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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87화 (87/230)

회귀한 탑 등반자 87화

87화 세이피 여관

발걸음한 곳은 도시 중심가에 위치한 세이피 여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입구는 휑했다.

하나 손님이 없는 것에 비해 시설은 5성급 호텔 뺨 칠 만큼 수준급에 해당했다.

고객이 불편함이 없도록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안 찾는 이유는 간단했다.

하루 머무는 가격이 무려 5만 포인트이기 때문.

약 5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어야 하다 보니 어중간한 돈으론 머무르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가격이 비쌈에도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었는데, 세이피 여관만의 특별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빨간 카펫을 밟으며 입구로 가자, 안에서 저절로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이족 보행하는 사슴인형 둘이 문손잡이를 잡은 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 온다.

나는 고개만 살짝 까닥여 인사를 받아 주곤 안으로 출입했다.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LP플레이어를 틀은 것처럼, 귓가로 아름다운 선율과 여성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서서 멍 때리고 듣고 있을 만큼 매혹적이고 평온함이 들었다.

“아…….”

끝 소절 이후에 더 이상 들려오지 않자, 저도 모르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세이피의 천상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한동안 신체 회복력이 증가합니다!]

[한동안 정신 회복력이 증가합니다!]

[한동안 마나 회복력이 증가합니다!]

그저 노래를 들은 것만으로 신체와 정신뿐만 아니라 마나 회복력을 올려 주는 버프가 들어왔다.

한동안이라고 했지만 유지시간이 꼬박 하루인 점을 고려하면 꽤 긴 시간이었다.

이런 힘을 저층부 등반자가 사용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버프를 준 정체는 다름 아닌 신좌였다.

세이피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여신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은 그녀의 영역이기도 했다.

신좌의 영역에 여관이라니, 생각해 보면 우스은 일이다.

하지만 세이피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또각. 또각. 또각.

한 여성이 구둣발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걸어온다.

화려하고 예쁜 채색이 담긴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관 주인 레인이라고 해요.”

레인은 비를 맞은 뒤 말린 듯한 쭈뼛쭈뼛한 머릿결과 파랗고 흰 구름을 떠오르게 하는 두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맞이한 인형들과 다르게 그녀는 사람이었다.

이지 때의 여관 주인과 비교하면 조금 더 젊고 활기찼다.

물론 그땐 주인이 직접 나와서 안내를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준석입니다.”

“한국인이셨군요! 마침 며칠 전에도 한국인이 몇 분 왔다 가셨는데…….”

“음, 네.”

내 반응이 미지근하자 레인은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저희 여관은 처음 이용하시죠?”

“네. 처음 이용합니다.”

회귀 전에 이용한 곳은 엄연히 이지에 있는 여관이니 하드에 있는 여관에 온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가격부터 안내를 드리자면 하루 숙박비가 5만 포인트예요. 조금 비싸죠? 만일 듣고서 부담스러우시다면 크흠! 하고 신호만 주세요~. 그럼 서로 무안하지 않게 제가 먼저 자리를 피해 드릴 게요.”

레인은 이어서 두 팔을 벌려 두 손을 크게 흔들더니 오해 말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제가 손님을 무시하거나 그런 건 아니니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일이 종종 있어서 그런 것뿐이라.”

자칫 밉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걸 그녀는 자기만의 청아한 목소리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불편한 주제를 잘 넘기고 있었다.

“가격은 알고 와서 상관없습니다.”

“아! 그러세요? 상관없으시다면, 그럼! 결제부터 한 뒤 이동하실게요!”

그녀가 건넨 거래 큐브에 포인트를 넣어 돌려줬다.

큐브에 담긴 포인트를 본 그녀의

“저…… 뭔가 잘못 넣으신 것 같은데. 5만 포인트가 아니고 70만 포인트가 들어 있는데요?”

“제대로 들어간 거 맞습니다. 14일치로.”

“아……! 14일치! 통이 크시네요! 이쪽으로 오시죠! 손님!”

레인은 여관 시설을 자세히 설명하며 혹여나 모르는 게 있음 말해 달라는 얘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다른 것은 이전 층들에서도 본 것들투성이지만 이 여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이 하나 있었다.

예전, 지구에 있던 카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 놓은 공간이었다.

여관의 크기가 워낙 크고 찾아오는 사람도 적어서, 서로 부대끼고 마주 볼 일이 없는데.

유일하게 카페만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다른 그 어떤 시설보다 이 시설에 가장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을 테니까.

“어떠세요? 저희 여관의 메인 간판격인 장소인데.”

“좋네요.”

레인도 카페를 가장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중이었다.

