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99화
99화 프로켈의 인형
나는 앉아 있는 소파를 쓸어 넘겼다.
‘여기서의 생활도 끝이구나.’
15일간 지냈던 방이라 그런지 어느덧 내 집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칼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보들보들한 털 매트에 누워 있던 다칼이 따라나선다.
1층 로비에 있던 레인이 걸어 나와 마지막 마중을 나왔다.
“그간. 정이 들었는데. 이렇게 또 한 명 떠나 보낸다니 안타깝네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는 척 연기를 한다.
나는 레인을 보며 헛웃음을 짓곤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만 했다.
“탑을 오르다 지치시면 언제든지 찾아 주세요. 그땐 서비스로 1박은 공짜로 해 드릴게요.”
“1박이라. 그럼 5만 포인트인데. 통이 크네요.”
“후훗. 그 정도는 해야 생각나서 다시 오죠~ 아니면 오겠어요?”
“그도 그러네.”
공짜로 하루를 묵게 해 주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곧 여관을 나와 길거리를 배회했다.
“크릉?”
-어디로 가는 거지? 다음 층으로 향하려면 저쪽일 텐데.
가는 방향을 보고 의문을 느낀 다칼이 묻는다.
나는 정면을 바라본 채 대답을 해 주었다.
“이만 녀석들을 풀어 줘야지.”
-녀석들……? 아……! 하루토라는 자와 그 일행들을 말하는 거군.
“그래.”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곧 도시 외곽에 있는 거대한 나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줄기에 몸이 묶인 하루토를 비롯한 저스티스 길드원들은 기절을 한 것인지 잠을 자는 것인지 아님 죽은 것인지 구별이 안 되게 허리가 폴더처럼 반으로 접혀 있었다.
툭, 툭.
일부러 발소리를 내자 그제야 미세한 움직임을 보인다.
“다들 허약해 빠져 가지고는.”
“어……? 너 이 자식!”
삐쩍 마른 하루토가 날 보며 발끈했다.
끝까지 존댓말을 이어 가던 그가 반말로 저렇게 화를 내는 걸 보니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가늠이 됐다.
하지만 결국엔 다 자기 업보이다.
“내 이것만 풀리면 네놈을!”
스르르- 풀썩!
그들을 속박하고 있던 나무를 없앴다.
하루토는 말을 잇다 밑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에게 걸어가 말했다.
“날 뭐 어떻게 하겠다고? 이제 풀렸으니 해 봐. 여기에 서 있을 테니.”
“크으윽…….”
막상 풀려나니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배를 굶었다고 해도, 덤비면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이다.
“덤빌 생각 없으면 말고. 볼일이 끝났으니 난 가 보지.”
“잠깐!”
“응?”
“여왕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떤 여왕을 말하는 거지?”
“루시아 님 말입니다!”
“그 여잔 살아 있어. 다만 네놈이 죽이려고 했던 다른 여왕은 내 손에 죽었지.”
“로사…….”
하루토는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궁금한 게 풀렸나? 아.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어도 묻지 마. 대답해 줄 생각 없으니까. 그리고 나랑 다시 마주칠 일도 없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더 질문해 오지 않았다.
이후, 나는 17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도시 내에 포탈과 통로가 위치한 곳에 다다랐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동굴.
한 곳에는 파랗게 일렁이는 포탈이 있고, 나머지 한 곳에는 끝자락에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동굴 입구나 인근에는 썰렁할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오직 시계탑 하나가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미션의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000:03:16]
앞으로 3분만 있으면 미션이 종료된다.
이내 그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모든 숫자가 0을 가리키기 몇 초전.
꼬기오!
시계탑 위에 모형 닭이 튀어나와 울음소리를 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전부 소멸하였습니다.]
[16층 미션이 종료됩니다.]
[기여도 순위에 들었습니다.]
[기여도 명단에 이명을 공개하겠습니까?]
“아니.”
[기여도 명단에 이명이 비공개 처리됩니다.]
[기여도 순위가 공개됩니다.]
(((((((((((((((((((((((((((((((((((((((()
1위) 비공개 – 용병 등급: 특급, 베디돌 처치 수: 603 매우 강력한 베디돌 처치 수: 1]
2위) 비공개 – 용병 등급: 상급, 베디돌 처치 수: 411 강력한 베디돌 처치 수: 2]
3위) 고혹적인 연주가 – 용병 등급: 상급, 베디돌 처치 수: 403]
4위) 한계를 넘보는 자 – 용병 등급: 상급, 베디돌 처치 수: 351]
5위) 고혈의 착취자 – 용병 등급: 중급, 베디돌 처치 수: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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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도에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기여도순에 따라 기본 보상이 지급됩니다.]
[매우 강력한 베디돌을 잡았습니다.]
[기본 보상이 바뀝니다.]
[프로켈의 인형이 지급됩니다.]
인형이 손에 쥐어졌다.
고양이 눈을 가진 천사가 화려한 두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오오…….”
어떤 보상이 주어질지 하고 있었는데, 기대 이상의 것이 나와 버렸다.
프로켈.
본래는 천사이나 악마가 된 케이스였다.
천사의 힘과 악마의 힘을 동시에 가져, 악마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해 있는 그는 자유자재로 형태 변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인형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은 손끝을 저리게 만든다.
나는 곧바로 아이템 정보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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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속) 프로켈의 인형
영구효과: 마나+25
내용: 악마 프로켈의 힘이 깃들어 있다.
효과: 형태 변화 (기본: 고양이), 형태 저장 (바꾸고 싶은 형태를 선택한 다음에 인형과 접촉하면 해당 형태를 저장할 수 있다. 단 하나만 저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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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상승뿐만 아니라 프로켈이 가진 능력이 깃들어 있었다.
