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80화
80화 스핑크스 (1)
투욱! 투두둑!
자그마한 돌들이 천장에서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파괴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하듯 아래를 내려다보면 벌집 형태의 구멍들이 한가득했다.
파쟉! 피슈슈슛!
이어서 날아드는 수십 개의 전기 화살.
그럼에도 보호막은 끄덕 없이 버텨 냈다.
나는 더욱 좋아진 성능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킁킁!”
-어디서 불 냄새가 난다.
무언가 냄새를 맡은 다칼의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정면에서 붉은 불빛이 반짝였다.
화아아악!
순식간에 불꽃이 들이닥쳤다.
사각지대가 없는 공격!
하나 나와 다칼에겐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보호막이 시뻘겋게 변했을 뿐, 불의 열기를 견뎌 냈다.
화아아아-!
그러나 시야가 보이질 않으니 답답했다.
다크스윔.
어둠이 되어 수십 미터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이를 뒤따라오는 다칼.
-방금 불은 눈가리개용이었군. 저 바닥을 봐라.
건너뛴 거리를 돌아보니,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함정이 존재했다.
걸렸다고 하더라도 마법으로 다시 올라올 수 있을 테지만 어지간하면 안 떨어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후로도 잡다한 함정들은 계속 발동되었다.
‘이전에 비해 함정의 양도 많아지고 더욱 위협적으로 변했어.’
견갑을 끼고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었으면 자꾸만 보호막을 다시 쳐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크르르…… 왈왈!”
함정이 줄어드니 이젠 미라 개들이 튀어나와 길목을 지나지 못하게 방해했다.
-내가 처리하지.
다칼이 마안을 사용해 미라 개들을 차례대로 깨부쉈다.
“크흥!”
백여 마리쯤 정리한 뒤 콧김을 내뿜는다.
나는 다칼을 내려다보다 이내 불빛을 발견했다.
“다 왔네.”
잠시 후, 마주한 비밀의 공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벽지에 붙어 있는 상형 문자들이었다.
이 장소는 그것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항상 궁금했는데.”
-무얼 말이지?
“대체 뭐라고 적혀 있는 걸까? 혹시 저것들 읽을 수 있어?”
어쩌면 탑에서 오래지낸 다칼이라면 읽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케헤엥.”
-전부 읽어 내진 못하지만 대충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알 수 있다.
“뭐라 적혀 있지?”
-음…… 별다른 의미가 없는 문구가 많은데. 아!
“왜?”
-저쪽에 네가 흥미를 가질 만한 문구가 적혀 있군. 이곳은 죽은 자들의 신, 오시리스의 휴식처. 무료함을 느낀 자, 목숨을 걸고서 발걸음을 하리. 자신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 영혼을 걸고서 발걸음을 하리.
“오시리스.”
이름을 호명하자 순간 스산한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하던 하데스가 반응을 보였다.
[죽음이자 어둠을 그늘에 진 자가 오시리스라는 말에 강한 경계심을 표합니다.]
그가 경계심을 표하는 건 당연했다.
하데스는 어둠을 지배하고 죽음을 지배하는 신.
그렇기에 죽은 자들의 신을 자처하는 오시리스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비록 하데스가 죽은 자들의 왕으로서 군림을 하고 있지만 언제 오시리스에게 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앞으로 30년간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오시리스에 대해서 또 누군가가 반응을 보였다.
[풍요를 품은 술의 도취자가 오시리스의 이름은 입에 언급도 하지 말라 말합니다.]
‘술 말고는 관심도 없는 양반이…….’
하나 그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한때 디오니소스는 오시리스와 동일시되는 존재였다.
오시리스가 그의 일화를 흡수해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고 디오니소스의 존재감을 흐릿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오시리스를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한 번 더 언급하면 시끄러워지겠군.’
그런 꼴은 못 보기 때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여기에 온 목적에 집중했다.
중앙에는 거대한 사자의 몸통이 거의 부서진 채로 있었다.
저것은 스핑크스의 몸.
머리는 있어야 될 자리에 없고 저 멀리 굴러떨어져 있었다.
마치 하찮은 물건처럼.
나는 머리가 떨어져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것을 가지면 자신이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점지가 발동 중이었다.
한데 두 손으로 쥐기에는 머리가 몸통만큼 거대했다.
스윽.
그러나 머리에 손을 대는 순간 크기가 점차 줄어들더니 한 손으로 쥘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스핑크스의 머리를 얻었습니다.]
-준석! 옆에!
“알아.”
아이템을 손에 쥐자마자 창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하나 이미 알고 있는 함정이었기에 뒤로 물러서서 가벼이 피해 냈다.
콰앙! 우웅-
그러나 창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나 보다.
벽에 박혔던 창이 금방 공중에 떠오르더니 다시 나를 노린다.
‘그렇담 아예 부숴 주지!’
탁!
옆으로 슬쩍 피한 뒤 창의 봉을 잡았다.
그드득! 파삭!
악력으로 두 쪼가리를 내고 마무리로 불을 붙였다.
수웅! 수웅!
하나 아직 형태가 남아서인지, 두 쪼가리로 나눠진 무기가 불이 붙은 채로 공격을 하려고 들었다.
“캬하아앙!”
그때 다칼이 직접 나서서 무기가 완전히 타 버릴 때까지 제압했다.
그동안 나는 다칼을 믿고 스핑크스의 머리를 쳐다봤다.
에고가 있다기에는 두 눈은 감겨 있고 딱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나 이것은 잠을 자고 있는 것뿐.
마나를 불어넣으면 강제로 깨울 수가 있었다.
