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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02화 (102/230)

회귀한 탑 등반자 102화

102화 크루즈선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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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몰아치며 천둥 번개가 치는 밤.

바 무대 위에 섰네.

환희로 가득 차 웃음을 머금고 술 한 잔을 기울여.

그러나 바뀌지 않지.

노래를 부르면 환호로 답하던 관객들.

나의 입에 맞추어 음악을 하던 연주가들.

무대를 밝히는 휘황찬란한 불빛마저 더 이상은 볼 수가 없네.

모두 바다에 잠겨 어둠 속에서 침묵하네.

유일하게 반겨 주는 하얀 백골들.

홀로 연주하네.

홀로 열창하네.

원한은 저 너머 떨쳐 내고 넋을 달래네.

죽어 간 그대들을 위해.

그렇게 황혼이 저물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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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자세히 본 건 처음이었다.

노래가 구슬프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가사가 무엇인지 혹은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

그저 나오는 음절의 흐름에 따라 기분이 변하고 무의식적인 흥얼거림만 있었을 뿐.

단서는 이미 주어져 있었다.

하나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르골은 죽은 자들의 원한과 넋을 달래는 힘을 지녔어. 가사를 해석하면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바에 아직 남아 있지. 나는 오르골의 발동조건을 알아내 그 영혼들을 달래면 되는 거야. 그럼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찾을 거고.’

설사 지금의 예측이 틀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음 목적지는 바에 가는 걸로 정해졌다.

나는 곧장 방송실에서 나왔다.

“……벌써 볼일 끝났어요?”

강예지는 문을 두들기다 도저히 안 열리니 잠긴 문을 실끈으로 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손잡이 홈에는 실끈이 넣어져 있었다.

“방송실에서의 볼일은. 또 가야 할 곳이 생겼지만.”

짧게 답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녀가 뒤따라오며 말했다.

“또 가야 할 곳? 거기가 어딘데요? 아니지. 그것보다 아까부터 웬 반말?”

“반말은 그쪽이 먼저 하지 않았나?”

“응? 내가 언제?”

“1호실 앞에서.”

“아……! 그러네요. 그럼 나도 반말할게요. 뭐. 보니까 비슷한 또래 같은데.”

“마음대로.”

“근데 왜 대답 안 해 줘?”

“뭘?”

“가야 할 곳이 어딘지 말이야. 그리고 아무리 개인적인 볼일이라도 함께하기로 했으면 간단히 뭘 하는 건지정도는 설명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애초에 그런 거까지 알려 줘야 하나? 협력하기로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미션 생존만 해당할 텐데.”

“흐음…….”

“물론 지금이라도 점을 봐 주겠다면 말해 줄지도 모르지.”

점을 봐 달라는 건 진심이었다.

다음 단서를 찾아내기는 했지만 아직 오르골의 발동조건을 알아내지는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강예지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조건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다만 도움을 받게 될 경우, 히든 피스를 찾고 있다고 알려 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저 여자라면 어떻게든 히든 피스를 빼앗으려고 하겠지.’

그러나 히든 피스를 그녀에게 빼앗길 일은 없었다.

나름대로의 대비책은 이미 세워뒀다.

강예지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그냥 물어보질 말아야지. 무슨 점을 보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처럼 자꾸 점 얘기를 꺼내는지.”

“두 번밖에 안 꺼냈는데. 그리고 대가로 점밖에 볼 줄 모르니 점을 봐 달라는 거지. 다른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 다른 걸 해 달라고 말했겠지.”

그녀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점밖에 볼 줄 모른다니! 다른 것도 할 줄 알거든요!?”

“아.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건 확실히 재능 있어 보이네.”

“캬하하하!”

다칼이 크게 웃자 강예지의 표정이 굳었다.

여기서 더 장난을 쳤다가는, 진짜로 살벌하게 나올 기세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각자 갈 길을 가도 상관없어. 아쉬운 쪽은 내가 아니니까.”

“누군 아쉽다나.”

“먼저 팀을 맺자고 하지 않았나?”

“팀을 맺자고 한 건 사실이지만 이런 매달리는 느낌은 딱히 기분이 좋지 않네요.”

“그럼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말끝으로 망설일 것 없이 가던 길을 걸었다.

그녀를 이용하지 못하는 건 아쉽게 됐지만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매정하게 굴었는데도 따라붙는다고?’

나를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옆 호실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녀의 성격상 이것을 참아 넘겼다는 건 무언가 내게 얻어 낼 것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나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있으리라.

다른 이가 아닌 나와 굳이 같이 팀을 먹어야만 하는 이유가.

‘점을 봤군.’

어떤 점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점의 결과가 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보이는 행동이 이해가 간다.

그 누구보다도 점을 신뢰하는 여자이니까.

‘대체 뭘 얻어 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 * *

강예지는 자신에게 등을 보이는 있는 남자를 독살스럽게 쳐다봤다.

‘아으! 점이 보여 준 결과만 아니었으면 바로 목을 따 버리는 건데.’

1호실을 확보한 이후로 그녀는 점을 보았다.

자신에게 방해가 될 인물은 이미 제거한 상황.

그렇다면 이제 미션에 가장 크게 도움이 될 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차례였다.

그리고 점의 결과는 뜻밖에도 옆 호실을 쓰는 남자로 지명됐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능력 또한 어둠 속성 마법에 능하다는 것 말고는 알지 못했다.

잠깐 발길질을 하는 걸 보았는데, 신체능력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외에는 소환수 한 마리를 데리고 다녔다.

소환수의 지능이 꽤 높은 편인지 인간의 말을 알아들었다.

아까 전에 자신을 비웃었을 때는 순간 실끈으로 공격을 할 뻔했다.

