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79화 (79/230)

회귀한 탑 등반자 79화

79화 비밀의 방

카이린은 욕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아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아직 흩어지지 않은, 순수한 원기가 담긴 주먹을 내뻗었다.

제아무리 그라고 해도 열 걸음이면 닿는 거리에서 이 공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푸슈아아앙!

무슨 펀치에서 로켓이 지나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를 지닌 공격이었다.

당연히 그가 맞을 줄 알고서, 꼴좋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나가떨어지기는커녕 그는 아주 멀쩡히 서 있었다.

‘내 필살기를 피했어?’

더 열 받는 건 보상을 챙기는 여유까지 보인다는 것이었다.

으득!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투영됐다.

카이린은 이미 본능적으로는 그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분노는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팡!

열 걸음에 닿을 거리를 왼쪽 다리에 무리하게 힘을 주어 단 한 걸음으로 좁혔다.

잽 라이트 레프트 훅 콤보.

미약하게나마 남은 원기가 매섭게 주먹 끝으로 터져 나왔다.

팡, 파팡!

첫 타에 보호막을 깨부수고 두 번의 유효타를 먹일 수 있었으나 여전히 주먹은 닿지 않았다.

“하아~ 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나 있는 상태.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어디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탕!

계속 피할 줄만 알았던 그가 주먹을 자기 손으로 막아 냈다.

“으으!”

꽉 잡힌 손은 시멘트에 묻힌 것처럼 꿈쩍도 안 했다.

“이만하지? 많이 봐준 것 같은데.”

“뭐?”

카이린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발언에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많이 봐줘? 지금 그게 할 소리야!? 내가 상대하던 녀석을 얌체같이 빼앗아 갔잖아! 돌려내! 돌려내라고!”

그녀는 나머지 한쪽 손을 움직였다.

그의 나머지 손은 지팡이를 들고 있으니 막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나 언제 다시 보호막을 형성한 것인지, 얼굴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막혀 버렸다.

힘이 급격히 떨어져, 보호막에 금도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술 때까지 손을 움직였다.

“돌려내!”

스르륵! 촤악!

기어코 땅에서 튀어나온 나무의 줄기가 그녀의 손을 속박했다.

“야아아!”

“아우. 시끄러워. 이봐. 빼앗긴 게 억울해?”

“그럼 안 억울하겠어!?”

“하아~.”

준석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잇는다.

“한 가지만 말해 주지. 탑은 무한 경쟁이야. 자기 먹잇감을 보호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지. 이곳에는 내 꺼다! 선언하고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는 먹잇감은 없어. 그건 자기가 원하는 상황일 뿐이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남에게 빼앗기지 않게 자기 것을 잘 지키라 이 말이야. 그래야 이 탑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

카이린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네가 뭔데!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그리고! 누가 들으면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곳에 지낸 줄 알겠다?”

찰나, 준석이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

“받아들이고 말고는 네 뜻이니 마음대로 해.”

그리 말하며 등을 돌리는 그는 올라가는 계단으로 조용히 사라졌다가 금방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고는 반대로 향한다.

본래는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계속 가는 게 정상일 터인데.

카이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앞에 장애물이라도 있나? 아니면 처리하지 못할 곤란한 무언가가? 아냐.’

여태 그가 보여 준 행보를 보면 그런 걸로 뒤로 물러설 놈이 아니었다.

하면 혹시 이곳에 숨어 있는 히든 피스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닐까?

‘저길 올라갔다온 건 미션 때문이고…… 그럼 저리 행동하는 게 말이 돼.’

곧 그가 모습을 완전히 감추자, 그녀의 손을 속박하고 있던 줄기도 사라져 버렸다.

풀려난 카이린은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당장이라도 그를 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한껏 화를 내고 차분해진 그녀는 상황을 직시했다.

언제 또 다른 등반자가 이곳에 올지 모르는 일이기에 미션 클리어부터 신경을 쓰는 게 맞았다.

계단에는 함정이나 몬스터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중층부에서 상층부 사이에 존재하는 계단을 오를 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지금도 진저리가 났다.

“으으으.”