‘나중에 꼭 와야겠군.’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탑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커피를 판매하고 있었다.

안 먹은 지 꽤 돼서 맛이 어떤지조차 잊혀 가는 와중이다.

시설 소개가 끝난 이후엔 드디어 방을 배정받았다.

방이 배정되며 인형 직원들도 같이 배치가 됐는데 숫자는 셋이었다.

방을 청소해 주는 나무늘보 인형과 잡일을 처리해 주는 다람쥐 인형. 대신 때를 밀어 주는 오리 인형이 항시 대기했다.

하나 당장에는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무른 뒤 샤워할 준비를 했다.

머리 위에 있던 다칼이 바닥에 내려와서 다물고 있던 입을 뗀다.

-준석, 아까 전에 커피에서 시선을 못 떼던데. 그럴 거면 먹고 오지 그랬나?

“먹는 것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지. 원래 커피는 모닝커피가 최고라고. 오랜만에 맛보는 건데 최상의 조건에서 먹고 싶어.”

-흐음. 그게 그렇게 맛있나?

“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놀란 표정으로 다칼을 쳐다봤다.

“설마 그 맛있는 걸 아직 안 먹어 봤단 말이야? 레알?”

-크흠.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해도 당연히 못 먹어 본 것은 존재하는 법.

“아무리 그래도 그건 먹어 봤어야지. 내일 아침에 같이 먹어 보던가. 아주 예술을 맛볼 거다.”

-그대가 예술까지 찾다니. 벌써부터 내일이 기대가 되는군.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

강한 쓴맛과 약간의 달콤함 느껴지는 그 맛.

‘절대 못 잊지.’

이내 다칼과 대화를 끝내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아!

“후아~.”

물로 몸이 씻겨 내려간다는 느낌이 너무나도 좋게 다가왔다.

개운함과 함께 나른함마저 든다.

따뜻하게 올라오는 김이 콧속에 들어가, 피로 배어 있는 냄새를 제거하고 막혀 있던 코를 뻥 뚫어 줬다.

물을 적실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물의 영향 때문이었다.

[축복을 내린 성수로 몸을 씻겨 내렸습니다!]

[몸의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한동안 대량의 힘이 증가합니다!]

[한동안 대량의 민첩이 증가합니다!]

[한동안 대량의 체력이 증가합니다!]

여관 숙박비가 비싼 이유 중에 또 하나는 바로 이 성수에 있었다.

세이피가 직접 축복을 내린 성수로 샤워도 가능하고 식수처럼 마시는 것도 가능했다.

효과로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한동안 힘, 민첩, 체력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그 한동안은 24시간을 유지해 주며 다시 성수로 버프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힘, 민첩, 체력을 영구적으로 증가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간만에 상태창을 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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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회귀한 마도사

칭호: 좀비 학살자 외 5개

능력치

근력:151(+260)

민첩:131(+653)

체력:220(+700)

정신력:248(+250)

마나:401(+731)

스킬

점지(Lv1) 마나볼트(Lv16) 마법컨트롤(Lv25) 다크스윔(Lv8) 다크웹(Lv8)

어스월(Lv7) 행운의룰렛(Lv3) 다크소드(Lv7) 다크소울(Lv2) 원드퍼드(Lv6) 등가교환(Lv-) 마나방출(Lv8) 루트딥트리(Lv5) 리치네스(Lv3) 다크레인(Lv5) 컬스버닝(Lv3) 홀리크로스(Lv2) 엘리렌스(Lv2) 다크포스(Lv1) 힘의 천칭저울(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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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는 유일하게 합산수치가 1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능력치에 비해 이렇게 빨리 올릴 수 있던 것은 삼신용의 반지 효과 덕분이었다.

마나의 숨결을 터득하면서부터 가만히 숨만 쉬어도 지속적으로 마나가 상승하는 중이다.

물론 인식 속에서 사라진 통로 안에서 먹은 마꽃의 영향도 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샤워기를 틀어막고서 아공간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가지고 있는 마나가 부족해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책갈피를 펼치려고 하니, 여전히 같은 메시지를 반복한다.

1천이 넘는데도 열람을 할 수가 없다니.

진리를 깨우치고자 했던 히라이스. 그런 그가 적어 놓은 마법의 수식과 진리가 이 안에 적혀 있다.

생각해 보면 히라이스는 진리를 쫓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히라이스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런 마도서를 남겼으면 대단한 인물임은 분명한데, 회귀 전에 탑의 정상까지 오르며 수많은 정보를 듣고 알게 되었지만 히라이스라는 이름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발자취가 아예 안 남아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서 그자의 기록이 지워졌거나 아님, 다른 이름을 가지고 활동했을 수도 있다.

