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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82화 (82/230)

회귀한 탑 등반자 82화

82화 회귀한 마도사

‘정말로 차원에 들어갔다 왔다고?’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다칼의 말이 그것의 신뢰를 더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인식이 없었다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너무도 집중한 나머지,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인식을 못 했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내가 진리의 차원으로 들어가, 마나와 마법의 이치를 들여다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세상이 달라 보이거나 득도하는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다.

물론 덕분에 이명의 격은 올랐지만, 그것은 논외로 치고. 이치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것만은 확실했다.

마치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자리 잡은 이치를 들여다보려고 하면 그걸 이해하거나 읽는 것을 뇌가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큭.”

-어딘가 다친 것인가?

다칼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괜찮아.”

자꾸만 파고들려고 시도하니 두통과 함께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왜 이런 원인이 생기는지 고민해 봤다.

‘안타깝지만 진리의 차원에서 마나와 마법의 이치를 전부 들여다보지 못했어. 머리가 터질 것 같았으니까.’

한마디로 과부하가 온 것이다.

어쩌면 뇌가 이치를 들여다보는 걸 거부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이치라는 건, 사람에게 그다지 친근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저 개념적으로만 존재한달까?

시각화되지 않고 무형화된, 뭔가 단어로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는 넓은 주체성을 가졌다.

그런 걸 하루아침에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걷는 일과 같았다.

‘그래. 아직 준비가 안 된 거야.’

나는 머리가 그 이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니, 단순히 기다리는 것만이 아닌 뇌가 거부감을 가지지 않도록 받아들이는 뇌의 한계를 늘리든지 다른 방법을 구상하든지 갖은 노력을 다해 보리라.

잠시 등가교환 마법으로 그것의 한계를 늘릴 생각을 해 보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개념적인 걸 받아들이려고 한계치를 늘리는 건, 마나가 얼마나 소모될지 모르는 미친 짓이야.’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그걸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마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천히 하자. 만일 이치를 들여다보고 그걸 받아들여 이해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얻게 될지도 몰라.’

비록 당장에 얻은 건 없지만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큰 희망이 생겨났다.

그나저나, 차원에서 이치를 엿본 것 말고도 주목해야 할 점들이 있었다.

우선. 회귀 전과 지금의 길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본래는 그냥 마도사의 길이었다면, 지금은 진리를 쫓는 마도사의 길로 바뀌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도사라는 이명이 주어졌는데, 이전에는 없던 회귀한 자라는 이명과 합쳐져 회귀한 마도사라는 새로운 이명을 얻어 냈다.

회귀한 마도사.

뭔가 내게 딱 맞는 이름 같지 않은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간 기분이다.

“크륵, 크륵!”

-준석! 준석!

다칼이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며 다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왜 그래?”

-그래서 성과는 있었나?

그 말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있었지. 이 정도면 아주 만족스러울 정도야.”

-그거 다행이군. 표정이 좋질 않아서, 결과가 안 좋게 나온 줄 알았건만.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보다 반나절이 지났다고 했지?”

-그렇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르지.

“흠. 생각보다 지체됐군.”

-어서 여길 벗어나자고.

다칼이 나가는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잠깐만.”

나는 나가기 전에 진리의 스핑크스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스핑크스.”

몇 번이고 더 불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머리는 이전에는 없던 금이 가 있다.

힘을 주면 바스러질 것처럼, 상당 부분이 파손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타 차원을 열며 아이템이 힘을 잃은 것 같았다.

아이템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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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스핑크스의 머리

내용: 지금은 힘을 다 소모해, 아무것도 아닌 모래더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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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들이 전부 사라지고 쓸모없는 내용만이 남아 있었다.

-설사 오시리스에게 타 차원을 열만큼 힘을 전해받았다고 해도, 몸이 그것을 견뎌 내기는 어려웠겠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다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리의 스핑크스의 머리는 당장에 버려도 상관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난 스핑크스의 머리를 아공간에 챙겨 넣었다.

나중에 힘을 회복시키고 나면 언젠가는 쓰일 일이 있을 터였다.

“됐어. 이만 가자고.”

멈춰 서 있던 발을 움직였다.

* * *

“분명 이 길로 들어갔는데…….”

준석의 뒤를 쫓던 카이린은 이내 어떠한 문과 마주했다.

문에는 열쇠 세 개가 꽂혀 있고 굳게 닫혀 있었다.

철컹! 철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문을 밀어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야?”

열릴 줄 알았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딱히 다른 길이 없는 걸 보면 이 문으로 들어간 게 확실하다.

“안 열리면 부수면 되지.”

쿵! 쿵! 쿵!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격.

하지만 문은 강철을 겹겹이 두른 듯이 아주 멀쩡하기만 했다.

“허헉. 허억. 으아아악! 뭐가 이리 단단한 거야!”

한껏 성질을 낸다.

그리고 이내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는다.

“아주 나오기만 해 봐.”

이곳에 대기했다가 기습을 노리기로 마음먹은 그녀.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하암~.”

