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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95화 (95/230)

회귀한 탑 등반자 95화

95화 여왕 루시아

광활하기 그지없는 궁전 가장 안쪽에 위치한 알현실.

피아노의 선율이 빠른 템포에 맞춰 울려 퍼진다.

알현실의 광택이 비추는 왕좌에 허리를 꼿꼿이 핀 채 앉아 있는 여왕 루시아는 한쪽 팔걸이에 몸을 기댄 채로 연주자를 응시했다.

“흐음~ 따분해.”

열심히 건반을 연주하던 연주자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연주자는 루시아를 이따금씩 쳐다보며 눈치를 보았다.

“그만.”

루시아가 손을 쳐들자 곧바로 연주가 멈추었다.

곧 팔걸이에서 몸을 뗀 그녀는 허리를 굽혀 연주자를 내려다봤다.

“꽤 유능하다고 들었는데. 별것 없구나.”

“그…… 어디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말씀을 해 주시면…….”

“됐다. 더 듣다가는 귀가 썩겠어. 근위병! 저자를 감옥에 가둬라!”

감옥이란 말이 나오자 연주자는 다급히 소리쳤다.

“여왕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더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럼 여태 더 잘할 수 있는데 대충 연주를 했다는 것이구나. 감히 날 앞에 두고 능멸하다니. 저 자는 따로 독방에 처넣거라!”

“안 돼에에!”

기어코 연주자는 근위병들에게 끌려 나갔다.

“다음!”

이어서 또 다른 연주자가 알현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색소폰을 부는 연주자였다.

“어디 해 보거라.”

색소폰만의 특유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나 루시아는 이 역시도 마음에 안 드는지 색소폰 연주자 역시 감옥에 처넣어 버렸다.

오늘만 해도 감옥에 들어간 연주자만 여덟이 넘었다.

감옥에 들어간 자들은 온갖 고문을 받고 나온다.

이는 궁전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음악을 듣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그녀.

이런 악취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시아는 강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크게 신임을 받고 있었다.

잠시 후, 또 하나가 끌려 나갔다.

“쯧쯧. 오늘은 마음에 드는 연주가 하나도 없군.”

루시아는 문득 한 여자를 떠올렸다.

자신을 유일하게 만족을 시켰던 연주자를 말이다.

“흠.”

루시아는 신하를 불러 그 연주자를 불러들이라 명령했다.

그 사이 루시아의 눈과 귀가 되어 주는 충신 아자르가 보고를 위해서 알현실로 들어왔다.

“그래. 알아보라는 건?”

“창고 화재 사건을 쫓던 하루토 공은 확실하게 실종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한데 이상한 점은 그가 이끄는 저스티스 길드원들도 같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인간이? 흐응~ 꽤 강한 힘을 지닌 인간이었는데. 실종이라…… 갑자기 길드원들과 함께 사라질 리는 없고. 혹 누군가에게 당한 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무래도 화재를 일으킨 주범에게 당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래서. 주범이 누군지는 알아냈나? 다수가 사라졌다면 필시 범인은 하나가 아닐 수도 있을 터.”

“그것은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알아보거라.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어. 어떤 집단이 행한 짓이라면 더 큰 일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가 보거라.”

아자르가 물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찾아왔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손에는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다.

“키라, 어서 오거라.”

루시아는 여태 보이지 않았던 환한 미소로 그녀를 환대를 해 주었다.

“루시아 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키라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 오늘 그대의 컨디션은 어떠한가?”

키라는 꽃처럼 미소를 지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온갖 쓰레기 연주들만 들었더니 귀가 피곤하구나. 부디 그대의 연주로 내 귀를 정화시켜다오.”

“예.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루시아 님.”

키라는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다.

깔끔하고 깊이가 있는 바이올린의 소리는 무표정하고 싸늘한 표정을 짓던 루시아의 얼굴에 행복을 깃들게 만들었다.

루시아는 어렸을 적부터 불면증을 겪어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나 키라가 한 연주를 듣고 난 뒤로는 왠지 모르게 잠이 쏟아 내렸다.

그런 그녀의 능력을 높이 산 루시아는 연주가 끝난 뒤에도 따로 테라스에 불러 다과를 즐기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대화는 일방적으로 루시아의 중심으로 돌아갔다.

루시아에게 있어 키라는 편안한 안식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키라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 루시아 님, 혹시…… 전에 제가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화재 범인 말이구나.”

