀어. 지금쯤 헬스장에서 씨로버들과 데이트를 끝마치고 다른 곳을 돌아다니는 중이겠지.”

-잘했군. 딱 봐도 뒤가 구린 여자다. 언제 뒤통수칠지 몰라.

“알고 있어. 어차피 크루즈에서만 이용하고 말 인간이야. 그 여잔 지금 자기의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믿겠지만, 애초에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지.”

-하긴. 그대라면 누구를 가까이하고 멀리해야 할지 잘 알고 있겠지. 한데 수영장과 컨테이너를 공략한 후에 이곳에 온 이유가 있나?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

“지금이야 그렇지.”

다칼은 크루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다.

탑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도 이런 상세한 것까지 전부 아는 건 아니니까.

나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째각. 째각. 째각.

출항을 한 지 대략 6시간이 흘렀다.

오후 11시49분을 가리키는 초침.

곧 이곳에서 재밌는 쇼타임이 벌어질 것이다.

-무슨 이벤트라도 발생하나 보군.

다칼이 족집게처럼 맞췄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9분 후면 오후 12시에서 1시까지만 등장하는 놈을 만나게 될 거야. 첫날에만 잡을 수 있는 놈이라 타이밍을 놓치면 영영 못 잡아. 일부러 미션을 실패해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녀석을 잡을지언정 내가 얻고자 하는 템은 얻지 못해.”

-특정 시간대에만 등장하는 녀석이라. 혹시 생김새나 특징이 어떻게 되지?

“한쪽 눈에 붕대를 감고 있지. 그리고 이름 없는 씨로버랑 다르게 따로 이름도 있어. 그레이라고.”

-아! 그레이 선원을 말하는 건가?

“아는 놈이야?”

-직접 마주해 본 적은 없지만 등반자들이 떠들어 대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상대하기가 꽤 까다로운 놈이라던데.

“틀린 말은 아니네.”

그레이 선원.

크루즈선의 2등 항해사이자 동료들에게 살해당한 비운의 사내였다.

그래서인지 항상 혼자 다니고 원한의 골이 깊어 강한 저주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저주가 참 골치 아프지.’

녀석을 혼자서 상대할 줄 알았는데, B구역 입구에서 두 일행이 걸어나왔다.

서로 딱 붙어 있는 남녀는 애인으로 보였다.

둘은 나를 발견하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먼저 아는 체를 해 왔다.

나는 고개만 살짝 까닥여 인사를 받아 줬다.

여자는 소극적인 편인지 남자를 끌어안은 채로 살짝 뒤에 숨어 있었다.

“하아~ 멀리서 봤을 때는 또 그 녀석들인가 싶었는데. 이렇게 사람을 다시 보게 되니 뭔가 안심이 되네요.”

“그 녀석들이라면 씨로버를 말하는 겁니까?”

“아, 예. 같이 있던 일행들이 전부 당했습니다. 저랑 여자 친구만 겨우 빠져나왔죠.”

아무래도 B구역의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A구역은 그럭저럭 쓸 만한 등반자들이 모여 있어서 씨로버들을 수월하게 정리한 편이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씨로버는 상대하기 쉬운 녀석들이 아니다.

어찌보면 B구역의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 크루즈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인원은 절반.’

나머지 절반은 죽음을 맞는다.

“그쪽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나는 왔던 길을 가리켰다.

“저쪽 칸에서 왔습니다.”

“혹시 저쪽도 그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나요?”

“음. 아뇨. 오는 길에 있는 녀석들은 다 처리해서. 안전할 겁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여기에 서 계시는지…… 여긴 공간이 탁 트여 있고,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안전한 곳에 가서 숨어 있는 게 낫지 않아요?”

“음…… 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이 둘은 이곳에서 얻어 갈 것을 찾는 것보단 생존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둘만 살아남은 건가?’

하지만 혹시나 모르는 일이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서, 일행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블랙 소울을 전부 탈취했을 수도 있었다.

‘지금도 연기를 하면서 내 경계를 낮추려는 의도인지도 모르지.’

나는 둘의 몸을 스캔했다.

남자의 한쪽 주머니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저 정도면 딱 블랙 소울이 들어갈 크기이다.

‘오면서 그냥 몇 놈 처리했을 수 있지. 근데…….’

자세히 보니 뒤편의 여자가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살짝 옆으로 이동해서 보려고 하자 타이밍이 좋게 남자가 같이 움직였다.

“저. 혹시 그렇다면 안전하게 머물 장소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안전하게 머물기만 할 생각이라면 객실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B구역에도 있을 텐데.”

“B구역이라면……?”

“그쪽이 온 데가 B구역입니다.”

“아! 근데 객실요? 아니. 여기까지 오면서 객실 같은 건 보지 못했는데…… 혹시 그런 객실이 있으면 안내를 좀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 공짜로 안내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는 준비해 두었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거래 큐브를 꺼내 들었다.

“안내만 해 주면 5천 포인트를 드리겠습니다.”

5천 포인트면 받는데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적당한 가격이다.

그렇다고 싼 것도 아니었다.

‘뭔가 수상하군.’

