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81화
81화 스핑크스 (2)
“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지만 미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럼 정답이 시간은 아닐 거고.’
육체를 늙게 하고 기억을 축적시킨다에서 떠오르는 단어가 두 개 있었다.
나이와 세월.
하지만 의미가 조금 더 맞는 쪽은 세월이었다.
세월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기도 하고 때론 충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뭐야. 쉽잖아.’
어려운 문제가 나와, 풀지 못하면 등가교환 마법을 시전해 정답을 알아내려고 했다.
하나 정답을 알게 된 상황에서 굳이 마나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졌다.
“크릉…….”
-과거와 현재, 시간의 초월성을 가진 단어인 것은 분명한데. 이번 것은 잘 모르겠군.
의외로 잘 풀어낼 줄 알았던 다칼은 고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이 쉬운 문제를 모르겠다고?”
-음? 정답을 알아냈나?
“알아냈지.”
나는 스핑크스를 보며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정답은 세월이다.”
혹시나 또 질질 시간을 끌 것을 우려해서 미리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자 스핑크스는 손을 보고 움찔하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정답!”
이변 없는 통과였다.
[스핑크스가 낸 문제를 풀었습니다.]
[스핑크스의 머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된 힘이 전부 해방됩니다!]
혹시나 세 번째 문제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후우~.”
약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항상 마나는 든든하게 차 있어야 하는데, 마나를 소모해야 하는 상황이 나오질 않아서 다행이다.
“응?”
잠재된 힘이 전부 해방되어서 그런지 손에 들고 있던 스핑크스의 머리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우, 우하아!”
스핑크스가 감탄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곧 녀석의 뒷머리로, 흙으로 빚어진 두 날개가 기지개를 피고 나왔다.
[스핑크스의 머리가 진리의 스핑크스의 머리로 변합니다.]
아이템 이름이 바뀌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예상한 대로야.’
이지에서 얻었던 스핑크스의 머리와는 확연히 다른 물건이었다.
이전과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확인을 위해 아이템 정보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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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스핑크스의 머리
효과: 수수께끼 제공, 길(道)의 각인, 성장 도움.
조건부 효과: 길(道)의 각인을 통해 스핑크스에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 주어라. 그럼 ‘진리의 차원’이 열리리라. 단 진리의 차원은 한 번 열면 다신 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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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는 기존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진리의 차원? 처음 듣는데.”
다만 조건부 효과는 기존에 없던 것이다.
나는 스핑크스에게 진리의 차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돌아본 답변은 영 시원찮았다.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말이야 방귀야. 네놈 능력인데 몰라? 맞아야 답변이 돌아오려나.”
“아, 아 정말 모릅니다요! 저를 좀 믿어 주십시오! 주인님께 절대 거짓을 고하는 게 아닙니다!”
맞지 않으려고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녀석의 말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퍽!
“어억!”
그래도 모르는 괘씸죄가 있으니 꿀밤을 한 방 먹여 줬다.
한데 스핑크스가 답해 주지 못한 질문을 다칼이 아는 듯 반응했다.
“정말 아는 게 있어?”
-잊었나? 이래 봬도 탑의 산증인이다. 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거의 없지.
“캬하앙!”
-크흠! 물론 갇혀 있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나 진리의 차원이라면 그걸 경험해 본 자에게 직접 들어 본 적 있다.
“진리의 차원이 뭐지?”
-이치를 깨닫는 곳. 그렇게 표현했다.
“이치를 깨닫는 곳이라…….”
-그리고 천운의 기회가 닿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하더군.
“그럼 난 천운의 기회를 거머쥔 셈이네?”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아무튼 그자가 그곳을 들어왔다가 나왔을 때 모든 게 달라졌다고 했다.
모든 게 달라져야 한다.
어쩌면 그 말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이전과는 모든 게 달라져야 반드시 탑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때? 그자 말대로 그자 인생의 결과가 달라졌나?”
-으으음. 분명히 범상치 않은 발자취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그 시대에 그 누구보다 압도적인 속도로 탑을 올랐으니까.
하나 반응이 떨떠름했다.
그것을 보고 끝의 말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몇 층까지 올랐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71층이다.
“그래도 많이 올랐네.”
-한데 이상하지 않나.
“뭐가?”
-스핑크스에 대한 설화는 익히 들었지만, 저놈이 차원을 여는 힘 따윈 없다는 걸 그대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타 차원을 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더 잘 알 것이다. 그리고 타 차원을 여는데 얼마나 큰 대가가 따르는지. 한데 자신의 힘을 알지 못한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질적이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
안 그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점이다.
내가 아는 스핑크스도 그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본체의 힘을 가진 스핑크스라도 할지라도 15층에 올라온 평범한 등반자들보다야 세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럼 누구에게 힘을 전해받은 거지?’
스핑크스에게 힘을 준 것은 신좌일 가능성이 컸다.
그때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오시리스.
이곳, 비밀의 방 주인이자 스핑크스의 진정한 주인.
‘그래. 오시리스라면 타 차원을 여는 힘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겠지.’
