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00화
100화 20층
20층 웨스트 항구.
철제로 된 구체 안에 거대한 포탈이 자리 잡고 있는 항구의 중심지 시프 광장에는 웅성거림으로 가득하다.
광장 주변에 주저앉아 포탈을 주시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
다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애타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잔잔하던 포탈이 일렁였다.
“오! 온다!”
역경의 싸움을 이겨 내고 살아남은 쟁쟁한 등반자들이 하나둘 포탈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파란 로브의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는 여인 강예지는 왼쪽 눈에 별의 형상을 나타내며 한 남자를 주시했다.
햄스터를 닮은 순진무구하게 생긴 얼굴의 남자는 무기도 소지하지 않았기에 딱히 강해 보이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과 몸을 부딪치자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에서는 강자로서의 포스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나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법이다.
“저 남자가 틀림없어.”
앞으로 계획을 실현하는데 있어 가장 크게 방해가 될 자였다.
강예지의 고유 스킬은 점치기.
일정 재물을 바쳐서 원하는 점을 볼 수가 있다.
20층의 미션이 시작되기 전에 그녀가 본 점은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될 놈이 누구인지 파악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 햄스터같이 생긴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방해가 되기 전에 미리 제거해야겠어.’
강예지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을 얇은 바늘을 들고 그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본래 사람이 많을수록 경계가 덜하고 방심한다.
슥-
남자 옆을 지나며 재빨리 바늘을 찌르고 이동했다.
“음?”
뒷목을 부여잡는다.
그러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 땅바닥에 쓰러졌다.
“커헉. 쿠헤엑!”
거품을 물며 온몸에 경련을 일으킨다.
강예지는 그것을 보고 티가 나지 않을 만큼 옅게 미소를 지었다.
‘됐어!’
타이밍도 완벽했고 다른 사람들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것으로 가장 큰 방해물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그녀는 곧장 시프 광장을 빠져나와 부두로 걸어갔다.
“으아하~ 날씨 좋다!”
내리쬐는 햇볕과 티끌 하나 없는 하늘.
깍깍!
갈매기 떼가 바다 한가운데를 활공하며 자유를 누빈다.
그 아래는 햇볕에 비춰진 황금빛 물결의 파도와.
부아아앙-!
뱃고동을 내는 대형 크루즈 한 척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풍경 하나는 죽이네.”
문젯거리를 해소한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밝아보였다.
이내 인원수가 충족됐는지, 시야에 미션창이 올라왔다.
내용을 확인한 강예지는 재밌겠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크루즈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호막이 사라졌다!”
“어서 타자고!”
그간, 보호막에 가로막혀 출입하지 못했던 크루즈 안으로 드디어 들어갈 수 있었다.
등반자들은 다른 이들보다 먼저 올라타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다.
“비켜!”
“너나 비켜! 이 새꺄!”
덕분에 충돌이 많이 일어났다.
“멍청한 것들.”
강예지는 혀를 끌끌 차며 크루즈를 향해 크게 도약했다.
굳이 정해진 길로만 가려고 하니 부딪치는 것이다.
탓!
안전하게 착지한 그녀는 고지식하게 크주르에 타는 멍청한 등반자들을 뒤로 하고 선박 내부를 살폈다.
가장 먼저 미션의 지역을 살피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런데 갑판 위에 웬 고양이가 있었다.
“몬스터?”
그렇다고 하기에는 매우 평범해 보였다.
“야옹~.”
냥소리를 내며 자신을 잠깐 흘겨보고 지나쳐 버린다.
뒤늦게 고양이를 쫓아가보지만 이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아씨…… 잡는 건데.”
어쩌면 아까 전의 고양이는 이곳 히든 피스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순간 망설인 것이 후회됐다.
한데. 왜일까?
자꾸만 고양이와 두 눈을 마주쳤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귀엽고 사랑스러워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감정은 그녀에게 어울리지도 않았다.
찰나지만 칠흑처럼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섬뜩했달까?
