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94화
94화 충돌 (2)
“꽤 자신만만하네. 길드원들과 함께여서 그런가.”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못 알아채려고 해도 워낙 힐끔힐끔 쳐다봐야지. 그렇게 티를 많이 내는데, 오히려 못 알아채는 게 병신이지.”
그 말을 듣더니 저스티스 길드원들이 이젠 대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연스레 포위가 됐다.
하지만 나는 포위가 됐든 안됐든, 그런 건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하루토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칼 뽑아.”
“예……?”
“칼 뽑으라고.”
대놓고 요구를 하니 하루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칼집에 손을 가져가긴 했지만 검을 뽑지도 그렇다고 안 뽑지도 못하는 애매한 자세였다.
잠시 후,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잇는다.
“괜히 여관에서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나가시죠.”
하루토가 먼저 몸을 돌려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를 뒤따라가며 조용히 웃었다.
‘단골로 지내는 여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겠지.’
그가 여관에서 검을 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만일 검을 들 거였다면 진작 들었을 터다.
나 또한 여관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내키지 않기에 지금 상황은 딱 내가 원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편 길드원들은 보디가드처럼 뒤꽁무니를 졸래졸래 쫓아왔다.
나는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건물을 나오는 순간 하루토에게 재빨리 달려갔다.
파아앙!
“커헉!”
기습적으로 그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전력을 다한 킥이었기 때문에 하루토의 몸이 공중으로 높이 떠 버렸다.
나는 걷어찼던 발을 내리고 두 발목과 허벅지에 힘을 주며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뒤를 힐끗 본다.
보디가드처럼 날 감싸던 길드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어디 한번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시지.’
파앗! 쾅!
응축된 근육의 힘을 한 번에 터트려 땅을 박찼다.
바닥의 벽돌들이 충격에 강하게 튀어 올랐다.
동시에 먼지가 피어오른다.
“으악!”
“쿨럭쿨럭!”
뒤에 서 있던 길드원들이 벽돌과 먼지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 틈에 나는 하늘에 떠 있던 하루토를 잡아채곤 그의 목을 붙잡고 끌었다.
“으으윽!”
하루토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내 팔뚝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다칼! 어둠!”
“캬하앙!”
도중에 허튼짓을 못하게 다칼이 소환한 어둠으로 그를 속박했다.
어느덧 도시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들판에 이르렀다.
나는 발목을 꺾어 달리는 속도를 늦추곤 하루토를 반대편에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본다.
저스티스 길드원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컥! 컥!”
하루토가 목을 부둥켜안은 채 몇 번이고 기침해 댔다.
“비겁한……!”
“비겁? 동료들을 떼거리로 몰고 온 너보다는 덜 비겁한 거 같은데. 그리고 싸움에 비겁이 어디 있어. 과정이 어떻든 이기기만 하면 되지.”
나는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여긴 방해꾼들도 없는 것 같으니 덤벼. 설마 혼자라서 싸우지 못하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가벼운 도발이었다.
“큭!”
스릉!
하지만 도발이 제대로 먹힌 듯 목을 감싸고 괴로워하던 하루토가 검을 뽑아 들었다.
다만 가까이 접근하는 게 아닌 허리 뒤로 팔을 뺐다.
찌르기 전의 자세였다.
일순간 팔을 내뻗는다.
칼끝에서는 빛이 뻗어 나왔다.
피잉!
총탄 같은 검기가 날아 들어온다.
하나 가벼이 보호막에 가로막혀 버린다.
속도는 재빠르나 생각보다 파괴력은 얕았다.
이어서 날아 들어오는 연격!
총탄의 검기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타타타타탕!
나는 방어를 보호막에 맡긴 채 스무 개가 넘는 마나볼트를 짧은 시간에 시전해 냈다.
만뢰를 흡수하며 얻은 힘을 극대화했다.
반쪽으로 쪼개지기 시작하는 구체들.
스무 개가 곧 마흔 개가 되고, 마흔 개가 곧 여든 개가 됐다.
“이런 미친…….”
하루토가 놀란 표정과 함께 하던 공격을 멈추는 대신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런다고 막아지나.”
약 백여 개를 넘긴 마나볼트를 거침없이 날려 보냈다.
하루토가 공격을 막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쾅쾅! 콰가가가강!
하지만 결국에는 전부 다 막지 못하고 연이은 폭격이 이어졌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백여 개를 날리고도, 또 마나볼트를 생성해 폭격을 이어 나갔다.