피로도가 쌓였던 탓인지, 그 자리서 한숨 자고 일어난 카이린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이쯤 되면 나와야 정상 아냐? 혹시 죽었나?”

그의 무력을 떠올려 보면, 죽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인생 일이지 않은가.

“괜히 여기서 쓸데없이 죽치는 건 아니겠지…… 아! 몰라몰라! 때려치워!”

카이린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놈을 기다리는 걸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살아 있다면 언젠가 다음 층으로 올라오리라.

‘그래. 복수는 나중에 하면 되지.’

그렇게 그녀가 자리를 비우고 10분 뒤.

드르르!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선 준석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 * *

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었다.

다음 층을 포탈로 가느냐. 아님 계단으로 올라가느냐.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곧장 포탈 앞으로 이동했다.

보통 계단으로 가야 자그마한 혜택이라도 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지만 15층에서 16층으로 가는 계단만큼은 피해야 했다.

중, 상층부 등반자들은 15, 16층 사이 계단을 이렇게 표현했다.

킬링 타임 플로어.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인다는 의미였다.

계단 중간쯤 올라가면 자동으로 부가 미션이 발동한다.

그냥 포인트 음식 상점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세 달간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한데 돌아오는 보상은 그다지 크지 않다 보니 얻는 것도 없는 고통스러운 휴양지인 셈이다.

‘카이린, 그 여잔 어디로 갔으려나.’

나오는 길에 보니 한동안 비밀의 방 입구서 기다렸었던 것 같던데.

잠시 계단 쪽을 쳐다봤다.

최근에 찍힌 모래 발자국들이 보였다.

각인하는 과정에 강제로 반나절의 시간을 보내 버렸으니, 그동안 이곳까지 올라온 등반자들이 꽤 될 것이다.

한데. 흔적들 중에 익숙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카이린이 착용하고 있던 손목 보호대 하나가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다 파손돼서 버렸나 보군.’

그런데 하필 계단을 선택하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생 좀 하시겠어.”

그녀가 고통스러운 휴양지에서 포효할 걸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곧 포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몸이 부유하는 느낌과 함께 검게 일렁이는 공간을 지나친다.

잠시 후, 환한 빛이 시야를 밝히며 새로운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다수의 기둥과 그 위에 얹힌 캐주얼한 지붕. 앞뒤로 개방된 통로 공간은 시장의 아케이드 설치물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듯한 만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들이 통로 곳곳을 가득 채웠다.

하나,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존재들이었다.

“어머. 저거 예쁘지 않아?”

“들어가서 한번 볼까?”

근처에 들려오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사람의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외형은 완전히 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대충 지나가다 흘겨보면 유사하게 생겨서 못 알아챌 수 있다.

하나 그들의 피부와 머리카락, 두 눈동자, 팔과 다리 등등 여기저기를 자세히 보며 느껴지는 이질감은 저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것들은 인간을 본따 잘 만들어진 인형일 뿐이었다.

다른 외형을 지닌 인형들도 눈에 들어온다.

자그맣고 아기자기한 토끼와 곰. 그리고 이족보행을 하는 개와 고양이들. 이외에 아담하고 귀엽게 생긴 고블린이나 오크. 트롤들까지.

몽환적인 만화 캐릭터가 화면 밖으로 뚫고 나온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이것이 인형들의 도시, 로시아의 흔한 길거리 풍경의 모습이다.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이내 새로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16층 클리어 조건을 생성하려면 일정 장소로 이동해야 합니다.]

[도시에 어딘가 있는 ‘용병소’를 찾아가십시오.]

내용을 보니 회귀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땐 용병소가 어딘지 몰라 인형들한테 물어보면서 찾았지.’

하나 이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고 있으니까.

우선은 이 아케이드 지역부터 벗어나야 했다.

“크으응…….”

그런데 따라붙는 다칼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어디 불편해? 꼭 똥 마려운 것처럼 구는군.”

-그런 게 아니고 영 적응이 안 돼서 그렇다.

“무슨 적응을 말하는 거지?”

-인형들 말이다. 움직이는 인형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 이질적인 기분이 들어. 그래서인지 썩 마음이 편치 않아.

“무슨 기분인지 잘 알지.”

나 역시 인형들에게서 이질감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적에 살아 있지 않은 인형들만 봐 오며 커서 그런가.

영 살아 움직이는 인형들이 적응이 안 된다.

회귀 전에 이곳을 지나쳐서, 그래도 익숙해질 법한데.

지금도 여전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걸 보면, 이들을 평생 봐도 안 익숙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아케이드 지역을 벗어나니, 내내 보이지 않던 등반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대다수는 각자 길로 흩어졌지만, 일부는 나랑 같은 방향의 길을 걸었다.

이내 하나의 건축물이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삼각형 지붕 구조로 된 저택 건물은 크기도 거대했지만, 간판에 그려진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보랏빛 기운을 품고 두 눈에 광기가 가득한 인형이 죽창에 찔려 있었다.

그 아래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저곳이 바로 내가 찾던 용병소.

등반자들의 집합지.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던 나는 금방 사람들이 있는 대열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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