‘그 기억은 생각하기도 싫어.’

상층부 관문에 있는 계단은 그다지 길지도 않았다.

금방 끝에 이른 그녀가 시야에 올라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15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기여도 순위에 들었습니다.]

[기여도 명단에 이명을 공개하겠습니까?]

“어? 응.”

[기여도 명단에 이명이 비공개 처리됩니다.]

[기여도 순위가 공개됩니다.]

(((((((((((((((((((((((((((((((((((((((()

1위) 비공개

2위) 타고난 격투가

3위) -

4위) -

5위) -

(((((((((((((((((((((((((((((((((((((((()

[기여도에서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기여도순에 따라 기본 보상이 지급됩니다.]

“하~ 씨…….”

자신이 조금만 더 앞섰으면 1위를 차지했을 텐데 말이다.

카이린은 다시금 끓어오르는 화를 심호흡하며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번 미션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보통 기여도 보상은 같이 미션을 진행한 사람들이 같이 목표를 달성하거나 아님 제한시간이 끝날 때까지 미뤄진다.

개인 미션이 부여됐을 때도 보상이 미뤄지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미션을 깬 사람들은 다음 층으로 향하게 되며, 미션을 깨지 못한 사람들은 해당 층에 남아 또 같은 미션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15층 미션은 달랐다.

개인에게 곧바로 순위가 책정되고 다음 층으로 향하는 권한과 함께 보상이 곧바로 지급되는 방식이었다.

주로 미션이 완전히 끝난 뒤에 새로이 미션을 시작하지만, 이곳은 미션이 시작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미션을 새로이 부여하는 듯했다.

‘중복된 미션이 존재한다라…….’

솔로를 자청하는 자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굳이 보상을 받기 위해서 남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내 그녀는 계단 너머로 있는 복도를 쳐다봤다.

선택지를 갈라놓듯, 다음 층으로 향하는 포탈과 계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대로 다음 층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먹잇감을 빼앗긴 것이 분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그의 발언이 떠올랐다.

“빼앗기지 않게 자기 것을 잘 지키라고? 웃기시네! 내가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만다.”

탓! 타다닥!

마음을 먹은 그녀가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목적은 그가 히든 피스를 가지려고 할 때 빼앗는 것.

당했으면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

그녀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아주 사람 잘못 건드렸어. 후회하게 될 거야. 반드시.’

* * *

다칼이 뒤를 흘깃 쳐다본다.

-저 여자 성정상 그냥 이대로 물러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던데.

나는 별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달려들려고 하면 제압하면 그만이지. 굳이 하나하나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러다 골나. 그래도 주시할 필요는 있겠지.”

“케르응.”

-다음에는 내가 제압하겠다.

“그래 주면 나야 좋고.”

-그보다 그것이 이번에 얻은 보상인가?

나는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쳐다봤다.

15층 미션 보상으로 받은 스킬책 한권.

“힘의 천칭저울. 좋은 걸 얻었어.”

이지에선 얻지 못했던 것이다.

-힘의 천칭저울이라면 상대의 힘과 자신의 힘을 가늠해 주는 스킬이군.

“그래. 사용할 때 소모되는 마나도 적고 미리 상대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에서 괜찮은 스킬이지.”

좋은 것은 곧바로 습득해야 하는 법.

스르륵-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법책에 각인된 스킬을 습득합니다.]

[힘의 천칭저울(Lv1)을 배웠습니다.]

나는 스킬을 배우자마자 다칼에게 사용해 보았다.

칭칭!

깨끗한 울림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허공에 천칭저울이 노랗게 된 형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왼쪽 저울 위에는 미니어처처럼 작은 나의 모습이 오른쪽 저울 위에는 다칼의 모습이 드러났다.

곧 저울이 기울기 시작한다.

근데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난 그래도 힘을 어느 정도 되찾은 다칼이 이길 줄 알았는데.’

저울은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금방 다칼을 내려다봤다.

“하핫.”

다칼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본다.

-뭔지 모르지만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석여 있군. 혹시…… 저울대에 날 올린 것인가?

