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98화
98화 새로 보낸 동료
나와 두 눈을 마주친 안수찬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이게 누구야!?”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같이 술 먹고 몰래 사라지신 분 아닌가?”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말로 서운함을 드러냈다.
하긴. 그때 인사도 없이 가 버렸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만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술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저만 그렇게 생각했나 봅니다.”
“굳이 자는 사람을 깨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럼 쪽지라도 남기던가. 누구한테 말이라도 전달했으면 일어나서 그리 찾지도 않았을 텐데…… 됐습니다! 이미 지난 일. 쪼잔하게 굴고 싶진 않네요.”
“푸흡!”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어서 그럴까?
안수찬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음? 갑자기 뭐가 그리 웃깁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두 분, 아는 사이신가요?”
레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예. 아는 사이입니다.”
“네에. 아는 사이이긴 하죠. 친하지는 않지만.”
“언제까지 삐져 있을 겁니까?”
“네? 제가 언제 삐졌다고. 그냥 사실을 말한 거지…….”
저러다가 1절. 2절 계속 삐져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커피로 기분을 풀어 줘야 할 것 같다.
“그보다 배 안 고픕니까?”
안수찬이 입을 열려는 순간 꼬르륵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저! 손님! 그럼 여관 안내는 나중에 해 드릴게요! 필요할 때 불러 주세요!”
레인이 눈치껏 빠졌다.
안수찬은 조용히 내 뒤를 따라온다.
카페로 이동한 나는 바리스타에게 주문했다.
“여기 커피 두 잔하고 빵은 종류별로 세 개씩.”
옆에 착석한 안수찬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리스타가 타는 커피를 쳐다보았다.
“커피다…….”
그도 층을 오르며 커피를 먹어 본 적은 없을 터.
“커피. 좋아합니까?”
“커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매일 먹었는데.”
커피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나오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완전히 커피에 집중한 모습이다.
“그런데 같이 다니는 주안나 씨는 어디에 갔습니까?”
“안나는 밖에 좀 돌아다녀 보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아마 몇 시간쯤 돌아다니다 올 겁니다.”
미션이 시작되기에 앞서 탐색이라도 하려는 걸까?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커피 나왔습니다. 여기 빵들도. 맛있게 드십시오.”
음식이 나오자마자 안수찬은 신문물을 맞이한 사람처럼 커피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후릅.”
곧장 한 입 들이켜더니, 유레카를 외치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빵에도 손을 댔다.
하나 그가 집은 빵이 하필 다칼과 겹쳤다.
둘은 신경전을 벌이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크르르! 카악!”
다칼이 정말로 물 것 같이 행동을 하자 안수찬이 손을 뒤로 뺐다.
그가 집었던 빵은 결국 다칼의 차지가 되었다.
나도 슬슬 배를 채우기 위해 빵을 집어먹었다.
“음. 으음~.”
우리는 한동안 침묵의 식사를 즐겼다.
“흐아아~.”
배를 다 채우고 나서야, 여유가 생긴 안수찬이 나를 보며 입을 뗐다.
“저. 김유희 씨를 봤습니다.”
빵을 먹던 나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되물었다.
“유희를 봤다고요?”
“네. 13층에서.”
13층이라…….
대략적으로 유희와 층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알게 됐다.
“보니까 동료가 꽤 늘었던데요? 사람도 더 늠름해졌고.”
“얼굴은 괜찮아보였습니까?”
“뭐.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이었습니다. 동료들한테도 꽤 신임을 받는 것 같고.”
“으음.”
탑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근데. 준석 씨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는데. 유희 씨와는 밖에서도 알고 지내던 사이 아니에요?”
“그렇죠.”
“한데 왜 어느 순간부터 따로 떨어져서 오르는 겁니까?”
나는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밖에서 알고 지냈던 주안나와 계속 함께 오르고 있는데. 비슷한 상황인 내가 다른 선택을 한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아. 혹시 말하기 곤란한 거라면 안 해도 됩니다.”
