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90화
90화 콜러코스터의 유령 (2)
역시 그 녀석의 신발은 달랐다.
치잉!
둥근 고리가 과자 부스러기처럼 부서졌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지자마자 나는 녀석을 옭아맬 어둠을 한데 끌어모았다.
주변은 어둡기 그지없어서 끌어올 어둠은 많았지만 현재 내 지배력으로는 한 사람을 뒤덮어 버리는 정도가 전부였다.
“끼히히히!”
조롱하는 것만 같은 할로우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 들려온다.
하나 곧 내 손에 반갈죽이 되어 버릴 신세.
저런 얕은 도발 따위에 넘어가지 않았다.
신중함을 유지한 채 머리 위에 떠 있는 어둠을 작은 공의 크기로 쪼갰다.
이내 원자처럼 수백 여 개로 쪼개진 어둠을 할로우를 향해 날려 보냈다.
“끼이!”
할로우가 어둠을 쳐 내기 위해 낫을 머리 위로 들었다.
사사사삭!
할로우는 자신의 몸을 가릴 정도로 정면에 엄청난 잔상을 남겼다.
동시에 하얀 초승달의 검기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린다.
덜컹!
기차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바람에 몸의 균형이 잠시 흐트러졌다.
여기가 땅이었다면 풍요의 로브 효과 덕분에 흔들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다시 균형을 잡고 곧장 공격에 대비했다.
쩌저적! 쩌저적!
주피로의 단검으로 정면에 얼음 방패막이를 형성했다.
파창! 파창! 파창!
검기가 쏟아질 때마다 얼음이 부서지며 사방에 파편이 튀었다.
파편이 되고, 파편이 되어. 이내 얼음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
주륵.
날아든 검기는 전부 막아 냈지만 여파로 만들어진 파편은 피하지 못했다.
뺨과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한편 할로우는 어느새 완벽한 구체를 이룬 어둠에 갇혀 있었다.
수백 여 개로 쪼개졌던 어둠이 할로우에게 접근하자마자 하나로 뭉친 것이다.
나는 기차가 가는 선로 방향을 내다봤다.
대략 30미터 정도는 급커브나 큰 곡선 없이 평탄한 길이었다.
과감한 선택을 내렸다.
탓!
미리 기차가 지나갈 곳을 예측해 하늘로 뛰어올랐다.
설사 착지하는 계산이 틀린다고 해도 걱정할 일은 없었다.
다크스윔이나 윈드퍼드로 하늘을 부유해 기차에 올라타면 됐다.
화르윽!
주피로의 단검 날에는 주홍색 불꽃이 타올랐다.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순간!
파아아악-!
할로우를 뒤덮고 있던 어둠이 재빠르게 흩어졌다.
“끼에에!”
할로우가 뒤늦게 공격을 피해 보려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푹!
주홍색 불꽃을 머금은 칼날이 녀석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갔다.
화아아아악!
기다렸다는 듯이 안으로 침투한 불꽃은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얗던 천이 붉게 변했다.
“끼에에에!”
할로우가 괴로움에 울부짖더니 이내 몸이 흐려지고 있었다.
타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투명화하려는 것이었다.
한데 단순한 투명화가 아니었다. 투명화와 동시에 녀석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불꽃이 사라져 간다.
하나 이는 좋은 징조였다.
자가 회복력과 회피력을 동시에 지닌 필살기 같은 투명화를 지금 사용했다는 건 할로우가 죽음의 위기를 느꼈다는 뜻이니까.
다만 이리 쉽게 보내 줄 수는 없지 않는가, 끝내려면 단숨에 끝내 버려야지.
파직! 파지직!
나는 단검의 속성을 전기로 바꿨다.
불로 채웠던 할로우의 몸에 전기가 흘렀다.
“끼아악!”
그러자 투명해져 가던 할로우가 원래대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투명화의 취약한 약점은 다름 아닌 전기.
“이걸로 끝이다.”
촤아아악!
가슴에 박혀 있던 주피로의 단검을 그대로 위로 쳐올렸다.
