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97화
97화 베디돌의 왕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로사를 무심히 내려다봤다.
싸움은 시작되자마자 끝이 났다.
베디돌들의 어머니.
16층의 마지막 보스라 불릴 수 있는 그녀가 맞이하는 죽음치고는 꽤 허무한 말로였다.
그만큼 내가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드는 것이 있었다.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쉽게 끝났단 말이지.”
잠깐 그녀의 전력을 맛보았을 때. 불화살은 회귀 전에 느꼈던 파괴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지에서 하드로 난이도가 올라, 여태 상대하는 적들의 수준은 조금씩 올랐거나 급격히 상승한 모습을 보여 줬다.
다만 그들이 상승한 만큼 나 또한 더욱 성장을 해 그 차이가 메워졌을 뿐.
차이의 수준은 명확했다.
한데 로사가 이지 때와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졌다?
무엇보다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란 확신을 주는 요소가 따로 존재했다.
‘보상이 들어오지 않았어.’
로사가 죽으면 들어와야 할 보상이 아까 전부터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 얘기는 즉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확실한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마법을 시전했다.
홀리크로스.
십자가의 빛이 로사에게로 날아갔다.
치이익…….
등이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등에서 붉은 오라가 피어오르더니 몸 전체로 퍼져 보호하듯이 감쌌다.
‘역시 끝이 아니었어.’
나는 새로운 십자가에 더 방대한 마나가 담아 날려 보냈다.
그것이 오라를 뚫고 다시 등을 태워 나갔다.
등에서 허리와 어깨. 팔과 다리까지 뜨거운 열기가 덮쳤다.
전부 시커멓게 변질해 나가는 와중에 로사의 몸이 공중에 붕 떠 버렸다.
재빠르게 공격에서 벗어난 로사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신을 뒤덮은 붉은 오라는 처음보다 더 강력히 방출하고 있었다.
마나볼트로 폭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거의 반사적으로 공중을 비행하며 피하거나 붉은 오라로 막아 냈다.
순간, 로사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죽은 자의 염언이군.”
처음에는 의심만 했는데, 두 눈동자와 입술을 보고 확신했다.
흰자만 보이는 두 눈과 검게 변질한 입술은 죽은 자의 염언이란 마법의 특징이다.
죽은 자의 염언은 당사자가 죽고 나서야 발동되는 마법으로, 꽤 골치 아픈 마법이었다.
비록 유지시간은 짧으나 생전에 가졌던 힘보다 초월한 힘을 발휘하여 적을 죽이려고 든다.
로사는 열 손가락을 펼쳤다.
화륵! 화륵! 화륵!
손가락 끝에 불꽃을 만들어 내곤 이내 레이저 형태로 쏘아졌다.
레이저 불꽃은 제각각 다른 곡선을 그려 가며 접근해 왔다.
굳이 피할 필요 없이 보호막으로 받아 낼 생각을 하곤 나 또한 마법으로 맞대응했다.
엘리렌스.
[각 마법의 속성이 강화됩니다.]
[각 속성의 내성이 일부 형성됩니다.]
[엘리렌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다크볼트, 다크퍼드.
일시에 파괴력이 중시되어 있는 구체와 날카로움의 결정체인 바람을 조합했다.
[레인보우 띠의 조건부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
[효과 ‘마법 증폭’이 일어납니다!]
띠의 색깔은 노란색. 거기에 지팡이의 증폭률까지 더해져 마법의 힘이 배가됐다.
나는 검은 바람을 소용돌이처럼 회전시켜, 다크볼트에 회전력을 만들었다.
그러자 하나의 강력한 총알이 되어 날아갔다.
타아아앙-! 콰앙!
오라를 뚫고서 폭발을 일었다.
뒤로 여파가 발생해, 벽이 크게 뚫려 버렸다.
공간을 휩쓰는 먼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아아악!
먼저 다가서기 전에 로사가 있던 곳으로부터 불길이 뻗어 나왔다.
