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92화
92화 거목
“후~ 정말 아슬아슬했네.”
사우즈아이가 있는 공간을 헤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망토는 사라져 버렸다.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니 왠지 아쉬움이 들었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베디돌들과 혈투를 벌이던 등반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투에서 패배한 베디돌들만이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을 뿐이다.
저택을 빠져나오니 입구에는 방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등반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내게 제압을 당한 이들을 걱정하며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곧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저택으로 발길을 돌린다.
‘날 잡으려고 다시 오는 건가.’
이대로 서 있으면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구태여 여기 서 있다가 부딪힐 필요는 없었다.
쓸데없이 힘을 과시하는 취미는 없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지.’
“다칼.”
나는 다칼을 부른 직후 다크스윔을 시전했다.
그러자 다칼 역시 똑같이 어둠으로 변해 뒤를 따라온다.
공포의 저택에서 완전히 벗어나,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공포의 저택에서 얻은 비욘드북을 꺼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에 담겨져 있는 힘이 급격히 줄어들기에, 최대한 빨리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하나 스킬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회귀 전에는 행운의 룰렛과 다크소울, 둘 중에 하나를 고민했었다.
잭팟이 터지면 뛰어난 효율성과 극대화를 보이는 확률성 스킬과 큰 힘을 얻는 대신에 대가가 따르는 상시 사용이 가능한 스킬.
고민 끝에 상시 사용이 가능한 다크소울을 선택했지만, 지금의 생각은 달랐다.
‘그땐 당장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선택을 했지.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어.’
경험이 없었던 나는 그 사실을 탑을 오르며 깨달았다.
상태창을 열어 스킬란을 쭉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등가교환 스킬 레벨을 올리고 싶으나 등가교환은 레벨이 존재하지 않았다.
스킬 레벨을 올려 장기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실은 이 순간이 오기 한참 전부터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이내 비욘드북을 펼쳤다.
사아아아!
해석이 안 되는 문자들이 생명을 부여받은 듯 책에서 튀어나와 황금빛 물결과 함께 위로 승천했다.
문자와 합쳐진 황금빛 물결은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공중에서 자유롭게 부유를 하더니 뱀처럼 내 몸을 휘감았다.
[효과를 볼 스킬을 선택해 주십시오.]
나의 선택은…… 루트딥트리.
[루트딥트리 스킬을 선택하셨습니다!]
[루트딥트리 스킬에 초월적인 힘이 부여됩니다!]
곧 몸을 휘감고 있던 황금빛 물결이 피부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
찌릿한 느낌이 전신을 타고 머리까지 올라왔다.
초월적인 힘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내가 이걸 얼마큼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레벨 상승이 결정된다.
‘이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여태껏 느꼈던 고통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껴지는 고통이 달라지랴?
얼굴에 핏줄이 튀어나오고 피가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의도한 것이 아니건만, 회귀 전에 루트딥트리를 사용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로 스쳐 지나갔다.
직후 머릿속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는 상태.
텅빈 것처럼 고요했다.
하나, 그 빈 공허 속에 누군가가 침투한다.
아까 해석이 되지 않던 그 문자들이었다.
황금빛 물결과 함께 공허를 채워 나가는 힘에서 초월적인 무언가를 느꼈다.
물결은 파도가 되어 퍼져 나갔고, 저 너머 근본의 파편에 있는 루트딥트리에 하나씩 스며들었다.
하지만 스며들려는 힘이 너무 방대해 전부 흡수치 못하고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아깝다.
나는 본능적으로 사라지는 힘을 아깝다고 느끼고 있었다.
저 힘을 전부 담아내야만 한다. 그래야 이전과 다를 수 있다.
반 이상을 흘려보냈던 회귀 전의 나.
견뎌 내지 못할 거라 여기고, 한계를 정해 흡수를 포기해 버렸던 시절을 반성한다.
“끄으윽!”
내 의지가 반영된 것일까?
허공으로 흩어지던 힘의 일부가 다시 근본의 파편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할 수 있다면 전부 쓸어 담는 거야! 전부!’
“으아아아아!”
의식은 고통을 넘어섰고, 고통을 넘어선 의식은 초월적인 힘에 한 발짝 다가섰다.
“흐어억!”
찰나 다른 곳에 갔다가 온 것처럼, 나는 육체로부터 멀어졌던 의식이 다시 되돌아옴을 느꼈다.
나는 잠시 기절을 했었던 것인지 누워 있었다.
허리를 굽혀 몸을 일으켜 세우곤, 걱정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다칼을 쳐다봤다.
-또 무모한 짓을 했군.
“얼마나 기절해 있었지?”
-한 5분쯤 그러고 있었다.
“하아~ 오래되진 않았네.”
피라미드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에 그런가.
시간부터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는 만족스럽나?
다칼의 질문에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루트딥트리 스킬에 초월적인 힘을 모두 담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트딥트리(Lv10)을 달성합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일정 레벨에 도달하여 나무 크기가 광대해지며 나무줄기 개수가 늘어납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루트딥트리(Lv20)을 달성합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일정 레벨에 도달하여 나무줄기의 물리, 마법 내성이 증가합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
…….
