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84화 (84/230)

회귀한 탑 등반자 84화

84화 중급 용병

모습을 드러낸 인형의 종류는 각양각색이었다.

고양이 털모자를 쓴 쥐, 당근 대신 식칼을 든 토끼, 톱을 든 비버, 이족 보행하는 소, 고블린, 호박귀신, 등등.

각자만의 특색을 가지고서 어디 동네골목 양아치들처럼 껄렁껄렁 걸어 나오고 있었다.

고양이 털모자를 쓴 쥐가 당당히 어깨를 펴며 선두로 튀어나왔다.

“찍찍찍! 혼자서 이런 외진 곳까지 다 오고. 겁이 없는 녀석이네? 아님 위험한 곳을 못 알아볼 정도로 둔한 멍청이거나!”

“케헤헤!”

“컹! 컹!”

쥐 웃음소리에 다른 인형들도 같이 웃는다.

“캬하하!”

나는 동조해서 웃고 있는 다칼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넌, 왜 웃어?”

-크흠…… 그냥 귀엽게 생긴 것들이 시정잡배처럼 구는 게 웃기지 않은가? 어디 어린애 장난감처럼 생겼구만.

나는 다칼의 자그만 덩치를 보며 말했다.

“그건 너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만만치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니. 공 던져 주면 잘 놀 것 같이 생겼잖아.”

-뭐라!? 내가 어딜 봐서 그래 보인다는 것이냐? 이만큼 위엄이 철철 흐르기도 어렵구만. 날 어린애 취급이라니!

“캬항~! 캬하!”

계속해서 자기는 어린애가 아니라며 중얼거리는 게 귀엽게만 보인다.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토로를 하던 다칼이 하던 말을 멈추고 진지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보다 우리가 떠드는 사이에 완전히 포위가 됐군.

그 말에 같이 고개를 돌렸다.

다칼이 말한 대로 사방 곳곳에 적이 깔려 있었다.

지나가는 길목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건물 옥상 그리고 담벼락 위, 전봇대 등 인형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저들 중에 머리를 쓸 줄 아는 녀석이 있다.

이내 식칼을 든 토끼 인형이 껑충껑충 뛰어와 큐브 한 개를 던졌다.

“거기에 10만 포인트를 채워 넣어라. 뀨잇.”

다짜고짜 흉기를 휘두르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약 1천만 원이나 되는 돈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10만 포인트를 요구했다.

아마 포인트를 빼앗고 난 뒤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고 들 터.

하지만 그 짓을 하는 놈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토끼 인형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될 것이다.

최소한 토끼 인형하고 저 바로 뒤에 있는 고양이 털모자를 쓴 쥐새끼는 아니었다.

“내 말이 안 들리나? 뀨? 주워서 10만 포인트를 넣어라! 뀨우! 안 그럼 목숨도 없을 테니.”

나는 토끼 인형의 양쪽 귀를 붙잡았다.

그러자 녀석은 식칼을 휘두르며 발버둥을 쳤다.

“이거 놔라! 뀨우……!”

“넌 빠져.”

한동안 이 자리에 얼씬도 못하게 저 멀리 휙 던져 버렸다.

그러자 토끼 인형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귓가로 전해졌다.

토끼 인형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에겐 가장 중요한 살기가 없었다.

베디돌은 기본적으로 살육을 즐기는 존재들이다.

평소에 살기를 감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가까이서 먹잇감을 마주하고 있을 때는 그 본능을 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만일 살기가 없다면 그놈은 굿돌인 것이다.

물론 베디돌을 돕고 있으니 완전한 굿돌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찌익!”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쥐 인형을 필두로 해서 다른 몇몇 놈들이 함께 달려들었다.

한데 우연의 일치인지, 달려드는 놈들 전부 살기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

“다칼, 달려드는 놈들은 전부 굿돌이야. 그러니 네가 적당히 손봐 줘. 난 뒤에 숨어 있는 베디돌들을 처리하지.”