괜스레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칫! 재수 없게 사람 기분 묘하게 만드네. 다시 마주치면 목을 잘라 버려야지.”
그녀는 그리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가던 길을 걸어갔다.
뒤에서 고양이가 노려다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 * *
왼쪽 눈에 지닌 별의 형상과 조커의 타투가 새겨져 있는 볼.
틀림없었다.
‘점쟁이 강예지.’
저 여자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예상보다 더 빨리 층을 올라왔다는 것을 증명했다.
강예지는 나보다 두 달이나 앞서서 탑을 오른 등반자였다.
정상적인 속도로 올랐다면 절대로 마주치지 못할 인물.
강예지는 하드에서 대단한 활약상을 펼쳤던 등반자 중에 하나다.
회귀 전에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만만히 볼 여자가 아니었다.
점치기 스킬 때문에 많은 등반자들이 자기의 수를 읽혀 귀찮고 까다롭기로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상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건 계약을 맺은 신좌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계약을 맺은 신좌는 그녀에게 가지는 집착이 엄청났다.
강예지의 관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놈이기에 주의가 필요했다.
이후, 갑판 근처에 있는 어둠 속에서 다칼이 걸어 나왔다.
-준석.
“다칼.”
-이제 그 모습은 완전히 익숙해진 것 같군.
“틈만 나면 변신해 있었으니까. 안 익숙해지는 게 이상하지.”
-하긴. 그런데 이번에도 그러고 다닐 셈인가?
“필요하다면 그래야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 없겠지.”
나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다칼을 내려다봤다.
-이제야 좀 보기 익숙하군.
“고양이 모습은 익숙하지 않은가 봐? 그래도 같이 시간을 꽤 많이 보냈는데.”
-겉모습으로 뭔가를 판단하는 행동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가끔 맹세를 한 자가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현타가 몰려올 때가 있다.
“현타까지야. 솔직하게 나도 이게 편해.”
고양이로 변신한 삶이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그저 익숙해지기만 한 것이지 평생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이 모습보다 편할 리가 없었다.
-그보다 드디어 20층이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니 왠지 본궤도에 오른 기분이 든다.
그 말에 동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쯤 오면 어지간한 놈들은 탑에 적응을 했다고 봐야지.”
-17층부터 18, 19층까지는 정말로 빨리 올랐지. 한 일주일 걸렸나?
“긴 시간을 할애할 층들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오른 등반자는 내 생애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칼의 칭찬에도 어깨를 으쓱하거나 하지 않았다.
회귀를 했으면 남들보다 빠른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그렇게 띄워 줄 필요 없어.”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잡소리는 그만하고 방부터 구하러 가자고. 곧 있으면 사람들이 들어차서 여기도 복잡해질 거야. 늦으면 괜찮은 방들은 다 빼앗기겠지.”
크루즈에는 수많은 객실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1등석, 2등석, 3등석이 존재하고, 따로 특등석이라는 게 있다.
가장 좋은 특등석은 100명만 이용할 수 있어 경쟁이 심하다.
물론 좋은 것을 많이 누릴 수 있는 만큼 가격도 비쌌다.
나는 당연히 특등석을 이용하기 위해 시설 내부로 들어갔다.
크루즈는 무려 1만 명가량 수용이 가능한 거대한 규모로 어지간한 시설들은 전부 구축이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크루즈를 운영 및 관리하고 선원과 직원들도 존재했다.
마침 복도를 지나며 한 명과 마주했다.
“저희 세누 크루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직원.
하지만 나는 직원의 인사를 받지 않으며 무시하고 지나쳤다.
다칼 역시 직원을 보며 인사 대신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잠시 후 어느 객실에 다다랐다.
1호라고 적힌 객실은 특등석 중에서도 맨 앞에 있는 객실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응?”
본래 객실의 문이 열리며 특등석을 이용하겠냐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야 한다.
하나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철컥.
안에서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여자가 나왔다.
‘강예지!’
아까 전에 지나가는 걸 보고 어디로 갔나 했더니 가장 먼저 특등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 미안하지만 여긴 이미 내가 찜했는데?”