나는 정면으로 다가오는 불길을 검은 벽으로 막아 냈다.
이어서 기분 나쁜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으어어어!”
“끼히이!”
“케헤! 케에에에!”
벽에 박제되어 있는 죽은 인형들이 붉은 실선과 함께 부활을 한 것이다.
곧 로사가 걸어 나온다.
그녀는 한쪽 팔과 어깨를 잃어 아주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나머지 팔과 손을 이용해 수많은 실선을 만들어 내고 죽은 인형들을 조종했다.
수십이 넘는 인형이 가위와 식칼, 혹은 기타로 무장한 채 달려들었다.
“소꿉장난이라도 하자는 건가.”
굳이 저 많은 인형을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이어진 실선을 끊어 내면 그만이었다.
다크소드.
검 하나를 띄워 놓고 실선들을 끊어 내도록 의지를 전달했다.
이후 다른 놈들은 안중에 두지 않고 로사에게 어둠으로 변해 접근했다.
그리고 아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방에 어둠 벽을 세웠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 그녀는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어내듯 입을 벌려 불을 뿜어냈다.
화아아악!
나는 피하지 않고 보호막을 해제했다.
그다음에 영광의 장갑을 끼고 있는 손을 정면으로 세웠다.
그러자 모든 걸 녹여 내릴 것 같던 불꽃이 장갑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한동안 멈추지 않고 뿜어내던 불이 기어코 멎었다.
푸쉬이이이…….
장갑에는 뜨거운 연기가 올라왔다.
붉게 달아오른 장갑은 마치 용암이 흘러내리고 있는 듯했다.
[영광의 장갑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어디 한번 되돌려 줘 볼까.”
로사가 도망갈 구석은 없었다.
장갑을 끼고 있는 손을 허리 뒤로 넘긴 뒤 짧게 호흡했다.
이어 간결하게 주먹을 내뻗었다.
장갑에 퍼져 있던 붉은 열기는 방패 문양으로 모여들더니 이내 바깥으로 응축된 불꽃을 방출했다.
후아아아악!
그녀를 뒤덮는 거대한 화염!
공격하기 전, 붉은 오라도 약해져 가고 있었기에 끝까지 버텨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잠시 후, 검은 잿더미가 벚꽃이 휘날리듯 머리 위로 날아온다.
[업적을 달성합니다!]
[혼자서 십단만이 아니라 음지의 여왕 로사를 처치하였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500,000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광염 마법 책이 지급되었습니다!]
[매우 강력한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미션 기여도와 보상에 영향을 끼칩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이제야 완전히 끝이 났다.
그리고 보상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것이 주어졌다.
“광염?”
이 마법은 직접 써 본 적은 없지만 이전에 누군가가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간단하게 광염은 빛의 불꽃이었다.
불처럼 뜨거우면서 빛과 같은 밝기와 속성을 지녔다.
특히나 어둠에 특화된 녀석들을 상대할 때 뛰어났다.
어찌 보면 두 개의 속성이 같이 존재하는 마법이기에 희소성도 있었다.
“이런 건 바로 배워야지.”
마법 책을 펼치니, 왠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법책에 각인된 스킬을 습득합니다.]
[광염(Lv1)을 배웠습니다.]
곧바로 광염을 시전해 보았다.
화아악!
지팡이 끝으로 감춰져 있던 그 형태가 드러났다.
점으로 된 빛의 불꽃이 지팡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선이 만들어진다.
일정 길이가 형성되자, 계속해서 만들어지던 선도 끊어져 버렸다.
하나 이미 생성된 선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시 마법을 시전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 본다.
금세 숫자 8로 된 빛의 불꽃이 완성되었다.
‘붓을 가지고 글을 쓰는 기분이야.’
생성되는 길이가 아쉽긴 하지만 아직 스킬이 1레벨인 것을 고려하면 적절한 길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응?”