반갈죽이 된 걸 확인하곤, 아래를 내려다보며 밑으로 떨어졌다.
덜컹!
기차 꼬리에 안전히 착지했다.
평길 코스도 끝나간다.
곧 나올 구간은 비좁은 터널의 수직 루프였다.
다크스윔.
스르륵-
다칼이 있는 맨 앞 칸으로 이동했다.
“케헤에에…….”
여전히 다칼은 제 몸을 가누기도 어려워하고 있었다.
하나 어차피 사냥은 끝났다.
[업적을 달성합니다!]
[난공불락 할로우를 처치하였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인비저블 망토가 지급되었습니다!]
인비저블 망토.
히든피스를 얻는데 꼭 필요한 아이템.
그것을 손에 쥐자마자 곧장 터널로 들어섰다.
수우우우우-
기차가 매우 빠른 속도로 수직 낙하를 한다.
다칼의 두 동공이 크게 팽창한다.
“으갸갸갸!”
입이 다물지 못하고 괴성을 질러 댄다.
“좀만 참아. 거의 다 왔어.”
할로우를 잡았기에 이젠 기차에서 벗어나도 상관이 없었지만 다칼의 반응이 워낙 재미있었기에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찰캉!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 부품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소리였다.
수직 낙하가 끝난 뒤 터널을 나왔다.
이제 곧 플랫폼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전에 일이 벌어졌다.
콰당! 타타타타!
앞에 있는 선로가 끊어져 버렸다.
“어, 어우.”
쾅!
끊어진 선로를 따라 기차가 움직인다.
순간 기차가 허공에 떴다.
50미터가 넘는 상공 높이!
기차 앞 칸이 기울며 모든 것이 아래로 기울었다.
수우우웅-
터널 때와는 또 다른 수직 낙하를 맛보았다.
“흐갸아아아!”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는 다칼을 손으로 붙잡고서 기차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다크스윔 마법을 시전했다.
안전히 땅으로 이동한 나는 내던져졌던 다칼을 캐치하고 여전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기차를 쳐다봤다.
콰아앙! 콰아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충돌과 함께 큰 폭발이 일었다.
휘이이이-! 팡! 팡!
폭죽이 있던 자리에 떨어진 것인지, 하늘로 날아오른 폭죽이 화려한 마무리를 지어 주었다.
“이제야 좀 놀이공원에 온 것 같네.”
나는 만족스러워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에에…….”
-준서억,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정말로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 좀 쉬어.”
나는 다칼의 뒷목을 붙잡아 머리 위에 올려 두곤 보상으로 얻은 망토를 살폈다.
인비저블 망토.
말 그대로 망토를 두르면 투명해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아이템의 정보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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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망토
효과: 망토를 둘러 투명해질 수 있다. 그 어떤 것에도 감지되지 않는 힘을 지녔으며 힘이 발휘되는 순간부터 10분간 능력이 유지된다. 그 이후엔 망토가 소멸한다.
사용 가능 횟수: 1회
제약: 해당 층에서만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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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만 다를 뿐이지 3층에서 습득한 파괴자의 너클과 비슷한 종류였다.
아무튼. 이 망토의 힘만 있으면 여러 가지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가장 떠올리기 쉬운 건 상대하기 골치 아픈 놈의 등 뒤로 이동해 기습을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꼭 그래야만 하는 상대는 없고, 이걸 다른 용도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 놀이공원에 공포의 저택이라는 놀이기구가 있는데, 그곳에는 일반적으로는 통과할 수 없는 복도가 있었다.
따로 복도의 이름도 존재했다.
늪의 복도.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곳에 그냥 들어가서 살아나온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하나, 인비저블 망토가 있으면 그곳을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것까지 가능했다.
나는 공포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드높은 담벼락과 철문 너머로 드넓은 마당과 거대한 저택이 보인다.
마당에는 죽은 나무들이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택은 곳곳에 금이 가 있고, 거미들이 득실대는 듯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거미줄이 잔뜩 껴 있었다.
“스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걸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다.
‘먼저 온 일행이 있었군.’
두 명의 남자가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다가온다.