“딱히 곤란한 건 없습니다.”
“그럼…… 왜?”
“그저 각자 하고 싶은 선택을 한 겁니다. 유희는 새로 만난 동료들하고 함께 오르고 싶어 한 거고, 전 그냥 기다림 없이 혼자 오르기로 결정한 거고.”
“아아~ 그래서.”
단순한 이유가 궁금했던 것인지, 그는 더 이상 그것과 관련해 캐묻지 않았다.
이후에는 15층의 미션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직접 말을 건네 보니 됐다고 거절했다.
그냥 도움 없이 부딪혀보고 싶다나.
어찌 보면 그다운 선택이었다.
이외에는 불필요한 잡다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대화를 이어 나갔을까?
여관에 주안나가 나타났다.
나는 안수찬과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되면 또 얼굴 보기 힘들겠네.”
내일이면 16층의 미션이 종료된다.
나는 다시 다음 층으로 향해 나아갈 타이밍이었다.
그는 살짝 아쉬움을 내 보였다.
“분명 같은 선상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차이가 벌어져서는. 다 쫓아온 것 같으면 멀어지고, 쫓아온 것 같으면 또다시 멀어지고. 근데…… 그러니까 오히려 좋네. 나름 쫓아가는 재미가 있거든. 그러니 준석 씨는 지금처럼 앞만 보고 달리세요. 금방 쫓아가서 크게 한 방 먹여 줄 테니까.”
“어디 그 한 방 먹어 봤으면 좋겠네.”
방금 한 말은 진심이었다.
안수찬은 내가 본 등반자들 중에 그나마 인정할 수 있는 인간이니까.
지금보다 승부욕이 더 불타올라서, 내 기대치만큼 올라온다면 필히 탑의 꼭대기에서 도움이 되는 순간이 올 터였다.
* * *
14층에 있는 검은 공동.
동료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던 유희는 입구에서 기척을 느끼고 검과 방패를 들었다.
횃불에 비치는 그림자.
조용히 접근하던 유희는 곧 공격자세를 풀었다.
“레나야.”
11층에서 새로 합류한 동료였다.
그녀는 자신의 소환수인 새를 이끌고 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낯선 이도 함께였다.
그는 2미터가 넘는 키에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유희는 그를 경계하며 가까이 다가온 에레나에게 물었다.
“에레나, 이분은?”
“유희, 널 보러 왔다는데?”
“날? 나는 이분을 모르는데?”
그러자 그는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콜이라는 심부름센터에서 나왔다. 그쪽이 김유희 맞나?”
“아이콜? 심부름센터? 대체 그게 뭔데. 그게 제 이름은 맞지만 잘못 찾아오신 거 같은데요.”
“아니. 제대로 찾아온 게 맞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이내 편지를 건넸다.
“이건…….”
“16층에서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이걸 전하라 의뢰를 했지.”
“방금 이준석이라고 했어요!?”
“그래.”
유희는 서둘러 편지를 열어 보았다.
딱 봐도 준석의 필체가 맞았다.
‘위에서 정보를 보내온 거야.’
층에 대한 정보가 꽤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더 흥미가 가는 건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며 유희는 미소를 지었다.
“여전하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눈앞에 있는 사내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네가 써먹을 만한 놈 하나 보내니 잘 꼬드겨서 이용해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유희는 눈앞의 사내, 카를로를 자세히 보았다.
건장한 체구에 심상치 않은 예기가 담긴 창, 그리고 자연스레 뿜어내는 강자의 기운은 최소 삼 인분 이상은 거뜬히 해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위협이 도사리는 탑에서, 동료로 삼기에 이만큼 최적화된 인물이 있을까?
“편지를 전달했으니 난 이만 돌아가 보겠다.”
“잠깐!”
유희가 그를 멈춰 세웠다.
“혹시 상대한테 남길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님 편지라거나.”