하나 지금 중요한 사실은 이 마도서가 진리에 대해 실마리를 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어서 그렇지.

나는 마도서를 손으로 쓸어 넘기곤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마나는 지속해서 계속 오르고 있으니 금방 그때가 다가올 것이다.

마도서를 열어 볼 수 있는 그때가.

* * *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하암~.”

충분히 잤다고 생각한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뒤죽박죽인 머리를 한 채 곧장 내려갈 채비를 했다.

“다칼.”

“크릉?”

“일어나. 가자.”

자고 있던 다칼도 기지개를 피며 나를 따라나선다.

편한 상태로 우리가 다다른 곳은 다름 아닌 카페.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커피를 만들어 주는 테이블 앞에 앉은 나는 바리스타로 보이는 직원에게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어젯밤 잡일꾼으로 붙여진 다람쥐 인형을 불렀다.

“뭘 도와 드릴까요?”

“오늘 신문 좀 가져다 줘.”

“예엡!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숙박비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에 따로 팁은 필요 없었다.

잠시 후, 다람쥐 인형이 신문지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커피 두 잔이 나온다.

“케헤에에…….”

다칼은 커피잔을 자기 앞으로 끌어온 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기대감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이다.

나도 곧 커피잔을 앞으로 가져와, 천천히 냄새를 음미하며 한 모금을 들이켰다.

“캬하~.”

오랜만에 맛보는 커피는 정신을 퍼뜩 들게 만들었다.

맛을 표현해 보자면 뇌를 뒤흔드는 느낌이랄까?

그 정도로 임팩트가 강렬했다.

“케헤엑! 퉤!”

한편. 기대감을 가지고 마신 다칼은 먹은 커피를 뱉기 바빴다.

“푸웁!”

그럴 줄 알았다.

커피를 처음 맛보면 보통은 저런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니까.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크게 웃었다.

“캬하아아!”

-준서어억!

다칼이 부르자 곧바로 연기에 들어갔다.

정색하는 표정으로 다칼을 마주 본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반응했다.

“왜? 입맛에 안 맞아?”

-우리의 우정을 믿었는데! 날 이렇게 암살하려 들다니!

“왜. 맛있기만 하구만. 봐. 후릅.”

먹어도 괜찮다는 걸 보여 주자, 다칼은 의심하는 눈빛으로 내 걸 빼앗아 갔다.

-분명 내 것만 맛없는 걸…….

“푸하악!”

“큭큭큭.”

내 것을 맛본 다칼이 2차로 커피를 뿜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참 배꼽을 잡고 웃었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야 다시 신문에 집중한다.

로시아에서만 발행되는 지역 신문에는 어제 있었던 일들이 기사로 올라와 있었다.

1면에는 외곽에 있는 창고에서 벌어진 화재와 블러디타이거의 전멸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놀이공원에서 자꾸만 벌어지는 실종사건과 로시아의 치안 일부를 맡고 있는 저스티스 길드장의 귀족 작위 수여식이라는 두 이슈도 같이 있었다.

화재까지 기사로 올릴 줄은 몰랐지만 블러디타이거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1면으로 다룰 것이란 예상은 했다.

그만큼 큰일이니까.

“이것으로 관련된 놈들에게 확실하게 전달이 됐겠군.”

어젯밤 풀어 준 곰인형 녀석이 로사에게 소식을 전달하지 않았더라도 신문이 소식을 전했을 테니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저스티스 길드장의 귀족 작위 수여식 관련 기사도 자세히 읽었다.

“으음.”

저스티스 길드장 하루토.

여왕 루시아에게 공을 인정받아 유일한 귀족 작위를 부여받은 등반자.

회귀 이전에 이지. 노말, 하드 난이도의 등반자들이 한데 모이는 30층에서 그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양지의 여왕 루시아의 편에 서서 결국엔 음지에 있는 로사를 처단하지.’

그것을 발판 삼아 엄청난 속도로 탑의 층을 올라 한때 등반자들 사이에서 시끌벅적했다.

아무튼.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 우린 30층의 보스 몇 마리를 가지고 경쟁했었다.

끝내 대다수의 보스는 내가 차지했지만 일부 보스는 빼앗겼던 게 기억난다.

뭐. 지금은 서로 붙여 놓으면 상대도 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이번에 로사를 차지하는 것도 나였다.

커피를 들이켰다.

그리고 내 옆에 누군가가 앉기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이런 우연이 있을까.

옆에 앉은 이는, 방금 전까지 내가 뒷말을 하고 있던 하루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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