나는 검지를 들어 흔들었다.

“넌 아직 나한텐 안 돼.”

“캬하아앙!”

-내가 본래 힘을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대쯤은 내 발가락 하나로도 찍어 누를 수 있다!

“아아~ 그러십니까. 아이구~ 무섭네.”

“캬하아악!”

다칼이 날 세게 깨물었다.

이전보다는 그래도 살짝 아프긴 했지만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칼 녀석, 타격감이 좋다니까.’

뭔가 괴롭히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다칼을 떨어뜨려 놓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 다 왔어.”

어느덧 상층부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방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에는 피라미드가 새겨져 있는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려진 피라미드에는 상중하로 열쇠 홈이 존재했다.

주머니에서 세 개의 열쇠를 꺼냈다.

열쇠 이름에 적힌 대로 상단에는 上의 열쇠를 중단에는 中의 열쇠를 하단에는 下의 열쇠를 끼워 넣었다.

“됐다.”

곧 뒤로 물러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쿵! 끼기기긱-

문이 둘로 갈라지며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콰앙!

전부 열리고 나니, 자연스레 어둠 속에 불빛이 들어왔다.

불을 밝히는 것은 벽에 걸려 있는 횃불들이었다.

그리고 장소는 네모나게 밀폐되어 있었다.

폐소 공포증이 있는 인간이라면 저곳에 들어가기조차 어려워하리라.

‘이지 때와 별반 달라 보이는 건 없네.’

하지만 가는 와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확실하게 대비를 해 두는 편이 낫겠지.’

우선 아이템 하나를 완성시켜 착용하기로 결정했다.

아공간에 넣어 뒀던 삼위일체 견갑 파편 두 개를 꺼내 그 둘을 곧바로 접촉시켰다.

그러자 곧 강렬한 빛의 분출을 일으켰다.

[삼위일체 견갑이 완성된 모습을 갖춥니다.]

완벽히 완성된 삼위일체 견갑은 빨간 삼각형 문양 안에 자그마한 삼각형이 하나 더 생겨났다.

또 보호구는 두 겹을 덮어쓴 것처럼 크기가 조금 더 커져 있었다.

모양새는 얼추 봐 줄 만하다.

착용하기 전에 나는 그동안 열리지 않았던 정보창이 열어 보았다.

(((((((((((((((((((((((((((((((((((((((()

진(眞) 삼위일체 견갑

효과: 체력x2, 보호막 강화

조건부 효과: 견갑의 내구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나타, 자카, 다카가 삼위일체를 이룬 나자카가 소환되어 견갑의 효과를 증폭시키고 소지자를 위해 싸운다. 단 내구도가 더욱 빠르게 소모된다.

조건부 효과: 견갑이 완전 파괴될 시 일시적으로 ‘삼위일체’ 효과가 나타난다.

(((((((((((((((((((((((((((((((((((((((()

“진? 진이란 말은 없었는데.”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게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삼위일체 견갑을 사용하긴 했으나, 그때는 체력 상승의 효과도 이것보다는 이분의 일은 낮았고 조건부 효과도 하나뿐이었다.

한데 이번 것은 체력 상승뿐만 아니라 조건부 효과 또한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견갑이 파괴되면이라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에 삼위일체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더 좋아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네.”

나는 왼쪽 어깨에 견갑을 착용했다.

어깨 한쪽에만 착용하는 보호구라 나머지 한쪽 어깨에는 착용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템으로 인한 체력의 변화는 당장에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배지의 힘을 사용해 만든 보호막으로 견갑의 힘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탱탱! 채애앵!

다크소드로 직접 보호막을 공격해 본 결과. 이전보다 버티는 강도가 세 배는 뛰어나졌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상대하는 적에 비해 보호막이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걸 보완해 줬으니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

이내 부서진 보호막을 다시 생성한 후 앞을 내다본다.

“다칼, 준비됐어?”

-나야 언제든 준비됐지.

다칼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내디뎠다.

문의 경계선을 넘는 순간 조용하게 메시지가 떴다.

[피라미드의 심층부 비밀의 방에 들어섰습니다.]

0