“형태 변화와 형태 저장…….”
기본으로 고양이로 변신이 가능하고, 추가적으로 형태 하나를 더 저장해 사용할 수가 있었다.
다만 얼마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와 무엇을 대가로 소모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한번 변신해 볼까.”
사용법은 딱히 없어도 되었다.
인형을 얻은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게 됐으니까.
테스트겸 곧바로 인형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두근!
순간 심장이 철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짓눌리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하나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그저 심장이 점점 빨리 뛰고 있었다.
이내 팔과 다리에 털이 생겨나고 시야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작아져 가는 몸집.
심장 박동이 원래대로 되돌아온다는 느낌이 들 때쯤.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캬하아앙?”
다칼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다칼을 아래로 내려다보지 못했다.
오히려 나보다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다칼의 물음에 나는 입을 떼려던 찰나.
괜히 망설여졌다.
말을 하려고 하는데 “야옹.”이 튀어나오면 어쩌지.
그러나 그런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다.
“아아. 다행히 제 목소리가 나오는군.”
-혹시 새로 얻은 아이템의 힘인가?
“그래. 고양이로 형태 변화를 할 수 있어. 이외에도 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 있지.”
“캬하하하!”
-그거 신기하군! 꽤 유용하게 쓰이겠어.
다칼은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앞발을 들어 내 머리를 톡톡! 치려고 시도했다.
바로 못하게 막았지만 말이다.
나는 한번 고양이의 모습으로 걸어다녀 보았다.
두 발로 걷다가 네 발로 걸으니 이상한 느낌이다.
어색하다고나 할까? 회귀 전에도 동물로 변신을 해 본 적은 없기에 낯선 것은 당연했다.
“그냥 고양이 모습으로 계단을 올라갈까.”
어차피 나중에 써먹으려면 이 모습에 익숙해져야 할 텐데,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 꼴로 마법이나 사용할 수 있겠나?
“어디 한번 시도해 봐야지.”
지팡이가 없어 마법증폭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고양이 상태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이내 체내에 있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마법을 시전했다.
파즈즉-
허공에 전기가 일어나다가 말았다.
결론은 실패.
하지만 이 신체로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
적응을 끝마치고 나면 쉽게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사삭!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능력치를 그대로 이어받아 신체적 반응이나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지그재그로 달려 보기도 하고 점프도 해 보았다.
몸집이 작아져서 그런지, 인간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빨라진 기분이 든다.
시야가 낮아져서 신선한 느낌도 들고 말이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철컹! 데구루루!
계단에 이르기 직전, 통로에 있는 함정이 발동했다.
톱니같이 생긴 바퀴가 뒤에서 굴러왔다.
현재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강인한 신체로 들이박으면 곧바로 부숴 버릴 수도 있었다.
철컹! 철컹!
벽에 문이 열리며 바퀴들이 더 늘어났다.
하지만 그 바퀴들이 그냥 굴러 오게 내버려 뒀다.
고양이의 몸으로 워밍업을 하기에 저만큼 딱 좋은 도구들이 어디에 있을까? 치고 들어오면 피하고 구르고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전부했다.
그러나.
퍼억! 퍽! 퍽! 퍽!
“젠장.”
아직 몸이 익숙하지 않아 바퀴에 전부 맞아 버렸다.
바퀴는 톱니로 찌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펑! 퍼퍼퍼퍼펑!
하나의 폭탄이 되어 폭발을 일으켰다.
“켁켁!”
그러나 먼지만 일으켰을 뿐. 내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철컹! 데구루루!
또 시작된 바퀴들의 추격!
그러나 그 추격도 계단과 마주하며 끝이 나버렸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나는 도중에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검은 그림자들을 보았다.
계단 꼭대기까지 올려다봤다.
그림자의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쏘아져 내려오는 빛을 죄다 막고 있었다.
작은 빈틈으로만 빛이 모습을 보였다.
“키헤헤헤!”
“크흐흐!”
사악한 악당들처럼 낄낄 웃어 대는 인형들.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베디돌들이었다.
16층에서 그토록 찾던 베디돌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그때 시야로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타임 어택이 발생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계단 꼭대기에 이르십시오.]
[만일 시간을 초과하게 되면 통로 입구로 되돌아갑니다.]
[남은 시간: 00:15:00]
주어진 시간은 15분.
지금이라도 인간의 모습을 돌아가 다크스윔을 사용하면 가뿐히 통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타임 어택은 보통 빠른 시간 안에 통과하면 그 보상이 비례해서 커지지만, 이곳의 타임 어택은 어떤 시간 안에 통과하던 보상이 똑같았다.
그러니 통과만 하면 무조건 보상을 받는다는 건데.
쉬워 보이지만 막상 일반 등반자들의 경우는 쉽지가 않았다.
중간지점에는 인형들이 재생성되는 포탈이 존재한다.
좀비처럼 미친 듯이 튀어나오는 그 인형들을 정리하고 꼭대기까지 올라야 한다.
그러다 실패하면 다시 밑으로 소환돼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계단을 오르길 포기하고 포탈로 향한다.
하나, 그것은 일반 등반자의 경우다.
내겐…… 잠깐의 유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두 앞발을 들어 싸우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당장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인형들에게 집중했다.
이내 사정거리 내로 닿는 순간 주먹을 내뻗었다.
냥냥펀치!
퍼어엉!
“으아악!”
“아아아악!”
단 한 방의 주먹질에 수십 마리가 나가떨어졌다.
나는 내뻗었던 주먹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타격감 죽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