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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83화 (83/230)

회귀한 탑 등반자 83화

83화 인형들의 도시

용병소 안으로 들어서자, 어수선한 분위기와 시끌벅적함이 적절하게 밸런스를 잡는다.

그것이 용병소를 찾은 사람들에게는 되레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것이 좋지만, 지금 그게 중요하랴.

나는 들어오자마자 시야에 뜬 메시지에 집중했다.

[용병소에 도착했습니다.]

[일부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미션을 진행하기에 인원이 부족합니다.]

[일정 인원이 모여야 16층 클리어 조건이 생성됩니다.]

[현재 인원과 필요한 인원을 표시합니다.]

[135/300]

‘아직 반 이상이나 남았군.’

일단 필요한 인원이 모일 때까지 앉아 있을 곳을 찾았다.

원목 식탁과 의자들이 곳곳에 구비되어 있다.

대부분 자리가 차 있었지만, 구석진 곳에 몇 자리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 가 앉았다.

“캬웅.”

다칼은 식탁 위로 올라가 꼬리를 말고 엎드렸다.

보고 있으니 만지고 싶어 등의 털을 쓰다듬었다.

“크르릉~ 크르릉~.”

-시원하고 좋군.

조금 더 쓰다듬다가 이내 용병소 안을 둘러보았다.

대다수는 둘이 있거나 아님, 셋 정도가 팀을 이뤘다.

하나 나같이 혼자서 있는 이들도 꽤 많이 보였다.

‘딱히 눈에 띄는 인물은 없군.’

그리고 한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바깥에 널리고 널렸던 살아 움직이는 인형들이 이곳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출입을 제한한 것도 아니건만. 인형들은 자의적으로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섭고 두려워서.

용병소는 악한 인형, 일명 베디돌을 잡는 헌터들이 모이는 장소.

간판에 있는 그림 또한 베디돌을 척결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악한 인형을 대신해서 잡아 주니 착한 인형들은 용병들에게 고마워하거나 가까움을 느껴야 하는데.

그것은 일이 희망적으로 돌아갔을 때의 얘기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원래는 착한 인형들을 건드리지 않는 게 원칙적이긴 하지만 가끔 그것을 어기는 놈들이 있다.

상대가 사람이 아니란 이유로 우습게 보고 막 행동하며 괴롭히고 쉽사리 죽이기도 한다.

그렇게 착한 인형들을 상대로 악행이 지속되다 보니 자연스레 도시 내에선 이 용병소가 공포의 장소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이곳을 등반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성역으로 만들어 버린 거지.’

“하암~.”

늘어지게 하품이 나왔다.

다칼은 어느새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안이 따뜻하기도 해서 몸이 노곤한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기다리는 동안 한숨이나 잘까.’

생각해 보면 계속 달리기만 해서 잠을 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자자.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

…….

…….

…….

얼마나 잤을까?

주변이 시끌벅적해야 정상인데, 무거운 적막만이 가득했다.

나는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잠들기 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용병소 안에 모여 있었다.

그럼에도 전부 쥐 죽은 듯이 입을 닫고 누군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자연스레 내 시선도 돌아갔다.

단상 위에 서 있는 중년의 남자.

왼쪽 눈에는 검은색 눈가리개를 끼고 있고, 턱수염이 산적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중년의 남자는 주위를 쓱 훑어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상황 파악 못 하고 아직도 잠을 쳐 자고 있는 놈들이 있군.”

그는 곧 대기의 공기를 조작해, 잠을 자고 있는 등반자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강한 등짝 스매시를 갈겼다.

“아이씨! 뭐야아!”

“어떤 새끼야?!”

스매시를 맞은 등반자들이 포악한 반응을 보였다.

잠을 자다 뜬금없이 공격을 당했는데. 과연 그 누가 얌전히 있을까?

“나와! 때린 새끼 나오라고!”

누군가가 윽박지르듯 소리치자 중년의 남자는 한쪽 발을 무릎까지 들어 올렸다 내려쳤다.

쿵!

큰 소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진동으로 울렸다.

직후 중년의 남자는 손가락을 튕겨 압축한 공기를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입을 걸게 놀렸던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숱하게 많은 놈들을 봤지만 보통 약한 녀석들이 많이 짖고 많이 나대더군.”

“뭐라고? 말 다 했냐. 이새끼야!”

입이 거친 녀석이 중년의 남자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파앙!

공중에 떠 있던 압축된 공기가 움직였다.

“커억……!”

입이 거친 녀석은 쉽게 나가떨어지더니 이내 무릎을 꿇은 채로 구토했다.