“여긴 우리가 점령했으니까 다른 곳을 알아보지?”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내가 저 안에 볼일이 있거든.”
파란색 목도리를 두른 남자가 석궁을 어깨에 대고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하, 이 새끼. 지금 한판 해 보자는 거야?”
“한쪽이 무참히 짓밟히는 게 과연 싸움으로 치나.”
“뭐?”
“물론 덤비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사지 멀쩡히 돌아가고 싶다면 물러서는 게 좋을 거야.”
“아예, 말귀가 안 통하는 새끼구만.”
어깨에 있던 석궁으로 겨누려고 하는 순간 나는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리고 양손을 뻗어 왼손은 석궁을 옆으로 쳐 내고 나머지 오른손으로 턱을 가격했다.
“커헉!”
턱을 맞은 그는 몸이 경직됐다.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뒤늦게 덤벼들려고 시도한다.
다크스윔.
“어어어!?”
갑자기 거리를 좁히자 남자는 당황해서 들고 있던 검을 어수룩하게 휘둘렀다.
동작이 크다 보니 빈틈투성이였다.
퍽!
망설임 없이 고간을 걷어찼다.
“으어어……!”
남자는 고통을 견디질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쯧쯧.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비키지.”
이후 석궁과 검을 빼앗아 무장을 해제시킨 후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 두 명이 보초를 서 있던 걸 보면 안에 일행들이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일행 세 명이 저택에 있는 베디돌들과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야! 빨리 이쪽 좀 도와!”
“시발! 이쪽도 처리가 안됐는데 어떻게 도우러 가!”
“젠장!”
그들은 베디돌들을 상대하기 바빠 보였다.
‘굳이 건드릴 필요 없겠어.’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싸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가려는 곳에는 저들이 아예 출입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1,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갔다.
공포의 저택이라고 해도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좀비같이 생긴 인형들 몇 놈만 상대하는 게 전부였다.
“그어어…….”
쿵!
머리에 나사가 박힌 프랑켄 인형을 제거한 후에야, 내가 찾던 늪의 복도와 마주할 수 있었다.
복도의 바닥은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형상을 가진 시체들이 마구 깔려 있었다.
벽과 천장에는 끝에 핏물이 맺힌 큰 가시들이 살아 숨 쉰다.
이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꽃의 형태를 가진 괴물들이 아가리를 벌린 채 먹잇감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거기에 복도 반대편에 서 있는 또 다른 나.
내가 손을 흔들자, 저쪽도 똑같이 손을 흔들었다.
도플갱어? 복제인간? 아니다.
너무나도 정교해서 보이진 않지만, 복도 중간쯤에는 아주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정 무서운 것은 저 거울 너머에 있다.
매나이어 배지로 보호막을 둘렀다.
그리고 시체 밭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어어!”
갑자기 시체들이 되살아나 다리를 붙잡으려고 시도했지만 보호막 때문에 잡는 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계속 전진했다.
슈아아악!
심장이 뛰는 것처럼 몸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던 가시들이 기습적으로 공격을 해 온다.
순간, 가시의 크기와 길이가 늘어나 급소를 노렸다.
투두두두두두!
하지만 가시 역시도 보호막을 뚫지는 못했다.
“퀘헤에에!”
마지막으로 괴물이 나를 집어삼키려고 덤벼든다.
서걱! 화아악!
나는 그 괴물의 머리를 주피로의 단검으로 베어 내곤 이윽고 거울 앞에 섰다.
똑같이 움직이던 거울 속의 나는 갑자기 고개를 틀어 괴이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손에 쥐고 있던 주피로의 단검을 거꾸로 들어 자기 배를 찔러 버렸다.
피를 흘리면서도 괴이한 미소를 유지한다.
하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들어오지 말라 경고해 봐야, 내 의지는 분명했다.
나는 조용히 주먹을 쥔 뒤 있는 힘껏 내뻗었다.
파앙! 쨍그랑!
거울의 유리가 부서지며 괴이한 미소를 짓던 거울 속의 나도 사라져 간다.
잠시 후.
거울 뒤로 숨겨져 있던 미지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