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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88화 (88/230)

회귀한 탑 등반자 88화

88화 심부름센터

“하루토 님, 오셨습니까.”

“요~ 오늘은 얼굴이 좋아 보이네. 어제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봐?”

“아닙니다. 그저 하루토 님이 치안에 신경 써 주신 덕분이죠.”

“하핫. 하여튼 말은.”

하루토는 바리스타와 하루 이틀 사이가 아닌 듯 친근한 대화를 나누었다.

‘단골인가 보네.’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직원이 커피까지 내주었다.

내가 조금은 노골적으로 바라본 것일까?

하루토가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신 후 이쪽을 돌아본다.

“안녕하세요.”

“아, 예.”

고개만 살짝 끄덕여 인사를 받아줬다.

“얼굴을 처음 뵌 듯한데……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어제 막 올라왔습니다.”

“아~ 역시. 근데 운이 좋네요. 올라오자마자 처음 머무는 여관이 이곳이라니. 여기저기 여관을 다 둘러봤지만 여기만큼 좋은 곳도 없거든요.”

“그런가요.”

“예. 여관에 들어오자마자 들려오는 여신의 목소리와 샤워할 때 나오는 성수는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전매특허죠. 커피 맛도 일품이고.”

“누가 보면 그쪽이 여기 여관 주인인 줄 알겠네요.”

“하하! 그렇게 보였나요? 아무튼…… 선택 잘하신 겁니다. 15층을 생각하면 여긴 천국이죠.”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그 말에 공감했다.

‘피라미드에 비하면 여긴 살 만한 곳이지’.

물론 그래 봐야 조금 더 나을 뿐이지만 말이다.

“사토 하루토입니다.”

그는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해 왔다.

회귀 전에 만났을 땐 이렇게 활발하게 말을 많이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성격 이런데 그때의 환경적인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일까?

아님 30층까지 오르며 성격이 변할 것일까?

관심도 없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다.

“이준석입니다.”

“오~ 한국사람!”

“뭔가 크게 좋아하시네요.”

“볼 때마다 고향사람 만나는 기분이거든요. 실은 제가 재일교포입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어서, 자주 서울에 가서 지냈던 기억이 나요. 뭐. 지금은 갈 수 없게 됐지만.”

끝말에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하루토는 바리스타와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털어놓고 싶었는지 해당 층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아무튼. 책임만 막중해졌지. 작위를 받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하아~ 이번에 골치 아픈 일을 떠안게 됐어.”

“무슨 일 말입니까?”

“어젯밤에 도시 외곽 창고에 불이 난 건 알아?”

“아, 예 오늘 아침 신문으로 봤습니다.”

“하필 그 창고의 주인이 루시아 님의 가까운 친우분 꺼라. 범인을 반드시 잡아 달라더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겠네요.”

“그래…… 피곤해. 피곤해. 누군지는 몰라도 잡는 게 쉽지 않겠어. 단서 같은 걸 거의 안 남겼거든. 블러디타이거 녀석들이 전부 전멸한 건 잘된 일이지만 그만큼 범인이 강하고 치밀하단 뜻이기도 하니까.”

“듣고 보니 그러네요.”

듣다가 뜻밖의 정보를 알게 됐다.

‘그 창고가 루시아의 가까운 친우의 것이라고? 블러디타이커의 아지트로 쓰였던 곳이? 이거 구린내가 나는데…….’

아무리 블러디타이커가 그곳을 몰래 썼다고 해도 창고의 주인이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어쩌면 그 친우라는 자는 로사가 심어 둔 심복일지도 몰랐다.

블러디타이거는 로사와 귀결되니까.

한데 그렇다면 하루토가 로사를 죽일 때까지 왜 그 친우라는 자는 루시아를 죽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걸까?

하루토가 그 사실을 알아내서 미리 제거했을 수도 있고, 아님 정말 의외로 로사의 심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인데.

‘뭐가 어찌 됐든지 이 화재 사건이 빠르게 종결될 일은 없겠군.’

치안을 맡고 있는 하루토가 창고주인의 뒷배가 루시아인 것을 알았으니 범인을 잡으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그럼 언젠가 그와 마주치게 될 수도 있었다.

하루토는 커피를 두 잔째 마시고 손목에 있는 시계를 내려다본다.