“더 나대고 싶은 놈이 있으면 나와라.”

아무도 그 얘기를 듣고 나서질 않았다.

한 놈을 단박에 제압함으로써, 그는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자. 더는 없는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날 아는 놈도 있을 테고 모르는 놈도 있을 테니. 내 소개부터 하겠다. 난 이곳에서 5년간 용병소를 관리한 용병대장 플로테라고 한다. 앞으로 네놈들에게 이 도시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려 줄 안내자이기도 하니 내 말을 잘 새겨듣도록.”

‘웃기는 소리.’

용병소에 용병대장 같은 것은 없었다.

애초에 이곳은 탑의 시스템이 관리하는 곳이다.

저놈은 그저 자칭 용병대장일 뿐.

곧 플로테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대충 흘려듣기로 도시에서 주의해야 될 점이나 베디돌을 잡을 때 쓰는 팁 같은 것들을 썰로 풀었다.

이곳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나는 듣는둥 마는둥 아예 흘려들었다.

어차피 나한테는 별 쓸모없는 정보들이다.

잠시 후, 미션에 필요한 인원이 전부 찼다는 메시지가 떴다.

용병소 안에 어느덧 300여명이 넘는 인원이 모인 것이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16층 클리어 조건이 생성됩니다.]

[용병이 되어 악한 인형 베디돌을 처치하십시오.]

[용병 등록은 용병소의 카운터에서 등록이 가능합니다.]

[용병에게는 등급이 존재합니다.]

[용병 등급에 따라서 미션 기여도와 최종 보상에 영향을 끼치며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베디돌을 잡아야 합니다.]

[용병 등급 순서와 승급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하급 - 0]

[중급 - 10]

[상급 - 100]

[특급 - 500]

[남은 시간: 360:00:00]

기한은 정확히 15일.

그 안에 특급을 달성해야만 한다.

보기에는 시간도 넉넉하고 쉬워 보이지만 실상은 어려움의 극치였다.

특히나 베디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직접 찾으러 다녀야 한다는 점에서 여태껏 적이 직접 나타나거나 어디에 있는지 장소를 알고 있었다는 것과는 큰 차이가 생겼다.

그리고 미션 내용에는 안 나와 있지만 착한 인형인 굿돌을 죽일 경우 베디돌을 잡았던 수치가 하락하며 등급이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

상대가 굿돌인지 베디돌인지 가늠해야 한다는 사실도 미션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물론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베디돌들이 어디에 있는지 속속히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추적하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고, 개인적으로 판별하는 법도 있어 크게 어려워할 것은 없었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읏차.”

자리서 일어나 용병 등록을 하는 카운터로 이동했다.

반원형 탁자 위에 있는 스캔기에 손바닥을 올리자 메시지가 떴다.

[용병 등록이 되었습니다.]

[등급은 하급부터 시작합니다.]

‘등록은 끝마쳤고.’

나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는 다칼을 큰소리로 불렀다.

“캬하아암~.”

내 목소리에 깬 다칼이 하품을 찢어지게 하며 식탁에서 내려온다.

나는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션은 받았나?

“받았지.”

-그렇군.

다칼이 입맛을 다셨다.

-입이 심심한데. 뭐라도 먹는 게 어떤가?

“그럼 일 처리하기 전에 빵이나 먹자고.”

16층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바로 빵이었다.

그래서 빵집으로 곧장 이동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불러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내 얘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누가 밖을 나가지?”

자칭 용병대장인 플로테였다.

등반자들에게 들려주는 얘기를 들어 보면 딱히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처음 이곳에 올라온 등반자들에게는 도움되는 얘기가 꽤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눈엔 그저 자신의 권위 세우기와 어중간한 선의. 그리고 어중간한 정의감 실현에 빠져 있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내가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다시금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움직인다면 말리지 않아. 다만 여기서 걸어서 나가긴 힘들 거다.”

“하아~”

고개를 돌리자, 플로테 머리 위로 압축된 공기들이 여러 개 떠 있었다.

이미 녀석은 공격할 준비를 끝내놓았다.

아직 공격만 안 했다 뿐이지, 선제 공격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럼 자존심이 허락지 못했다.

“어이. 털북숭이.”

“……뭣이?”

역린을 건드린 듯, 폴로테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못 들었어? 그럼 됐고. 대장 놀이를 할 거면 그쪽에 있는 애들이랑만 해. 괜히 눈치 없게 불러세우지 말고.”

그 순간 압축된 공기들이 날아들었다.