위이잉-
곧장 체내의 마나를 스핑크스의 머리로 이동시켰다.
잠시 후.
스르르.
천천히 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완벽히 눈이 뜨이자 스핑크스의 머리, 아니 정확히는 스핑크스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캬하아음! 나를 깨운 것이 너인가?”
“그래.”
“삐쩍 말라서 볼품없게 생긴 인간이구나. 내 발톱 하나로 찍으면 가루도 남지 않고 사라지겠어.”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아직 주인이 누구인지 인지를 하지 못한 것 같다.
퍽!
“우악!”
머리를 세게 때리자 어울리지 않게 비명을 질렀다.
“한대 더 맞자.”
퍽!
“아악! 이놈이……!”
“음. 아니야. 아니야.”
퍽!
“젠장! 왜 내 몸이 말을 안 듣지!”
머리와 몸통이 따로 있으니 당연히 들을 리가.
퍽!
“어억!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퍽!
나는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때리고 또 때렸다.
한 스무 대쯤 때리고 나서야 스핑크스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자비를…….”
“이제야 좀 대화가 되네.”
“그런데 어찌 절 때리시는지 이유라도 알 수 있습니까?”
퍽!
“어억!…… 아닙니다! 궁금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때리는 것만은…….”
하도 맞아서 스핑크스의 머리가 부어올랐다.
“그래. 앞으로 뭐든 궁금해하지 마. 넌 내가 묻는 거에만 대답한다. 알겠어?”
“예!”
나는 각 잡힌 목소리에 만족하며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자. 너의 의무는 뭐지?”
“그야. 찾아오는 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틀리면 찰지게 잡아먹는 것이 저의 의무입죠.”
“갑자기 끝 말투가 왜 그래?”
“어…… 뭔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니.”
갑자기 간신배의 말투로 변한 것 같아 살짝 황당했을 뿐이다.
스핑크스.
사실 지구에서도 스핑크스에 대한 설화가 많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수수께끼를 내어 상대가 풀지 못하면 잡아먹는다는 설화다.
탑에서도 실제로 스핑크스는 그런 비슷한 역할을 지니고 있긴 하나 다른 점이 존재했다.
그것은 상대를 잡아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가 된 스핑크스에겐 그럴 힘이 아예 없었다.
누가 왜 부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틀리면 영영 이 아이템의 잠재된 힘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스핑크스의 머리를 편한 시선에 갖다 두고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너 의무를 수행해.”
“예? 제가 수수께끼를 내란 말씀입니까?”
“그래. 그게 너 의무잖아.”
“괜찮겠습니까? 수수께끼를 틀리면 제가 너…… 아니 주인님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데.”
웃기는 자식, 몸통을 잃은 주제에 그런 말을 잘도 한다.
“상관없으니까 내기나 해.”
“알겠습니다.”
스핑크스는 두 눈알을 360도로 돌리기 시작했다.
수수께끼로 무엇을 낼지 고민하는 것이리라.
하나 저리 고민을 해 봐야 큰 의미가 없었다.
난이도가 달라, 설사 스핑크스가 다른 수수께끼를 낸다고 해도 정답을 알아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리치네스.
[일시적으로 마나를 담는 그릇이 넓어집니다.]
곧 스핑크스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수수께끼를 내겠습니다.”
스핑크스는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공간에 전부 울려 퍼질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인간의 마지막 생명의 끈이 되어 주다가도 그것을 잃게 되면 곧바로 죽음의 원인이 되는 이것은 무엇일까.”
이지에서 나왔던 문제는 아니었다.
“인간의 마지막 생명의 끈이 되어 주다가도 이걸 잃게 되면 죽음의 원인이 된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 정답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희망.
다만 이것이 확실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다칼이 한마디 했다.
-혹시 희망이 아닌가? 희망은 인간의 마지막 생명의 끈이 되어 주지. 그것을 잃게 되면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다칼도 같은 결론이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야.’
확실하게 정답을 확인할 방법이 있었지만 결국엔 그 방법은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답은 희망.”
“한 번 말하면 물릴 수 없습니다. 정말로 그 정답으로 하겠습니까?”
“그래. 안 바꿔.”
“…….”
스핑크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너무 시간을 끌자, 저절로 손이 올라갔다.
“긴장감을 좀 주려고 했는데, 바로! 예! 바로 정답을 말하겠습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정답은…… 희망! 맞습니다!”
“후~.”
확신은 했으나, 혹시나 다른 정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자그마한 불안감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스핑크스가 낸 문제를 풀었습니다.]
[스핑크스의 머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된 힘이 일부 해방됩니다!]
“응?”
나는 잠시 메시지의 내용을 잘못 본 줄 알았다.
문제를 풀어 잠재된 힘이 풀리기는 했는데, 일부 해방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문구에 의문을 가지던 찰나.
날 바라보고 있던 스핑크스가 다시 두 눈알을 돌리기 시작했다.
“문제가 두 개라고?”
문제 하나만 풀면 끝났던 이전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리 놀랄 필요도 없었다.
이지와 하드, 둘을 경험하며 느낀 것은 같은 아이템이 그 같은 아이템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이템 이름이 같으나, 잠재된 힘이 전부 개방되었을 때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분명한 것은 그런 차이가 일어나면 아이템 성능의 차이도 반드시 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이런 상황이 된 게, 내게는 좋다고 볼 수 있었다.
곧 두 눈의 초점이 돌아온 스핑크스가 두 번째 문제를 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이것은 육체를 늙게 하고 기억을 축적시키기도 하며 정신을 갉아먹기도 하고 때론 충만하게도 만든다.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