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04화
104화 화이터 (2)
“크하아악!”
화이터가 꼼짝없이 번개에 관통당했다.
윈드퍼드보다 빠른 일격이었기에 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파직! 파지지지!
다시 팔과 손에 전기가 휘감기고 있었다.
[잠자고 있던 삼신용 중에 하나인 뇌룡이 당신에게 힘을 빌려주었습니다.]
[뇌룡이 힘을 완벽히 통제하면 그대를 인정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나는 인정이란 단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삼신용의 반지를 얻고 난 뒤로 마나의 숨결 이외에는 효과를 딱히 본 것이 없었다.
각 뿔이 지닌 잠재된 힘을 이끌어 내려고 해도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내 반응을 보이지 않던 반지의 힘이 이렇게 발현되었으니 기분이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 없었다.
힘을 완벽히 통제하라는 것은 만뢰를 먹은 나에게는 식은 죽 먹기 수준이었다.
파즈즈즈-
팔과 손에 휘감은 전기를 손끝에 모았다.
가시가 치솟듯 위로 뻗어 올라가고 점점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공격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말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전기가 열기의 압축을 견디지 못해 멋대로 뻗어 나가리라.
치이이-
열기를 통제하기 위해 흐르는 전기에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신체 내부로 끌어들였다.
그러자 열기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열기를 다른 곳으로 배출한 후, 안정을 찾은 전기를 손에 쥔 채 몸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며 전력으로 투구했다.
콰자자자자!
손을 떠난 전기가 번개가 되어 빠르게 뻗어 나갔다.
“크하아아악!”
또 한 번의 일격을 맞은 화이터가 오른쪽 가슴을 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첫 타를 허용한 것도 영향이 컸다.
지금은 빈틈투성이였다.
나는 주춤하고 있던 어둠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빌어먹을!”
다가오는 어둠을 보며 다급해진 화이터는 손에 쥐고 있던 마이크를 떨구었다.
퉁!
마이크 중심으로 음표가 그려진 마법진이 생겨났다.
녀석에게 접근하던 어둠은 마법진 안으로 기어 들어가지를 못한 채, 문을 두들기듯 마법진으로 생긴 보호막을 계속 두들겨댔다.
어둠에 잡아먹힐 것 같으니 아예 방어태세로 돌아서 버린 것이다.
“그래 봐야 잠깐이지.”
리치네스.
[일시적으로 마나를 담는 그릇이 넓어집니다.]
우선 마나 그릇을 넓히고 파괴력이 강한 마법을 시전했다.
다크볼트와 홀리크로스.
양손에 속성이 다른 조합을 꺼내 들었다.
홀리크로스는 일정한 마나를 불어넣은 뒤 내버려 두고 다크볼트는 계속 개수를 늘려 나갔다.
그리고 준비가 끝났을 때.
등가교환.
다크볼트 하나를 화이터 옆으로 이동시켰다.
콰아앙!
“오호~ 좀 하는데?”
분명히 직접적인 타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터는 여전히 마법진을 유지 중이었다.
대단한 집중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바닥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을 어지럽히면 어떻게 될까?
다크월.
쿠구구구!
마법진으로 유지되던 보호막이 무참히 깨져 버렸다.
“아니! 내 마법진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준비했던 다크볼트와 홀리크로스를 녀석에게로 날려 보냈다.
콰가가가강! 콰아아앙!
다크볼트가 먼저 녀석을 타격하고 홀리크로스로 마무리를 지었다.
“쿠억!”
십자가의 형상이 화이터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하아~ 하아~.”
화이터가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칠게 숨을 내쉰다.
“끝이군.”
나는 뇌룡의 힘을 끌어모아 녀석의 머리에 번개를 직격했다.
파바앙!
그것으로 끝이었다.
머리가 뒤로 넘어가며 결국 땅에 쓰러졌다.
그런데.
“흐흐흐…… 하하하!”
쓰러진 육신 위로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초반에 보았던 연기와 비슷했지만 거기서 모습을 드러낸 화이터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체가 없는 투명한 영혼이었다.
그리고 기존의 덩치보다 훨씬 더 큰 크기로 변했다.
대략 5미터쯤 될까?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개같이 부활했네.”