사아악!
그새 만신창이가 된 하루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겨우 빠져나온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눈에는 형형한 빛이 서려 있었다.
곧장 우측으로 접근해 온 그가 10미터정도 되는 거리서 검을 거꾸로 들어 땅에 내리찍었다.
푸악! 팡! 팡! 팡!
내리찍자마자 빛기둥이 땅을 뚫고 올라와 일직선으로 솟구쳤다.
다크월.
키기기기!
그렇다면 애초에 기둥이 솟구치지 못하도록 그곳에 기울은 벽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공격은 시선 끌기에 불과했다.
강렬한 구체만을 남긴 채 하루토가 사라졌다.
나는 빛의 입자가 모이는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옆이다!’
곧바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쿠억!”
빛의 입자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복부를 얻어맞아 몸이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그때 면상에 주먹을 꽂았다.
파앙!
그가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다크웹.
그가 떨어진 위치에 거미줄을 깔고, 나앉자마자 그 위에 다시 거미줄을 깐다.
거미줄 샌드위치.
하나, 곧 그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상성에 의해서 거미줄이 녹아내렸다.
하루토는 자신을 성화시키고서 검을 땅으로 늘어뜨렸다.
수아아아악!
검을 올려친다.
엄청난 빛의 방출이 일어났다.
이 일대를 전부 뒤덮을 정도로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거대한 빛 에너지가 들이닥치기 직전.
다크스윔.
나는 기척을 지우고 그의 등 뒤로 이동해 지팡이로 목을 가격했다.
“끄억!”
찰나, 그는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사람처럼 무릎을 꿇었다.
몸에서 방출되던 빛도 무한정은 아닌지 금방 사그라지고 있었다.
나는 다크웹을 연달아 시전했다.
“으윽!”
전신의 빛을 잃은 그는 거미줄을 끊어 내지 못했다.
특히나 겹겹이로 쌓아 올린 거미줄을 쳐 내기엔 그의 힘이 역부족이었다.
“젠장! 젠장! 떨어져!”
하루토는 혼잣말을 지껄이며 홀로 허우적대기 바빴다.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렇게 걷어 내려고 해 봐야 소용없어. 그러니 이만 포기하지?”
항복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계속 거미줄만 끊으려고 하자, 나는 다크소드를 시전해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그제야 행동을 멈추고서 나를 바라본다.
“살려는 주지. 근데 이대로 풀어 주면 내 계획을 방해할 것이 분명하고. 며칠만 묶여 있어.”
“뭐? 묶여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루트딥트리.
쿠구구구구…….
엄청난 진동음과 함께 하루토의 등 뒤로 거대한 나무가 치솟았다.
나무기둥은 한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치솟았지만, 이전에 놀이공원 때처럼 거대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이후엔 똑같은 걸 만들려고 해도 안 됐지.’
깨달음, 이치와 연관된 것이 틀림없는데, 아직까지는 미지의 힘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나무로도 충분히 그를 묶어 둘 수 있었다.
루트딥트리를 계속 유지하면 레벨이 오른 만큼 마나도 더 많이 소모가 되겠지만 하나 정도 유지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사실 이리 빙글빙글 돌아갈 필요 없이 편하게 가려면 그를 여기서 죽이는 게 편했다.
그러나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여타 다른 녀석들처럼 쓰레기 같은 인성과 용서받기 어려운 짓을 한 놈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죽였겠지만 하루토는 그저 평범하게 탑을 오르는 등반자였다.
딱히 청소를 당해야 될 대상자는 아니란 뜻이다.
곧 나무줄기에 꽁꽁 묶인 하루토가 소리를 지른다.
“으아아악!”
줄기에서 빠져나오려고 반항을 하기에 회전 그네를 태워 주는 중이었다.
이내 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네 동료들이 왔나 보군. 아예 무능한 줄 알았더니, 그래도 꽤 유능한 녀석들이 있나 보네.”
“길드장님!”
“하루토 형!”
얼핏 봐도 열댓 명은 되어 보인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달려들려고 시도했다.
하나, 그들 또한 나무줄기에 붙잡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길드장만 회전그네를 태워 주면 길드원들이 섭섭해할 테니 똑같이 태워 줬다.
나는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회전 그네를 멈추었다.
지금도 많이 어지러울 텐데, 하루토는 입술을 꽉 깨물며 나를 노려봤다.