그러고는 급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보냈네! 슬슬 가 봐야겠어.”

“대화 즐거웠습니다. 또 오십시오, 하루토 님.”

하루토가 옆에 앉은 나를 보며 짧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그가 멈칫했다.

“어?”

하루토가 고개를 숙여 내 신발 밑에 있는 작고 시커먼 이물질을 손으로 집었다.

나는 속으로 인상을 구겼다.

‘잿더미잖아.’

아무래도 창고에서 묻은 잿더미를 미처 다 털어 내지 못한 듯했다.

하루토는 이물질을 두 손가락으로 문질러 본다.

이물질이 푸석- 잘게 부서져 가루로 변했다.

저게 잿더미라는 걸 눈치챘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챘으리라.

옷에 잿더미가 묻어 있다는 건 둘 중에 하나였다.

혼자서 불장난을 했거나 아님 어젯밤 화재 현장 근처에 있었거나.

하루토가 의심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흠…… 혹시 어젯밤 숙소에 들르기 전에 뭘 하셨습니까?”

“갑자기 심문이라도 하는 겁니까?

이런 질문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대놓고 표정으로 드러냈다.

오히려 화를 내지 않으면 이상해지는 상황.

“아, 아뇨. 심문이라뇨.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그냥 빵을 사 먹고 도시를 좀 둘러본 게 답니다.”

“그런가요.”

하루토가 차갑게 날 주시한다.

언제 서로에게 공격을 퍼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딱히 지금은 부딪힐 생각은 없었는데. 어쩔 수 없지.’

몰래 손에 지팡이를 꽉 쥐었다.

하루토는 곧 검은 가루를 털어 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크게 웃었다.

“아하~ 죄송합니다. 제가 또 직업병이 도져 버렸네요.”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물러나는 기세였다.

“여기서 계속 머무실 예정인가요?”

“예. 당분간은.”

“다시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죠. 아닐 수도 있고.”

짧은 침묵이 흐른다.

“오늘 반가웠습니다. 오쿠!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나는 하루토가 뛰어나가는 뒷모습을 쳐다봤다.

일단은 상황을 넘겼다.

하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가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는 그 순간.

나와 하루토는 오늘처럼 그냥 상황을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반드시 부딪치겠지.’

어쩌면 그날이 오늘 저녁이 될지도.

그리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냉소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티타임을 끝내고 향한 곳은 아이콜, 일명 심부름센터였다.

아이콜은 10, 20층을 아울러 대신 층을 내려가거나 혹은 올라가는 심부름을 하는 집단이다.

분명 편리하지만 서로 간에 신뢰가 없다면 무언가를 맡기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제로 심부름센터를 꾸려, 등반자들을 등처 먹는 집단도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콜은 뭐든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아이콜에 소속된 인원들은 전부 진실과 맹세를 추구하는 자란 이명을 가진 신좌, 트루드와 계약을 맺은 이들이다.

트루드는 거짓을 죽을 만큼 싫어하는 성정이기에 그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항상 진실되어야 한다.

그러나 진실만으로는 신뢰를 쌓기 어렵다.

내가 신뢰를 하는 건 다름 아닌 그들이 가진 맹세라는 힘이었다.

트루드와 계약을 맺으면 얻게 되는 스킬로, 맹세를 지켜내면 강한 힘을 얻지만, 대신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한데 그런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콜의 규모는 대단히 작았다.

그 이유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도 있지만, 경쟁자들이 퍼트린 소문 때문이었다.

그들과 맹세를 하게 되면 평생 노예가 된다거나 영혼을 바친다거나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덕분에 기다릴 필요 없이 안으로 입장이 가능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이 소파에 안내를 한 뒤 어딘가로 사라졌다.

작고 허름한 사무실, 그러나 깔끔했다.

“크하아암~.”

-여기에는 왜 온 거지?

다칼이 찢어지게 하품하며 물었다.

“편지를 좀 보내려고.”

-편지? 누구에게?

“유희, 건네줬던 정보들을 다 써먹었을 테니, 이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더 적어서 보내 줘야지.”

-정성이 갸륵하군.

“하나뿐인 친구니까.”

“캬항?”

-이거 서운한데. 나도 그대의 친우 아니었나?

“그래. 너도 포함해서.”

“켕!”

