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89화
89화 롤러코스터의 유령 (1)
카를로와의 대화는 순조로이 이뤄졌다.
대금으로는 20만 포인트.
기본인 10만 포인트에서 두 배를 지급해 20만 포인트였다.
지불을 마친 뒤 맹세까지 한 후에야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물론 신좌의 힘으로 행한 맹세를 믿는다만.
혹시나 그가 꿍꿍이를 부릴 수도 있기 때문에 유희가 아니면 편지가 불타도록 마법장치를 해 두었다.
나는 심부름센터를 나오며 남아 있는 포인트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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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1,850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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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비용이랑 심부름 비용을 만만치 않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량의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피라미드에서 사람들 등골을 빼먹던 지배자의 돈주머니를 털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캬하앙!”
다칼이 한쪽 어깨에 살며시 앉더니 내게 묻는다.
-준석,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
“뭘.”
-아까 전,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다. 등으로 가려서 보질 못했거든.
“아. 그냥 주려고 했던 층의 정보들이랑 따로 전달하고 싶은 말 몇 개 적어서 보냈지.”
-그녀에게 따로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자세히 무엇인지 듣고 싶군.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괜한 쓸데없는 걸 물어보네.”
-쓸데없는 거라니! 원래 밀정으로 오가는 말이 가장 궁금한 법이다!
“그럼 평생 모른 채로 있으면 되겠네.”
“캬하악!”
“에이! 물지 마! 알았어. 알았어.”
최근 들어 다칼이 진심으로 물면 꽤 아팠다.
“쓸 만한 녀석 하나 보냈으니 잘 써먹어 보라고 보낸 게 다야. 됐어?”
넌 잘 지내고 있냐? 난 잘 지내고 있다. 등등 잡말은 생략하고 말해 주었다.
다칼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지만 어찌하랴, 끝까지 시치미 떼어 버리면 끝인데.
“크흥!”
-그래서 다음 행선지는 어디지?
“놀이공원.”
-크응?”
-놀이공원? 그 이상하고 거대한 기구들을 타는 장소를 말하는 건가?
“그래. 그 놀이공원.”
-그대가 거길 순수하게 놀러 갈 리는 없고. 베디돌이 있거나 얻을 것이 있나 보군.
“따지고 보면 두 개 전부 포함이라고 할 수 있지. 베디돌도 잡고 히든피스도 얻을 거야.”
-혹시 신문에 나온 실종과 관련이 있나?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정답.”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로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구름처럼 뭉실뭉실한 모양의 입구를 지나 1천 포인트 정도 하는 티켓을 한 장 구매했다.
그리고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만들어진 긴 터널을 걸었다.
터널을 빠져나온 순간 엄청난 인파가 펼쳐졌다.
“꺄르륵!”
“와아아앙!”
행복으로 가득 찬 소리가 들려온다.
대다수는 인형이었지만, 간간히 사람도 보였다.
-행복해 보이는군.
“어.”
-저런 기구를 타고 즐거울 수가 있나? 공감하지 못하겠다.
다칼은 놀이기구를 타 보지도 않고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타 보면 은근 재밌어. 스릴도 있고.”
-놀이기구를 타 본 적이 있나?
“있지. 부모님이랑.”
찰나, 부모님과 함께 놀이공원 거리를 걸으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솜사탕도 먹고 좋았는데…….”
-솜사탕? 그건 뭐지?
“있어. 설탕으로 만든 음식.”
안타깝게도 탑에서는 본 적이 없다.
만드는 원리는 간단하니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곳에 정말 베디돌이 있을까?
분위기로만 보았을 땐 베디돌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여기엔 없어.”
-음?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야. 여기엔 베디돌 같은 건 없어. 물론 저 안에 섞여 있을 수야 있지만 내가 상대할 놈들은 그런 놈들이 아니야.”
앞장서서 걷자, 다칼이 뒤따른다.
이곳, 놀이공원에도 핫 플레이스가 존재했다.