휘오오오-!

하지만 내 몸에 닿기 전에 방향을 바꿨다.

윈드퍼드로 만들어 낸 바람의 기류가 강제로 방향을 튼 것이다.

압축된 공기들은 곧장 플로테에게로 향했다.

“읏!?”

콰앙! 콰아앙!

허무하게 직격을 맞은 그를 보고 나는 혀를 끌끌 찼다.

“한심하긴. 그것도 못 피하고.”

피하지는 못해도 자신이 만들어 낸 공격이라면 파훼시킬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할 줄 몰랐다.

그래도 녀석의 영향력을 보면 16층에서 나름 한가락 하는 놈일 텐데 말이다.

결국에는 녀석도 저층부 애송이였다.

날아간 곳에는 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마 쪽팔림을 아는 놈이라면 의식이 있어도 당분간은 저 안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으리라.

스으윽!

그러나 내 예상을 깨고 그는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음.”

가만히 처박혀 있었으면 체면치레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에는 손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흐하아아!!”

그는 내가 서 있는 곳의 공기를 압축해, 날 납작하게 눌러 버리려고 했다.

파쟉!

하나 그 전에 바닥의 나무판 하나를 뜯어내 있는 힘껏 던졌다.

휘이익!

“어억!”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나무판은 그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곧바로 일어섰던 이전과 달리, 그는 다신 일어서지 못했다.

* * *

다칼이 콧소리를 내며 흥얼거렸다.

“카하읍.”

녹는 초콜릿이 듬뿍 들어 있는 빵을 먹고 행복해하는 중이었다.

입가에는 어린아이처럼 초콜릿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다칼은 꼬리로 잡아끌던 봉지 안에서 빵 하나를 더 꺼내 입에 집어넣는다.

나 또한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지구의 소보로와 비슷한 빵을 먹으며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역시 빵은 16층께 최고야.’

왠지 시스템이 판매하는 음식들은 동일한 메뉴면 다 똑같은 맛이 날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층마다 메뉴가 같아도 맛이 다르며 어떨 땐 맛이 없는 것도 판매한다.

물론 배고플 때는 아무거나 먹어도 먹을 만은 하지만 굳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데, 맛없는 걸 먹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본론은 시스템이 판매하는 음식들에도 맛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캬하읍. 크응?”

-준석!

다칼이 갑작스레 내 이름을 부른다.

“왜 그래?”

나는 내려다보지 않은 채 먼저 대답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기 직전, 주변에서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나랑 마주 본 다칼이 웬 쥐 인형들을 가리키며 울컥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놈들이……! 나도 모르는 새, 내 빵을 다 처먹어 버렸다!

어느새 봉지에 구멍이 나 있고, 그 안에 있던 빵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빵 부스러기뿐.

“이런. 빵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뒤에 쥐새끼들이 온지도 모르지. 네가 잘못했네.”

-내 당장에 저 녀석들을 잡아 족쳐야겠다!

찍찍찍!

쥐 인형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녀석들을 뒤쫓으려는 다칼의 목을 붙잡았다.

-이거 놔라!

“빵이야 다시 사 먹으면 돼. 어차피 저 녀석들을 잡아 봐야 수치도 안 올라.”

쥐 인형들은 빵을 훔친 것일 뿐.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인형은 베디돌 취급을 받기 어려웠다.

“그보다 다 왔어.”

나는 도착한 목적지를 바라봤다.

두어 개 불빛만 깜빡이며 칠흑으로 가득 차 있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함으로 가득한 도시와는 상반된 분위기의 폐허가 많은 외곽의 어느 한 골목.

인형들은 이곳을 무법지대라고 부른다.

주로 가난한 쥐 인형들이 이곳에 살아가고 있으나, 동시에 베디돌들이 숨어 지내는 곳이기도 했다.

다시 발길을 뗐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느껴지는 기척들이 늘어났다.

걔 중엔 대놓고 살기를 내뿌리는 놈도 있었다.

거의 중간자락에 들어섰을까?

나는 곧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스윽 한번 둘러보며 씨익 웃었다.

자신의 본능을 숨기지 못하고 살기를 내뿌리는 놈들이 최소 한 트럭이었다.

이지 때와 비교해서 훨씬 더 많은 숫자였다.

‘다행히 어둡고 외진 곳이라, 등반자들 눈에 안 띄었나 보군.’

첫 번째 사냥지역으로 어디로 갈까 둘 중에 하나를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이곳에 만나야 될 인물이 있다 보니 선택을 한 것인데.

“역시. 오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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