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01화
101화 황혼의 오르골
“크릉?”
-왜 그러지?
같이 누워 있던 다칼이 물어 온다.
“황혼의 오르골이 반응했어.”
-아셔를 잡고 얻었던 그 오르골 말인가?
“그래.”
나는 손바닥만 한 오르골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서 작은 진동이 발생하고 있었다.
진동은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박자에 맞춰 공명을 이루었다.
망설일 것 없이 아이템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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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오르골
내용: 황혼에 저문 자가 담아낸 슬픈 영혼의 노래가 깊이 새겨져 있다.
효과: 죽은 자들의 깊은 원한과 넋을 달랠 수 있다.
발동조건: ……?
사용 가능 횟수: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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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저문 자…… 슬픈 영혼의 노래…….”
중요해 보이는 문장들을 되새겨 봤다.
황혼의 오르골은 특정 장소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아이템.
한마디로 이곳 크루즈에서 써먹어야만 유의미한 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써먹어야 하는지 정확한 때나 시간이 나와 있지 않아 추측이 필요했다.
‘발동조건도 나와 있질 않아.’
나는 확신에 가득 차 오르골 박스를 열어 보았다.
사용 가능 횟수가 비록 1회이지만 예상한대로 노래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발동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니 노래 역시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
오르골은 그 노랫소리와 분명히 연관이 있었다.
우선 그 노랫소리가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찾아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캬하앙?”
-오르골의 사용처를 찾은 건가?
밖을 나서려고 하자 다칼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아니. 아직. 이제 찾아 봐야지.”
-쉬기는 글렀군.
“쉬고 싶으면 여기에 있어. 굳이 둘이나 갈 필요는 없지.”
그럼에도 다칼은 따라나섰다.
-혹시나 모르지. 그대가 보지 못한 걸 내가 볼지도.
고개를 끄덕여 빠르게 수긍했다.
“그도 그러네.”
* * *
“우리가 먼저 온 거 안 보여!? 이 선 넘어 봐. 바로 그 자리에서 머리를 댕강 잘라줄 테니까!”
“삐쩍 마른 놈이 존나게 나대네! 그런다고 우리가 쫄 줄 알아!? 덤벼! 덤벼! 시발아!”
방송실로 가는 와중에 객실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을 두 눈으로 마주했다.
이지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쳐!”
쾅! 콰다당!
다른 점이 있다면 싸움의 여파가 더 크다는 점이었다.
일단 놈들이 길을 막고 있기에 걸어서 지나갈 수는 없었다.
다크스윔.
마법을 써서 간단히 막힌 길을 뚫었다.
한데 우연히 코앞에서 마주친 등반자가 날 보며 대뜸 도끼를 들었다.
“네놈도 한패지? 으아아!”
그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한패라고 단정 짓고 거침없이 공격을 해 왔다.
서슬 퍼런 날이 콧등 앞을 지나쳤다.
공격이 밧나갔음에도 여파는 상당했다.
쿠광!
바닥에 충격파가 일어나 구멍이 뚫렸다.
나는 그런 그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파워는 센데. 빈틈이 너무 많네.”
퍼엉!
“쿠헉!”
발로 걷어차인 그가 문간을 넘어 반대편 복도로 날아갔다.
도중에 그를 멈춰 세우는 여자.
언제 거기에 서 있었는지, 강예지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고, 고마…….”
“으흐! 냄새! 저리 꺼져!”
퍽!
“어억!”
강예지는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곤, 다가온 나를 보고 말을 건다.
“어머. 이거 우연인가. 아까 2호실을 차지한 그 남자분이네요?”
과연. 이 자리서 마주친 게 우연일까?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뗐다.
“놀리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요. 이웃으로서 그냥 반가움을 표시한 건데. 그리 생각하니 섭섭하네요.”
“이씨…… 너희들!”
엉덩이를 걷어차였던 남자가 뒤에서 도끼를 들고 다시 다가왔다.
조금 더 다가오면 나서려는데 강예지가 먼저 손을 썼다.