인기가 있는 곳은 사람과 인형들이 많이 모여 있는 반면에 인기가 없는 곳은 파리만 날아다닐 것처럼 휑했다.
나는 인기가 없는 지역으로 들어섰다.
바닥에는 쓰레기가 휘날리고 아까 전과 같은 놀이공원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경고! 출입금지.]
어느 가판대 옆에 세워져 있는 접이식 금지판에 새겨진 문구였다.
하나 나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안으로 출입했다.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갈수록 점점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고오오오-
안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공기 소리는 공포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캬하르릉!”
-뭔가 으슬으슬하군.
실제로 주변의 온도가 낮아졌다.
그때, 놀이공원의 또 다른 입구가 나왔다.
위에 밝았던 분위기와 상반되게 이곳의 입구는 말굽형 아치에 해골머리가 잔뜩 박혀 있고 곳곳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가짜라고 하기에는 특유의 오래된 뼈와 살붙이 냄새가 역하게 났다.
코를 막고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50미터 정도 나아가니, 핼러윈을 테마로 한 지하 놀이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칼이 주변의 풍경을 살펴보곤 입을 뗐다.
-이런 분위기라면 언제 베디돌 녀석들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군. 그럼 실종도 여기서 벌어진 건가.
“그래. 베디돌들의 또 다른 은신처이지. 근데 여긴 외곽에 있는 곳과는 달라.”
-뭐가 말이지?
그것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꽤 먼 거리지만, 사람 몇 명이 지나다니는 게 보인다.
-아아…… 다른 등반자들이 이미 있다는 소리였군. 흐음…….
다칼이 주변을 더욱 유심히 살폈다.
-경쟁자가 꽤 되는 것 같다만. 다 빼앗기기 전에 서둘러 잡아야 하지 않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다급할 필요 없어. 이 놀이공원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은 외곽에 있던 놈들보다 목숨이 더 질긴 놈들이거든.”
-그래 봐야 인형이지.
이내 놀이공원에 유일한 롤러코스터가 있는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각 놀이기구 플랫폼에는 베디돌을 사냥하기 위한 등반자, 용병들이 한 명씩 대기하고 있었지만 이쪽은 아무도 얼씬하지 않았다.
마치 의도적으로 접근 자체를 막아 둔 것처럼, 플랫폼의 입구는 봉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봉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서자 케케묵은 냄새가 엄습했다.
“켁켁!”
기침을 하며 기차가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그러고는 맨 앞좌석에 올라탔다.
이어 다칼이 따라서 올라타긴 했지만 나를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지금부터 베디돌을 잡는 거 아니었나?
“맞아. 그러니까 옆에 제대로 앉아.”
다칼은 자리에 앉길 머뭇거린다.
“크르릉…….”
“설마 놀이기구 타는 게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지?”
“캬하앙?”
기가 차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는다.
-무, 무섭다니! 감히 신수를 뭘로 보고! 이따위 기구, 하나도 안 무섭다!
반응은 전혀 아니었지만 일단은 자리에 착석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나는 몸이 경직되어 있는 다칼을 보며 미소를 짓곤, 거추장스럽게 걸리적대는 지팡이는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래야 기차를 타며 양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테니.
윈드퍼드.
후우웅! 철컥!
바람을 조작해 출발 레버를 움직였다.
드드득!
기차는 오랫동안 안 움직인 티를 내듯 초장부터 삐걱거렸다.
철컥! 철컥!
레버를 다시 올렸다가 내려다보았다.
드드드드!
레일이 돌아가다 멈추는 듯하더니 이내 제대로 작동했다.
한번 돌아가기 시작하니, 레일은 삐걱댐을 이겨 내고 기차를 움직였다.
곧 레일을 따라 기차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갸하아으으…….”
다칼은 올라갈수록 긴장감을 드러냈다.
이윽고.
털컹!
꼭대기에 도달한 기차가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다시 레일이 움직이며 가파른 내리막길이 존재하는 코스로 천천히 이동했다.
사아아-
그때 기차 옆을 날아드는 하얀 형체.