곧 하루토가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우릴 이렇게 만들었다고 해서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까? 여왕은 찾는 걸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저희까지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이 그러겠죠.”
“상관없어. 여왕이 그게 나라는 걸 눈치챌 때쯤이면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틀 뒤면 생일을 맞아 성대한 연회를 연다지?”
하루토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날 선물로 그쪽을 갖다 바치려고 했는데. 안타깝게 됐네요.”
“나를 선물로? 꿈도 크네. 뭐. 근데 꿈은 크게 가지는 게 좋지.”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네가 원하는 대로 여왕이 움직이진 않을 거야. 연회 날. 아주 재밌는 일이 벌어질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어차피 보지도 못할 텐데 알아서 뭐 하냐. 그냥 여기서 시간이나 죽치고 있으라고.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라면 꿈 깨고. 여긴 도시에서 꽤 떨어진 외지니까.”
물론 누군가에게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구출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저층부에서 이 나무줄기를 끊어 낼 수 있는 놈은 단 한 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편히들 쉬고 있으라고.”
갈 것처럼 몸을 돌리자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길드원들의 목소리도 들렸지만, 나는 하루토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뭐라고?”
“정말, 이대로 두고 갈 거냐고요!? 그래도 인간적으로 음식은 먹게 해 줘야 할 거 아닙니까!”
“아예 풀어 달라고 하지? 그리고 음식? 며칠 굶는다고 안 죽어. 특히 인간의 신체능력을 한참 초월한 등반자라면 더더욱. 그러니 굶어 죽는다는 걱정은 하지 마.”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하루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엔 자기들이 초래한 결과물이기에 딱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길드장을 포함해 저스티스 길드원들의 숫자와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것으로 방해꾼들의 정리는 끝났고…… 슬슬 본 무대로 올라가 볼까.”
혼잣말에 다칼이 반응했다.
-본 무대라면 음지의 여왕 로사를 말하는 건가?
“최종적으로는 그렇지. 그런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뭐지?
“이틀 뒤에 연회가 열릴 거야. 그날. 로사가 보낸 베디돌 중에 한 놈이 루시아를 죽이려고 습격하지. 그때 난 그 여잘 구할 생각이야.”
-루시아를? 구해서 무엇에 쓰려고? 그리고 그게 로사를 죽이는 것과 대체 무슨 관계지?
“연관이 있지. 그것도 아주 크게. 근데 신수가 그것도 몰라?”
-탑에서 오래 산 신수라고 해도 전부 다 아는 건 아니다.
“음, 하긴. 아무튼 루시아를 구해서 원하는 걸 얻어야 돼.”
-원하는 거라면……?
“영혼의 비수.”
루시아와 로사는 서로 상반된 환경에 대립을 이루고 있지만 실제론 자매 사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죽일 방법은 단 하나.
자매가 각자 한 개씩 가지고 있는 비수를 얻는 것.
중요한 물건인 만큼 항상 품에 지니고 있다.
-얻고자 하는 게 있다면 그냥 강제로 빼앗으면 되지 않는가.
나는 다칼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 쉬운 거였음, 진작 그렇게 했지. 비수를 빼앗는 건 쉬워. 다만 강제로 빼앗았을 때 비수의 힘을 장담할 수 없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비수의 주인이 죽이고자 마음을 먹어야 그 힘이 작용하거든. 만일 내가 비수를 빼앗아서 로사를 찔렀는데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루시아의 마음이 변할 때까지 영영 로사를 죽이지 못하겠군.
“그래.”
이전에는 그것 때문에 꽤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여왕 둘은 자매라고는 하나, 어렸을 적부터 서로를 싫어했던 걸로 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서로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혹여나 실수로 인해 상대를 죽이지 못하고 자신이 죽을 거란 두려움.
그 두려움 때문에 그 긴 세월 대치만 하며 살아왔지만 그것도 이틀 뒤면 균열이 깨져 버린다.
로사가 먼저 수하를 이용해 기습 공격을 함으로써 말이다.
-그럼 앞서 말한 모든 게 이해가 된다. 로사에게 공격을 받은 루시아는 복수를 원할 테고, 마침 자신을 구해 준 이에게 복수를 맡기겠군. 한데. 만일 일을 안 맡긴다면 어떻게 할 텐가?
“그땐 나름대로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원래는 루시아의 복수는 하루토가 하는 게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라인에 낄 수 없었다.
내가 소환한 나무를 찢어 없애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이 자리에 없는 하루토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저 운이 없었던 거라 생각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