-그런 선심 쓰는 듯한 발언은 필요 없다.

다칼은 고개를 홱 돌려 버리곤 내가 말을 걸어도 무시했다.

아무래도 단단히 삐친 듯하지만, 꼬리가 살랑대는 걸 보아하니 얼마 가지 않을 예정이다.

‘하여간 이럴 땐 애 같다니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풀릴 것이다.

곧 사라졌던 직원이 돌아와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 아이콜은 처음 이용하시나요?”

“네.”

“그럼 여기 책자에 적힌 주의사항이나 기타 내용부터 읽으신 다음에 마저 대화 나누시죠.”

나는 책자를 대충 넘겼다.

굳이 읽어 보지 않아도 어떤 내용들이 적혀 있는지 속속이 알고 있으니까.

“다 읽었습니다.”

“어…… 정말 다 읽으신 거 맞나요? 거기에 중요한 가격표도 적혀 있는데.”

“층에 따라 붙는 추가금이 다르고, 리스크 지역의 위험도에 따라 또 추가금이 붙는 걸 말하는 거면, 예. 알고 있습니다.”

“속독이 빠르시네요…… 그렇담 이제 이 책자에서 마음에 드는 심부름꾼을 골라 주시면 됩니다.”

직원이 다른 책자를 넘겼다.

그 안엔 심부름꾼들의 상세한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심부름꾼에 따라 요금의 큰 차이를 보였다.

일 처리를 잘하고 뜻밖의 위험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가격대가 높았다.

“마음에 드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음. 없네요.”

“그럼 그분으로…… 네?”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인물이.”

“어어…… 죄송하지만 지금 16층에서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이 이분들뿐이라, 직원을 더 보여 드리고 싶어도 보여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일할 수 있는 직원이 한 명 더 있지 않습니까?”

“예? 누굴 말하는지.”

“카를로, 그 사람으로 해 주십시오.”

“카를로!? 죄송하지만, 그는 현재 정직을 당한 상태라서 안 됩니다.”

“페이는 기존의 두 배로 드리겠습니다.”

“두, 두 배요!? 아무리 웃돈을 주신다고 해도 제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눈앞의 서 있는 이 사람.

우둔해 보여도 이자는 16층의 아이콜을 책임지는 지부장이었다.

그러니 카를로의 정직을 풀어 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지부장이면 그 정도 결정은 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지부장이란 말이 나온 순간 그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제가 지부장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직원들 말고는 모르는 사안인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의뢰. 받을 겁니까. 말 겁니까? 그쪽한테도 손해는 아닌 거래일 텐데,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

그는 턱을 쓸어 넘기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흠…… 그렇다고 해도 카를로는 좀…….”

“카를로가 정직을 당한 이유 때문이라면 신경 쓸 거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카를로는 일의 수행력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다만 제멋대로고 자유분방해 의뢰한 것의 그 이상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의뢰를 어긴 것은 아니나, 그 이상을 하려고 하다 보니 여러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카를로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16층에서 심부름꾼이나 하며 지내고 있지만…… 나중에 홀로 상층부까지 올라가지.’

만일 그런 자가 유희 곁에 붙어서 힘이 되어 준다면?

아니. 유희가 그를 안정적으로 길들인다면?

추후, 정상에서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후우~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뒷일은 저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지부장은 자포자기한 듯 두 팔을 벌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직 상태라 지금 집에서 머물고 있을 겁니다.”

“예. 기다리죠.”

지부장이 자리를 비웠다.

이후, 한 10분쯤 지나 누군가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파란색의 스포츠 컷 머리와 파란 두 눈동자, 하얗고 검은 무늬가 그려진 기다란 창을 들고 나타난 그는 2미터가 넘는 키를 지니고 있었다.

‘카를로.’

심부름꾼으로 있기에는 그 기세나 체격이 엄청난 강골이었다.

그는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곧 이쪽을 돌아보았다.

눈을 마주쳤다.

“그쪽이 내 정직을 풀어 준 사람이군.”

카를로는 가까이 다가와 손을 뻗었다.

“무슨 이유에서 날 고집했는지 모르겠지만 후회하지 않게 해 드릴 자신은 있지.”

“그 말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손에 강한 악력이 느껴지는 악수를 받아 주곤 말을 이었다.

“그럼 잡설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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