화이터는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혼자서 실컷 웃다가 이내 분위기를 잡고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나? 마도사! 죽은 자의 황혼은 저물지 않는 법이지! 크하하하!”
그러더니 이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폭풍이 몰아치며!”
후우우우웅-!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녀석이 주변의 어둠을 걷어 내고 가사를 현실화했다.
“천둥번개가 치는 밤!”
쿠릉, 콰가가강!
“바 무대 위에 섰네.”
자리에는 무대가 생겨났다.
그 위에 선 화이터는 기분 나쁜 웃음을 터트리며 폭풍으로 몰아치는 비를 잔에 받아서 마셨다.
“그러나 바뀌지 않지! 노래를 부르면 환호로 답하던 관객들! 나의 입에 맞추어 음악을 하던 연주가들!”
“크흑!”
노래가 진행될수록 그가 주변에 끼치는 영향은 강력해졌다.
점점 다크포스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더 유지하기가 힘들어지기 전에 끝을 내야 했다.
“아주 기고만장해졌군.”
그러나 녀석이 육신을 버리고 영혼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나는 어둠의 반지를 낀 손을 내뻗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영혼 흡수.”
수하아악-!
반지에서 죽음을 데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곧 그 안에서 뻗어 나온 짙은 어둠이 화이터를 데려가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화이터가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으윽! 이 힘은!?”
화이터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순순히 따라와. 발버둥 쳐 봐야 어차피 재물이 되는 건 똑같으니까.”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닌 영혼이라고 해도 반지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으아악!”
기고만장하던 화이터의 표정이 구겨진다.
그럼에도 꽤 잘 버티고 있었다.
“네놈! 평범한 마도사가 아니구나! 어떻게 죽음의 왕이나 쓸 수 있는 힘을!”
“그러니 육신을 끝까지 간직하고 있어야지.”
서둘러 쓸 만한 육신이 있는지 찾는 모습이다.
하나, 다크포스를 전개 중이어서 다른 시신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렇게 끝날 순 없다!”
화이터가 마저 노래를 불러나간다.
“원한을 간직하고 넋을 지배하지!”
가사가 바뀌었다.
구어어어-
떠도는 영혼들이 그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죽어 간 그대들을 위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나 싶더니, 녀석은 영혼을 불러들여 흡수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녀석이 끌어모은 영혼들을 먼저 흡수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내 화이터가 마지막 대사를 읊는다.
“그렇게 새로운 황혼이 시작되네!”
[화이터의 영혼이 초월하는 힘을 손에 쥐었습니다!]
[화이터가 변화합니다!]
초월하는 힘이라?
대체 무슨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로 내버려 두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크하하하하!”
더욱 몸집이 커져 간다.
[죽음이자 어둠을 그늘에 진 자가 화이터의 변화를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나는 녀석이 변화를 마치기 전에 반지에 손가락을 꾹 눌렀다.
끌어당기는 힘이 부족하다면 그 힘을 강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등가교환!
반지에 담긴 어둠의 힘, 아니 정확히는 죽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강화하는 마법을 시전했다.
“쿠헤엑!”
시전하자마자 피를 토했다.
아무래도 현재의 경지를 넘어선 힘을 강화하는 것이다 보니 마나 소모가 엄청났다.
하지만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으어억!? 대체 무슨 짓을!”
화이터가 어둠에 끌려가고 있었다.
우어어어-
다른 영혼들 또한 버티질 못하고 그대로 끌려온다.
“안 돼에에! 이 몸이 완전해질 수 있는 기회가!”
“닥치고, 순응해!”
“으아아아아!”
반지 속으로 화이터를 비롯해 수백의 영혼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영혼을 제대로 소화시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풀려나리라.
다행히 높아진 정신력 덕분에 수백의 영혼을 흡수하는 것은 수월했다.
다만. 문제는 화이터였다.
영혼이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수백을 흡수했을 때보다 더 힘들게 다가왔다.
“크윽!”
견디자.
견뎌 내야만 한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이전에 영혼을 흡수할 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내 화이터는 반지 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후하아~.”
크게 숨을 토해 내곤 반지를 쳐다본다.
우우웅-
반지가 아주 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어둠의 반지에 변화가 생깁니다.]