결과는 대성공.
무려 26레벨을 달성해 내는데 성공했다.
회귀 전에 정상에서 스킬 레벨이 41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것이 얼마나 뛰어난 성과인지 알 수 있었다.
한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속성의 친화력과 지배력이 증가한다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 사실이 메시지로 밝혀졌다면 루트딥트리에 속성을 부여했을 때 해당 속성의 친화력과 지배력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개나 소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숨겨진 힘이기에, 더욱 특별했다.
그리고 이미 스킬의 경지를 맛본 적이 있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루트딥트리의 레벨이 오를수록 속성의 친화력과 지배력이 오르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특효약을 먹었는데. 안 사용해 볼 수는 없지.”
나는 지팡이를 꺼내 마법을 시전했다.
다크딥트리.
[행운의 룰렛이 발동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룰렛에서 이 나왔습니다!]
[발동한 스킬 레벨에 이 일시적으로 적용됩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일정 레벨에 도달하여 나무 크기가 더욱 광대해지며 줄기 성질에 변화가 생깁니다.]
[루트딥트리 레벨이 일정 레벨에 도달하여 나무줄기가 강력한 물리. 마법 내성을 얻습니다.]
마침 룰렛까지 터져 버렸다.
……쿠구구구구!
나무가 등장하기 전부터 땅이 크게 흔들리는 게, 심상치 않았다.
인근, 아니 어쩌면 놀이공원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아앙!
순간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나무기둥 두께는 빌딩과 견줄 정도였다.
수아아아악!
기둥이 끊임없이 치솟는다.
이윽고, 치솟는 걸 멈추고 꼭대기에서 꽃을 피우듯 수천 개의 나무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나는 그것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매서울 정도로 뻗어 나가던 줄기가 더는 뻗지 않았다.
“대체…….”
놀이공원의 삼분의 일 정도를 집어삼킨 초거대 나무.
저것이 새로운 루트딥트리의 힘이었다.
한데 원래 52레벨의 나무가 이렇게 컸었던가?
그때.
[흡수를 통해 초월적인 힘을 엿보았습니다.]
[진리의 일부를 쫓았습니다.]
[길(道)의 특성이 발동합니다.]
[대량의 마나가 올랐습니다!]
비욘드북에 담겨 있던 힘을 모두 취하고자 안간힘을 썼을 뿐인데, 내 행동이 진리를 쫓는 걸로 인정되었다.
마나 그릇의 크기가 또 커진 게 느껴진다.
하나 이와 별개로 내가 알던 52레벨의 나무와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커도 이것보다는 작았는데.’
한 30퍼센트가량 크기를 줄여야 이전과 비슷한 정도였다.
어떻게 된 걸까?
그러고 보니 스킬을 시전할 때 일부 힘을 빌려 쓴다는 느낌이 아니라 등가교환처럼 탑을 거치지 않고 내게 도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차차 알게 되겠지.’
지금 중요한 것은 루트딥트리 스킬 레벨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어둠에 대한 친화력과 지배력을 더 빨리 늘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캬하아~.”
-새로 얻은 힘이 아주 멋들어지군.
다칼도 내가 만들어 낸 나무에 감탄을 내뱉었다.
-저 정도의 크기면 여기 놀이공원에 있는 베디돌들을 한꺼번에 싹 다 잡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다칼을 칭찬하며 곧바로 베디돌들을 잡아들일 준비를 했다.
아직 특급 용병이 되려면 먼 만큼 분발해야 했다.
“우선 시야 확보부터.”
눈이 백 개 이상 달린 게 아니기 때문에 베디돌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려면 두 개의 눈 말고 다른 눈들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만능으로 사용되는 등가교환 마법.
곳곳에 내 눈이 되어 줄 마법의 눈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오래 유지는 못할 듯싶었다.
‘마나가 장난 아니게 까이네.’
마나가 다 소모되기 전에 일을 끝내 버리자.
그리 생각하며, 나는 두 손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도시 외곽,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 사내가 있다.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고 표정은 어두웠다.
“젠장. 목격자도 없고, 남겨진 단서도 없고. 이게 대체 며칠째야!”
파악!
화가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캔을 발로 걷어찼다.
야옹!
반대편을 지나가던 고양이 인형이 화들짝 놀라 피한다.
“하아~.”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사내, 하루토가 화재 사건을 조사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자기는 이렇게 머리를 감싸 안고 있는데, 범인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실은 범인이라 생각이 드는 인물이 하나 있긴 하지만, 물증이 없는 심증뿐.
물증이 잡히기 전까지는 그를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길드원들에게는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점점 여왕 루시아의 독촉도 심해져 가며 그는 은근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하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외곽에 있는 건물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증인을 찾는 것뿐이었다.
이내 하루토는 외곽에 하나밖에 없는 진료소에 멈췄다.
수많은 인형들이 이곳을 들르니 진작 들렀어야 할 곳인데. 창고 인근을 중심으로 조사를 하느라고 늦어 버렸다.
‘여기서도 증인 하나 못 찾으면 정말 답도 없는데.’
거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는 진료소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