‘미션만 끝나면 저 소환수 놈도 목을 따 버려야지. 아! 아니지. 아니야. 털을 벗겨서 모피 모자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다만 두 놈을 처리할 때 조심해야 했다.

‘이름이 이준석이라고 했지?’

얼굴도 처음 보지만 이름도 처음 들어 본다.

가명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그는 최소한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탑을 오른 등반자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올랐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기억이 났을 것이다.

사람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데는 도가 텄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층을 올랐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는 행동과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점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인물로 그를 선택한 걸 보면 분명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물론 나한테는 상대가 안 되지. 그보다 대체 뭘 숨기는 거지? 보물을 찾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자꾸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있는데.’

하지만 다급할 필요는 없었다.

계속 같이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무얼 하는지 알게 될 일이다.

그리고 워낙 경계심이 강해, 지금은 그저 멀찍이서 관찰하는 것이 최대였다.

또 정말 히든 피스를 찾는 거라면 기회가 찾아왔을 때 빼앗으면 됐다.

‘그냥 점을 봐 준다고 하고 떠볼까?’

고개를 저었다.

오늘만 해도 점을 두 번이나 봤는데, 어렵게 모은 재료를 궁금증 해소를 위해 쉽게 소모해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 지금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저놈이 가진 능력과 약점을 하나하나 다 알아내는 거야. 그래야 마지막에 처리하기가 쉬울 테니.’

한데. 대체 크루즈에서 3일 동안 살아남으라는 건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으라는 것일까?

현재까지는 초호화 시설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러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을 터다.

분명히 절망이 찾아오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예지는 어서 빨리 그 순간이 다가오기를 바랐다.

초호화 시설에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피가 난자하고 살육이 벌어지는, 가슴 떨리는 현장을 더 선호했다.

* * *

바는 비교적 한가했다.

크루즈의 직원들이 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무대 위에 서서 재즈 음악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었다.

소울, 느낌이 살아 있는 목소리는 사람들의 귀를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 사로잡히기는 했지만 다른 의미로 사로잡혀 있었다.

‘LP플레이어에서 들려왔던 그 남자 목소리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바텐더가 서 있는 반대편 자리에 착석한 나는 주변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오르골 박스를 쳐다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여기 발렌타인 술 두 잔 줘요.”

뒤따라온 강예지가 바텐더에게 술을 주문했다.

곧 술 두 잔이 나오자 한 잔은 자신이 마시고 나머지 한 잔은 내게 넘겼다.

하지만 나는 잔을 들지 않은 채로 바 안을 계속 둘러보았다.

“캬하~ 맛있는데. 왜 안 먹는데. 안 먹으면 내가 먹지. 뭐.”

강예지는 자기 것을 먹고 내게 준 잔을 다시 가져갔다.

“크르릉.”

-지독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다칼이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나도 공감이 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데보다 심하긴 하지.”

“응? 뭐가? 대체 뭐가 심하다는 거죠?”

강예지가 혼잣말을 엿듣고 물어 왔다.

“그쪽한테 말한 거 아니니 신경 끄지.”

“칫. 그럼 말을 말던가.”

어느새 내 시선은 무대 위로 향해 있었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무대가 끝나길 기다린다.

그 사이에 바에는 등반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각자 자리에 앉아 술을 퍼마시고 들려오는 연주와 노래를 즐긴다.

휘익!

노래가 끝날 때마다 휘파람 소리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준석, 뭐라고 알아냈나?

다칼의 물음에 나는 답했다.

“아니.”

-그럼 왜 계속 여기에 앉아 있는 거지? 무엇이라도 알아냈기에 그러는 거 아닌가?

“기다리는 거야.”

-무엇을? 설마…….

여전히 오르골 박스는 반응이 없고, 점지 스킬 또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음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쪽지로 받은 단서를 계속 쫓아가 볼 생각이다.

이내 가수가 공연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관객들이 있는 곳을 쳐다본다.

크루즈의 직원과 등반자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뭐야? 그쪽이 노래라도 부르려고? 어디 한번 불러 보던가! 이 형님이 마음에 들면 포인트라도 좀 던져 줄 테니까!”

“푸하하하!”

조롱이 섞인 말들이 날아온다.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바에 유일하게 있는 창문.

그곳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마치 노래의 가사처럼 거센 폭풍과 천둥 번개가 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사를 쓴 이처럼 무대 위에 섰다.

덜컹! 우우우웅…….

갑자기 배가 크게 흔들렸다.

“어어어……!?”

깜박이는 불빛들.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가를 반복한다.

지이잉…….

그러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온다.

콰가강!

유일하게 빛이 되어 주는 건 천둥번개였다.

밖에서 빛이 번쩍이는 순간 바의 모습이 비쳤다.

“꺄아아아!”

“으아악!”

들려오는 비명 소리.

“뭐, 뭐야! 갑자기!”

등반자들이 무언가를 보고서 크게 기겁을 했다.

“우웁!”

술잔을 들고 있던 강예지도 갑자기 구역질을 해 댔다.

바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초호화로 화려했던 시설은 낡고 오래된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변했다.

술잔에 담겨 있던 주홍빛의 술은, 곰팡이가 슬고 뼛가루와 함께 검은 액체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손님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던 직원들은 전부 죽되 살아 있는 해골이 되었다.

“키하하하!”

한 해골의 웃음소리가 바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어서 시작되는 피의 살육!

“저, 저리 가아!”

당황한 등반자들은 갑작스레 적으로 돌변한 직원, 아니 해골들에게 무참히 당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초호화 시설을 가진 세누 크루즈의 숨겨진 이면. 가짜에 가려진 진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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