‘왔군.’
기차가 아래로 기운다.
서억, 수우우우-
점차 속도가 올라간다.
“캬랴라라라!”
옆에 앉아 있는 다칼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정신 줄을 놓아 버렸다.
“보조를 바라긴 글렀네.”
녀석을 혼자서 상대해야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나타나는 귀신 인형 할로우.
이 놀이공원에서 가장 많은 등반자들을 죽인 녀석이며 그만큼 강한 힘을 지녔고 까다로운 타입이다.
쿠가가가가!
속도가 최고조로 올랐을 때 할로우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끼헤헤헤!”
하얀 천을 뒤집어쓴 할로우는 블랙홀처럼 어두운 눈과 자신보다 큰 낫을 들고 있었다.
서어억!
할로우는 예고도 없이 낫을 휘둘렀다.
녀석의 공격은 보호막을 쳐도 소용이 없어 직접 몸을 움직여 피했다.
할로우는 마법관통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일부 마법면역도 가지고 있어 마법으로 상대하기는 어려운 베디돌이었다.
서억! 서어억!
공격이 연달아 치고 들어온다.
낫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잔상 때문에 눈이 어지러웠다.
‘우선 녀석을 붙잡아 둬야 돼.’
나는 주변의 어둠을 끌어와 녀석을 속박하려고 들었다.
어둠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형체가 아니기에 효과가 있었다.
“끼에!?”
‘지금이다!’
내내 묵혀 뒀던 주피로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스윽, 쩌저적-
칼날에 모습을 띤 냉기가 그 어떤 것보다 매서워 보인다.
곧 있으면 360도로 회전하는 구간이 나온다.
그전에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할로우와의 거리를 좁혔다.
사아악!
왼손으로 휘두른 검격이 깔끔한 곡선을 그렸다.
이어서 곡선을 따라 증식하듯 불어나는 얼음덩이들.
가운데 서 있던 할로우가 그 얼음덩이에 꼼짝도 없이 갇혀 버렸다.
“좋아.”
이제 단검을 던져 얼음을 부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끼기기기기!
기차가 오르막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쿠훼에엑!”
어지러움에 한껏 토를 하는 다칼.
기차가 거꾸로 돌아서 토사물이 애꿎은 곳으로 안 떨어졌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오 쉿!”
다칼이 제대로 긴장한 것인지, 어둠을 소환해 기차를 멈춰 세우려고 하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기차가 멈춰 서게 되면 할로우를 영영 잡을 수 없게 된다.
할로우는 기차가 움직이는 순간에만 나타나니까.
그리고 한번 나타났던 상대에게는 다신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차가 멈추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끼기긱!
기차가 한순간 옆으로 기울었다.
나는 할로우를 속박하던 어둠을 끌어와 다칼의 어둠이 아무 짓도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다칼이 꺼낸 어둠을 이기기에는 지배력이 역부족이었다.
“크윽! 다칼! 정신 차려!”
짝!
싸대기를 갈기자, 그제야 돌아간 눈동자가 돌아왔다.
“다칼! 당장 어둠을 물러!”
“크하!?”
뒤늦게 상황을 인식한 다칼이 어둠을 물렸다.
그러자 탈선할 뻔했던 기차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후우~.”
우선 코앞의 위기를 넘기긴 했다만.
채애앵!
그새 얼음을 깨부수고 나온 할로우가 닿지 않는 거리로 떨어져 이쪽으로 손을 내뻗었다.
‘우리들을 속박할 셈이군.’
곧 몸에서 둥근 고리가 생겨난다.
[강력한 속박에 걸렸습니다.]
[매나이어 배지 효과 ‘상태 이상 일부 저항’이 발동합니다!]
[속박의 힘이 더욱 강합니다!]
[속박을 풀지 못했습니다.]
매나이어 배지로는 속박을 풀어낼 수 없었다.
하나.
[목동의 날개 달린 신발 효과 ‘이동 방해 면역’이 발동합니다!]
[강력한 속박에서 벗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