“아뇨. 그런 건 됐고. 배고프지 않아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같이 밥이나 먹어요. 마침 동료들이랑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거든요.”
“아니. 난 됐…….”
“자자! 거절하지 말고 들어가요!”
카를로가 멈칫대자 옆에 서 있던 에레나가 눈치껏 등을 떠밀었다.
“그래요! 오는 동안 밥도 안 먹었을 텐데 밥이라도 먹고 가요!”
그제야 카를로가 발걸음을 뗐다.
“어서. 어서.”
유희까지 합세 해 그를 식사하는 자리로 옮겼다.
어쩌다 자리에 착석하게 된 카를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이게 아닌데…….”
그는 딱히 같이 먹을 생각이 없었다.
하나 분위기가 이상하게 같이 먹어야 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원래는 남에게 잘 휩쓸리지 않는 편이건만, 묘하게 이번은 주변에 휩쓸렸다.
결국 유희의 일행이 준 음식을 먹기 시작한 카를로.
유희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내 그녀의 곁으로 에레나가 다가왔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일단 돕기는 했는데…… 혹시 저 남자가 마음에 든 거야?”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남자한테 반한 거 아니냐고. 그래서 갑자기 안으로 들인 거고.”
“그런 거 아냐. 동료로 만들려고.”
“엥? 동료? 아직 저 남자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데. 무슨 동료?”
“저 남잘 추천했거든. 준석이가.”
에레나는 준석이란 이름을 듣자 인상을 찡그렸다.
“그 아저씨가 저 남잘 추천했다고? 그럼 성격도 싸가지 없겠네.”
“아직도 그 일로 삐져 있는 거야? 그리고 준석이 보고 아저씨라니. 서로 동갑이잖아.”
“몰라. 그냥 그게 편해.”
“하여튼. 못 말려.”
에레나와 준석 사이에 있었던 일은 들었다.
유희는 준석이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걸 열심히 설명했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 있는 깊은 골은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하긴. 당사자와 얘기를 해야 풀리는 부분이 있는 건데. 11층 이후에는 마주치질 않았으니 이해는 한다.
“아무튼. 저 남자를 동료로 들일 거면 그래도 다른 애들한테도 미리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그래야지.”
유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성태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밥 대신 몬스터에게 채취한 피를 빨아 먹던 하성태가 그녀를 보며 입을 연다.
“유희 씨.”
“잠깐 시간돼요?”
“아, 예. 돼죠. 앉으세요.”
유희가 옆에 앉아 하성태가 되레 먼저 질문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누굽니까?”
“안 그래도 그 말하려고 했는데. 16층에 있는 준석이가 보낸 사람이에요.”
“형님이요……?”
하성태는 눈을 빛내며 크게 관심을 가졌다.
“네. 편지로 동료로 만들면 좋을 거라고 남겨 놨더라고요.”
“아! 형님이 보낸 사람이면 실력 하나는 확실하겠네요. 짐이 되는 사람은 싫어하니까.”
“저기 봐요. 떡대만 봐도 강해 보이는데요. 뭐.”
“음. 뭐. 그래 봐야 저보단 약해 보이지만. 근데 형님은 잘 지내고 계신답니까?”
“보기에는 우리들 없이도 잘 지내는 것 같던데.”
그녀는 표정으로 서운함과 그리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아~ 다칼 얘기를 많이 써 넣었더라고요.”
유희는 다시 표정이 환하게 바뀌더니 편지에 적힌 내용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물론 층의 정보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하성태는 그녀가 데리고 있는 길드원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긴 하나, 그래도 준석이 원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아예 함구해 버렸다.
그녀의 얘기를 듣던 하성태는 이윽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형님이 보고 싶네요.”
유희 역시 말하지는 않았지만 준석을 그리워했다.
그래도 최대한 속도를 박찬 덕분에 이제 층의 차이는 2층밖에 나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힘을 내면 금방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유희는 빨리 그날이 오길 고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