촤라락!
아주 얇아, 거의 보이지도 않는 실끈이 남자에게 곧장 날아가 목을 졸랐다.
“꺼억! 컥!”
목을 졸린 남자는 숨을 헐떡이더니 이내 기절해 버렸다.
대신 일을 처리해 준 강예지는 내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엔 제가 살려 드렸지만 다음번에 조심하세요. 본래 죽음은 방심하다 찾아오는 거니까.”
살려 주다니, 이 여자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다.
“굳이 안 구해 줬어도 됐는데.”
“생각보다 매정하네요? 그게 구해 준 사람한테 할 말인가. 이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개소리를 들어 줄 시간은 없다.
다크스윔.
스르륵-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뒤에서 그녀가 뒤따라온다.
“매정하다. 매정해. 사람이 말하는데 씹고 가 버리고. 근데 지금 어디에 가는 거예요? 바? 수영장? 공연장? 내가 그 위치들 다 알고 있는데. 말만 해요. 그럼 안내해 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안내해 줄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따라오지 마십시오.”
“오호~ 이미 탐색은 끝마쳤나 보네요. 역시…….”
따라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따라왔다.
결국 몸을 돌려세웠다.
“따라오지 말라니까 왜 계속 따라옵니까?”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해서 그쪽도 팀이 없는 것 같고 나도 팀이 없으니. 크루즈에 있는 동안에만 팀을 먹자고요.”
“팀? 다른 인간들도 많은데. 굳이 그쪽을 반기지도 않는 나를?”
“그냥 제 감에는 그쪽이 가장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뭐. 크루즈 이웃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객실 옆에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쓰다가 버릴 카드로 날 정한 건가.’
확실한 건 그녀는 나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만일 알았다면 이런 선택을 하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회귀 전에 그녀가 탑을 오르며 해 왔던 행위들을 들어 보면 나와는 맞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마침 그녀의 능력이 떠올랐다.
‘점치기 스킬. 그것만 있으면 오르골의 사용처를 의외로 쉽게 찾을지도 모르겠어.’
점지 스킬을 통해 오르골의 사용처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 보험을 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나는 그녀의 두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너무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데. 그래도 기본적인 능력은 뭔지 알고 편을 먹는지 마는지 결정하는 게 옳지 않나?”
“아! 패를 하나씩 까자고요?”
“왜? 패를 까기는 어렵나?”
“어렵긴요. 들어 보니 그쪽 말도 맞네요. 까죠. 까짓것. 근데 능력으로 뭘 보여 드려야 하나?”
“아까 무기로 뭘 사용하는지는 봤으니, 서로의 고유 스킬을 까지.”
“으음. 좋아요. 근데 난 그쪽 무기를 못 본 것 같은데.”
“지팡이를 쓰지.”
“오호. 마법? 그럼 이제 쌤쌤이니 저부터 깔게요. 고유 스킬. 제 고유 스킬은…….”
그녀가 입김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내 귀에 대곤 속삭인다.
“점치기예요. 쉽게 말해 점을 볼 수 있죠.”
나는 찰나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거짓말을 할 줄 알았는데.’
만일 그녀가 능력에 대해 거짓말을 했으면 임시로 팀 맺는 것 따윈 하지 않으려고 했다.
거짓말을 한순간부터 점치기 스킬의 도움을 받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한데 사실대로 까다니, 의외였다.
“그쪽은. 그쪽은 뭐죠?”
“힘의 천칭저울. 상대의 힘과 내 힘을 가늠할 수 있지.”
그녀가 중층부 혹은 상층부의 사람이었다면 힘의 천칭저울이 고유 스킬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저층부.
아무리 남을 속이는데 익숙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간악한 여자라고 해도 이 정보를 알 리가 없었다.
다만 점치기를 통해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을 할 수 있을 터.
‘만약 그걸 확인해 본다면 그걸로 우리 둘의 인연도 끝이겠지.’