잠깐 새로 얻은 마법에 정신이 팔려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로사에게 뿜어낸 불꽃이 뒤에 있던 벽마저 녹아내리게 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지 때는 없었던 연구실이 보였다.
나는 곧장 벽 너머의 연구실을 들여다보았다.
꽤 방대한 크기의 연구실에는 물이 가득 담긴 원통형의 캡슐들이 셀 수 없이 존재했다.
대다수는 캡슐 안이 비어 있었지만 하나만은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그곳엔 로사를 닮은 인형이 보였다.
순간 인형이라고 단정 지었지만…… 더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의 신체였다.
“클론이 아니고 사람이 되려고 했던 건가.”
신체를 옮기지 못한 걸 보면 기술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완성된 신체를 보면 상당수 진척을 이뤘던 건 확실하다.
“웃기는군.”
인간의 탈을 쓴다고 해서 과연 그게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영혼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한다.
설사 로사가 겉모습이 인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알맹이는 여전히 인형일 뿐이다.
퍄챵!
나는 캡슐을 깨부쉈다.
그리고 연구실 구석에서 발견한 구덩이를 보고, 로사가 어떻게 사람의 신체를 만들어 낸 것인지 알게 됐다.
구덩이 안에 무수히 많은 사람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비록 저들과 안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그냥 두는 것보단 화장을 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광염.
점으로 된 불꽃을 구덩이에 떨어트렸다.
화륵!
환한 빛을 뿜어내며 타오르는 시작하는 불꽃.
[‘정의의 방화자’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왜 이때 효과가 발동했는지 모르지만 애매모호한 기준의 정의는 불꽃을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바꾸어 놓았다.
점차 커져 가는 광염의 불꽃에, 구덩이 위로 옅은 빛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렇게 형성된 빛기둥은 마치 이곳에서 죽어 나간 인간들을 애도하는 것 같이 보였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음지의 여왕인 로사가 죽자 한동안 도시는 떠들썩했다.
그리고 로사가 죽은 영향으로 베디돌들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용병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미리 베디돌을 많이 잡았던 용병들은 웃음꽃을 피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뭐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특급 용병이 될 일도 없고, 설사 된다고 해도 로사를 해치웠기에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크릉…….”
-준석, 저기도 닫혔다. 아무래도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할 거 같다.
“으음. 그래. 어쩔 수 없지.”
나는 다칼과 함께 자주 가던 빵가게들을 들르는 중이었다.
한데 유명한 빵가게들은 전부 문이 닫혀 있는 상태였다.
베디돌들의 활동이 줄어들어 도시에도 활력이 돌아야 하지만 현재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로사가 죽고 양지의 여왕인 루시아마저 돌연 잠수를 탔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자리에 참석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국정운영도 관리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그 충격으로 시민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아무래도 심정이 복잡하겠지.’
루시아가 잠적한 이유는 자세하게 모르지만 추측은 가능했다.
그것은 로사의 죽음.
서로 못 죽여 안달이 나 있었어도 결국엔 자매였으니 감정적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에는 로사 곁에 바이올린 연주를 하던 여자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연회 때 봤던 그 여자…….’
루시아를 못 움직이게 만든 범인도 아마 그 여자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연회 이후에 나도 그 여자를 마주한 적이 없다.
찾아 나서면 금방 찾아낼 수도 있을 테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딱히 내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니까.
그보다.
“크아아앙!”
다른 빵가게도 문이 닫혀 다칼이 울부짖고 있었다.
“하아~ 오늘은 그냥 여관에 있는 빵이나 먹어야겠네.”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관에 들어섰다.
그런데 매번 인사를 나오던 레인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먼저 온 손님을 맞이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어?”
맞이하고 있는 손님의 옆모습을 본 나는 그들이 서 있는 곳으로 곧장 걸어갔다.
그리고 레인 마주편에 서 있는 그, 안수찬을 보며 반가움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