-알겠다.

살기를 조금이라도 드러낸 놈들은 여전히 뒤로 물러서 있거나 아님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굿돌을 미끼로 내세워서 기습할 셈인가? 네놈들 뜻대로는 안 되지.’

나는 살기를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녀석들만 구분했다.

귀찮으면 깡그리 잡어 버려도 되지만 그렇게 하면 기껏 올려놓은 처치 수가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럼 잡는 게 무의미해진다.

‘얼추 서른 놈은 되는군.’

위치 파악도 끝냈겠다, 나는 다크볼트를 일시에 다섯 개를 만들었다.

[행운의 룰렛이 발동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룰렛에서 <2>이 나왔습니다!]

[발동한 스킬 레벨에 <+2>이 일시적으로 적용됩니다!]

룰렛 발동 이후에도 다크볼트 다섯 개를 더 만들어 총 열 개의 구체를 두 개로 가르는 작업을 했다.

마치 증식되듯이 구체 수가 늘어나더니 곧 서른 개가 넘어갔다.

비록 파괴력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거야 상대방이 강할 때나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지금 녀석들을 상대하기에는 이 정도도 충분했다.

나는 지팡이를 어깨 위까지 올려 왼쪽부터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사선을 그었다.

파즛-

신호를 받은 구체들이 검은 곡선을 그리며 각자의 타깃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폭격기를 보는 듯했다.

파자자쟛!

충돌 직전에 잠시 전기 스파크가 일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구체를 인식한 베디돌들의 눈빛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콰가가가강!!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

…….

…….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중급 용병으로 승급합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

…….

…….

도중에 중급 용병으로 승급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니기에 금방 메시지에서 시선을 뗐다.

일부 몇 놈이 공격에서 벗어나 도망을 치는 중이었다.

“어딜 튀려고!”

도망치는 적들 숫자만큼 다크볼트를 시전했다.

그리고 끝까지 추격에 나섰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베디돌을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수가 올라갑니다!]

폭발의 행렬이 멈추자 연달아 뜨던 메시지도 멈추었다.

죽인 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베디돌이었다.

30년간 위협 속에서 살기를 감지하면서 살아왔으니 착각해서 굿돌을 공격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한편 다칼에게 맡겼던 인형들은 모두 바닥을 뒹굴며 끙끙 앓고 있었다.

“으, 으어어!”

“악마다!”

이도저도 아니게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은 인형들이 뒤늦게 도망을 친다.

어차피 잡아도 의미 없는 놈들이어서 신경을 꺼 버렸다.

대신에 베디돌을 얼마나 처리했는지 확인했다.

49마리.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지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숫자를 잡았다.

중급으로 승급했으니 상급을 노려야 할 차례.

“51마리만 더 잡으면 되나…… 첫 수확치고는 나쁘지 않네.”

수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팔에 무언가 긋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찬찬히 오른팔을 쳐다보니 칼에 베인 것처럼 웬 길쭉하게 난 상처에서 피가 한 줄기 흘렀다.

그다지 깊게 난 상처도 아니어서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었으나 주변을 경계하기에는 충분했다.

두 눈을 재빠르게 움직이고 감각을 극대화한다.

‘보호막을 깨지 않고 공격이 파고들었어.’

그것만 해도 상대는 위협적이었다.

한데 생각해 보니 의문이 들었다.

공격을 했다면 살기가 감지되었을 텐데, 지금도 근처에 살기가 안 느껴진다.

날 공격한 게 존재하지 않는 귀신이 아니라면 상대는 살기를 완벽히 감추는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모든 게 암살에 특화되어 있었다.

스윽-

순간 목에도 아까랑 같은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목에 손을 대자,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것으로 많은 것이 유추가 됐다.

‘놈은 멀리서도 공간을 왜곡한 칼질이 가능해. 다만 제약이 따르는지 얕은 공격밖에 안 들어온다.’