항시 발동되고 어떤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점지 스킬과 다르게 점치기 스킬은 재물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러니 쉽게쉽게 스킬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점을 이용했다.
능력을 들은 강예지는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상대의 힘과 내 힘을 가늠할 수 있다라…… 그럼 지금 저와 그쪽의 힘도 저울질을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어디 한번 해 봐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데요?”
“음. 사용하려면 대가가 조금 필요한데. 그럼 나한테도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설마. 저보고 점을 봐 달라는 거예요?”
“눈치가 빨라서 좋네.”
“대가가 얼마나 드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안 돼요.”
“왜지?”
“점을 보는 대가가 결코 작지 않거든요.”
“으음. 그럼 이렇게 하지. 이번에는 나만 하고, 그저 조그만 빚을 져 두는 걸로. 만약 점을 볼 정도의 대가를 이후에 내가 채운다면 그때 한번 봐 주는 건 어떤가?”
“그거 좋네요!”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천칭저울을 사용하는 대가는 그저 미량의 마나이다.
별것 아닌 대가로 빚을 조금 져 두고, 이후에 대가를 치르면 점을 봐 달라는 밑밥까지 깔았으니, 내가 원하는 플롯은 설계가 된 셈이다.
“그럼 시작하지.”
나는 힘의 천칭저울을 사용했다.
안 그래도 그녀와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나는지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참이다.
이내 저울이 나타나 나와 그녀를 두고서 저울질을 시작했다.
팽팽하게 유지가 되던 저울은 이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결과는 나의 승리.
그러나 처음에 팽팽함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그녀를 높이 살 수 있었다.
보통은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면 곧바로 저울이 기운다.
‘역시 만만히 볼 여자는 아니야. 그럼 어디 다칼과도 비교해 볼까.’
결과는 의외로 근소한 차였다.
다칼이 승리하긴 했으나, 다칼은 탑에서도 알아주었던 신수.
그러나 지금 힘을 전부 되찾고 온전한 것이 아니기에 이해가 되기도 했다.
“어때요? 결과는 나왔나요?”
그녀는 은근히 자신이 더 강하다고 나오길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더 강하게 나왔다고 하면 크게 견제를 하겠지. 그리고 전체 반응들을 보면 자신이 강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저울질을 하자고 했던 거다.’
나는 일부러 표정을 구겼다.
그러자 강예지에게서 곧바로 반응이 왔다.
“으음. 표정을 보니 그쪽한테 안 좋은 결과가 나왔나 보네요. 흠. 뭐~ 그럴 수 있죠. 저울질의 결과가 전부는 아니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꼬리는 올라가 있다.
“아무튼. 이걸로 한편 먹는 거 맞죠?”
“이미 서로 패도 깠으니. 물리는 것도 웃긴 일이지.”
“좋아요. 그럼 이제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방송실.”
“어, 네? 거기는 왜……?”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서.”
어느덧 방송실에 다다랐다.
철컥철컥.
문은 잠겨 있었다.
“혹시 그 안에 뭐 보물이라고 숨겨져 있어요?”
그녀가 호기심 있게 쳐다보기에 나는 단칼에 잘라 말했다.
“그랬으면 그쪽하고 오지도 않았지.”
“아. 하긴…….”
입맛을 다시는 그녀.
나는 그런 강예지를 흘깃 바라보다 이내 문틈을 보고 다크스윔을 시전했다.
스르륵-
안으로 입장하자 객실에서 들려왔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직원 한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여긴 관계자 외 출입금지입니다.”
“다칼.”
“캬라앙~.”
-나한테 맡겨라.
다칼이 직원을 돌로 만드는 동안 나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LP플레이어를 쳐다보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들고 있는 오르골 상자가 더욱 강하게 공명을 일으켰다.
덜컹.
순간 오르골 상자에서 웬 자그만 수납장이 튀어나왔다.
“종이?”
나는 곧바로 그 안에 있는 쪽지를 꺼내 들었다.
쪽지에는 노랫말의 가사가 전부 적혀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