“네.”

“그거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도중에 차질이 좀 있긴 했지만 곧 범인을 찾아낼 듯하니.”

“그거 좋은 소식이네요. 저는 루시아 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루시아 님을 위한 성대한 연회가 열리겠네요.”

“그렇지. 부디 지루하지 않길 바랄 뿐이야. 충신들이 한 번쯤은 연회를 크게 열어야 한다고 어찌나 닦달하던지.”

“개인적으로도 한 번쯤은 성대하게 열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대 생각도 그러한가?”

“네.”

“흐음~ 내일 그대도 연회에 오겠지?”

“아~ 루시아 님의 생신인데 당연히 가야죠. 그리고 루시아 님 몰래 특별한 곡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오호~ 그게 정말이냐?”

루시아가 두 눈을 빛냈다.

“네. 아마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그렇게까지 얘기하니 기대가 되는군.”

“아마 가장 기억에 남을 생일이 되실 겁니다.”

그리 말하는 키라의 두 눈에서는 순간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루시아는 미처 그 차가운 시선을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궁전을 나오는 키라는 아까 전에 지었던 싸늘한 표정을 다시 드러냈다.

힐끗 뒤를 쳐다보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인형 주제에 더럽게 맞춰 주기 힘드네. 퉤!”

키라는 루시아와 같은 인형이 아닌 사람.

그것도 등반자였다.

한데 그녀가 루시아의 부름에 순순히 응하는 이유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이올린은 그녀에게 있어서 무기이다.

루시아는 자신의 연주를 듣고서 불면증을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신체를 천천히 악화시켜 나가는 과정에 일어나는 눈속임일 뿐이었다.

“하아~ 그래도 이 짓거리가 오늘로 끝이라니. 다행이지.”

드디어 내일이 디데이였다.

내일, 연회에 베디돌들이 들이닥쳐 루시아를 기습할 것이다.

그때 준비한 곡을 연주해 루시아가 기습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신체를 못 움직이게 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루시아에게 여태 들려준 연주들은 그것을 위한 밑바탕일 뿐이다.

“큭큭큭, 하하하하!”

그녀는 그동안의 고생에서 해방될 생각을 하니 기쁨이 저절로 나왔다.

이내 웃음을 멈춘 키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씨~ 근데. 지금 생각해도 짜증 나네. 대체 창고를 태운 놈이 누구야? 지내는 동안 재테크 좀 해 보려고 사 놨더니만. 홀라당 다 타서는. 씨…….”

범인을 잡아도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끝내 원금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불 지른 새끼, 아주 눈에 띄어 봐…… 확 얼굴을 태워 버릴라니까.”

파악!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에 괜한 화풀이를 해 댔다.

그러며 곧장 음지의 여왕인 로사의 궁전으로 향하는 그녀였다.

* * *

오늘은 여왕 루시아의 생일이자 성대한 연회가 열리는 날.

도시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길을 걷는 인형들은 대체적으로 들떠 있고, 건물마다 치렁치렁 매달아 놓은 장식물과 밤의 축제를 위한 야등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속에 섞인 등반자들도 연회라는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즐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얼마가지 않아서 축제 분위기이던 연회가 절망으로 뒤바뀌는 것은 큰 기대가 되긴 하지만.

지금의 축제 분위기는 내게 있어 텅 빈 과일을 먹는 기분이었다.

원래 축제라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해야 즐거운 것.

‘유희는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친구의 모습을 회상하던 나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아삭거리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봤다.

“캬하암! 카하암!”

다칼이 쉬지 않고 사과를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몇 개째 먹는 거야?”

“캬하암! 크응?”

-딱히 세 보질 않았다만. 그대는 뭔가를 먹을 때 개수를 세면서 먹나?

“한 백 개는 넘게 먹었겠다. 이거 내가 봤을 때 늑대가 아니고 돼지야. 돼지.”

-뭐라!? 돼지!? 그런 하등생물과 나를 동급 취급하다니! 말이 너무 심하군!

“캬하암!”

그러면서 사과를 집어삼킨다.

“하아~.”

‘답도 없네. 답이 없어.’

이내 사과 장사를 하는 상인이 계산서를 내밀었다.

“뭣!? 8만 포인트!?”

먹은 사과 가격만 해도 8만 포인트라니.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비하면 8만 포인트는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한 끼 식사치고는 매우 비싸게 나왔다.