녀석을 찾아내는 방법이야 간단했다.

내 몸에 난 상처로 추적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다칼, 내 피 냄새가 나는 곳을 알려 줘. 상처를 냈다면 칼에 분명히 미세하게라도 내 피가 묻었을 거야.”

-알았다. 잠깐만 기다려라.

“킁킁! 킁킁!”

다칼이 냄새를 맡으며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한다.

나는 다칼을 뒤쫓았다.

“킁! 킁!”

-아무래도 우리가 쫓고 있는 걸 상대가 눈치챈 것 같군. 계속 피 냄새가 이동하고 있다.

“계속 추적해.”

다칼은 고개를 끄덕이곤 추적하는 속도를 높였다.

이내 휑한 거리에 초록색 십자가가 그려진 건물 앞에 이르렀다.

-냄새가 저 안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 건물을 올려다봤다.

“녀석이 여기로 도망쳤다는 거지…….”

설마 적을 쫓다가 여기에 이를 줄이야.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따로 찾는다는 인물도 이 건물 안에 있었다.

어쩌면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됐으니 일석이조가 된 셈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찰랑!

오랜만에 들어 보는 문의 종소리와 함께 복도가 보였다.

폐허로 보였던 외부에 비하면 내부는 비교적 깔끔한 상태였다.

그러나 새것의 느낌은 없었다.

벽지에서는 오랜 세월이 느껴지고, 먼지가 쌓인 전등의 불빛은 어슴푸레 피어난다.

잠시 후, 눈에 들어온 첫 번째 방에는 구질구질한 침실에 병자처럼 누워 있는 인형들이 보였다.

이는 다른 방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아픈 인형들을 치료해 주는 골목의 유일한 진료소. 약자들을 위한 곳이었다.

“크르르.”

다칼이 곧 어딘가를 보며 경계한다.

-누군가 온다.

나 또한 다칼이 보고 있는 곳을 주시했다.

걸어오고 있는 이에게서 어렴풋이 포식자만이 가진 특유의 기운이 느껴졌다.

2층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낸 호랑이 인형 한 마리.

이족 보행에 흰 가운을 차려입고, 자그만 안경까지 쓴 호랑이 인형이 조심스럽고 고요하게 발을 내디디며 1층 복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케헤엥?”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군.

다칼은 예상치 못한 상대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는 느낌이었다.

하나, 나는 오히려 저것이 더 익숙하게 다가왔다.

금방 우리들 앞으로 다가온 호랑이 인형이 입을 연다.

“진료 시간이 끝나서 더는 환자 안 받습니다.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내일 다시 찾아와 주세요.”

호랑이 인형은 의사가 할 법한 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사냥이나 하고 다닐 것 같은 외모와 포악한 기운을 품은 소유자가 말이다.

한데 녀석은 정말로 의사가 맞았다.

그것도 이 진료소의 단 하나뿐인 의사.

또한 내가 찾던 인물이었다.

이름은 크렉스.

현재는 의사 일을 도맡고 있지만 과거엔 베디돌들이 모여 있는 거대 집단 블러디타이거의 수장이었던 자.

그것이 저 호랑이의 진짜 정체였다.

우리들이 딱히 반응이 없자, 크렉스는 살짝 안색을 찡그렸다.

“저기, 제 말 못 알아듣습니까? 진료 시간이 끝났다고…….”

“블러디타이거 크렉스.”

그 호명을 언급한 순간 녀석의 얼굴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마치 얼굴로 위협과 경고를 동시에 하는 것처럼, 크렉스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크르륵.”

그러자 다칼이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몸집을 키우고 동등한 덩치로서 크렉스 앞에 섰다.

“캬하아아아!”

그러고는 크게 포효를 내질렀다.

찰나, 크렉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여태껏 만나 온 인형들과는 전혀 급이 다른 블러디타이거의 수장이 말이다.

나는 이를 보며 생각했다.

‘쫄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