오시리스는 신좌들 중에도 상위에 속하며, 그를 따르는 계약자도 많았다.
‘그런데 오시리스는 죽은 자들의 신을 자처할 텐데, 진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당장에 그것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
“스핑크스.”
부르자마자 머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아! 때리지 마쇼! 진짜! 전,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설레발은. 더 때릴 생각 없고. 길의 각인을 새기고 싶다.”
“아! 길의 각인! 알겠습니다!”
곧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길(道)의 각인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각인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각인되면 다시는 무를 수 없으며 그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각인을 새기시겠습니까?]
문구가 낯설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익히 봤던 것이니까.
‘그때는 내 길을 보여 주는 데 한참이 걸렸지.’
당시에는 스스로 확실하게 정립이 안 되었을 시기이다.
그런 풋풋한 모습이 내게도 있었다는 것이 떠오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시스템의 질문에 답했다.
“새기겠어.”
“이제 제 두 눈을 보십시오.”
스핑크스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시야가 검게 차단이 됐다.
바라보고 있던 두 눈은 어느새 깨끗하고 투명한 바닷물로 변했다.
헤엄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는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하나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다와 내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길(道)의 각인화가 진행됩니다.]
[이제 당신이 걷고자 하는 길(道)이 무엇인지 보여 주십시오.]
회귀 전에 가고자 했던 길은 마도사의 길.
나는 그 길을 망설임 없이 걸었고 끝끝내 대마도사라는 이명까지 얻었다.
마도사의 길을 걸으며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양한 마법을 배우고 강한 마법을 추구했으며 그 끝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탑의 등반자로서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지.’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데카인을 상대하기에는 말이다.
과연 마도사의 길이란 마법의 끝을 추구하면 끝인 것일까?
‘애당초 마법이란 무엇이지?’
자연의 에너지인 마나를 이용해 만들어 낸 기적?
고개를 저었다.
마법은 세상에 본래 존재했던 것을 끌어오는 힘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모든 마법은 탑의 시스템이 쥐여 줬을 뿐.
애당초 인간이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끌어오고, 우린 빌려 쓰는 거지.’
그것이 30년간 탑에서 지내며 정립된 나의 지론이다.
하지만 그런 개념을 명백히 벗어나는 마법이 딱 하나 존재했다.
서고에서 얻은 등가교환 마법.
다른 마법과는 달리 형태나 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상하고 상상한 대로 마법을 형성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들어진 마법을 시스템이 끌어온다는 느낌보다는, 직접 세상에 존재하는 힘을 끌어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등가교환의 힘 역시 탑의 시스템이 쥐여 준 것은 사실이나, 힘을 끌어오는 과정에서 탑을 거치지 않고 그 힘이 내게 도달한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등가교환이 조금 더 남의 힘이 아닌 내 힘처럼 느껴지는 게 있었다.
‘강력한 마법만을 추구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야.’
조금 더 본질적이고 태생적인 것에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진정 마도사의 길을 걷는데 필요한 건 본질과 진실, 자유, 그리고 이해.
어느덧 깨끗하고 투명했던 바다에는 나의 이념과 생각이 담긴 나만의 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개처럼 가려져 있던 답답한 마음이 씻겨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 이건 뭐지.’
순간, 눈앞으로 내 기억에는 없는 낯선 기억의 파편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니, 이것을 기억의 파편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이치를 들여다보는 듯한……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가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오고 있었다.
“크으윽!”
더 이상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여기서 끊어 내지 않으면 그것에 내가 잡아먹힐 것 같았다.
“크악! 그마아안!!”
누군가가 내 목소리라도 들은 것인지,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하아~ 하~.”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방금 전에 대체 뭐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상당했으나, 그것들은 분명 마나와 마법 그 둘과 연관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바다가 없어졌네?’
그리고 어둠으로 차 있던 공간이 서서히 빛으로 걷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곧 바다가 있던 위치에는 스핑크스의 머리가 보였으며, 보이지 않던 다칼도 눈에 들어왔다.
한데 날 바라보는 다칼의 눈빛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왜 저러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서서 각인화 작업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준석! 괜찮나!?
다급한 얼굴로 뛰어든 다칼이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야, 야! 나와! 앞이 안 보이잖아! 그리고 웬 호들갑이야. 잠깐 각인화만 한 건데.”
-그게 무슨 소리지? 분명 꼬박 반나절 동안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았는데.
“응?”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챈 나는 그동안 밀린 메시지를 확인했다.
[길(道)의 각인을 새기는 데 성공합니다!]
[진리를 쫓는 마도사의 길(道)이 열렸습니다!]
[길(道)의 특성이 주어집니다.]
[진리를 쫓으면 쫓을수록 마나가 대폭 상승하게 됩니다!]
[마도사라는 이명이 주어집니다.]
[등반자들 중 최초로 두 개의 이명을 가집니다!]
[두 개의 이명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회귀한 마도사라는 새로운 이명을 얻습니다!]
[진리의 차원에 입장하였습니다.]
[마나와 마법에 대한 이치를 일부 엿보았습니다!]
[등반자의 이명의 격이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