“대체 누가 과일을 800만원이나 처먹어.”

“크흥!”

다칼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연회가 열리는 장소로 뛰어갔다.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며칠 새, 어째 먹는 양이 더 늘었단 말이지. 또 덩치가 크려나.”

전에 보니 페르라의 힘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의 몸집을 보았는데. 이젠 평범한 늑대 수준의 크기까지는 성장해 있었다.

신체 길이가 한 2미터쯤 될까?

성장기에 들어선 것인지 최근에 특히 성장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많이 먹었다고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먹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면 이는 좋은 징조였다.

‘페르라의 힘을 흡수해서 이전의 힘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고 해도 그건 완벽하지도 않고 소모성의 힘에 불과하지. 결국에는 다칼이 스스로 성장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플랜이야.’

그래도 오늘같이 음식을 먹었다간 포인트가 금방 거덜이 날 것이다.

다행인 것은 먹는 걸 딱히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마음에 든다 싶으면 다 먹어 버리니 완전한 잡식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놈은 대체 어디까지 도망을 친 거야.’

연회 장소에 도착한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칼을 찾았다.

한데 워낙 인파가 많이 쏠리다 보니 복잡스러웠다.

다칼이 어둠을 밖으로 드러내면 찾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말이다.

“오오오. 여왕님이다!”

“루시아 여왕님!”

그 사이, 루시아가 어느 무대 위에 올라섰다.

나는 다칼을 찾다말고 루시아를 쳐다보았다.

싱그러운 노란색 머릿결을 가진 그녀는 인형답지 않은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인형이라기보다 사람에 가깝달까?

다만 인형만이 가진 특유의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루시아는 모두가 보이는 단상에 서서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연설을 이어 가는데 그저 시민들의 신임을 얻기 위한 입에 발린 말들이었다.

나는 잠시 루시아에게서 관심을 끄고 주변을 살폈다.

다칼을 찾는 것이 아닌 루시아를 기습하려는 세력을 찾는 것이었다.

그들이 서 있는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난이도가 다르다고 해도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비슷하게 일어날 것이다.

인형들은 탑이 정한 운명대로 움직이는 장기짝.

이내 로사가 보낸 이들이 찾아냈다.

숫자는 총 열아홉.

그중에 한 놈이 로사의 비수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기습이 시작되면 제압을 하기 위한 마법을 준비해 두었다.

연설이 끝난 후, 루시아는 자신을 대신해서 어떤 여자를 단상에 올렸다.

저렇게 가까이 두고 제일 처음으로 단상에 올린 걸 보면 루시아에게 신임을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혹시 하루토가 말했던 루시아의 지인이 저 여자인가?’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녀는 루시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바이올린을 켰다.

한데 자세히 보니 그 여자는 인형이 아닌 사람이었다.

“등반자라…….”

그리고 대다수는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연주를 하는 바이올린 끝에 뭉뚝한 뚜껑이 있었다.

저렇게 생긴 바이올린을 본 적이 있다.

뚜껑을 열면 길쭉한 칼날이 튀어나오는 저것은 무기였다.

이내 연주가 클라이맥스를 찍으며 마무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로사의 수하들도 슬슬 움직이려는 기미를 보인다.

“와아아!”

짝짝짝!

연주가 끝나자마자 환호와 박수 세례가 이어졌다.

여자는 여유로이 미소를 지으며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드디어 로사의 수하들이 움직였다.

사방에는 이미 윈드퍼드를 시전해 두었다.

공격만 명령하면 되지만, 나는 바로 제압하지 않았다.

루시아가 위협을 느끼기도 전에 전부 제압을 해 버리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꺄하아아아!”

“기습이다!”

연회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혼비백산하게 흩어졌다.

그 틈에 로사의 수하들은 루시아에게 접근해 그녀를 공격했다.

당연히 루시아는 반격을 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지?’

마치 움직이려고 하는데, 못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한 놈이 비수를 꺼내 들자 루시아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그것을 쳐다봤다.

‘저러다가 정말로 죽겠군.’

원래는 조금 더 있다가 끼어들려고 했는데 변수가 발생해 지금 끼어들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지팡이를 위로 치켜들어 재빠르게 마법을 조작했다.

휘이이이이!

각 곳에 흩어져 있던 바람들이 한순간에 녀석들에게로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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