[어둠의 반지와의 동화율이 상승하였습니다!]
[어둠 지배력이 크게 늘어납니다!]
[영혼에 대한 지배력이 커집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방금 흡수한 힘과 반지에 각인된 스킬이 융화되어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 냅니다!]
[다크싱어(Lv1)를 습득합니다.]
[다크싱어(Lv1)를 배웠습니다.]
반지와의 동화율이 상승하며 뭔가 한층 더 안정된 기분을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둠 지배력이 크게 늘어 벅차다고 느꼈던 어둠을 가볍게 조종했다.
한데 무엇보다 큰 변화는 새로 얻어 낸 스킬이었다.
다크싱어.
세상에 없던 스킬을 습득해 냈다.
어떤 스킬인지 빨리 사용해 보고 싶었으나, 마음만 앞서고 그럴 여유가 없었다.
“쿠확!”
다시금 피를 토했다.
나는 빠르게 다크포스 시전을 멈추었다.
아니. 해제당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마나가 다 소진되어 버렸으니까.
얼굴에 핏기가 없다.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이 온몸이 차갑고 창백하다.
한데 갑자기 그릇에 마나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마나 회복이 아니었다.
[영혼의 초월하는 힘을 엿보았습니다.]
[진리의 일부를 쫓았습니다.]
[길(道)의 특성이 발동합니다.]
[대량의 마나가 올랐습니다!]
마나 그릇이 커지며 핏기가 없던 얼굴에 그나마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어둠에 가려졌던 바의 모습이 드러난다. 거기에 쉬지 않고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등반자들 최초로 화이터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셔를 처치한 업적으로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황혼의 죽음 목걸이가 지급됩니다.]
손에 쥐어진 목걸이는 황혼처럼 주홍색으로 빛나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보석 주위로는 해골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빛 또한 인상 깊다.
처음 보는 아이템이기에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템 확인을 미룬 채 주변을 살폈다.
우선 씨로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칼을 포함해 다른 등반자들이 힘을 합쳐서 해치운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강예지 또한 나를 노려본다.
정확히는 내 손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걸 노리려는 건가.’
하지만 강예지는 섣불리 나서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내 다칼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이쪽은 상황 정리가 끝났다. 그대도 상황 정리를 한 것 같군.
다칼이 내게 블랙 소울을 건넨다.
-받아라. 씨로버를 처리하고 얻은 전부다.
[블랙 소울을 획득하였습니다.]
개수를 꽤 많이 모았는지 소울의 크기가 거대했다.
소울에 새겨진 숫자를 확인했다.
35.
바에서만 소울 35개를 얻은 거면 많이 얻은 셈이다.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때.
“이봐!”
누군가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머리카락이 삐쭉삐죽한 사내였다.
“혼자서 보스를 독차지한 것도 모자라, 펫을 이용해 소울까지 다 차지해? 똥꼬 쇼는 우리가 다 하고! 네놈은 이득만 다 챙기니까. 좋냐! 어!?”
웅성웅성.
그 말에 등반자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말은 똑바로 하지. 독차지한 게 아니라 원래 내 것을 차지한 것뿐이다. 설마 이벤트가 그냥 발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그리고 내 펫이 소울을 차지한 건, 일부 몇 개는 그렇다 쳐도 다수는 직접 처리한 걸 수급한 것뿐인데?”
“시발. 증거 있어!? 이벤트를 네가 진행했다는 증거! 그리고 스스로 밝히셨네. 일부 몇 개는 남의 것이라는 걸.”
탑에서 내 것, 남의 것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거늘.
“저런 놈은 한번 짓밟아 놔야 정신을 차리지.”
“맞아! 그리고 일부 몇 개만 주웠다는 것도 거짓말 아냐? 거의 대다수는 원래 우리 거 아니었냐고? 일부 몇 개만 주웠는지 어떻게 알아! 해골새끼들이랑 싸우느라 바빠서 주변을 보지도 못 했구만!”
“그래! 저 녀석이 가진 거 우리 거 아니냐고! 당장 소울을 내놔!”
그러며 하나둘씩 무기를 들고 내게 접근해 온다.
“하아~.”
아무래도 싸움은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