뒤에서 뭔가 꿍꿍이를 숨기는 것도 그렇고,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수상쩍었다.

그때 뒤에 있던 다칼이 말했다.

-조심해라. 여자가 칼을 들고 있다.

나는 속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이 녀석들…….’

방심한 틈을 타서 날 찌를 생각이었던 것이다.

여태 보여 준 것도 전부 연기.

‘근데 이 여자. 살기를 감추는데 능해. 아마 관련 스킬을 지니고 있겠지. 아님 감추는 훈련을 했거나. 아무튼. 어디 한번 장단을 좀 맞춰 줘 볼까.’

남자는 조금 조급해졌는지 보답의 대가를 툭 늘렸다.

“조금 부족하면 1만 포인트 어떻습니까?”

“안내만 하는데 1만 포인트나 말입니까?”

“아…… 혹시 저희가 이상한 짓이라도 벌일까 걱정하는 거라면 굳이 안내를 해 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 주시면 돼요.”

그는 한번 뒤로 슬쩍 빼는 척을 했다.

전부 의심을 지우려고 하는 행동이다.

‘보통 이때 다들 넘어갔겠지.’

“아니요. 그냥 안내해 드리죠. 어차피 여기서 할 일도 없으니까. 근데 뭐든지 선지급. 아시죠?”

손을 내밀자,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거래 큐브를 건네줬다.

조금은 미룰 줄 알았는데 너무 순순히 내준다.

‘뭐. 덕분에 1만 포인트는 공짜로 벌었네.’

나는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따라오시죠.”

뒤로 돌아서 완전히 등을 보였다.

그러자 내내 감추고 있던 살기가 느껴진다.

‘마지막에는 숨기지 않겠다는 건가.’

칭!

보호막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등을 찌르려고 시도한 여자를 쳐다봤다.

“어……?”

두 눈을 마주친 여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지른 일격이 통하질 않았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응을 보아하니 여태 이 일격으로 전부 당했나 보지?”

“칫!”

여자가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나는 주위의 어둠을 끌어와 그녀를 속박했다.

“끄윽! 뭐야!? 이건!”

이어서 남자를 속박하려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젠장! 이거 놔!”

다칼이 자신의 어둠으로 이미 속박을 시켜놓은 상태였다.

“살인자 커플이라…….”

본성을 드러낸 두 인간은 살육에 눈을 뜬 광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둘이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근데 상대를 신중히 골랐어야지.”

다크소드.

지이잉-

두 개의 검을 소환해 각자의 목에 찔러 넣었다.

푹! 푹!

“커억…….”

“끄윽…….”

여기서 살려 두면 어디선가 반드시 살인을 또 저지르리라.

나는 둘을 정리한 후 남자의 주머니에 있는 블랙 소울을 챙겼다.

“오호~ 꽤 많이 가지고 있었네.”

소울에는 숫자 20이 적혀 있었다.

여자에게서도 2이 적힌 소울이 발견되었다.

단 둘을 정리했는데, 단번에 22개나 되는 소울을 얻어 냈다.

‘기존의 내 거에서 다칼이 가져온 거랑 이 둘의 것까지 합하면…….’

각 소울이 하나로 합쳐지며 새로운 숫자가 새겨졌다.

123.

아직 반나절도 안 지났건만, 총 123개를 모았다.

“벌써부터 느낌이 좋아.”

회귀 전의 개수를 떠올려 보면 첫날에는 50여 개 정도를 모았었다.

그리고 3일 차가 되었을 때는 겨우 200개 근처로 모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의 이 기세라면 3일 차에는 300개를 모으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상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되면 대폭으로 능력 상승을 꾀할 수 있어. 갈수록 능력치를 올리기 쉽지 않아지니 이럴 때 최대한 많이 끌어모아야 돼.’

잠깐 커플을 상대하느라고 가만히 잊고 있었는데. 슬슬 그레이 선원이 등장할 타이밍이었다.

손목시계를 보자 초침은 어느덧 오후 11시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분 남았다.’

째각. 째각. 째각.

나는 초침이 움직이는 걸 쭉 주시했다.

오후 12시를 넘겼다.

뻐꾸기시계처럼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전운이 도는 긴장감이 그를 대신 채웠다.

“후우~.”

입김을 뿜어냈다.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져서 그런지, 입김의 연기가 도드라졌다.

그로부터 10초쯤 흘렀을까?

무서우리 만큼 고요한 적막이 돌았다.

그때.

끼이익. 철컹! 끼이익. 철컹!

천장에 매달려 있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철컹! 끼이익. 철컹!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하게 흔들렸다.

기어코 샹들리에가 밑으로 떨어졌다.

챙그랑!

크리스털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샹들리에 위에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곧 한쪽 눈에 붕대를 쓰고, 낡아빠진 엽총을 손에 쥔 거구의 사내가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나머지 한쪽 눈은 에메랄드빛처럼 번뜩였다.

거기에 썩은 볼살 틈 사이로 바다벌레 수십 마리가 지나다녔다.

저놈이 바로 그레이 선원.

녀석은 나타나자마자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말도 없이 총구를 겨누었다.

찰칵.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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