“이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하는 수없이 옆에 있는 2호실로 이동했다.
그러나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
1호실이나 2호실이나 받는 혜택은 똑같았다.
기분이 살짝 언짢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차피 금방 잊힐 감정이다.
곧 2호실의 문을 열었다.
[하루 특등석을 이용하기 위해선 따로 100,000포인트를 지불해야합니다.]
[포인트를 지불하겠습니까?]
하루치로는 꽤 비싼 돈이 들어갔다.
다만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면 그리 비싸다고 볼 수도 없었다.
[특등석 이용료로 100,000포인트가 차감되었습니다.]
[하루 동안 2호실 특등석은 당신만의 소유가 됩니다.]
특등석과 1등석은 소유자 말고는 출입이 불가능한 강력한 보호막이 쳐져 있었다.
안으로 출입하자 포탈을 통과한 것처럼 공간이 순간 왜곡됐다.
그 뒤로 다칼이 따라 들어온다.
다칼은 맹세로 맺어진 동행자이기에 나와 한 몸으로 취급받았다.
객실의 크기는 30평정도로 적당했다. 구석 한편에는 와인병들이 멋들어지게 진열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탁자도 보인다.
킹크랩, 랍스터, 문어, 로프르 등등 해양에서 잡히는 해산물들이 눈에 띈다.
하나 무엇보다 시야를 끈 건 바깥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큼지막한 창문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부아아아앙!
뱃고동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출항을 알리는 소리였다.
곧 물살을 타고 거대한 크루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캬하아앙!”
출발과 동시에 다칼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나 또한 옆에 착석하며 조금은 긴장감을 풀었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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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회귀한 마도사
칭호: 좀비 학살자 외 5개
능력치
근력:174(+250)
민첩:169(+757)
체력:265(+780)
정신력:305(+250)
마나:501(+851)
스킬
점지(Lv1) 마나볼트(Lv17) 마법컨트롤(Lv25) 다크스윔(Lv9) 다크웹(Lv9)
어스월(Lv8) 행운의 룰렛(Lv4) 다크소드(Lv8) 다크소울(Lv2) 원드퍼드(Lv7) 등가교환(Lv-) 마나방출(Lv8) 루트딥트리(Lv26) 리치네스(Lv3) 다크레인(Lv6) 컬스버닝(Lv4) 홀리크로스(Lv2) 엘리렌스(Lv3) 다크포스(Lv1) 힘의 천칭저울(Lv1) 고양이격투술(Lv5) 광염(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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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 간의 간극이 점차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마나를 중점으로 특화되어 간다.
마나는 마나의 숨결 덕분에, 체력과 정신력은 18층과 19층의 보상이 두 능력치와 관련된 비약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금방 상태창을 끄고서, 다칼처럼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후아~.”
한동안 쉬지 않았기에 휴식을 취해 두는 게 좋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에 움직여야 할 일은 없었다.
바깥을 돌아다녀 봐야 등반자들 간에 객실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20층의 미션은 크루즈에서 3일 동안 무사히 살아남아서 정해진 목적지에 다다르면 됐다.
만일 지금처럼만 유지된다면 아주 쉽게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진짜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머지않아 긴 밤이 시작될 것이다.
창문을 내다봤다.
점차 항구에서 멀어져 간다. 그러며 한창 푸르렀던 하늘과 바다는 점점 어둑해지고 있었다.
크루즈가 향하는 바다 방향에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먹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가끔씩 번쩍이는 천둥은 마치 환영인사를 해 주는 듯하다.
이어서 내리기 비는 창문을 툭툭! 때렸다.
천장스피커를 통해 구슬픈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듣기 익숙했다.
이지 때도 출항 직후에 들려왔던 노래이니까.
그런데 노래가 흘러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문득 시야에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편안히 누워 있던 나는 내용을 보고 두 눈을 번뜩 뜰 수밖에 없었다.
[황혼의 오르골이 반응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